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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Aug 27. 2019

31. 달방 레전드

방탄소년단 덕후 일기 31


 나는 숙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이걸 숙제를 숙제처럼 했던 그 시절에는 몰랐다. 숙제를 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아. 나는 숙제라는 숙제가 주어졌기에 숙제라도 했던 거였구나- 하고 불현듯.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땐 매일의 일기를 담임 선생님께 검사를 맡는 것이 당연했다. '참 잘했어요' 도장에 덧붙여줄 선생님의 칭찬을 받기 위해 '역시 우리 가족이 참 좋다', '빨리 학교에 가서 자랑하고 싶다' 등 칭찬의 목적 외엔 아무 뜻 없는 문장으로 그 날의 일기를 마무리 짓곤 했다. 아마 그맘때 사회적 자아 페르소나가 발현되기 시작했나 보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은 마음속 서랍에 꼭 숨겨둔 채 보이기 좋은 단어들을 골라내는 과정을 자연스레 익히는 때였다. 


 매일 써야 하는 일기 외에도 숙제는 많았다. 매달 만드는 학급 문집을 위해 머리를 쥐어 짜내며 글을 써야 했고, 다독왕의 타이틀을 위해 학교에서 지정한 도서는 모두 읽어야만 했다. 이 모든 '해야만 하는' 당위는 당시엔 "숙제 없는 유치원 때가 좋았어"하는 푸념을 내뱉게 했을 진 몰라도, 책을 가까이하고 글자를 품고 싶어 하는 현재의 나로 만들었다.


 우리 가족은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30년 가까이 이사 한 번 하지 않고 한 곳에서 쭉 살았다. 벽에 문턱에 모서리에 한 해 한 해의 추억을 고스란히 쌓은 그 구옥에서 우리 가족은 수리에 수리를 거듭하며 집의 수명을 연장해가며 살았는데, 나는 서울로, 남동생은 학교 운동부 숙소로 거주지가 바뀌게 되면서 드디어 이사를 결정했다. 편리함보단 안정감과 추억이 먼저였던 공간의 힘이 쇠한 탓이었다. 


 이사일이 결정되고 집 정리가 시작됐다. 방에 있는 짐들은 대충 정리가 됐는데 중요한 건 마치 금지된 공간처럼 걸음이 끊겼던 창고 다락이었다. 문을 여는 순간 잡동사니와 동물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올 것 같은 으스스한 기분에 해가 쨍쨍한 대낮에 모자에 마스크, 장갑까지 장착한 상태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문을 열었다. 그동안의 망상이 헛되게 먼지만 켜켜이 내려앉은 어두운 창고는 초등학교 때 즐겨 앉았던 1인용 소파, 스피커, 잡동사니가 든 큰 바구니 등으로 꽤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안도의 마음으로 창고를 휘젓기 시작했다. 아, 이게 여기 있었구나. 참 열심히도 모았던 종이인형을 담은 박스도 찾았다. 100리터 쓰레기봉투에 차곡차곡 쓰레기들을 버리다가 발견했다. 일 년에 몇 권씩 써 상단에 구멍을 뚫어 노끈으로 묶어 보관했던 그때의 일기 숙제를. 


 일기의 첫 페이지를 열었고, 그 날의 정리는 완벽히 망쳤다. 쓰레기봉투는 대충 묶어두곤 내 방으로 들어와 일기를 읽고, 졸업앨범을 꺼내고, 친구들과 나누었던 편지들을 찾아보니 하루가 그대로 저물어 버렸기 때문이다. 잊고 있던 그때의 나를 소환했다. 기록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몰랐을, 잊혔을, 사라졌을 그때의 내가 그 안에 있었다. 


 그런 거다. 숙제는. 데드라인이 있어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던 그 당위들이 결과적으론 유일한 기록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있었던 이야기는 잊혀도 만들어낸 결과는 남았다. 


 <달려라 방탄>은 네이버 V앱을 통해 방영하고 있는 방탄소년단의 자체 예능 방송이다. 2015년부터 현재까지 총 85회의 에피소드가 공개된, 방탄소년단의 주요한 콘텐츠 중의 하나다. 방탄소년단에게 <달려라 방탄>은 일종의 숙제다. 시간이 날 때마다 차곡차곡 숙제하듯 녹화한다.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몰래 하품을 하거나 몽롱한 표정을 숨기지 못할 때도 있고, 잠깐 시간이 날 때마다 쪽잠을 청하고 서로 파이팅을 나누며 기운을 북돋으면서도 <달려라 방탄>을 녹화한다. <IDOL> 컴백 준비로 잠이 부족한 때에도, <Love yourself> 해외 투어 중에도, <Magic shop> 기간에도, 연말 시상식 준비에 한창이던 때에도 방탄소년단은 <달려라 방탄>을 녹화했다. 


