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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Jan 30. 2020

39. 단상들 pt.5

방탄소년단 덕후 일기 39



1. <Map of the SOUL ; TOUR>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2019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는 특별한 약속이 없어도 괜히 설레는 날이다. 바르셀로나를 다녀온 여독이 채 가시지 않은 터, 주중에 쉬는 날을 앞두고 있어 더욱 반갑기도 했다. 퇴근길에 샴페인 한 병에 케이크를 하나 사서 들어갈까 하는데 마우스 옆에 놓아둔 핸드폰에 불빛이 번쩍인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공식 트위터 계정 알람이었다.


한 장의 포스터. 푸른빛의 수면 위로 아지라이 흔들려 있는 멤버들의 실루엣이 있다. 그 실루엣의 실체일 멤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수면을 딛고 있는 발만 보인다. 포스터 아래에 적힌 건 알파벳 네 글자. TOUR. 이 포스터와 함께 올라온 글은 더욱 간결했다. 'April 2020. Stay tuned.'


"헐.. 벌써 투어네?"


사무실임을 잊은 육성이 터져 나왔다. 다시 입을 다물고 팬들이 남긴 댓글과 새로 올라온 글들을 확인했다. 모두들 나와 같이 어리둥절한 흥분으로 가득했다. 가타부타 다른 설명은 없었지만 그 한 장의 포스터와 한 줄의 글은 2020년에 얼마나 화려하고 성대한 투어가 기다리고 있을지 충분히 상상하게 했다. 2020년부터는 월급도 좀 성실하게 모으고 규칙적으로 할 수 있는 취미 생활도 가져볼까 했는데, 내년에도 덕질에 대부분의 체력을 소비하게 될 것 역시 충분히 상상하게 했다.


숏 사이즈의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서 출근한 월요일. 주말 내 다음 달 호석이 생일을 기념하며 다닐 수 있는 일정을 짰다. Connect BTS 서울 전시회, 컵홀더 카페 등을 리스트업하고 적당한 위치의 숙소 예약을 마쳤다. 이것만으로도 꽉 찬 주말을 보낸 것 같은 만족감으로 사무실 책상을 정리하고 컴퓨터를 켰다. 속속 출근하는 부서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커뮤니티 사이트에 접속했다. 보다 가벼운 앱인 트위터는 일어나자마자 훑고, 보다 적극적이어야 하는 커뮤니티는 업무를 시작 전 시간을 내어 살펴보는 건 나만의 루틴이 된 지 오래다. 진한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홀짝 대며 확인하는데 게시물들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


호텔 미리 예약, 멧 라이프 가는 방법, 로즈볼 분위기, 댈러스 관광...


새벽 새 Map of the soul 투어 북미 일정이 유출됐나 보다. 티켓팅이 예정된 해외 사이트에 미리 투어 일정이 입력되어 있었는데 그 루트가 새어 나온 듯했다. 유출 게시글은 금방 삭제되었고 다들 쉬쉬하면서도 숨길 수 없이 말들이 새어 나오는 상황이었다. 이 일정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LA, 댈러스, 올란도, 워싱턴, 토론토, 애틀랜타, 뉴욕, 시카고 총 9개 도시로 투어 일정은 4월 말부터 6월 초까지, 모두 스타디움 공연장이었다. 4월 중순에 서울 첫 공연을 하고 바로 북미로 넘어가는 일정인 듯싶었다.  


작년에 멤버들이 무척이나 좋아했던 LA 로즈볼 스타디움 공연도 보고 싶고, 모두 저세상 텐션으로 신났던 시카고 솔저필드도 다시 가고 싶고, 지민의 심적 방황을 끝내게 한, 그래서 자신의 첫 자작곡 <약속>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뉴욕 멧 라이프 스타디움도 가고 싶고, 이럴 때 아니면 방문할 일이 없을 것 같은 애틀랜타나 올랜도, 댈러스를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 한 번 신경이 쓰이고 나니 오전 내내 업무는 하는 둥 마는 둥이었다. 4월부터 투어라니. 그 생각만 했다.


