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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Jun 08. 2020

50. 2020 FESTA 1주 차

방탄소년단 덕후 일기 50


6월.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같은 문장으로 새 달을 맞이한다.

단 세 글자로 모든 걸 표현한다. 드디어. 드디어, 페스타다.


페스타(Festa)란? 

방탄소년단의 데뷔일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6월 13일을 전후로 팬들과 함께 즐기는 축제 기간.
다양한 자체 제작 콘텐츠가 이 기간에 쏟아져 나온다


2020.6.1(월)


지난 <단상들 pt.6> 편을 주말에 부랴부랴 마무리했다. 오늘부터 쏟아질 페스타 떡밥의 양을 알아서다. 윤기가 아미로 열연한 방탄소년단 입덕 가이드엔 이런 명문장이 있다. '페스타 기간에는 약속도 잡아선 안 돼'. 매일 밀리지 않고 떡밥을 소화하는 것도 벅찬데 그 소화한 떡밥들에 대한 기록까지 남기려면 이전의 글을 붙잡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걸 이전의 페스타들을 통해 체득했다. 5월 31일에 <단상들 pt.6> 편을 발행한 뒤 다시 이 글을 쓰기 위해 새 메모장을 켰다. 


6월 1일 00시. 2020년 페스타의 화려한 서막을 연 떡밥은 2018년 썸머 패키지를 촬영한 사이판에서 찍은 상큼 버전 <Airplane pt.2>였다. 꼭 그림 같은 파란 하늘과 비현실적인 하얀 뭉게구름, 선명도를 조절한 것처럼 쨍한 수영장과 호텔 그리고 노랑 초록 파랑 등 시원한 파스텔 톤의 의상을 입은 멤버들이 화면 가득 나타났다. 세련된 의상에 물 흐르듯 이어지는 페어 안무를 하던 <Airplane pt.2>는 사라지고 저마다 귀염 뽀짝한 율동을 하느라 정신산만 한 <Airplane pt.2>만 남았다. 튜브를 들어 막춤을 추거나 멤버 옆에 붙어서 장난을 치거나 하며 자유롭게 노는 멤버들의 얼굴엔 환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새로운 콘텐츠가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는 '우리가 매일매일 촬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석진의 말이 생각난다. 썸머 패키지 촬영 중간에도 언제 공개될지 모르는 이 영상을 찍었구나. 덕분에 2년 전의 파아란 사이판 하늘을 지금 본다.


사이판을 여행하기 위해 일정을 계획했던 적이 있다. 정국이가 멤버들을 담았던 G.C.F와 태형이가 찍은 풍경 사진, 그리고 썸머 패키지에 담긴 하늘색 때문이었다. 차를 타고 가다 인적 드문 바다에 툭 세워 시원한 바닷바람을 즐길 수 있고 한적한 도롯가에서 인생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구나, 사이판이라면 내내 파란 하늘을 맞이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멤버들이 숙소로 택했던 곳에서 숙박하며 멤버들이 했던 해양 스포츠를 따라 즐기며 촬영지로 방문했던 바다 등을 차례로 둘러보는 동선이 여행의 모든 계획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조금 미뤄뒀는데 이제는 기약이 없어졌다. 역시 생각이 들면, 실행했어야 했다. 


사이판에서 누구보다 자유로워 보이는 멤버들을 보며 당분간 가볼 수 없는 그곳의 여름을 상기한다. 모든 게 다 괜찮아지는 때, 사이판의 여름을 실컷 즐기고 <Airplane pt.2>에 맞춰 신나게 춤도 춰 보리라. 


오후엔 이 페스타의 하이라이트가 될 방방콘의 티켓팅이 있었다. 이렇게 손쉽게 티켓팅을 끝낸 적이 처음이다.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기쁠 일이 하나쯤은 있다. 페스타의 시작이었다. 