 피곤하고 힘들었고 의무감으로 가득한 촬영장이었을지언정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 다양한 미션들 덕에 흥이 오르고 즐거워할 수 있었고, 수개월 혹은 수년이 지난 뒤 되짚어 볼 낙천으로 남았다. 그렇게 축적된 역사와 서사로 그들에게 특별한 의무가 된 방탄소년단의 콘텐츠가 바로 <달려라 방탄>이다. 


 방탄소년단의 팬이라면 n차를 찍고도 남을, 방탄소년단 팬이 되고 싶으면 꼭 봐야 하는, 방탄소년단을 모른다면 '왜 방탄소년단이어야 하는가'의 일부 대답이 될 <달려라 방탄(이하 '달방')> 레전드 편을 꼽아봤다. 우연히 한 편을 보게 되면 다음 편으로 넘어가고 또 넘어가서 하루를 순삭 하게 할 우리 방탄소년단의 우직한 숙제 결과물들이다.



1. 캐릭터는 이렇게 탄생했다.
빅히트 최고 미녀 민윤지의 탄생 : 2017년 1월 31일, 달방 ep.11
천재 안무가 김석진 : 2017년 5월 16일, 방탄 가요 track.15
건대 할리갈리과 : 2018년 1월 23일, 달방 ep.37
나는 민트초코를 좋아합니다 : 2019년 2월 26일, 달방 ep.65


 한때 트위터에 올라온 사진 하나가 팬들의 웃음과 공감을 일으켰던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 유명 기획사를 대표하는 각 기획사의 여신을 꼽은 사진이었는데, SM의 윤아 YG의 지수 JYP의 수지와 어깨를 나란히 한 빅히트의 여신이 바로 슈가가 분한 민윤지였기 때문이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콩트에서 잡티 없이 하얀 얼굴에 단발머리를 휘날리는 새침한 전학생을 연기한 민윤지는 '오다 주운' 선물을 '오다 버릴' 정도로 쉽지 않은 매력을 발산해 모든 이들을 열광케 했는데, 이후 슈가의 얼굴 보기 힘든 여동생으로 미모와 성격이 여전히 회자되는 인물로 자리하게 되었다. '어머 저게 나였으면' 할 정도로 여섯 남자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민윤지가 궁금하다면, 달방 에피소드 11을 추천한다.


