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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Mar 14. 2020

42. 킬링 파트

방탄소년단 덕후 일기 42


나를 행복하게 하는 건 대부분 아주 사소한 것들에 기인한다. 앱으로 부른 택시가 여성 기사님이 운전하는 향기 나는 차일 때, 아파트 출입구 바로 앞의 주차 자리가 비어있을 때, 무거운 짐을 들고 들어오는데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1층에 머물러 있을 때, 좋아하는 와인이 세일가에 포함되었을 때, 스타벅스 적립 별이 열두 개가 되어 무료 음료 쿠폰을 발급받았을 때, 따뜻한 커피의 첫 모금을 마실 때, 분위기 좋은 맛집을 찾았을 때 등등. 가짓수가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나는 아주 무심코 행복해진다.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라고 그 옛날 영화가 제목으로 외쳤다. 맞는 말이다. 정말로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다. 지척에 널려 있는 행복을 발견하는 매의 눈을 가진 자, 그런 자에게 행복은 순순히 찾아온다. 그런 매의 눈은 어떻게 만드냐고? 모든 감각을 열고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마음가짐만 있으면 된다. 참 쉽다.


이건 일상에 '방탄소년단'이란 카테고리가 추가되면서 내가 느낀 행복에 대한 소회다. 그러니까 방탄소년단을 알게 되면서 더 많은 감각을 사용하여 더 많은 것을 받아들여 보다 더 넓은 범위에서 더 많은 행복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배경음악으로 <작은 것들을 위한 시>가 흘러나올 때, '그'라는 한글을 쓰려다 영문 오타가 나 'rm'이 쓰일 때, 예상치 못했던 시간에 브이앱 라이브를 시작했다는 알람이 뜰 때, 셀카 찍는 석진이 옆에 다닥다닥 붙어 귀엽게 치대는 멤버들의 사진이 올라올 때, 그 비하인드가 담긴 방탄밤이 불시에 공개될 때, 정국이가 "오 지민이 형 힙합 에이요 했다" 할 때, 그 말에 몸 둘 바를 몰라하며 뒤집어지는 지민이와 그 이상으로 뒤집어지는 멤버들을 볼 때 등등. 비실비실 웃음이 나오며 나는 절대적으로 행복해진다.


떠올리는 것만으로 절대적으로 행복해지는 '킬링 파트'. 방탄소년단 덕에 이런 킬링 파트를 잔뜩 소유한 나는 단순히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 열심히 쓴 보고서가 킬 당해도, 잔뜩 취해 코를 골며 잠을 청하는 상사를 봐도, 상대차의 무리한 끼어들기로 하마터면 사고를 낼 뻔한 상황에도, 흰 바지를 입고 나왔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을 때도 "아, 내가 2만 8천 원에 해줄게" "2만↗8천 원? 너무 비싸다↘"를 곱씹으면 버튼 눌리듯 웃을 수 있다.


내가 가진 그 수많은 킬링 파트 중 아주 일부분을 써본다. 무료 공개된 영상이 있을 경우 URL 주소를 함께 적는다. 글보단 역시 직접 보고 느껴야 하는 영역이니까.



1. 제이홉 또 힘차게 걷는다



2층 침대가 빼곡하게 들어찬 작은 방에 멤버 7명이 복작대며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벽지도 화장실도 베란다도 다 파란 집. 연습이 끝나고 돌아오면 땀냄새로 가득했을 17평의 논현동 숙소는 이젠 <이사>의 가사와 오래전 블로그의 흔적으로만 남아 있다. 더 이상 좁은 집에 다닥다닥 붙어 있지 않아도 되는 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몸도, 마음도, 형편도.


그렇게 이사한 숙소에선 둘둘셋씩 룸메이트를 맺어 지냈다. 정국이와 남준이 한 방, 윤기와 석진이가 한방, 지민이와 호석이가 태형이가 한 방을 썼다. 팬들의 사랑이 커질수록 숙소도 조금씩 넓어졌다. 그렇게 다시 한번 더 커진 숙소에선 태형이와 남준이, 윤기와 석진이, 지민이와 호석이 정국이가 함께 쓰게 되었다. 그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가벽을 세우거나 커다란 책장을 놓아 넓은 방을 나누었다는 것이다. 문은 하나지만 공간은 둘 인, 나름 독립적으로 향유할 수 있게 타협한 결과였다. 정국이는 작업실 겸 옷방 겸 다용도실을 Golden Closet이란 이름을 붙여 따로 쓰기 시작했다. 작은 사이드 협탁 하나를 가운데에 두고 양 옆으로 나란히 침대를 둔 채 오롯하게 한 방을 쓰는 건 지민이와 호석이 둘 뿐이었다. 혼자 있으면 외로움을 많이 타는 지민이에게 깔끔하고 배려 넘치는 데다가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호석이는 최고의 룸메이트였을 것이다.


