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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May 21. 2019

23. 그 밤, 댈러스

방탄소년단 덕후 일기 23



 케틀 아트 갤러리의 새 전시 오프닝 파티가 있는 날. 캐주얼한 분위기에 낮에 진행되는 파티로 격식을 따지지 않는 자리라 했다. 청바지에 셔츠를 꿰어 입고 집을 나섰다. 경영 컨설턴트로 30년을 넘게 일해왔기에 비슷한 파티들은 많이 참석해봤지만 작가라는 이름으로 초청받아 참석하는 이런 파티는 역시나 긴장된다. 갤러리 근처 적당한 곳에 차를 주차하고 내리며 옷 매무새를 점검했다. 갤러리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산한 딥엘럼 거리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만큼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갤러리 오너 캄파냐와,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과, 처음 보는 작가들과 안부와 인사를 나눴다. 전시 오프닝 행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이란 응당 엇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 물꼬만 잘 트면 대화의 흐름은 유수 같다. 벽에 걸린 작품들을 감상한 뒤 엽서 등을 전시해놓은 아트샵 쪽에 자리를 잡았다. 주인공들이 돋보이려면 조연의 자리는 이쯤이면 충분하다. 몇 가지 책들을 둘러보고 있는데 나를 찾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과 동행한 까만 머리의 동양인이 저만치에서 눈으로 인사하며 걸어온다.


 “안녕하세요 마크 도미너스씨. 반갑습니다.”


 이미 나를 알고 있는 그녀의 손을 가볍게 쥔 악수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녀는 자신이 한국인이며 꼭 나를 인터뷰 하고 싶다고 확신에 찬 말을 건넸다. 그녀의 눈은 나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집 뒷마당에 작게 만들어놓은 내 작업실로 그녀와 그녀의 크루들을 초청했다. 그 곳이라면 편안한 인터뷰가 가능할 거라는 말은 사족이었다.


 작년 가을, 꽤 많은 인터뷰를 소화했다고 생각했지만 한국 매체와의 인터뷰는 처음인데다 벌써 반 년도 넘은 이야기에 아직도 흥미를 가져주었다는 점,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녀와 그녀의 크루들 모두 ‘아미’라고 소개했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충분했다. 인터뷰 약속을 잡고 나자 그들은 정중히 물러났다. 오프닝 파티는 장소를 이동해서도 계속 됐다. 들뜬 기분을 적당히 즐기다가 집으로 돌아와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작업실로 향했다.


 전업으로 나선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꽤나 오랜 시간을 물감을 섞고 늘어놓는 데에 익숙했던 터라 이 기름 냄새로 인해 포근해진다. 이 기분을 표현해내기엔 어떤 색감의 조합이 나을까. 작업해놓은 캔버스를 이젤에 올리고 고민해보는데 띠링-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의 메시지 알람이다. 작업한 작품을 소개한 게시글 아래로 수 개의 보라색 하트와 내 작업을 응원하는 메시지들이 쌓여있다. 그들의 메시지를 엄지로 훑었다. 내 나이의 5분의 1, 6분의 1 정도 밖에 안 될 어린 응원의 메시지가 무척이나 따뜻하다. 알람을 무음으로 바꾼 뒤 핸드폰을 바닥에 놓았다. 그리고 물감을 골랐다. 보라색과 빨간색이다.


 며칠이 지나 그들이 내 집에 방문했다. 작업실을 몇 번 오가더니 카메라 세팅이 금세 완료됐다. 인터뷰는 편집돼 유튜브에 업로드 된다는 설명을 들었다. 작업실 소파에 앉아 건너편에 앉은 인터뷰어와 눈을 마주했다.


 “자, 이제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볼게요.”


 첫 마디를 무어라 꺼내야할 지 숨을 골랐다. 그저 평범했던 자신의 일상이 하루 아침에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까.


 “그 날은 비가 왔어요.”


 그러니까 그랬다. 그 날은 비가 왔고, 나는 그때 그 곳에 있었다.


 4개월 전 쯤, 일을 그만두었다. 한 직업으로 30년 일을 했으면 충분했다. 리스크 매니지먼트 컨설턴트라는 그럴 듯한 직업이었지만, 나는 항상 그 안에 갇힌 예술가라고 생각해왔다. 예순다섯이면 새로운 것을 시작해보기에 딱 적절한 때다. 그러니까, 조금 더 늦으면 안 될 분기점 같은. 그럴싸하게 집 뒷마당에 작은 페인팅 스튜디오도 갖추었다. 남은 여생은 색을 이용한 작업을 실컷 해 볼 작정이다. 30년 동안 무언가를 고치고 수정하는 일을 해 왔다면, 앞으론 창조에 몰두할 예정이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자는 생각을 하자마자 그동안 잊고 있던 생의 역동성이 발바닥에서 꿈틀댄다. 이런 기분 얼마만인가.


