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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May 21. 2020

48. 재생목록을 공유한다는 것

방탄소년단 덕후 일기 48


조카가 어린이집을 다니게 됐다. 집 근처 몇몇 어린이집 중 선생님과 아이들의 유대감이 좋아 보이는 곳을 골라 단박에 등록까지 마쳤단다. 손에 묻지 않는 크레파스며 손세정제, 개인 물컵과 물티슈, 도시락통 등. 조카 등원에 필요한 물품 목록을 여동생과 함께 골랐다. 어떤 행위 앞에 처음이 붙으면 모든 게 다 새로운 법이다.  


시간이 조금만 늦으면 주차장이 꽉 차는 아파트라 출근하기 편한 곳에 주차를 완료한 뒤 집 근처 치킨집을 찾았다. 조카 어린이집 등원 축하 겸 오랜만인 여동생의 외출을 기념하는 저녁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굳이 말을 꺼내기엔 낯간지럽고, 각자의 일상을 공유하기엔 너무 멋쩍은 자매의 대화는 자연스레 과거 또 과거로 향했다. 


예전에 살던 주택 거실에 쥐가 들어와 다 같이 쫓아내려 난리가 났던 일화는 단골 주제다. 우리 어릴 땐 도심에서도 쥐를 곧잘 보곤 했다며 그때 아연실색이 됐던 내 얼굴이나 빗자루를 들고 장식장 뒤를 헤집던 엄마의 손짓을 얘기하며 깔깔거렸다. 내 대답이 이렇게 나오기 전까지 말이다.


"아, 진짜?", "내가 그랬다고?", "그런 일이 있었어?"


도둑이 들어 할머니 방이 난장판이 되었던 것이나 당연히 내 것인 줄 알았던 CD플레이어가 사실은 동생과 공동 소유물로 선물 받았다는 것도 모두 내게 존재하지 않는 기억이었다. 여동생이 몇몇의 에피소드를 더 꺼내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기억이 안 날 수 있냐는 타박에도 별 수 없었다. 정말, 진심으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들이었다. 소주잔을 부딪히며 동생의 정보력이 대단한지 내 기억력이 형편없는지를 생각했다. 


인간의 망각의 동물이다. 나는 인간이다. 

고로 나는 망각의 동물이다. 


변명하자면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니다. 용량이 적은 USB처럼 현재에 필요한 것들만 취사선택해 저장하고 있다가 용량이 부족하면 리셋하고 새롭게 채워 넣을 뿐이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들은 메모한 뒤 책으로 만들어놓고 잊는다(다시 읽으면 언제 이런 걸 다 썼지 하며 놀란다). 관심이 없는 부분은 과감히 기억의 용량에서 삭제하고, TMI 정보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에피소드들은 저 역사 아래에 묻혀 있다. 누군가가 와서 파줄 때야 겨우 머리를 내밀거나 혹은 거짓말처럼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유적터같이. 


그러나 기억이 아닌 흔적에 남은 장면이라면? 

그래서 잊으래야 잊을 수 없는 범주가 만들어진다면?


그때의 일이 할퀸 자국처럼 남아있는 장면들은 거짓말처럼 잊히지 않는다. 붙여다 뗀 스티커가 남긴 얼룩처럼, 한 번 묻은 뒤 절대 지워지지 않는 잉크처럼, 잊지 않으려 애쓰면 잊히고 잊으려 애쓸수록 잊히지 않다는 불변의 진리처럼, 기억력은 단순한 변명에 불과하다고 말하듯.


대학 졸업 후 취업을 준비하던 중, 나는 용돈벌이를 위해 어느 대형 전시회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국제적인 이름이 붙은 규모 있는 전시회라 전시실에 배치될 많은 아르바이트생이 필요했다. 시작과 끝이 명백한 전시 특성상 나잇대가 엇비슷한 친구들과 금세 마음을 터놓으며 친해졌다. 대학 생활을 다시 하는 듯한 기분으로 삼삼오오 모여 다니며 매 퇴근길마다 저녁을 함께 먹거나 술 한 잔씩을 기울이거나 했다. 


저녁을 먹으며 반주까지 했는데 대화가 도무지 끝나질 않은 어느 날이었다. 자리를 옮기기엔 주머니 사정들이 넉넉지 않아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씩을 산 뒤 근처 국립대학교 캠퍼스의 연못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상념, 미래에 대한 고민들을 나누다 나뭇가지가 물결 위로 고즈넉이 내려앉은 밤 분위기에 취해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보기로 했다. 늦가을의 밤, 채 잠들지 못한 사람들이 곳곳에 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몇 명의 차례가 지난 뒤 한 친구가 존 레전드의 <P.D.A>를 선곡했다.