2018년 시즌 그리팅 촬영을 위해 찾은 오키나와. 오래된 소도시 느낌이 나는 낡고 해진 골목에서 촬영이 시작됐다. 1년 내내 팬들의 책상 등에 자리 잡을 달력이다 보니 더욱 신경 써서 임하게 된다. 가만히 있어도 더운 오키나와의 햇빛. 그러나 카메라 앞에서만은 지친 기색 하나 없다. 단체 사진 촬영이 끝나고 이동하던 중, 여긴 건물이 되게 독특하다며 앞서 걷는 호석이를 뒤따르던 석진이 한마디 한다.


"제이홉 또 힘차게 걷는다"


힘차게 걷는 건 뭐냐며 뒤돌아 궁금해하는 호석이에게 호석이 공항에서 걸을 때 되게 씩씩하게 걷는다고 답하는 석진이의 곁을 지민이가 "이렇게 걸어요"하며 스쳐간다. 그리곤 어깨를 들썩, 엉덩이를 씰룩하며 넓은 보폭으로 내리막길을 빠르게 걸어내려 간다. 석진이는 공감에 박장대소하고, 호석이는 멋쩍으면서 "진짜?' 하며 웃는다. 클러치를 들고 있을 땐 한 손에 클러치를 안고 어깨를 앞으로 살짝 구부린 채 더 흔들거리며 걷는다고 몸소 표현한다. 와하하 하는 호석이의 웃음소리가 뒤따른다. 호석이가 아닌 것 같다고 부정하자 몇 번이고 걸음을 흉내 내는 지민이와 "내가 너한테 축지법 쓰냐고 그랬잖아" 동조하는 석진이의 말이 뒤따른다. 석진이가 "또 힘차게 걷는다" 하는 순간부터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호석이의 걸음을 똑같이 흉내 내는 지민이의 통통 튀는 걸음 뒷모습과 와하하 웃는 호석이의 모습은 한번 켜면 몇 번이고 다시 보게 된다.


호석이는 여전히 아직도 지민이가 제일 웃기다며, 공기 자체가 재밌다고 웃음을 참지 않고, 지민이는 그런 호석이를 보고 '형 나랑 같이 평생 살아야겠네' 한다. 활동이 끝나고 돌아온 숙소에서도 매일 붙어 있었던 사이. 서로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그 모든 것을 껴안고도 남는 시간을 가진 사이. 서로를 관찰할 수밖에 없는 사이. 그래서 서로를 감히 '잘 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이. 그 모든 사이를 쌓아온 지민이와 호석이을 살짝 엿볼 수 있는 장면.


오키나와의 작은 거리를 유쾌함으로 뒤덮었던 이 걸음들. 가만히 있다가도 '불쑥' 떠오르는 내 웃음의 킬링 파트다.



2. 하지만 저는 해요



<Wings> 파이널 콘서트 이후, 고척 스타디움에서 열린 방탄소년단의 4기 머스터는 북남미 및 유럽, 오세아니아, 아시아 투어를 마친 다음에 열린 한국 팬미팅이었다. 그동안 무대에서 많이 부르지 못했던 수록곡 위주의 무대를 선보이고 다양한 주제로 팬들과 소통하는, 멤버들이 보다 편히 임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무대 뒤쪽에 <방연 시>, <데뷔 100일>, <Worldwide> 등 팬들과 함께 만들어 온 기억을 함축시킨 단어들이 병 안에 담긴 사탕으로 구현되어 늘어서 있다. 멤버들이 뒤편으로 다가가 마음에 드는 하나씩을 골라와 앉으면 그에 관련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코너였다.  <MIC Drop>의 한 구절인 '말 말조심'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윤기. 장난 삼아 현재 가지고 있는 카드 중 5번 안에 조커를 뽑으면 지민이에게 평생 동생 하겠다던 호석이의 옛 '말조심'을 지나 나온 건 '힙합은 뿌잉뿌잉을 하지 않아요'라던 당찬 윤기의 발언이었다.