 운이 좋게 다운타운의 케틀 아트 갤러리에서 주최한 매스티지 전시회에 작품을 걸게 되었다. 갤러리에 내 작품이 걸린 것만으로도 성공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판매까지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작업실 정리를 마치고 오후 늦게 갤러리를 향해 집을 나섰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이니까 갤러리 문을 닫고 나면 몇몇과 나가 술 한 잔 기울이기 딱 좋은 때다. 게다가 하늘도 어둡다. 비까지 내린다면야 술 맛을 더욱 좋게 하지 않겠는가. 차 시동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Rrr-


 친구 이름이 뜬 전화를 받기 위해 라디오 볼륨을 죽였다.


 “좀 어때?”

 “음, 네가 어떻냐고 묻는 건 그림 좀 팔았냐고 묻는 거지?”


 놀리는 건지 응원해주는 건지 모를 친구의 말을 덤덤하게 넘기는 스킬 따위 연마한 지 오래다. 지금까지 판 작품의 수가 12점에서 15점은 되는 것 같은데 그것은 전부 친구나 친구의 친구나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샀으니까.


 “내가 오늘 모르는 사람에게 그림을 한 점이라도 팔 수 있다면 전시가 성공적일 거야.”


 그 이후 몇 마디를 유쾌하게 나눈 뒤 전화를 끊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프로들의 전시장에 내 작품이 선보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게다가 생전에 고흐도 작품 판매에는 영 소질이 없는 작가였다. 그걸 생각하면 12점에서 15점의 작품이 어딘가에 걸려있는 나는 부자처럼 느껴진다. 차가 부드럽게 딥엘럼 거리에 들어섰다.


 갤러리에 있는 동안 몇몇의 사람이 들어왔다가 나갔다. 밖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고, 거리엔 어둠이 내렸다. 두 커플 정도가 조용히 작품을 감상하고 있었고 나는 다른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갤러리 문을 열고 사람들이 들어 왔다.


 평범한 운동복에 야구 모자를 쓴 사람을 선두로 네다섯명 정도가 더 있었을까. 그들을 빤히 쳐다보게 된 건 모자를 쓴 사람들을 비롯해 대부분이 동양인 남자였는데 그들을 향한 카메라가 따라 들어왔고, 덩치가 큰 사내가 문 앞을 지키려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중요한 사람으로 보이는 모자 쓴 남자 외 몇을 제외하곤 모두 검정옷을 입고 있었다. 영화 촬영 같은 것을 하기 위해 합의가 돼 있었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던 건가 싶어 옆의 작가를 바라보니 그도 어깨를 으쓱한다. 분위기상 유명한 사람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누군가는 가서 무언가를 얘기해야겠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들 중 작품을 유심히 보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야구 모자로 보이는 얼굴이 무척이나 잘생겼다.


 “안녕하세요."


 내 그림 앞에 멈춰서 흥미있는 눈을 빛내는 남자 옆에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경계와 반가움 중간 즈음에 걸친 눈빛으로 내 인사를 받은 그의 눈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그는 영어가 능숙하진 않았지만 몇 가지의 단어만으로 충분히 대화가 가능했다. 특히 이런 전시나 그림 작품들에 원래 관심이 많은 사람인지 그가 묻고자 하는 것들에 확실한 기호와 감성이 있어 언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짧은 표현이 아쉬울 땐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받았다. 색감이나 표현 방식, 제작 과정 등 그가 궁금해 하는 내용을 천천히 설명했다.


 내 작품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선사하고 있다는 걸 그는 알까. 턱에 손을 괴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며 그림을 살펴보는 그의 움직임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갖게 했다. 갤러리 안을 함께 오가며 얘기를 나눈 시간이 3,40분 쯤 되었을까. 그제야 나는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물었다. 그의 모습을 집착적으로 찍고 있는 카메라의 정체가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마크 도미너스라고 해요.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저는 태형이에요.”

 “태..태현? 태원?”

 “음.. 뷔 라고 해도 돼요.”


