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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Oct 18. 2019

35. 심장을 뛰게 하던 thing

방탄소년단 덕후 일기 35


 오직 노래 심장을 뛰게 하던 thing 하나뿐이던

 - 방탄소년단 <Airplane pt.2> 중


 어른이 되었음을 실감하는 일은 여럿 있다.


 찌든 얼굴이 신분증을 대신하여 아무런 제약 없이 술을 구입할 때. 월급일에 맞춰 설정해놓은 카드 이체일 덕에 월급이 통장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가만 확인할 때. 이제는 내가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 여행을 다녀올 때. 메뉴 가격 상관하지 않고 먹고 싶은 걸 주문할 때. 심야 영화를 본 뒤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나올 때. 대출, 결혼, 육아, 노후 등 대화의 주제가 뉴스 헤드라인 같을 때. 퇴사 욕구를 이기기 위해 취업 사이트에 들어가 볼 때. 세일하는 와인 여러 병을 사 와 와인 셀러에 차곡차곡 채워 넣을 때. 회사에 들어오는 직원들의 나이 차가 두 자리가 되기 시작할 때. 


 어느 영화 제목처럼 그렇게 어른이 된다. 그러니까 그냥 그렇게. 시나브로 변한 삶의 패턴을 채 인지하지 못한 새에 생활인으로서의 어른으로 변모했다. 끼니를 제때 챙기려 하고 이왕이면 밥을 먹으려 하는 것도, 고탄력 크림이나 기능성 화장품이 눈에 먼저 들어오게 되는 것도, 늦은 회식을 한 다음 날이면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컨디션이 돌아오는 것도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러니까 그냥 그렇게. 어떤 나이에 무수히 바랐던, 어떤 나이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모습일.


 행동이나 행위, 외모의 변화 외에 어른이 되었음을 가장 실감하는 일 중 하나는 설렘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처음의 짜릿함이 사라졌다. 반짝였던 애정의 두근거림도, 장밋빛으로 그렸던 미래에 대한 기대감도,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던 여행의 무모함도 시큰둥. 심장의 안정을 찾고 일상에 재미를 잃었다. 그런 일상이었다. 


 무감각하고 무신경해진 지 오래라고 생각했던 심장이 1,2초 만에 쿵 떨어지고 온 몸에 열이 돌고 미친 듯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초침의 변화로 천국과 지옥을 가르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닐까 싶게 심장이 뛰고 턱이 덜덜 떨리는 '웬만하지 않은 이벤트'의 발생. 방탄소년단 <Speak Yourself> 파이널 콘서트 티켓팅은 석고상 같은 직장인의 심장을 말랑말랑한 덕후의 심장으로 주물러 버렸다. 갓 잡아 올린 생선의 생처럼 파닥파닥 뛰는 심장. 내겐 여전히 피가 끓고 있었다. 






 지금의 방탄소년단을 만든 <Love yourself> 투어의 역사적인 시작은 2018년 8월, 서울 잠실 주경기장이었다. 서울 공연 이후 북미, 유럽, 아시아 전역을 돌며 개최한 <Love yourself> 공연은 방탄소년단의 실재적인 인기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올팬(All Fan) 경향이 있는 케이팝 팬들과 달리 방탄소년단만을 향해 충성하는 특별한 팬, 아미(Army)를 보여주는 계기도 됐다. <Map of the persona> 앨범을 발매한 뒤 재개한 <Speak yourself> 투어는 <Love yourself>의 확장판으로 모든 공연이 몇 만석 규모의 스타디움에서 개최됐다. LA, 시카고, 뉴저지, 상파울루, 런던, 파리, 오사카, 시즈오카. 굵직한 도시의 굵직한 스타디움 좌석이 줄줄이 매진되었다. 


 시카고 공연을 다녀온 뒤 그때의 기억으로 겨우 버티며 보통의 업무에 치이며 지내던 7월 14일. 띠링- 트위터 알람이 울렸다. 습관처럼 가로로 그어 메시지 창을 지우려다 보니 어? 제목이 심상치 않다.


  BTS WORLD TOUR 'LOVE YOURSELF: SPEAK YOURSELF [THE FINAL]' 일정 추가 안내


 하던 일을 그대로 멈췄다. 