 2019년 6월 매직샵에 도착한 편지 한 통. "안녕하세요 제 고민은 사람들이 제 안무를 좋아해 줄까?입니다. 예전에 제가 만든 춤이 있는데 이번 기회에 무대를 하고 싶은데, 멤버들이 해줄까요?" 편지 첫 부분부터 어? 하는 물음은 편지의 내용이 계속되면서 어!! 하는 감탄으로 바뀌었고, 비즈가 화려하게 박힌 분홍색 재킷과 선글라스를 멤버들이 꺼내는 순간 이성을 완벽히 배재한 채 소리를 질렀다. <등골 브레이커>의 첫 번째 공식 무대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2017년 윙즈 해외 투어가 한창이던 때, 칠레의 한 호텔방에 모인 멤버들은 뮤직비디오가 존재하지 않는 노래 중 한 곡을 선택해 직접 뮤직비디오를 만들어보기로 한다. 노래는 만장일치로 <등골 브레이커> 당첨. 재밌게 찍기엔 이만한 노래가 없다. 감독 남준, 카메라 정국, 조연출 호석, 코디 및 안무 석진, 멘털 케어 태형, 짐꾼 지민, 밥차 윤기. 역할도 즐겁게 나눴다. 호텔 방과 거실, 복도와 엘리베이터, 식당을 넘나들며 립싱크를 따고, 철저히 노래 가사에 맞춘 석진이의 안무에 맞춰 춤을 췄다. 분위기를 타니 부끄러움도 잊고 누가 더 제대로 망가지느냐의 경쟁이 됐다. 천재 안무가 김석진의 직관적인 안무의 탄생기가 궁금하다면 방탄 가요(달방 이전 콘텐츠) 트랙 15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해외 투어 기간이 길어지면서 투어 기간 동안 달방을 찍는 경우가 많아졌고, 그 경우 대부분의 달방 배경은 호텔이다. 스태프들을 포함한 다수의 인원이 이동하기가 여의치 않을뿐더러 보는 눈이 많기에 멤버들이 묵는 호텔 내에서 촬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레전드 <등골 브레이커> 뮤직비디오 역시 윙즈 투어 기간 중에 호텔에서 찍었다. 호텔이라는 실내 조건은 달방 콘텐츠에 보드 게임이 많이 등장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인데, 이럴 때마다 자칭 '보드게임의 신' 석진의 활약이 눈부시게 펼쳐진다. 홍콩의 한 호텔 거실에 모인 방탄소년단. 오늘 역시 보드 게임을 진행할 예정이다. 몸풀기 게임으로 선택된 보드 게임은 '할리갈리'. 자칭 '할 신(神)'으로 불렸다는 석진이는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게임을 해치우며 자신의 별명을 증명해내는데, 그런 석진을 향해 윤기는 석진의 전공이 "건국대 할리갈리과 아니냐"며 웃는다. 바닥에 쪼르르 모여 앉아 보드 게임을 하는 방탄소년단, 그중 훨훨 날아다니는 석진이를 보고 싶다면 이 에피소드다. (반대로 '우노', '할리갈리' 류의 게임을 제일 못하는 태형이의 귀여움을 보고 싶다면, 석진이의 활약 회차를 같이 보시라.)


 세상엔 두 분류의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민트초코를 좋아하는 사람과 민트초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 방탄소년단 역시 민트초코 극호단(대표 정호석)과 민트초코 불호단(대표 김남준, 김석진)으로 나뉜다. 각자 지정된 제시어를 말하면 물총을 맞는 토론의 주제로 민감한 주제가 선택됐다. '민트초코 호다, 불호다'. 호불호 양 쪽으로 나눠 앉은 멤버들이 첨예(하고 싶어)한 토론을 이어 나간다. 서로를 너무 잘 아는 멤버들답게 서로의 말버릇을 바탕으로 선택한 제시어는 모두 물에 젖은 생쥐 꼴로 만들기 충분했는데 이 와중에도 민트초코는 없어져야 할 대상이라며 강력한 주장을 펼치던 남준이는 다음의 문장으로 맺음말 했다. "'저는 민트초코를 먹을 수 있어요'라는 명함을 만들어 공유하며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는 건 어떻겠냐"라고. 이 에피소드 공개 후 '저는 민트초코를 먹을 수 있어요'는 실제로 명함과 스티커로 제작되어 일부 팬들이 직접 지니고 다니기 시작했다. 서른 한 가지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를 지나가며 민트초코를 먹는 사람을 발견할 때 질색하는 남준이의 얼굴이 떠오르는 건 이건 우연이 아냐, 그냥 그냥 나의 느낌으로...



2. 예능신이 보우하사 방탄을 굽어 살피었네
방탄 볼링 : 2017년 5월 2일, 달방 ep.19 
빙고구마 : 2017년 5월 23일, 달방 ep.20
나는 너의 스타일리스트 : 2017년 11월 28일, 달방 ep.29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2017년 12월 26일, 달방 ep.33 
사자로 국을 끓이면? : 2018년 2월 6일, 달방 ep.39 
007 대작전 : 2019년 7월 9일, 16일, 달방 ep.79, 80


 내가 방탄소년단을 발견한 건 어느 가요 프로그램도, 콘서트도, 뉴스 보도도 아닌 예능 프로그램 <아는 형님>때문이었다. 어린 아이돌들 위주로 라인업이 짜인 음악 방송을 보지 않은 지 오래. 방탄소년단을 알기 전의 나는 퇴근 후 집에 들어오면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가벼운 것들만 챙겨보았고, 그래서 화제의 프로그램에 나와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지 않는 것들은 모두 무지(無知)의 영역으로 놓고 살았다.