무표정한 채 마이크를 잡은 윤기가 해명을 시작했다.


"이제 말씀드리겠습니다. 힙합은 뿌잉뿌잉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다음에 이어지는 건,


"하지만... 저는 해용! 뿌잉"


오른손 두 번째 손가락을 볼에 콕, 볼에 바람을 빵, 엉덩이는 뒤로 쑥, 호오- 하며 손가락은 입술 끝에 뽁, "호오"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었다가 종종걸음을 걷는다. 입에선 뾱뾱뾱뾱 효과음이 나온다. 그런 윤기 모습을 보며 호석이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했다 하고, 남준이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석진이는 걸어 다닐 때마다 소리가 나는 게 신기하다 하고, 태형이는 손을 동그랗게 만들어 입에 댄 채 웃느라 정신이 없다. 그들 앞을 윤기가 다시 한번 소리를 내며 지나친다. 뾱뾱뾱뾱뾱뾱.


"저 형이랑 산 지 거의 8년째거든요. 지금이 제일 귀엽네요"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윤기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남준이지만 정작 윤기는 표정 변화 없이 태연하다. 막상 애교를 시키거나 미션을 주었을 때 누구보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멀쩡하게 해내는 본 투 비 아이돌 윤기답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힙합은 뿌잉뿌잉 하지 않습니다. 제가 할 뿐이죠."


이런 윤기 '간극'의 역사는 오래됐다. 데뷔 100일 차에 찍은 <꿀 에펨>엔 자기 주관이 뚜렷해 본인에게 안 어울린다 싶으면 절대 하지 않고, 주위에서 애교 동작을 한 번만 해달라고 해도 '힙합은 뿌잉뿌잉을 하지 않아'라며 내켜하지 않고, 늘 내 갈 길만 가겠다던 멤버인 윤기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애교를 부리고 있는 모습을 관찰하게 된다던 호석이의 제보가 나온다. 2015년 말 <창민의 가요 광장>의 보이는 라디오에 출연한 윤기는 데뷔 초 힙합은 애교를 부리지 않는다던 윤기의 애교가 최근 부쩍 는 이유를 묻는 팬에게 '많은 분들이 행복하신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며, 못할 게 뭐가 있냐'며 진지하게 답변했다. 애교 한 번 보여달라는 말에 얼른 토끼 귀를 만들어내며 찡긋 하며 '전혀 불편할 것 없다'라고 덧붙였다. 팬들이 좋아하는 거라면 이쯤이야, 하는 진정한 상남자의 모습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처럼 쏟아내듯 트랙을 채웠던 august D도 '아무도 말 안 해줬잖아 여기가 얼마나 외로운지 말이야 나의 도약은 추락이 될 수 있단 걸' 자신의 Shadow를 직시한 슈가도 뾱뾱뾱뾱뾱뾱 걷는 윤기 앞에선 스르륵 무력화된다. 어퍼컷을 날리듯 강력한 한 방의 애교를 지닌 윤기. 쉿 조용히 시키듯 호오- 하며 손가락을 입술 가운데에 툭 올려놓는 윤기가 조명이 켜지듯 파악- 이따금씩 찾아온다. 그럼 나는 또 스르륵 무력화되어 웃음이 나고, 그렇게 스르륵 다 괜찮아진다. 윤기가 부리는 마법이다.



3. 'Skool Luv Affair' stage practice behind the scenes



2019년 6월은 참으로 이상한 달이었다. 데뷔일인 6월 13일에 맞춰 진행되는 일주일간의 페스타에, 부산 2회, 서울 2회 2주간 나눠 진행한 머스터 매직샵에,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떡밥들에. 이정하 시인의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는 유명한 시구절이 내내 맴돌던, 매직이라는 이름답게 내내 잔뜩 상기된 채 지내게 하는 마법가루가 흩뿌려진 듯한 달이었다.