2020.6.2(화)



내가 보통 여행을 떠날 때 가장 우선순위로 챙기는 건 핸드폰과 여권, 지갑(신용카드 및 환전한 현금), 보조배터리다. 그 이외의 것들은 모두 부차적이다. 부족하거나 아쉬운 것들은 현지에서 구입하면 된다. 그러나 그 현지에 도달하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앞의 것들이 필요하다. 핸드폰 메모장과 구글 지도에 여행 정보를 모두 저장해놓았기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그동안 사진을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행 정보 제공과 촬영, 두 가지 몫을 다 할 핸드폰에 배터리가 떨어지면 큰일이니 보조배터리는 항상 사명감을 가지고 휴대해야 한다.


여행지에서 사진에 집착하는 건 단지 인생 사진을 찍기 위함이 아니다(물론 잘 나오면 좋다). 더도 덜도 말고 딱 그때의 풍경에 그때의 기분, 그때의 냄새, 그때의 과정, 그때의 분위기, 그때의 시간을 담는 일이다. 사진 한 장은 그래서 꼭 팝업 카드 같다. 사진첩을 들추면 그 안에 담긴 모든 것들이 형태를 갖추고 뿅 살아난다. 


게다가 그 해에 가장 기억할 만한 의상을 입고 매 해 같은 기간에 사진을 찍는다면? 그때의 풍경에 그때의 기분, 그때의 냄새, 그때의 과정, 그때의 분위기, 그때의 시간에 축적된 시간과 변화된 내가 남는다. 페스타를 기념하며 찍는 방탄소년단의 가족사진이 더없이 소중한 이유가 모두 거기에 있다. 


팬들이 보고 즐기는 것. 그것만으로 모든 의미가 충분하다는 듯한 편안함이 담겼다.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상시키는 구레나룻이 달린 선글라스며 댕강 자른 앞머리, 위풍당당한 자세들은 우스꽝스러운 동시에 사랑스러움이다. 00시를 기점으로 공개되는 30장이 넘는 사진들을 넘겨보며 광대가 터지게 웃을 팬들을 향한 세리모니다. 21세기 비틀스란 찬사를 얻었던 000에 출연했던 클래식한 슈트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선글라스를 껴놓고 위풍당당한 자세를 한 멤버들의 사진을 보자마자 역시 '귀여워'를 연발했다. 


2018년에 처음 선보인 <Love youreslf> 콘서트는 2019년 <Speak yourself> 콘서트로 확장돼 개최됐다. 2년 동안 멤버들은 자신들의 솔로곡인 <Singularity>, <Love>, <Seesaw>, <Just dance>, <Euphoria>, <Serendipity>, <Epiphany>를 질리도록 듣고 불렀다. 그 마지막 대미가 2020년 페스타 가족사진에 담겼다. 내년에 다시 펼쳐보면 이때의 이야기가 팝업처럼 툭 튀어나올 것이다. 참 열심히 살았노라고, 후회 없노라고, 그때 우리 참 좋았었노라고. 



2020.6.3(수)



새롭진 않지만 질리지도 않았다. <Speak yourself> 서울 콘서트 첫 곡 <Dionysus> 리허설 캠 영상은 새로운 군무 영상이 공개되리란 기대엔 못 미쳤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 군무에 감탄하게 했다. 방탄소년단은 콘서트 첫 곡의 임팩트를 누구보다 잘 알아 한 번 추고 나면 진이 다 빠지는 곡일지언정 빡센 곡을 선택하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Not today>와 <IDOL>, <MIC drop>이 그랬고 <Dionysus>가 그렇다. 동선 하나만 삐끗해도 전체의 리듬이 끊어져버리는 대단위의 군무. 방탄소년단 일곱 뿐 아니라 무대 장치를 이동하고 무대 전체를 함께 만들어내는 댄서들까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 <Dionysus>는 정말 역대급이다.