 <Speak yourself>의 새로운 일정이 추가되었다. 외국 가수 최초 사우디 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의 스타디움 공연에 이어 서울 잠실 주경기장에서 개최되는 파이널 콘서트 일정이다. 1년 3개월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기념비적인 공연. 즉, 어떻게 해서든 가야만 하는 공연. 노을 지며 어두워지는 잠실 주경기장에서 내 손으로 직접 흔드는 아미밤의 불빛을 내보여야 했다. 다 같이 <소우주>를 부르며 몇 만이 한데 켜는 핸드폰 불빛의 은하수를 직접 봐야만 했다. 잠실 콘서트는 총 3일이었다. 10월 26일, 27일, 29일. 탁상달력에 보라색 칸이 세 개 생겼다.


 7월 29일. 드디어 손꼽아 기다리던 콘서트 티켓팅에 대한 상세 안내가 게첨 됐다. 지난 팬미팅 <매직샵(Magic Shop)>처럼 팬클럽 가입자들을 상대로 하는 추첨제 응모가 도입된 방식이 자세히 안내되어 있었다. 좌석 특성상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곤 하는 그라운드석과 1층석은 추첨제 응모를 통해 당첨된 사람들이 무작위 좌석을 선택(!) 받는 방식이고 2, 3층석과 시야 제한석 등은 9월 25일 팬클럽 선예매 티켓팅을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이번엔 응모가 시작되는 날짜와 발표일, 티켓팅 날짜를 탁상달력에 빨간색 사인펜으로 크게 표기했다. 달력에 점점 무지개가 피어나고 있었다.


 8월 1일부터 7일까지, 일주일이라는 충분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응모가 시작되는 시간에 맞춰 접속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치 이 애정을 다 보여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였다. 모두가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응모가 시작되는 오후 2시, 페이지가 잘 열리지 않아 버벅거린 접속을 했다. 콘서트가 열리는 세 날짜 중 선호하는 요일의 순위를 매겨 응모하는 방식. 막콘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그래도 평일 오후니까 못 오는 사람도 많지 않을까 싶어 화요일을 제일 먼저, 늦은 시간에 끝나니 그래도 부담스러운 요일이지 않을까 싶어 일요일을 두 번째, 제일 부담이 없어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릴 듯한 토요일을 마지막 3순위에 두고 응모 버튼을 눌렀다. 이제부터는 착한 마음으로, 경건하게, 모든 신께 감사를 구하며 지내는 것만 남았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높은 언어 장벽과 담당이라는 무게감, 지독한 더위 덕에 하루하루가 다르게 지쳐가던 청두 출장이 한창 이어지던 8월 14일. 외국인 입맛을 지나치게 고려한 점심 뷔페 덕에 다 식어 딱딱한 감자튀김 몇 개만 주어 먹곤 근처 대형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이동 시간이 빠듯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시간이 딱 20분 정도 남은 상황. 장바구니를 들고 주린 배를 채울 무난한 빵이나 과자, 저녁에 마실 바이 지우(白酒)와 선물하기 좋은 훠궈 큐브 등을 담으며 바쁘게 돌아다니며 몇 번이고 시간을 확인했다. 


  <아쉽지만 당첨되지 않았습니다. 응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쿵. 심장이 수직 낙하하는 기분은 이런 것일까. 믿을 수 없어 몇 번이고 눌러보고 또 눌러보아도 문자는 그대로다. 같이 있던 후배가 당첨 결과를 물어보자 똥손다운 결과라며 괜찮은 척 얘기했지만 제멋대로 뛰기 시작한 심장을 자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나마 곧 출발하는 버스를 타야 했기에 몸을 부산스럽게 움직일 수 있어 다행이었다. 급하게 계산을 하고 나와 버스에 탑승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기에 좌절할 필요는 없었으나 응모에 당첨됐다는 사람들의 게시글을 휙휙 외면했다. 그래도 기회는 있다. 일주일 뒤 2차 당첨 결과가 나온다. 내 자리 하나가 꼬옥 생기길. 쨍한 햇살이 내리쬐는 청두에 모든 마음을 다 걸었다. 