"어? 나 이 노래 너무 좋아하는데"


단박에 알은체를 했다. 'Lets go to the park I wanna kiss you underneath the stars'. 첫 음이 흘러나올 때마다 바로 도심 속 너른 공원으로 순간 이동하는 노래기 때문이다. 쨍하게 맑은 날, 나뭇잎이 무성해 짙게 그늘을 드리운 나무 밑에서 살갗을 스치는 바람을 느끼며 살포시 잠이 들 것 같은 기분을 전달하는 노래. 좋아한다는 말로 부족해 말을 덧붙이려는데


"역시 이 노랜 비에 어울리는 노래지?" 한다.


"에이 무슨 소리야. 이 노랜 한여름의 낮, 딱 그때에 어울리는 노래 같은데?"

"비 오는 밤이지"

"아니야. 나무들로 가득한 공원에서 듣기에 딱인데? 하늘도 푸르고, 나무들도 막 초록잎으로 가득하고"

"난 이 노래 비 오는 도시 야경을 상상하며 듣는데"


별 다른 반응이 없이 노래에 집중하는 다른 친구와 달리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했다. 노래를 선곡한 친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취향이 비슷해 '우리 솔메이트 아니냐'며 농담하던 사이였는데 조금만 들여다보니 완전히 다른 성질이었다. 같은 노래를 좋아해도 그 노래에 깃든 마음의 배경이 다르고 상상이 다르다. 몇 곡의 노래를 더 들은 뒤 다 마신 캔을 정리해 버린 뒤 집까지 걸었다. 집 근처에서 헤어진 뒤 생각했다. 나와 같고 또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바쁘지 않으면 잠깐 올 수 있어?'


기억이 아닌 흔적으로 남아있는 장면, 그걸 또 떠올리면 나는 오 년 전 그 날의 스튜디오로 이동한다. 


점심을 먹고 나서 컴퓨터 앞에 앉아 하품을 하던 찰나, 친한 아나운서 언니의 메시지를 받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온 에어 등이 꺼져있는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간 라디오 부스는 입사한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새롭다. 세 사람쯤 앉으면 꽉 찰 이 작은 공간에서 방송이 만들어지는 것도 신기하고 버튼 하나라도 잘못 누르면 금방이라도 사고가 날 것 같아 행동이 조심스러워지는 것도 새롭고, 어떤 노래도 검색이 가능한 뮤직뱅크를 실행시켜 마음껏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재밌다. 


생방송을 막 끝내고 다음 방송 선곡을 준비하는데 콘셉트를 뭘로 잡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언니의 귀여운 푸념이 이어졌다. 사계절, 날씨, 첫사랑, 문자메시지, 커피. 꺼내놓는 단어마다 모두 이미 진행한 주제였다. 그래서 그냥 편하게 좋아하는 노래를 찾아들으며 그 노래 리스트에서 공통점을 찾아보고자 했다.


내가 제일 먼저 선곡한 노래는 클래지콰이의 <금요일의 Blues>. 어느 계절, 어느 시간, 어느 장면에도 어울리는 노래라 생각하며 당시 매일 질리지도 않게 듣던 노래였다. 분명 언니도 좋아할 거라며 호들갑스럽게 추천하며 재생했다. 완벽한 방음 시설을 갖춘 곳이라 말소리가 묻힐 정도의 크기로 소리를 켰다. 입모양으로 가사를 따라 부르고, 다리를 까딱거렸다. 역시 이 노랜, 이렇게 들어도 좋구나 하며 언니를 바라보는데 반응이 영 미적지근하다. 생각지 않았던 반응이라 허둥대며 다른 몇 곡을 더 대었다. 가타부타 말없이 바로 다음 곡으로 넘어갔다. 


각자의 취향이 있는 법인데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모두 다 좋아할 것이라고 착각을 한다.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나를 대변하던 시대에 한 친구가 '나와 어울릴 것 같아 선물한' 노래가 내겐 전혀 와 닿지 않았을 때 얼마나 당황스러웠던가. 친구의 성의를 생각해 미니홈피 배경음악으로 설정해놓고 정작 나는 내 공간에 접속하자마자 노래부터 끄곤 했었다.