 유명한 사람인 것 같다 하니, 내일과 모레 이 곳에서 공연이 있다고 한다. 내 작품 뿐 아니라 갤러리 내에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을 함께 보며 교감했다. 그때 우리가 나눈 건 나이도 인종도 직업도 넘어선 일종의 교감이었다. 그림을 사랑하는 이들만이 교환할 수 있는 유대감. 그가 내 그림 두 개를 골랐다.


 세로로 긴 직사각형의 캔버스에 작업한 아크릴 작품들이었다. 비슷한 구성이지만 색이 확실하게 대비되는 것이었다. 하나는 주황색, 보라색, 검정색, 빨간색 등으로 전반적으로 무거우나 안정감이 주는 색들로 약간의 비뚠 대칭을 이룬 것이고 다른 하나는 초록색, 연두색, 하늘색, 주황색 등 밝고 가벼우나 묘한 이질감을 주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얼굴 같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키스 해링이 떠오른다고도 했다. 중심이 확실해 어지럽지 않고 경쾌함을 자아내는 작품들로 열흘 전쯤 작업한 작품들이었다. 그가 이 그림 두 점을 골랐고, 구매하겠다고 했다. 최근 이사를 한 방에 걸어두고 싶단다. 작품을 보낼 주소를 받아적은 뒤 그와 사진을 찍었다. 고맙게도 나와 사진을 찍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그때서야 그들을 묶는 이름을 알게 됐다. BTS. 잊지 않기 위해 꼼꼼히 기억했다.


 다른 일행들과 인사한 뒤 뷔와 마지막으로 인사했다. 그와 악수를 나누고 오늘의 인연이 고맙다고 하자, 그가 환한 미소로 내게 인사했다.


 “May your day shine bright(당신의 날이 찬란하게 빛나길)” 라며.


 한바탕 태풍이 지난 듯 갤러리는 고요해졌다. 그들이 돌아가고 나서 검색해 본 유튜브에서 내가 만난 BTS가 뷔가 얼마나 많은 인기를 가지고 있는 지 확인했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생애 처음으로 지인이 아닌 모르는 사람에게 작품을 판매했다. 한 점도 아닌 두 점을. 그것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유명한 낯선 사람에게. 다음 날 BTS가 방문했다는 사실을, 뷔가 작품 두 점을 구매했다는 사실을 SNS 계정에 올리자마자 10대 소녀들이 갤러리를 찾아 왔다. 그들은 뷔가 산 작품이 무엇인지 궁금해 했고 사진을 찍어 갔다.


 그 사실이 공표되자마자 말하자면 모든 게 변했다. 당연하게도. 내 SNS 계정은 수많은 아미들이 찾아왔고 뷔가 산 작품을 궁금해했고 구매하고자 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지인이 아닌 사람에게 작품을 단 한 점도 팔지 못 한 나이 든 작가였는데 말이다. 뷔에게 판매한 작품을 엽서나 프린트된 티셔츠로 만들어 판매하기로 한 것은 조금 뒤의 일이었다. 부담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뷔와 같은 작품을 가지게 하면서 판매 금액의 일부를 BTS가 Love yourself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유니세프에 기부하고자 함이었다. 아주 특별한 글로벌 커뮤니티인 아미는 이런 내 결정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고, 그들은 무명 작가인 나를 ‘완판’ 작가로 만들어주었다. 뷔가 건넨 말은 감히 예언이었다.


 모든 하필과 우연들이 하나의 인연으로 수렴하기 위해 존재했구나,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왜?’라는 물음은 지워지고, ‘그래야 했다’는 당위성만 남는. 우연에 기대지 않은 삶을 살아 왔다지만 이런 요행 앞에서 머릿속은 온통 이 네 글자로 지배된다. 하필이면.


 그렇다. 그 많고 많은 날 중에 그 날, 그 많고 많은 장소 중에 그 곳, 그 많고 많은 상황 속에 하필이면 꼭-하고 우리가 만났다. 그 어떤 그럴싸한 말도 이 ‘하필’에 당할 도리가 없다. 오늘도 이 네 글자를 또 상기한다. 하필이면.


 반 년 전의 일이었음이 믿을 수 없게 생생했던 그 밤을 떠올리며 얘길 했더니 뺨이 생기됐다는 게 느껴진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인터뷰어와 크루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걸려있다. 잠깐 기억을 더듬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인터뷰가 끝날 시간이었다. 그녀가 뷔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그림을 진심으로 대하던 분홍색 머리의 어린 청년을 떠올리며 카메라를 바라 봤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만약 당신이 이 영상을 본다면 우리 갤러리에 왔던 그날 밤 서로 무슨 이야기를 했었는지 충분히 알 거라 생각해요.