머스터 매직샵은 LA 로즈볼, 런던 웸블리 등 성공적인 스타디움 투어를 마친 뒤 열린 공연이란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소소하지 않은 소소함으로 가득했다. 윙즈 투어가 진행 중이었던 칠레의 한 호텔방에서 장난스럽게 찍은 <등골 브레이커> 뮤직비디오 모습 그대로 의상을 입고 춤을 춘다거나 <134340>, <Love maze>, <Home>, <보조개> 등의 곡을 첫 선보인다거나 2018년 페스타에서 공개됐던 랩 라인의 <땡>을 보컬 라인이(특히 MC자두 태형이가 제일 신나서) 파트를 나눠 불렀다. 지나온 시간들이 각자의 것이 아닌 우리의 것이고, 그걸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는 메시지가 꽉꽉 채워져 있던 매직샵이었다.


2019년 12월 31일. 방탄 밤에 영상이 업로드됐다. 매직샵 공연 연습을 하는 영상이었다. 아니, 이렇게 말하면 이 영상을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 매직샵 공연 연습 중 '남준이가 춤을 추는' 영상이었다. 방탄소년단 초기 노래 중 하나인 <Skool Luv Affair>를 연습을 하던 남준이 흥이 터져 모자를 가지고 <We're bulletproof pt.2> 정국이의 춤을 따라 춘다. 보통 모습이 아니다 싶어 바로 카메라를 켜 영상을 찍는 정국이와, 남준의 옆에서 더 신이 나서 춤을 추는 호석이와 윤기, 태형이와,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지민이와 석진이까지 고스란히 담겼다. 오랜만인 한국, 그중 부산에서 처음 하는 매직샵 공연 준비를 이렇게 즐겁게 했구나, 야채튀김 소년단답게 서로 좋아서 저렇게 뛰노는구나, 남준이도 흥 터지면 아무도 못 건드리겠구나 하며 봤다. 연말 선물과 같은 장면이었다.  


아래의 영상으로 긴 설명을 생략한다. 웃음을 참느라 입술 꾹 다문 정국이와, 방금 전의 감동을 다시 느끼려는 듯 옹기종기 모인 지민이와 태형이와 석진이와, 자신이 웃겼음에 뿌듯한 얼굴을 하는 남준이가 나온 이 썸네일만으로도 이 날의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다. 어느새 나도 둠칫 둠칫, 고개를 흔들고 있다.


https://youtu.be/K4 paFn9 dwfI



4. 래퍼 김석진



달방 마니또 역사가 시작된 2016년 크리스마스 기념 브이앱 라이브. 각자 1만 원 이하의 선물을 준비한 뒤 선물의 크기만 보고 직접 고른 뒤 나눠 갖는 방식이었다. 사무실로 보이는 공간에 마이크 없이 모인 7명이 브이앱 라이브를 한다면? 쉴 새 없이 물리며 울리는 오디오 속에서 멤버들의 목소리를 나누어 듣기 위해 적어도 세 번 이상은 다시 봐야 한다는 뜻이다.


화면상 가장 오른쪽에 앉은 정국이와 지민이 다음이 남준이었다. 자신의 차례가 되자 적당한 크기의 선물을 골랐다. 선물 상자를 열고 동공 지진이 왔다. 섬유 탈취제나 팬티를 받은 두 사람에 비해 자신이 연 상자 안에는 육포와 오징어, 크리넥스 등 만원을 맞추기 위해 겨우 구색을 맞춘 듯한 구성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옆에서 멤버들이 누가 봐도 석진이가 준비했을 거라고 웅성거린다. 사은품 준거 아니냐며 남준이 약간의 실망감을 내비치자 빨간 망토를 두르고 앉아 있던 석진이 항변한다.


"야너가일본에서육포랑오징어되게맛있는거먹는거사실너생각해서사온거야물티슈도너맨날흘려가지고어?야너이거잘닦으라고내가물티슈도샀는데나한테어떻게그럴수가있어?"


중간에 쉼표 하나 없이 속사포 랩처럼 쏟아지는 석진의 말. 숨을 제대로 쉬지 않아 석진의 얼굴은 빨갛게 물들었고, 그 표정과 말의 리듬과 전체 흐름에 모두가 사무실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며 웃는다. "예능 진짜 좋아하나 봐" 하는 윤기의 미소진 얼굴과 몸을 구겨가며 카랑카랑 웃는 정국이의 목소리와 그제야 밭은 숱을 내쉬는 빨간 얼굴의 석진이까지.  


이 날의 브이앱 중 남준이 자신의 선물을 여는 18:25부터 정국이의 웃음소리가 청명하게 울리는 19:36까지에 해당되는 장면이다. 석진이의 쉬지 않는 폭풍우처럼 몰아지는 샤우팅이 귓가에 쩌렁쩌렁 찾아오는 날이 불현듯 있다. 진정한 의미로의 킬링 파트다.