구내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빠르게 마치고 돌아와 달력을 체크했다. 공연장까지의 거리가 도심에서 대중교통으로 가깝고 무엇보다도 멤버 전원이 트위터에 즐거웠다고 한 시카고는 무조건 다시 가야 했기에 가장 먼저 체크. 주중에 하루씩만 공연이 있는 도시들은 현실적으로 무리라 제외한 뒤, '그래도 뉴욕은 넣어야지' 싶어 토론토 대신 뉴욕에 큰 동그라미 방점. 공연만 보기엔 나쁘진 않을 것 같지만 댈러스는 우선 보류.


여행이 아닌 공연에 목적이 있으니 긴 휴가를 내지 않아도 되는 날짜로 항공권을 검색했다. 결제까진 이틀의 시한이 있으니 시카고와 뉴욕 항공권은 우선 예약부터 했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건 하나도 없는데 설레발은 이미 저만치다.


드디어 떴다. Map of the soul 투어 오피셜 일정이 1월 22일, 방탄소년단과 관계된 SNS 전 계정을 통해 업데이트되었다. 북미 공연 일정은 이틀 전에 확인한 내용 그대로였고 이후 유럽, 일본 공연 일정이 추가된 내용이었다. 이번 유럽 공연은 런던, 베를린, 바르셀로나 단 세 곳이었다. 그중 7월 셋째 주 주말의 바르셀로나 일정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바르셀로나 공연지로 적힌 Estadi Olimpic Lluis Companys 스타디움은 지난 12월 바르셀로나 여행 시 '혹시 방탄소년단의 다음 공연장이 될지도 모르지 않냐'며 직접 발품 팔아 다녀왔던 곳이기 때문이다.


몬주익 언덕을 걸어 올라가 근처의 호안 미로 미술관을 관람하고 올림픽 스타디움을 한 바퀴 돌며 '근처에 버스정류장이 없으니 좀 내려가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야겠구나'하며 재미 삼아 동선을 체크했고, 이 모습을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으로 전달하기까지 했었는데, 그게 정말 현실이 된 것이다. 게다가 7월 둘째 주에 한국 입국이 예정된 해외 방문단의 인솔 책임을 맡았는데, 그들은 7월 셋째 주 목요일에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할 예정이다. 배웅을 마친 그날 밤 바르셀로나로 출발하면 주말 이틀 공연을 모두 볼 수 있다. 이렇게 완벽한 타이밍이 있을까.


시카고와 뉴욕 항공권 구매 시한이 하루도 남지 않았다. 이러려고 오늘 여권을 챙겨 왔다. 다시 한번 투어 날짜와 항공 시간, 도시에서 머물 일정을 체크했다. 신용카드 번호를 입력해 단숨에 결제를 마쳤다. 운명의 바르셀로나까지 총 세 편의 항공권이 순식간에 발권 완료됐다. 공연장 이동이 쉬우면서 가격대도 합리적이면서 깔끔한 호텔도 몇 군데 검색해놓았다. 바르셀로나와 시카고는 위치가 금세 가늠되기에 적당한 곳으로 바로 결정했다. 두 곳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동이 복잡한 뉴욕의 경우 조금 더 살펴본 뒤 결제해야겠다.


티켓팅은 한참 남았지만, 해외 콘서트의 경우 국내와 달리 비교적 콘서트 티켓을 구하는 것이 조금 더 수월하기에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느낌이다. 존버에게 티켓은 주어지나니, 이젠 열심히 버티기만 하면 된다. 올 한 해도 덕질로 아주 자~알 채워질 것 같다.