무대 앞 1열에서 관람하는 느낌은 이런 기분일까. 올해 투어에서 이렇게 가까이 멤버들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잠깐 다운되는 기분은 이 와중에 이렇게 편안한 복장을 입어도 티 나는 대단한 피지컬들에 대한 감탄으로 접었다. 펑퍼짐한 옷을 입고도 까리한 몸 선으로 춤을 추는 태형이와 미끄러운 무대에 삐끗했으나 얼른 자세를 취하는 정국이나, 3분이 넘는 시간 동안 텐션을 잃지 않고 끝까지 몸에 힘을 주는 호석이. 역시 방탄소년단은 무대 위에서 제일 빛난다. 


리허설 캠 영상을 돌려본 뒤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목이 말라 깬 이른 새벽. 찬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방으로 돌아와 시간을 확인하는데 위버스에 태형이 댓글을 달았다는 알림이 떴다. 잠이 오지 않을 때 잠들 수 있는 음악을 추천해달라는 어느 팬의 메시지에 지민이의 추천곡이라며 Bruno Major의 <Nothing>을 소개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태형이가 올린 사진 한 장. 


까만 티셔츠를 입은 지민이와 잠옷을 입은 태형이가 베개에 누워 찍은 사진이다. 지금이야 투어에서 방 하나씩을 쓰고 있지만 초창기엔 동갑인 태형이와 지민이가 같은 방을 쓰곤 했다. 그때 둘은 호텔 방에서 함께 찍은 짓궂거나 다정한 셀카들을 곧잘 올려주곤 했었다. 그때보다 훨씬 크고 어른스러워진 분위기로, 그러나 편안한 느낌은 그대로인 태형이와 지민이가 사진 안에 있다. 언제 찍은 것인지, 촬영 중인 건지, 찍은 장소는 어디인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여전한 두 사람이 좋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2013년 6월 13일. 태형이는 오후 3시 52분에 '내친구지민이와사진투척vV' 라는 글과 함께 까만 후드(그 유명한 '채널 지민')를 입은 지민이와 함께 찍은 사진을 업로드했다. 그리고 7년 후인 2020년 6월 13일 오전 3시 50분, 졸리고 놀라는 두 개의 이모티콘과 함께 지민이와 함께 찍은 사진을 업로드했다. 날짜와 시간을 의도한 건지, 완벽한 우연인지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의 말마따나 이 사진 한 장이 진정한 페스타였다. 



2020.6.4(목)



페스타에서 포토 컬렉션이란 이름으로 공개되는 사진을 넘겨 보다 보면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가 생각난다. 내용이 아닌 제목 때문이다. <작은 것들을 위한 시> 뮤직비디오 현장에서 야채튀김처럼 들러붙어 찍은 사진이며, 지난 페스타에서 공개된 영상 <방탄 다락>에서 찍은 사진이며, 12월 31일 뉴욕 타임스퀘어 행사장에서 찍은 사진이며, 방탄소년단을 환영하기 위해 보라색으로 물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등을 확인하는 지금이 2019년을 마무리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한여름의 마무리, 유예된 연말. 이제야 2019년을 완전히 보내는 듯하다. 


지나고 나서야 그 의미가 더 와 닿는다. 전 세계 10억 명 이상이 시청하는 볼 드롭 무대에서 <Make it right>과 <작은 것들을 위한 시>를 불렀고, <ON> 프로모션을 미국에서 돌았다. 제임스 코든쇼에 출연한 카풀 가라오케는 방탄소년단이 라이브도 잘하고 대화의 센스가 있다는 것을 제대로 알리며 조회수가 3천만을 넘겼고,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을 통째로 빌려 <ON>을 최초 공개한 지미 팰런 쇼에 출연했다. 한 사람당 하나씩 트로피를 들고 있는 시상식과 잊으래야 결코 잊을 수 없는 팬미팅 <Magic shop>도 있었다. 정말 대단했구나. 지난 페스타 이후부터 이번 페스타 직전까지.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은 방탄소년단의 꽉 찬 한 해가 스무 장의 사진에 요약돼 있다. 