 지금처럼 계속 예술을 즐기길 바라고 언젠가 꼭 만날 수 있기를 바라요. 아 참, 그때 우리가 같이 찍은 사진이 있었는데 이걸 태형이 가져 갔고 나는 없는데 하나 받고 싶네요.

 무엇보다 태형 개인 뿐 아니라 멤버와 하는 모든 일에 고맙단 말을 하고 싶어요. 내게 주었던 것처럼 이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길 바랍니다. 고마워요. "



-



 2018년 9월 14일 금요일.

 저녁 8시 즈음의 댈러스 거리. 날씨는 비.



 가끔 이 모든 것들이 실재하는 것인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언론에선 하루가 멀다하고 ‘최초’ ‘최고’의 수식어를 써가며 우리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어도 내 것이 아닌 기분. 그러나 우린 내일과 모레 이틀로 예정된 콘서트를 매진시켰다. 이 곳 댈러스에서.


 멤버들 다 같이 다운타운에 가서 밥도 먹고 구경을 하고 오기로 했다. 텍사스나 댈러스 모두 이름은 익숙하지만 직접 걸음하기는 처음이다. 고만고만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거리를 바라보다 적당한 거리에 내렸다. 비가 내리는 금요일 밤이었다. 유독 밝은 빛을 내뿜는 상점이 있어 가까이 가보니 갤러리라 되어 있다. 망설임없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몇몇 작품을 둘러보다 두 개의 작품 앞에 섰다. 디테일은 다르나 전반적인 구도가 비슷하다. 이 작품은 일정치 않은 보라색을 몇 번이고 덧칠한 듯 질감이 느껴지면서도 묘하게 웃는 얼굴 같고 옆의 작품은 얼룩덜룩하게 탄 피부로 개구진 표정을 짓고 있는 듯 하다.


 인사를 하며 다가 온 노신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작품을 그린 작가라는 건 한 눈에 알아봤다. 내게 다가오는 표정에서부터 알 수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관심을 작가님이 한 눈에 알아본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최근 그림에 관심이 많아져 작업실을 꾸려 볼 요량이라 많은 질문을 건넸다. 특히 색감을 쓰는 방식이 마음에 들어서 관련된 질문을 많이 했다. 직접 배워본 적이 없어서 디테일하게 그리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도 같고, 내가 영감을 받는 작품들이 대부분 무심한 듯 툭툭 그려진 듯 하지만 실상은 그 안에 무수한 고뇌와 감정이 들어있는지라 비슷하게 흉내를 내보고 싶어서다. 말이 어렵기도 하고 생소한 단어들도 많아 구글 번역기를 사용해야만 했지만, 잘 못 알아듣는 나를 위해 제스쳐와 표정을 써가며 천천히 말해주는 태도에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난 숙소 방엔 고흐의 아몬드 나무와 클림트의 키스를 걸어두었었는데, 지금 방엔 이 두 작품을 걸어두면 좋을 듯 싶었다. 콘서트를 위해 방문 했던 이 도시에 대한 기억도, 이 갤러리의 대화도, 이 작품 자체도 한꺼번에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이지 않는가. 두 개를 구매하겠다고 한 뒤 작품 가격을 계산했다.


 작품을 구매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작가에게 최근 외운 문장 하나를 건넸다.


 “May your day shine bright”


 이 묘한 색 배합의 작품들을 계속해서 작업해 나가시기를, 언제나 행복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두 개의 작품이 배송 올 즈음이면 우리의 Love yourself 투어 일정은 한창 무르익어 갈 때겠다. 내 날도 좀 더 빛나 있겠지. 차 안에 자리 잡으며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이 밤에 어떤 노래를 들어야 좋을까. 내일 콘서트를 위해 너무 늦게 않게 자야겠다. 빗방울은 여전히 거리에 낙하 중이었다.




 P.S


 이 글은 태형이가 2018년 9월, 댈러스 케틀 아트 갤러리에서 마크 도미너스의 작품 2점을 샀다는 사실 하나에 입각한, 완벽히 시나리오에 수렴하는 망상글이다.


 태형이가 자신의 방에 걸었을 마크 도미너스의 작품은 아래와 같다.



마크 도미너스 작
마크 도미너스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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