P.S


유럽 투어 도시에 네덜란드 로테르담이 추가되었다. 일본 공연 이후의 스케줄이 또 언제 업데이트될지 모르겠다. 달력을 옆구리에 끼고 매의 눈으로 살펴봐야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중, 4월 서울 첫 콘서트 티켓팅 일정이 떴다. 팬클럼 추첨 이후 선예매 방식은 지난번과 동일했지만 1인 1매에 좌석별 차등 금액 도입은 그때보다 훨씬 더 나아졌다. 추첨에 당첨되는 게 가장 안정적이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티켓팅에서 꼭 살아남아야 한다. 가장 전쟁이 될 한국 콘서트 티켓팅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부디 4회 차 모두 포도 한 알씩 꼭 얻을 수 있기를. (슙)




2. 우리의 샴페인



와인을 즐겨 마시게 된 후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와인 셀러를 구입했다. 와인 가격이 괜찮을 때 넉넉하게 사 오고 싶은데 보관하기가 마땅치 않아서였다. 일반 냉장고에 넣어도 충분하다는 혹자의 말도 있지만, 보관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와인의 가치가 충분히 달라질 수 있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평소 가격의 3분의 2나 절반 가격으로 세일하는 와인을 양손 무겁게 들어 조수석에 싣고 돌아오는 퇴근길엔 정말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웃음이 히죽히죽 나왔다. 블루투스로 연결된 스피커에서 어린 시절 좋아했던 지오디나 SES의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면 더 그랬다. ‘그때의 내가 이만큼 컸구나’ 해서. 랩 가사 하나도 허투루 흘리지 않고 여전히 완벽하게 따라 부르며 몇 단어를 짚었다. 내 차, 운전, 와인, 퇴근... 밤공기가 달았다.


자주 방문하는 와인숍도 생겼다. 낯이 익은 점원들이 생겼고, 곧 있을 세일 기간을 귀띔받기도 한다. 와인 오프너나 부속품 외에 와인잔을 챙겨 받을 때도 있다. 단골만이 가질 수 있는 혜택이다. 


소주나 맥주와 달리 제 속도에 맞춰 마실 수 있고, 과일이나 치즈, 빵처럼 무겁지 않은 안주를 곁들일 수 있고, 게다가 적당히 분위기까지 챙길 수 있어서 일까. 퇴근 후 씻고 나와 아이스 버켓에 와인을 챙긴 후 노트북 앞에 앉으면,  뻥- 상쾌한 소리로 코르크를 오픈 한 뒤 여행지에서 사 온 빈티지 와인잔에 소비뇽 블랑 와인을 쪼록 따르면, 크래커 하나에 시원한 한 모금을 마시면, 모든 게 다 괜찮은 것만 같았다. 와인이 좋아진 건 그래서다.


와인 셀러에 빼놓지 않고 늘 챙겨놓는 종류의 와인은 샴페인(스파클링 와인의 통칭으로 사용하겠다)이다. 축하하고 축하받는 일이 생길 때 꺼내기 위해서다. 샴페인의 거품과 기포가 식도를 타고 쪼르르 넘기는 의식만큼 축하와 어울리는 일이 있을까. 울적하거나 우울할 때 생각나지 않는 와인 종류가 샴페인이기도 하다. 슬플 때 샴페인이라니. 이 같은 부조화가 또 어디 있을까. 기쁜 일이 있을 때 샴페인을 마셨다는 역사가 기록상으로 서기 400년대까지 거슬러 간다고 하니 단순히 개인적인 감상만은 아님에 틀림없다.


2019년 2월. 그래미 시상식에 방탄소년단이 모습을 보였다. 그래미 시상식에 시상자로 무대를 밟게 된 것이었다. 잘 차려입은 슈트에 보우타이까지 한 일곱 멤버들의 모습은 그해의 수상자들만큼이나 회자되었다. 공연을 할 순 없었지만 그래미 시상식에 초청된 것만으로도, 전 세계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가수들의 무대를 코앞에 보는 것만으로도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시상식이 마무리되고 호텔에 모인 멤버들. 슈트를 채 갈아입지도 않은 채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려는 라이브 방송을 켰다.


카밀라 카베요며 H.E.R., 션 멘데스 등의 무대가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시상 준비하느라 레이디 가가 공연을 직접 보지 못한 게 얼마나 아쉬웠는지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일곱이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우리를 알아보는 관계자들이 많아서 신기했음이, 무대 하나하나 고심한 흔적이 가득한 시상식을 직접 볼 수 있음이, 내년엔 이 곳에서 무대를 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얼굴들이었다. 들뜬 기분을 굳이 가라앉힐 필요가 없다. 지금의 방탄소년단을 그 보수적인 그래미도 간과하지 못한 날 아니던가.