남이 좋다는 것이 꼭 내게 맞는 것도 아닌데. 다행히 추가로 들은 노래 중에 괜찮은 곡이 있었는지 선곡 리스트를 함께 추렸다. 덕분에 오늘도 잘 넘길 수 있겠다는 언니와 다음 약속을 정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모니터 옆에 붙은 포스트잇이 눈에 들어왔다. 쇼핑 목록이 빼곡히 적어 놓은 포스트잇이다. 이 중 내가 정말 필요해서, 내 취향에 꼭 맞아서 반드시 사야만 하는 것들은 몇 개나 있을까. 내역을 훑어본 뒤 그대로 뜯어 쓰레기통으로 버렸다. 남들에 의해 생성된 욕구들이 쓰레기통으로 사라졌다. 업무 파일을 열고 이어폰을 끼워 <금요일의 Blues>을 재생했다. 역시 이 노래지, 했다.


영화 <비긴 어게인>에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


두 개의 이어폰을 함께 꽂을 수 있는 스플리터를 활용해 말 한마디 없이 온 도시를 쏘다니며 노래를 들었던 아내와의 첫 데이트를 추억한 댄이 그레타를 향해 핸드폰엔 어떤 음악이 들어있냐고 묻는다.  


"내 음악 목록엔 접근 금지예요. 창피하고 죄스러운 곡들이 많이 들었어요."


그런 그레타를 설득시키는 댄의 말은


"내 것도 그래. 듣는 걸 보면 그 사람을 알게 돼."였다.


자신의 음악 목록이 알려지는 것이 두렵다던 그레타는 부끄러워하며 첫 곡을 재생했다. 댄의 차에 오래도록 걸려있던 스플리터가 모처럼 쓰임을 발휘해 두 사람은 뉴욕 타임스퀘어 곡곡을 누비며 함께 노래를 듣는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Luck be a lady>, 스티비 원더의 <For once in my life>, 돌리 윌슨의 <As time goes by>. 한때 좋아했으나 오래 잊고 있던 노래나, '아 이런 노래도 있었지' 하는 노래가 불쑥불쑥 쏟아진다. 그레타의 재생 목록은 그녀의 취향을 대변하는 동시에 그녀를 설명하고 있었다.


겉으론 남들이 잘 듣지 않거나 이런 걸 들어야 음악 좀 듣는 사람처럼 보일 것 같은 노래를 듣는 척하곤 차 문을 닫자마자 몸이 들썩거리는 90년대 댄스 음악이 플레이되는 내 재생목록, 그곳에 내 욕망이 있듯이.


내겐 무심코 추천이란 단어를 붙였다가 여러 가지 감정의 굴곡을 느낀 이런 '노래'에 얽힌 에피소드들이 지금껏 잊히지 않는 이유다. 우린 쉽게 좋음을 얘기하지만 그 좋음은 언제나 상대적이다. 다다르는 건 결국 너와 나는 다르다는 회의적 결론이다. 재생목록을 공유한다는 건 그렇게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RMusic


긴 설명 없는 태그 하나와 음악 재생 화면 캡처 하나. 남준이의 알람이다. 오늘은 또 어떤 노래일까. 궁금증을 안고 화면을 켰다. 대중적이지 않은 아티스트의 이름과 곡목을 확인했다. 멜론 사이트에 접속해 검색했다. 이미 '남준이 추천곡 들으러 왔어요', '오늘도 좋은 아티스트 한 분 알고 가요' 하는 댓글 수십 개가 적혀 있다. 망설임 없이 재생 버튼을 클릭했다. 피아노 선율에 낮게 깔린 목소리가 인상적인 도입부가 시작됐다. 빗방울이 맺힌 수북한 풀밭으로 이동한 느낌이다. 아, 이래서 하늘이 잔뜩 흐린 오늘 같은 날씨에 툭 던져준 것이구나. 노래를 다운로드하여 재생목록에 추가했다. 이렇게 쌓인 곡 수가 벌써 수 십 개다.


그 잊히지 않은 기억들로 인해 누군가의 취향에 불쑥 침범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동시에 의미 없는 일이라 생각했던 내게 남준이가 꼭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준이는 Alexander Jean의 <Whiskey and Morphine>나 못의 <서울은 흐림>, 에픽하이의 <우산>, 이소라의 <Track 3> 등을 함께 듣자 건네 오고 태형이는 Albert Ayler의 앨범이나 Call me by your name의 OST나 Kenton Chen의 <Closer> 커버곡을 알려준다. 그리고 이 모든 방식은 '너무 좋으니 들어보세요'의 강요가 아닌 '저는 지금 이 노래를 듣고 있어요. 정말 좋네요'의 독백이다. 