내년 페스타 때 공개될 포토 컬렉션의 사진을 생각한다. 무관중으로 진행했던 음악 프로그램, 온라인 콘서트 <방방콘>, 몇 편의 광고와 새 앨범 작업 모습 등이 담기겠지. 무대 위를 바라보며 빛을 내는 팬들의 얼굴이 없는, 최초의 포토 컬렉션이겠다. 이번 포토 컬렉션에서 공개된 사진을 보자마자 '아, 이건 일본 팬미팅이다. 이때 애들 멜빵바지 진짜 예뻐서 기억해', '스픽콘 엠디를 이때 찍었나 봐', 'MAMA VCR 때구나. 옷이 똑같네', '더팩트 시상식은 레전드였지. 이때 포토월 흑발 태형이는 액자로도 샀어' 하며 바로 알았는데. 내년 페스타 포토 컬렉션을 확인하면 시기와 시점을 가늠하지 못할 사진들로 가득해 있을까. 


기분 좋은 페스타 주간인데 짐작할 수 없는 미래로 잠깐 어지러웠다. 그럼에도. 어떤 방식이든 결과를 가지고 찾아오는 방탄소년단이니 다음 페스타까지 우리만의 추억을 계속 만들어 나갈 것이다. 할 수 있다면 내년 페스타 기간에도 이 덕후 일기를 쓰며, 내가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찾아온 방탄소년단에 대해 감탄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내년에도 덕질은 계속될 테고, 방탄소년단은 그때까지 분명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을 테니까.



2020.6.5(금)



정국에게.


안녕 정국아. 이렇게 너에게 편지를 쓰는 건 처음인 것 같아. 1년 반이 가까운 시간 동안 여기에 덕후 일기란 제목을 달고 글을 써 왔으면서 말이야. 구구절절 마음을 표현하기엔 새삼스럽고 또 왠지 부끄러워 그 언젠가로 미루었더니 그새 오늘이 되어버렸어. 


페스타의 <Still with you>가 너의 자작곡일 줄, 이 밤을 부지불식간에 흐트러뜨린 네 목소리를 마음의 준비 없이 들어버리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어. 오늘만큼은 네게 이런저런 말들을 꺼내고 싶은 어쩔 수 없는 날이야. 네 탓을 조금 하자면 그런 날을 만든 너니까 조금은 이해해주었으면 해.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까. 정국이 너를 생각하면 턱 밑까지 단어들이 차오르는데 그걸 어떻게 조화로운 문장으로 만들어야 할지, 내 이 마음을 어떻게 적확하게 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결국 단어를 삼키고, 또 삼키고 말아. 아마 이래서 네게 그동안 편지 한 번 쓰지 못했나 봐. 내 말과 글이 내 마음에 비해 너무 턱없이 짧고 부족해서.


존댓말과 혼잣말이 뒤섞인 <Still with you>를 들으며, 어떤 마음으로 이 가사를 쓰고 노래를 불렀을지 가늠하지도 못한 채 그저 행복했어. 누가 그러더라. 늘 네게 하고 싶었던 말을 네가 돌려주는 느낌이라고, 그래서 너무 벅차다고. 백번 공감했어. 우린 결국 서로를 향해 같은 말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 발걸음이 안 맞을 수 있어도, 같은 길을 걸어갈 거라고, 언제쯤 다시 마주하면 보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고, 마른 발이든 젖은 발이든 항상 너를 향할 것이라고.


정국아. 너는 늘 우리에게 행복만 하라고 하잖아. 그거 알아? 우린 이미 너로 인해 내내 행복했고 또 행복하다는 거. 아마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상상 이상으로 우린 행복해. 불행이 행복보다 더 오래 기억되고, 아픔이 기쁨보다 훨씬 오래 남는다는데 이상하지? 너를 알고 나서는 행복과 기쁨만 남아 있어. 너는 그냥 너로 존재했는데 이 마법이 일어난 거야. 