정국이가 팬들에게 소감을 전달하는 사이 뻥- 샴페인의 코르크가 터졌다. 그래미에서 프레젠트 한 걸로 샴페인 깠다며 쑥스럽게 웃는 윤기의 목소리는 '그럴 가치 충분하지 않냐'며 웃는 멤버들의 목소리에 금세 묻혔다. 상을 받은 것도 아니고 무대를 한 것도 아니지만 온 것 자체가 영광이고 상이다. '처음', '최초', '그래미'. 그것만으로도 기념하기엔 충분하니까. 우리, 여기 그 모든 처음과 최초의 타이틀을 달고 참석했다.


지민이 7개의 잔에 샴페인을 따랐다. 거품으로만 가득 찬 잔이 태형에게 건네 지자 이렇게 샴페인 못 따르는 사람 처음 봤다며 호석이 지민을 놀렸다. 아무렴. 모두 잔을 높게 들었다. 최고의 건배사를 준비했다는 남준이 선창 했다.


"And The grammy goes to~"


다 함께 "BTS"를 외친 뒤 잔을 부딪혀 마셨다. 국내 시상식에서 당연한 듯 대상을 수여받던 멤버들이 아직도 올라갈 일 많은 더 큰 세상을 맛 본 날이다. 그것도 발을 한껏 담그고픈. 슈트를 차려입은 채 부딪힌 샴페인 잔은 아직 갈 길이 많은 자들의, 그러나 그 길을 시작한 자들을 응원하는 축배였다.


Speak yourself 투어를 앞두고 열린 2019 빌보드 시상식. 방탄소년단이 본상인 톱 그룹 아티스트 상을 비롯해 톱 소셜 아티스트상까지 2관왕의 영예를 얻었다. Halsey와 작은 것들을 위한 시 무대도 꾸몄다. 시상식을 보기 위해 찾은 팬들이 많아 그 어떤 무대보다 큰 환호성을 받았다. 톱 그룹 아티스트 수상자에 호명되는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환하게 웃으며 서로를 바라보던 멤버들의 얼굴은 잊히지 않을 모먼트가 되었다.

다양한 메뉴를 차려 놓은 테이블 앞에 모인 멤버들. 테이블의 끄트머리엔 일곱 개의 샴페인 잔이 줄을 지어 있고, 샴페인 한 병이 아이스 버켓 안에 담겨 있다. 하루 종일 시상식을 준비하고 무대를 신경 쓰느라 제대로 음식도 못 먹을 멤버들이지만 우선 팬들에게 인사부터 건넸다. 이런 자리를 자신들만의 것이 아닌, 팬들과 함께 하려는 멤버들 덕에 매번 이렇게 화면 넘어 뒤풀이를 함께 한다. 올 때마다 샴페인을 터트릴 수 있어 다행이라는 윤기와 그 말에 붙여 이게 다 여러분 덕이라는 정국, 이것들이 연례행사가 될 수 있음이, 이런 우리만의 이벤트가 쌓여 가는 게 좋다는 남준까지. 샴페인을 한 잔씩 나눠 잔을 부딪힌 뒤 이야기를 나눴다. 멤버가 일곱이 되다 보니 한 잔씩 나누고 나니 금세 한 병이 동난다. 지민이 얼른 샴페인 한 병을 더 오픈했다. 뻥- 축배의 새 병이 큰 소리를 냈다.


팬들에게 인사를 전달하자며 얼굴을 붙인 채 옹기종기 모인 멤버들. 이미 무대 위에선 그들의 이름이 불렸으니 이렇게 말할 차례라 생각했나 보다. 다시 한번 잔을 든다. 건배사는 자연스레 떠올랐다.


"Billboard music awards goes to ARMY!!"