 그렇게 본 <아는 형님> 속 방탄소년단은 퀴즈도 잘 맞추고, 춤도 잘 추고, MC들이 던지는 질문에 센스 있게 답하는 '예능형' 아이돌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었고, 그 즉시 유튜브에 방탄소년단을 검색하게 하고 입덕의 문을 활짝 열게 했다. 덕질을 하고 나서야 알았다. 멤버들이 이 <아는 형님>을 무척이나 긴장하고 떨려했는지, 그런 멤버들의 어색함을 떨치기 위해 먼저 MC들에게 들이대며 아이스 브레이킹을 시도했던 석진을 멤버들이 무척이나 고마워했는지, 말도 제대로 못 꺼내고 뒤로 살짝 빠져 웃기만 하는 정국이 얼마나 낯설어했는지, 그래서 진짜 방탄소년단의 손톱의 때만큼도 보여주지 못했다는 걸 말이다.


 편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나오는 본모습이 있다. 충분히 형성된 관계 속에서 던지는 농담의 효과가 있다. 서로를 잘 아는 이해를 바탕으로 한 장난이 분위기를 바꾼다. 오랜 시간 함께 해 온 스태프들과 멤버들만 있는 편안한 녹화 분위기 속, 멤버들은 제대로 예능을 찍는다.


 재미를 글로 풀어 설명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다. 그래서 이 파트는 짧게 설명을 마친다.


 피곤한 저녁, 침대에 누워 책상에 앉아 휴대폰이나 노트북을 켜고 대표로 뽑은 몇 가지의 에피소드 회차를 클릭해보시라. 뭔가 분명 피곤하고 힘들고 지쳤는데 그 원인이 순식간에 잊히는 마법이 펼쳐질 것이다.


 방탄소년단, 알고 보면 이렇게 재밌다.



3. 방탄 마니또의 역사
BTS X 마니또 : 2018년 1월 2일, 달방 ep.34
여름 야유회 : 2019년 8월 20일, 달방 ep.85



 쉴 새 없이 달려온 방탄소년단이 2019년 여름, 약 두 달 간의 휴식에 돌입했다. 공식 스케줄 올 스톱. 10월에 재개될 <Speak yourself> 사우디 아라비아 스타디움 투어와 서울 잠실 주경기장에서 펼쳐질 파이널 콘서트 전까지 온전한 휴식을 취하게 됐다. 이 휴식은 전 세계 주요 뉴스에서 비중 있게 다뤄졌다. 방탄소년단이 입고 먹고 쓰고 모든 것부터 방탄소년단의 휴식까지 뉴스가 되는 시대. 월드 와이드 슈퍼 스타 방탄소년단에게 일상이 된 지 오래다.

 

  2016년 크리스마스. 각자 멤버들을 생각하며 1만 원 이하의 선물을 준비해 온 뒤 선물의 크기만 보고 직접 골라 선물을 나눠 갖는 브이앱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다. 팬티 2종 세트 선물을 고른 지민과 호석이도, 육포와 오징어, 크리넥스 등 만원 어치를 맞춘 상자를 연 남준이도, 윤기 아크릴 스탠드를 고른 석진이도, 과자 선물 세트를 받은 태형이도, 섬유탈취제를 받은 정국이도, 비타민을 받은 윤기도 잔뜩 신이 나 선물 포장을 펼치고, 웃고, 놀리고, 행복해했다. 2016년 말, 부상으로 연말 시상식에 불참하게 된 윤기를 대신해 이때 선물 받은 윤기 아크릴 스탠드를 석진이는 가방에 꼭 넣어 다녔다. 방탄소년단 마니또 역사의 시작이었다.


 마니또는 비밀친구란 뜻의 이태리어지만 보통 제비뽑기 등을 하여 지정된 친구의 수호천사로 그 친구만을 위한 선물이나 편지를 전달하는 방식을 지칭하기도 하는데, 휴식도 뉴스가 되는 월드 와이드 슈퍼 스타 방탄소년단이 1만 원 이내 혹은 3만 원 이내의 선물을 손수 골라 마니또로 지정된 멤버에게 선물하는 에피소드들 안에서 얼마나 행복한 표정을 짓는지 꼭 봐야 한다. 


 때론 장난스럽게, 때론 진지하게 고른 선물을 전달하는 방탄소년단의 아기자기한 모습들을 볼 수 있는 회차는 위와 같다. 마니또가 누구고 또 그 마니또가 어떤 선물을 준비해왔는지 자체가 스포일러이기 때문에 여기서 급마무리. 확실히 방탄소년단은 귀여워서 뜬 게 맞다.