 경품이 걸려 있는 행사에서 단 한 번도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 100% 당첨이라는 행사에선 참가상에 해당되는 모바일 3천 원 쿠폰만 당첨되는 사람. 사다리 게임이나 해적 룰렛 게임에 꼭 걸리는 사람. 요행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김없이 꽝만 맛봤던 사람이 감히 또 당첨자 발표를 기다렸다니. 


 선배와 점심을 먹고 커피를 한 잔 와중에 확인한 내용은 역시나


  <아쉽지만 당첨되지 않았습니다. 응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파크에서 선예매와 일반 예매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조수석 문을 긁고 도망간 뺑소니범도 용서했고, 부서 내 알력 다툼에 소외되어 의외의 업무를 덤터기 쓴 것도 꾹 참았어도 탈락이었다. 쿵. 심장이 위로 솟구치는 듯 턱이 떨리고 열이 올랐다. 커피가 사약처럼 느껴져 그대로 잔을 놓았다. 퇴근해 씻고 침대에 누워 인스타그램을 켰더니 당첨 페이지를 스크린샷해 올리며 행복함을 표현한 게시글이 가득이다. 나만 당첨이 안된 건가. 괜히 멤버들 영상도 보기 싫어져 핸드폰도 엎어두곤 거실로 나와 시시덕거리는 예능 프로그램을 연이어 돌려봤다. 실없이 웃으니 좀 나아진 것도 같다. 험난한 과정이 예상되지만 그래도 티켓팅이 남아있고, 또 당첨된 사람들은 좌석에 만족해 티켓팅에 참전하지 않을 수 있는 일 아닌가. 침대에 던져두었던 핸드폰을 다시 챙겨 나왔다. 티켓팅까지 한 달이 남았다. 자신 없으면 사우디 비자받아서 리야드 공연 보러 가지 뭐. 거짓말처럼 다 괜찮아졌다.


 전시회며 카페며 부지런히 다니며 자축한 정국이 생일을 지나, 학부모들을 상대로 한 강연과 건강검진을 했고, 이우환 공간을 보고 돌아온 호텔에서 엄마와 샴페인을 나눠 마신 남준이의 생일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9월 중순. 팬클럽 회원 인증을 잊지 않고 해 둔 뒤 티켓팅이 있을 25일만 기다렸다. 한 날짜만을 보고 지냈기 때문인지 그간의 날들이 신기하게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았다. 빨간 네모, 파란 네모, 노란 줄과 분홍 별표가 난무한 달력. 드디어 9월 25일의 아침이 밝았다. 


 티켓팅이라는 결전을 앞둔 날은 발생하는 모든 것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날과 같다. 어제 택배로 배송받은 블라우스를 입었는데 마음에 쏙 드는 것도, 평소보다 신호가 잘 뚫려 연달아 초록불 신호를 받으며 출근길 운전을 한 것도, 조금 일찍 나와 근교의 맛집에서 만족스러운 점심 식사를 한 것도 왠지 오늘 티켓팅이 성공할 것만 같은 기분이다. 생각보다 마음이 편안한 채 평소와 같이 업무를 처리하는 것도, 시간을 자주 확인하지 않는 것도 왠지 안정적으로 티켓팅을 하게 할 것 같다. 모두 퇴근을 위해 인사하며 자리를 뜰 때 아직 못 끝낸 업무가 있는 양 배웅을 하며 자리를 지켰다. 


 "아직 퇴근 안 했어? 우리 지금 PC방 가려는데 같이 갈래?"


 방탄소년단 덕질에 빠진 동생 덕에 같이 티켓팅을 하러 PC방에 간다는 친구의 전화가 왔다. 익숙한 자리에서 익숙한 키보드와 익숙한 마우스로 접속하는 게 조금이나마 편할 것 같아 친구의 제안을 완곡히 거절했다. 팬들끼리는 암묵적으로 인터파크 티켓팅을 간택 전으로 부른다. 어떤 서버, 어떤 아이디가 서버를 뚫고 접속되어 티켓팅을 먼저 성공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고, 그저 간택되는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다. 나는 오늘 이 간택 전의 성공 내기를 그나마 인터넷망이 안정적인 우리 회사 서버에 걸었다.