밝은 얼굴을 한 채 라이브 방송이 마무리됐다. 이후 두 번째 샴페인을 나눠 마시며, 카메라가 있어 못 다 전한 말들을 정제되지 않은 단어들을 써 가며 자신들의 말을 좀 더 나누지 않았을까. 스타디움 투어를 앞둔 흥분감까지 더해져 기분 좋은 취기로 잠에 빠졌을 그 밤은 샴페인의 밤이었다.


그리고 2020년. 제62회 그래미 시상식의 퍼포머로 방탄소년단이 공개됐다. 남준이 피처링으로 함께 한 릴 나스 엑스(Lil Nas X)의 <Old Town Road>의 무대에 함께 서는 것이다. 앨범 판매량이나 투어 동원력, 전 세계에 끼치는 영향력 등을 생각하면 단독 무대도 부족하지만, 그래미의 보수성을 생각하면 이 정도도 많은 진전이다.


'사채 섹시'란 말을 만들어 낼 정도로 까리하게 차려입은 방탄소년단은 이 그래미 시상식에서 릴 나스 엑스, 나스 등과 공연하며 '주연급 조연'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다음엔 우리만의 무대를 가질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도 남겼다.


하루 종일 긴장도 하고 멋있게 나오고 싶어 제대로 먹질 못했더니 당 떨어졌다는 윤기의 앞에 놓인 건 초콜릿 케이크와 샴페인.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곳은 역시나 호텔방이고, 제일 먼저 행한 건 팬들을 향한 인사였다. 라이브 방송에서 멤버들은 내년에도 올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보다 차분하게 소감을 전달했다. 이번에도 샴페인 오픈을 지민이 담당했다. 샴페인 잔은 이번에도 역시 거품으로 가득 찼다.


운동으로 벌크 업된 몸에 왁스로 한껏 넘긴 머리로 길고 얇은 샴페인 잔을 가볍게 들어 입에 대는 남준이, 찡그림 하나 없이 샴페인을 여러 번 나누어 마시는 태형이는 작년에 비해 크고 멋있어졌지만 준비한 영어 멘트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태형이를 챙겨주려는 호석이나, 샴페인 잔을 거품으로 가득 채우는 지민이나, 무대 위 가수들의 공연을 보고 다음엔 꼭 우리 무대를 하고 싶다 말하는 멤버들은 작년과 똑같았다. 내년 갑시다 하며 짠- 샴페인 잔을 부딪힌 멤버들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그 한마디에 담긴 의지는 강했다.


대만 윙즈 투어 공연이 끝나고 모인 호텔방에도 테이블엔 함께 나눠 마실 샴페인이 놓여 있었다. 무사히 잘 끝난 콘서트를 자축하기 위해서였을 테다. 시상식 참여에 의의가 있어서, 상을 받아서, 고대하던 무대에 서서 멤버들은 함께 샴페인을 마셨다. 연대와 보상의 힘을 그 한 잔에 담아.


멤버들이 샴페인을 한 잔씩 나누던 그날 밤, 나도 샴페인을 함께 마셨다. 빌보드 시상식 때도 그래미 시상식 때도 그랬다. 눈 크게 뜨고 유심히 라벨을 체크해 같은 것 혹은 비슷한 것으로 꺼냈다. 좋은 일 있을 때 꺼내야지 하고 뵈브 클리코나 모엣 샹동 등을 보관하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라이브 방송을 다시 돌려보며 멤버들이 샴페인을 마실 때 나도 잔을 들어마셨다. 그들의 길에 동행하고 있는 한 명의 동행인에게도 똑같은 크기의 축하가 함께 했다.


멤버들의 생일에도, 콘서트가 끝나고 돌아온 방에서도 나는 샴페인을 함께 했다. 일상에 이렇게 기념할 수 있는 날이, 축하를 위해 샴페인을 딸 수 있는 날이 하나씩 늘어나다니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석진이와 태형이 생일, 크리스마스와 연말 연초, 그래미 시상식을 거치며 샴페인을 마실 일이 많았던 근래였다. 와인 셀러에 빈 공간이 많아졌다. 오늘 퇴근길엔 몇 병의 샴페인과 와인을 사서 돌아가야겠다. 분명 올해도 샴페인을 꺼낼 일들이 무척이나 많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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