4. 꼭 봐야 한다면, 이 시리즈 
방탄 야유회 : 2018년 7월 3일, 10일, 17일, 24일, 달방 ep.53, 54, 55, 56
방탄 in 캐나다 : 2019년 4월 30일, 5월 7일, 14일, 달방 ep.69, 70, 71



 2018년 초, 방탄소년단은 달방 촬영으로 서울 근교를 찾았다. 야유회라는 콘셉트답게 장을 보고, 배드민턴과 족구를 하고, 보드 게임을 즐기고, 식사를 함께 하고, 노래자랑을 펼치고, 캠프파이어를 했다. 많은 스태프들은 데뷔 초창기부터 함께 해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은 데다 방탄밤이며 방탄 에피소드, 브이앱 및 로그 등을 통해 카메라 앞에서 행동하는 것이 거리낌이 없는 멤버들이라 달방 촬영이 아닌 진짜 야유회처럼 즐길 수 있었다. 춤은 그렇게나 멋들어지게 추면서 배드민턴이나 족구는 어쩜 그렇게 못 하는지. 엉성한 폼으로 실수하는 서로를 보고 눈이 없어져라 웃었다. 오락을 하거나 잠을 청하는 것으로 각자 휴식도 취했다. 구운 삼겹살에 끓인 라면은 이젠 방탄소년단을 대표하는 단체 음식이다. 테라스에 나와 옹기종기 공기를 굽고 라면도 나눠 먹었다. 


 활활 타는 장작 주변에 둘러앉은 멤버들. 멤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시의 형식을 빌려 낭독을 시작했다. 좀 못해도 괜찮으니 '그 므시라꼬'로, 한글 자음 ㄱ처럼 가장 첫 번째인 기억으로 마음을 전했다. 어쩌면 팀의 역사상 가장 난관을 지나고 있음을 서로가 기민하게 느꼈을 때였을 것이다. 사실 그 해 그룹의 해체까지 고민했다던 멤버들이기에 대화를 통해 힘을 북돋우며 잘 이겨내 보자고 다독였을 멤버들의 당시를 엿보게 하는 캠프파이어였다. (방탄 야유회 에피소드 53, 54, 55, 56)


 <Love yourself> 월드 투어가 있었던 캐나다. 1박 2일 동안 방탄소년단은 토론토에서 일정을 보냈다. 나이아가라 폭포에 도착해 감탄하는 서로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한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펜션에서 하루를 묵어야 하기에 장을 보러 대형 마트에 들러 아침으로 먹을 팬케이크 재료와 시리얼을 샀다. 한국에서 보기 힘든 대형 크기의 바나나를 가지고 장난치다가도 '우리가 만진 건 사야 해' 하며 들고 있던 바나나도 함께 샀다. 


 펜션에 도착해 방을 골랐다. 한 명씩 차례로 돌아가며 방을 선택하곤 그 방을 몇 명이 선택하는지에 상관없이 고른 사람들끼리 함께 방을 써야 하는 방탄소년단만의 룰이 또 나왔다. 남준, 윤기, 호석이 한 방을 석진, 지민, 태형, 정국이 한 방을 골랐다. 좁은 방을 같이 써야 하는데도 랩 라인과 보컬 라인으로 나뉘었다며 박장대소했다. 석진이와 윤기가 솜씨를 발휘한 스파게티와 스테이크로 저녁 식사를 한 뒤 게임도 했다. 


 쌀쌀한 토론토의 아침. 기상 미션을 완료하곤 호석이와 정국이가 열심히 만든 팬케이크로 아침을 먹었다. 전날 게임에서 입수 벌칙에 걸린 지민이가 멤버들과 함께 근처의 호수를 찾았다. 무릎까지 오는 찬 호수에 들어 선 지민이. 본인의 라이카 카메라를 챙겨 와 열심히 촬영하던 태형이는 이때의 지민이를 여러 컷으로 담았고, 그중 한 컷이 후에 지민이의 자작곡 <약속>의 커버로 쓰였다. 석진의 옷 사주기 벌칙까지 함께 걸린 지민은 뉴욕 투어 중 편집샵에 들러 석진에게 어울릴 두 벌을 기쁘게 골랐고, 그 옷은 이후 석진이 여러 번 입고 나와 존재감을 알렸다. 이 모든 과정은 방탄 in 캐나다 에피소드 세 편에 나눠 담겼다.