 그동안의 티켓팅 노하우와 혹시나 싶어 깨알같이 습득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아래와 같이 세팅했다.


 1. 크롬 시크릿 모드로 열기

 2. 인터파크 사이트에 접속해 미리 로그인 하기. 자동 로그인, 아이디 저장 체크는 필수

 3. 인터파크 서버 시간 확인 사이트 아래 창에 켜놓기

 4. 예매 창 탭 여러 개 띄워놓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임시 폴더도 다 삭제했고, 방문 기록 등도 미리 다 지워둔 상태였다. 모니터용으로 틀어놓는 텔레비전에선 신변잡기 식의 매거진 프로그램이 시끄럽게 방영되는 중이었다. 오후 7시가 넘어가면서 사위가 조용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켜놓은 크롬 창은 그대로 둔 채 인터넷 익스플로러로 인터파크에 접속하니 메인 화면부터 보이지 않았다. 트위터와 각종 커뮤니티에선 잘 접속되지 않는 사이트에 대한 토로가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크롬으로 여러 개 띄워놓은 탭 중 하나를 골라 새로고침을 눌러봤다. 몇 초 버벅거리더니 금세 원래의 화면으로 돌아왔다. 어? 왠지 예감이 좋다. 감히 간택된 듯한 예감이다.


 7시 50분, 화장실을 다녀왔고, 7시 52분, 초콜릿 하나를 녹여 먹었고, 7시 53분 물티슈로 책상 정리를 했고, 7시 54분 트위터로 분위기를 탐색했다. 30분 전에는 사이트 접속이 잘 안된다는 내용으로 타임라인이 빼곡했는데 어느덧 티켓팅 집중모드로 돌입했는지 새로고침을 해도 늘어나는 게시물의 개수가 별로 없다. 7시 57분 임시 폴더를 다시 한번 더 삭제하고, 7시 58분 서버 시간 사이트 초침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제 할 일은 침착하게 클릭하는 것뿐. 7시 59분 59초가 되자마자 F5를 눌렀다. 탁. 키보드가 눌림과 동시에 심장이 쿵 눌렸다. 


 띄워놓은 네 개의 탭을 순서대로 새로고침 한 뒤 예매하기 버튼을 눌렀다. 우선 목표는 진리의 막콘이다. 버벅거리는 하얀 창을 띄워놓은 채 다른 탭으로 들어가 토요일 공연과 일요일 공연을 차례대로 눌러놓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첫 번째 탭에서 띄운 예매 창이 다음 화면으로 넘어갔다. 침착함을 찾기엔 이미 흥분 발작 버튼이 눌려 몸이 익어 더웠다. 시간이 지나자 남은 좌석이 백 단위인 구역들이 색깔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미리 좌석 구역을 프린트해놓고 어떤 위치인지 가늠하며 좌석을 고르지 못한 것이 유일한 실수였다. 이렇게 오래지 않아 좌석을 고를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는 좌석이 있다면 그거라도 무조건 잡아서 나와야지 했는데 오히려 너무 많이 보인 좌석에 당황했다. 몇 번의 이선좌(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를 겪은 뒤 마우스 커서를 놀려 포도알을 눌렀다. 좌석이 선택됐고,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됐다!'


 지금 토하면 심장이 그대로 쏟아질 것 같다. 이때부턴 존버의 정신이다. 페이지 로딩이 늦다고 새로고침을 해버리면 말짱 도루묵이 되기 때문이다. 그 몇십 초가 억겁이었다. 매수를 선택하고 예매자 정보를 작성하고 카드 결제를 진행했다. 화면이 넘어가지 않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핸드폰으로 카드 결제 알람이 왔다. 진짜 됐다.


 화면이 넘어가지 않는 동안 새로고침을 통해 다음 화면으로 넘겨놓은 다른 예매 창을 보니 역시 좌석을 선택할 수 있게 색색의 포도알을 보여주고 있었다. 좌석은 선택이 되는데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버튼이 눌리지 않아 몇 번을 버벅거린 끝에 구역을 선택했다. 티켓팅이 시작된 지 10분쯤 지난 시간이라 이미 2층 좌석은 많이 빠져 있었지만 3층 좌석은 꽤 많이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몇 번의 이선좌 끝에 좌석 하나를 잡았다. 결제까지는 순식간이었다. 