본인이 좋아하거나, 들었으면 하는 노래를 다만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곧잘 추천해주는 멤버들 덕에 모든 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됐다. 멤버들이 말하는 노래를 부담 갖지 않고 들어 보고 취향에 맞는지 확인하면 된다. 취향에 맞으면 내 것으로 만들면 된다. 노래에 이미지가 필요하다면 각자의 영역에 맞춰 담으면 된다. 그 영역이 어디에 닿아있을지언정 우리는 같은 노래를 듣는다. 이 결론에 방점을 찍는다.


재생목록을 공유한다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 용기는 모든 걸 그대로 받아주는 상대 앞에서 어렵지 않게 발현된다. 정말 좋아서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내가 이렇게 좋아한다는 것을 알리면 선뜻 들어줄 것이라는 생각이, 지금 듣기에 좋은 음악을 함께 듣고 싶은 마음이, 지금을 공유하고자 하는 생각이 노래 곡목 하나에 녹아 있다. 


같은 노래를 좋아해도 그 노래에 깃든 마음의 배경이 다르고 상상이 다르면 뭐 어때. 우린 같은 노래를 좋아하잖아. 노래 취향이 다르면 뭐 어때. 우린 같은 시간을 공유했잖아. 쉽게 좋음을 얘기하지만 그 좋음이 상대적이면 뭐 어때. 다 똑같으면 재미없잖아.  


잊히지 않았던 그때의 연못과 그때의 스튜디오는 이제 다른 형태로 잊히지 않을 것이다. 다다르는 건 결국 너와 나는 다르고, 다른 너로 인해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진리를 또 한 번 깨닫게 해 준 멤버들 덕에. 


뉴욕 브로드웨이 곳곳을 누빈 댄과 그레타는 밤늦은 시간 어느 계단에 앉는다. 여전히 나눠 낀 이어폰에선 느린 박자의 재즈 선율이 흐르고 있다. 경찰에게 끌려가는 사람,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 불 켜진 시티 은행, 몇몇의 행인.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음악을 배경 삼아 눈 앞의 장면을 바라본다.  


"이래서 내가 음악을 좋아해. 가장 따분한 순간까지도 갑자기 의미를 갖게 되니까. 이런 평범함도 음악을 듣는 순간 아름답게 빛나는 진주처럼 변하지."


나는 여행을 가기 전에 꼭 새로운 재생목록을 만든다. 경험이 있는 도시면 그때의 도시 느낌에 맞춰 그 거리를 걸으며 듣기에 딱인 노래들을 선곡한다. 느리거나 빠르거나, 높거나 낮은 음악들이 나름의 주관에 따라 배치된다. 경험이 없는 도시라면 모든 것을 상상에 맡겨 선곡한다. 그곳을 선택하게 한 동력에 맞게, 그 도시에서 느꼈으면 하는 것을 끌어내게 하는 음악들이 나름의 주관에 따라 배치된다. 


여행 도시나 날짜를 제목으로 딴 재생목록은 아직도 MP3에, 혹은 그 리스트를 그대로 적어놓은 기록에 남아있다. 그때 포르투 도우루 강변을 거닐며 반복 재생했던 노래가, 그때 파리 뤽상부르 공원에 앉아 들었던 노래가 길이나 라디오나 카페에서 흘러나오면 그 즉시 그때의 포르투나 파리로 순간 이동하게 하는 마법. 여행에 음악이 붙으면 그 순간은 영원에 수렴한다. 


코 끝이 깨끗하게 맑은 날씨라 모처럼 차를 두고 걸으러 나왔다. 멀리 돌아가는 길이니 집까지 족히 1시간은 걸리겠다. MP3를 꺼내 여러 이름을 가진 재생목록 리스트를 훑었다. 그중 방탄소년단, 단 다섯 글자를 제목으로 한 목록을 선택했다. 멤버들이 추천한 노래들을 모아둔 것이다. 첫 곡인 <lovememore.>를 클릭하고 걸음을 옮겼다.


멤버들이 추천한 노래들을 모아놓은 재생목록을 열었다. 그레타의 재생 목록은 그녀의 취향을 대변하는 동시에 그녀를 설명하고 있었다. 내 취향을 대변하고 나를 설명한 재생 목록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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