+ 어느 팬이 아리아나 그란데의 <7 rings>에 맞춰 석진이를 콜라보해 편집한 영상을 트위터에 업로드했는데 2020년 3월 초 기준 176만을 기록했다. 역시 킬링 파트답다.


https://www.vlive.tv/video/19548


https://twitter.com/CHICKPEAJIMIN/status/1152573598155960327?s=20



5. 하와이의 장난꾸러기들



2016년부터 매년 떠나는 <본 보야지>는 멤버들에게 하나의 쉼이다. 물론 많은 수의 스태프가 함께 있고, 자신들을 찍는 카메라가 지척에 있지만 콘텐츠 자체가 '여행'이고 중간중간 개인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에 멤버들은 <본 보야지>를 정말 여행처럼 받아들인다.


2017년 <본 보야지> 여행지는 모두가 원했던 하와이가 선택됐다. <Wings> 투어가 끝난 뒤, 게다가 8일이라는 여유로운 일정 덕에 하와이로 떠나는 첫날부터 멤버들은 잔뜩 상기된 표정을 했다. 긴 비행 끝에 다다른 하와이. 짐을 풀고 비행의 여독을 풀기 위해 제일 먼저 숙소를 찾았다. 키 큰 나무들이 가득한 넓고 푸른 정원과 꽤 규모 있는 수영장이 있는 대저택이었다. 큰 프로펠러 선풍기가 천장에서 돌아가고, 방마다 너른 창으로 하와이의 눈부신 햇살이 전해 들어온다. 이 숙소에 도착한 것만으로도 떠나왔음이 실감되었는지 말로만 듣던 하와이가 이렇구나, 벌써 힐링이다, 숙소가 너무 마음에 든다며 너 나할 것 없이 한 마디씩 거들었다. 첫날은 다 같이 대형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각자 돌아와 수영도 하고, 음식도 먹고, 깨끗한 밤하늘에 뜬 달과 별도 감상하는 시간이었다.


하와이의 둘째 날. 다 같이 점심을 먹을 쇼핑몰로 향했다. 남준이가 라 페스타 같다고 표현한 쇼핑몰은 인적이 많지 않은 한적한 곳이었다. 이탈리안 음식으로 배부르게 식사를 해결한 뒤 각자 쇼핑할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커피를 마시러 가거나 기념품숍을 가거나 화장실을 가기 위해 짝을 지어 찢어졌다. 꼭 사진 같은 그림들이 가득한 기념품숍에 들어간 태형이와 지민이는 우와- 아아- 감탄하며 구경했고, 남준과 석진, 윤기는 카페인 수혈을 위해 스타벅스로 향했다. 한창 빠져있는 블루투스 스피커를 사선으로 멘 정국이는 호석이와 함께였다.


화장실에 다녀오는 호석을 기다리고 있던 정국이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해 <Where Are Ü Now>를 틀었다. 걸어 나오던 호석이 음악에 리듬을 타며 즉석에서 춤을 췄다. 인적이 드문 해외라서 누릴 수 있는 자유였다. 커피를 사서 오는 석진에겐 <Scared To be lonely>를 맞춰 틀었다. 손키스를 날리던 석진이 팔을 뻗어 빙그르르 돌았다. 언제 기념품숍 구경을 끝냈는지 어느새 다가와있는 태형이와 지민이도 이 난리법석에 합류했다.


정국이 다시 한번 <Where Are Ü Now>을 선곡한다. 호석이가 든 카메라 앞에 선 태형이 허리를 굽히고 엉덩이를 뒤로 뺀 채 둠칫 둠칫 리듬을 타고 그 뒤에 석진도 같은 포즈로 움직인다. 태형이를 바라본 채 있었던 호석이도 같은 파동으로 뒤뚱뒤뚱 춤을 춘다. 이 모습을 담고 있던 정국이와 지민이의 카메라도 어느새 위아래로 흔들린다. 얼마간 춤을 추다 보니 자신들이 생각해도 뜬금없이 웃기다. 지민이가 찍은 영상에 꺄르르 신이 나 웃는다.