 기세를 몰아 트리플 크라운에 도전했다. 이 속도면 일요일 공연도 무리 없이 예매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무슨 일이야 하면서도 왼 손은 키보드, 오른손은 마우스에서 떼지 않았다. 접속 인원이 많아 예매가 지연되고 있습니다는 메시지가 나오는 창은 과감히 버렸다. 이 창은 간택받지 못한 거다. 화요일과 토요일 공연 예매를 성공한 창을 집중 공략해 눌렀다. 그중 하나의 창에서 답이 왔다. 회차를 선택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메인 화면을 보여줬다. 보안 문자를 작성한 뒤 클릭했다. 


 "세상에..."


 잠실 주경기장의 구역이 눈 앞에 나왔다. 무슨 정신으로 페이지를 넘어갔는지 모르겠다. 잡히는 아무 구역에 들어가 잡히는 아무 좌석이나 눌렀다. 페이지가 넘어갔고 결제를 진행했다. 띠링. 아름다운 음률의 카드 결제 알람이었다. 연달아 결제된 내역 문자를 스크롤로 확인했다. 세상에. 올콘이다. 정말 하얗게 불태웠다.


 어떤 구역의 어떤 좌석을 선택했는지 몰라 결제 내역을 확인하려고 하니 거짓말처럼 사이트 접속이 되지 않기 시작했다. 도돌이표처럼 하염없이 돌고 있는 커서를 보다가 미련 없이 창을 껐다. 특정 좌석에 앉고 싶었던 욕심 따위 없었고, 콘서트에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게다가 잠실 주경기장은 1층이나 3층이나 무대에서 하염없이 멀기 때문에 무대와 아주 가까운 그라운드 몇 줄을 제외하면 좋은 자리를 따지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 시간을 확인하니 이제 겨우 오후 8시 20분이다. 20분 안에 모든 승부가 끝났다. 컴퓨터를 끄고 가방을 멨다.  4개월의 마음 졸임에서 드디어 퇴근이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축하의 의미로 샴페인을 텄다. 와인을 잔에 따르는 손이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친구에게 연락하니 친구와 함께 티켓팅에 도전한 동생도 3일의 콘서트 전체를 갈 수 있게 됐단다. 몇몇의 지인들도 티켓팅 성공 소식을 알려 왔다. 그동안 실눈 뜨고 봤던 SNS의 게시글에 축하글을 남겼다. 홀가분한 퇴근은 사람을 여유 있게 만들었다. 


 생각보다 일찍 접속된 것에 당황해 전체 구역을 확인하지 못해 좌석이 조금 아쉽나 하다가,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싶어 웃었다가, 콘서트 가기 전까지 다이어트를 해볼까 하다가, 이런 하루 끝에 찾는 와인 때문에 다이어트는 망했다 싶었다가, 내가 이 티켓팅을 다 성공했구나 뿌듯했다가 하는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네. 저 올콘 가요.




 P.S

 

 티켓팅이 있던 다음날, 어느 팬이 위버스에 이런 글을 썼다.


 '여러분 3층은 가수를 보러 가는 게 아니라 가수에게 우리를 보여주러 가는 거래요. 나를 보여주러 갈게'


 그 날 저녁, 이 게시물에 댓글이 달렸다. 남준이었다.


 '보여주고 들려줘서 고마워요'


 콘서트 공지가 뜬 7월부터 추첨 응모와 당첨자 발표가 있었던 8월, 티켓팅이 있었던 9월, 그리고 콘서트가 있는 10월을 지나오며 전전긍긍하며 티켓팅을 진행해온 모든 날의 의미를 함축한 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티켓이 연달아 배송 왔다. 지갑에 고이 넣으며 남준이의 말을 다시 한번 곱씹는다.


 응 남준아.

 우리의 애정을 보여주러 갈게.

 잠실 주경기장에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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