 보는 사람이 조마조마한 아슬아슬함은 없고, 꼭 그 공간에 같이 있는 것처럼 친근하고 따뜻함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분위기는 방탄소년단만의 따뜻함이다.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며 꾸준한 조율을 해 온 사람들만이 뿜어낼 수 있는 안정적인 그 무엇. 

 

 방탄소년단이 왜 좋아? 하는 물음에 그냥- 이유가 있나요? 하는 멍청한 대답만 할 수밖에 없었던 내용에 대해 쓴 적이 있었다. 그때보다 시간이 좀 더 흘렀지만 여전히 방탄소년단이 왜 좋아?라는 질문에 그냥-이라는 대답밖에 못 꺼내지만 이 시리즈라면 내가 말하는 이 그냥- 에 담긴 분위기와 색깔을 조금이나마 보여줄 수(설명은 아마 영원히 되지 않을 듯하다) 있을 것만 같다. 



5. 벌칙의 역사
복고 소년단 / 2017년 12월 12일, 달방 ep.31
한복 도령 / 2018년 1월 2일, 달방 ep.34
일몰을 보러 갑니다 / 2019년 2월 26일, 달방 ep.65
환멸 지민’s / 2019년 5월 21일, 달방 ep.72
토끼 세 마리 / 2019년 7월 2일, 달방 ep.78
활짝 핀 해바라기 / 달방 ep.?



 멤버들이 공항에 도착해 찍히는 사진들이 올라오면 더욱 열심히 보게 됐다. 날로 멋져지는 공항 패션을 확인하고 멤버들의 컨디션을 가늠해보게 하는 것도 있지만, 갑자기 토끼 모자를 쓰고 나와 귀를 접으며 인사를 한다거나 한복에 갓을 쓴 차림으로 나타난다거나 하는 등의 벌칙 차림을 하고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누구 하나를 곤경에 빠뜨리지 않으며 복불복의 재미라며 몇몇을 배재하지 않고, 모두가 적절하게 함께 나누고 먹는다. 그리고 멤버 모두에게 모자람 없이 애정이 넘치는 자막에 센스 있는 편집은 달방의 재미 포인트다. 여기에 레전드 예능 <무한도전>이 그랬듯, 전편의 벌칙이 공항 패션으로 이어지고, 오늘의 벌칙이 다음의 에피소드에서 공개되는 '연속성'이 추가되니 방탄소년단과 '우리끼리만 아는 이야기'를 공유한 사이라는 팀워크까지 만들어내게 했다. 팬들의 몰입과 공감, 참여와 반응은 폭발적이다.


 미국, 유럽 스타디움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귀국한 2019년 6월의 어느 날. 대기 중인 취재진 앞에 슈가, 제이홉, 진이 해바라기 탈을 쓴 채 나타났다. 누가 봐도 달방 벌칙이었다. 기사 사진마다 해바라기 탈을 쓴 채 밝은 미소로 인사를 건네는 제이홉의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박혔다. 슈가, 제이홉, 진이 어떻게 해서 이 벌칙에 당첨됐는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다음 달방을 기대하게 하는 이유다. 


 누구를 다치게 하고 아프게 하는 벌칙만이 벌칙이 아니다. 자극적이지 않아도 충분히 재밌을 수 있다. MSG 같은 통각의 웃음에 지쳤다면, 지금 당장 알맞은 간의 달방을 봐야 할 때다.



  P.S


  꼽다 보니 모든 에피소드를 그저 분류하는 수준밖에 안돼서 고심 끝에 고르고 고른 에피소드들이다. 새삼 느꼈다. 우리 방탄소년단의 숙제 양 정말 어마어마하다고.


 내가 일기를 발견한 게 일기를 쓰고 난 뒤 딱 15년이 지난 후였다. 우리 멤버들도 딱 15년이 지나 달방을 다시 보면 나보다 훨씬 더 큰 마음이 들 것이다. 오직 글만 남은 일기가 아닌, 목소리와 표정과 상황이 모두 녹아 있는 영상 모음집이니. 


 자신들의 즐거움보다 팬들의 즐거움을 먼저 생각하다 보면 숙제를 하는 동안 허무의 감정이 몰려올지 모르지만, 결국은 멤버들에게 돌아갈 무엇들임을 그렇게 사소하게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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