이 모든 것은 정국이의 플레이리스트와 블루투스 스피커가 있기에 가능했다. 각 멤버들에게 맞는 선곡으로 반응하지 않을 수 없게 했기 때문이다. 호석이에겐 믹스테이프 <1 verse>를, 태형이에겐 커버곡 <안아줘>를, 석진이에겐 커버곡 <난 너를 사랑해>를, 윤기에겐 믹스테이프 <싸이하누월>을, 남준이에겐 피처링곡 <Change>를 틀었다. 그러면 다들 손에 든 물건들을 바닥에 내려놓고 춤을 추거나 뮤직비디오를 찍듯 연기했다. 정식 발매곡이 아닌 멤버들의 곡들을 저장하고 있었던 정국이, 인적 드문 쇼핑몰, 게다가 하와이, 만족스러운 배부름을 안고 만끽하는 여유와 자유. 그 모든 것이 합해져 나올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이 킬링 파트가 만들어졌다. 언제고 질리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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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사전적 의미는 '복된 좋은 운수' 혹은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다. 그냥 방탄소년단으로 압축할 수 있다는 뜻이다.


노래를 듣다가 '네가 얼마나 예쁜지 넌 알고 있을까' 하는 가사를 곱씹으면, 곧 매직샵 DVD가 출시된다는 공지를 확인하면, 유럽 공연 티켓팅 일정이 확정되면, 오늘도 열심히 촬영하고 돌아가는 길이라며 퇴근길 사진을 찍어 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위버스에 찾아온 태형이를 만나면 금세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킬링 파트를 나누는 게 무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킬링 파트들은 불시에 찾아오는 메시지들이 주는 즉각적인 행복보다 산재한 행복에 가깝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뜻밖의 행운이나 행복이 아닌, 이미 내게 주어져있는 행복이다. 마음속에 꾹 가지고 있다가 필요할 때에 언제든 꺼내어 내보일 수 있는 행복의 매개체. 활자가 부족해 겨우 이 정도만 적었을 뿐, 내겐 행복의 매개체가 끝도 없이 리스트 되어 가득하다.


정국이는 늘 아미의 행복을 말한다. 어떤 자리에서도 말 끝엔 아미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인다. 행복. '복된 좋은 운수' 혹은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 그건 방탄소년단이 존재하는 순간 이미 우리에게 찾아온 단어. 그러니 우리의 행복을 더 이상 걱정해주지 않아도 된다고, 정국이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이번 앨범의 국내 활동이 끝나자마자 <달려라 방탄>의 새 에피소드가 공개됐다. 달고나 만들기, 공기놀이, 땅따먹기 등 추억의 놀이를 진행하는 모습들이 담겼다. 추억의 간식을 선물로 걸고 게임을 하는 멤버들은 모두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공기를 이미 손안에 숨겨두고 마치 방금 잡은 것처럼 행동하는 태형이나 잘 못 할 거면 웃기기라도 해야 하는데 자신은 둘 다 못 하고 있다며 귀엽게 자책하는 윤기가 담겼다. 킬링 파트 리스트가 또 하나 추가되었다. 또 한 번 더 행복해질 기회가 늘었다.



P.S


"오 지민이 형 힙합 에이요 했다"는 <Love yourself in Seoul> DVD 영상 중 자신들의 첫 번째 콘서트에서 어깨에 힙합정신을 가득 얹어 마이크를 잡고 멘트를 시작하려는 지민이를 보고 정국이가 하는 말이다. 짙은 아이라인을 한 채 어깨를 거들먹거리는 지민이 "에이요 내가 누구?" 하는 순간, 그 앳된 긴장에 모두가 허리가 끊어져라 웃는다. 바닥에 널브러진 지민만 제외하고.


"아, 내가 2만 8천 원에 해줄게" "2만↗8천 원? 너무 비싸다↘"는 <Speak yourself> 뉴저지 콘서트가 끝나고 돌아와 지민이와 함께 잇진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던 석진이 방에 뒤늦게 찾아온 정국이를 놀리기 위해 브이앱 라이브를 꺼버린 뒤, 다시 정국이가 켠 브이앱 라이브 방송 중 잘 개켜진 정국이의 옷을 본 석진이 가게 놀이를 시작하자 정국이와 태형이 호응하며 하는 말이다. 카메라 앞에 앉아 있던 지민이는 세 사람의 어린 장난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방송을 보고 있는 팬들에게 대신 인사했다.


음, 이렇게 쓰니 꼭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같다. 그렇다면! "방탄의 소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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