<Still with you>를 몇 번을 반복했을까. 나는 그제야 턱 밑까지 차오른 무수한 단어들이 궁극엔 모두 하나를 말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 정국이 네가 너무 소중하다고. 가끔 철없고 짓궂던 예전의 네가 떠올라. 어쩔 수 없이 성숙해지더라도 그 시간이 조금 더 유예됐으면 하고 바랐는데 이젠 그 누구보다 커진 너를, 무대 밑 팬들을 꼼꼼하게 응시하며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너를 , 매일 밥을 먹고 마이크를 들고 글을 쓰는 오른손에 새긴 이름들과 숫자를 봐. 


정국아. 무엇 무엇으로 인해, 무엇 무엇 때문에 너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야. 정국이 너를 그냥 사랑하는 거야. 그러니 네가 우리에게 말하는 행복만큼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방탄소년단 멤버 정국으로도 인간 전정국으로도 특별한 걱정 없이. 그리고 너무 많은 말들이 너를 가로막더라도 좋거나 슬프거나 힘들거나 할 때 언제든 우릴 찾아주었으면 좋겠어. 항상 진심이었던 정국아. 진심의 크기를 가늠하기보단 이제 너의 크기를 그대로 받아들일게. 그거 알아? 우리 그러려고 존재하는 거?


<Still with you>로 인해 그 누구보다 따뜻한 밤이 지나는 중, 이쯤 짧은 편지를 마무리할게. 앞으론 마음으로만이 아닌 글과 말고 더 자주자주 표현할게. 네게 언젠가 가닿을 수 있게, 가만히 있어도 들릴 수 있도록.


고마워 정국아. 


2020년 6월의 첫 주, 네게 좋은 날을 선물 받은 한 아미로부터.



어느 인터뷰 중, 정국의 답



2020.6.6(토)



원래 계획대로 였다면 시카고에서 눈을 떴을 토요일. 오랜만에 늦잠을 푹 자고 일어났다. 12시 정각에 맞춰 공개되는 콘텐츠들을 확인하느라 늦게까지 깨어 있거나 새벽에 일어나거나 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오늘은 페스타 공식 일정이 없는 날이다.


그러나 태형이는 이런 공백이 싫다는 듯 새로운 사인을 만들고 싶다며, 팬들이 고안하는 사인을 받아보겠다는 작은 프로젝트를 위버스 내에서 개최했다. 태형이의 이름을 흘려 쓰거나 귀여운 캐릭터를 덧붙이거나 태형이가 좋아하는 이름들을 한데 모은 기발한 모양이거나 하는 사인들이 위버스에 업로드되기 시작했다. 몇몇 개가 마음에 들었는지 '킵!' 댓글로 북마크 하는 태형이의 짧은 글들을 보며 웃었다. 태형이는 팬들이 놀 수 있는 즐길거리를 잘 던지고, 팬들은 또 그 즐길거리를 받아 들어 세상 행복하게 놀이판을 벌인다. 손재주가 없는 나는 팬들이 올리는 게시물들 중 괜찮은 도안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으로 참여를 대신했다.


모처럼 배달 음식을 시켜먹고 덕후 일기를 쓰기 위해 와인을 챙겨 노트북을 켠 저녁. 오늘도 어김없이 슙디가 찾아왔다. 글은 또 미뤄두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오늘 게스트는 마지막 멤버 정국이었다. <Still with you>가 공개된 다음날이라 정국이의 참여가 무척이나 반가웠다가, 이것 때문에 오늘 페스타 일정을 빼놓았구나 했다. 슙디의 꿀 에펨이 시작되는 시점과 마무리되는 시점, <Still with you> 공개 날짜와 정국이가 게스트로 나오는 날짜가 처음부터 다 예견돼 있었던 것이다. 


모든 사건의 실마리들이 종합돼 마무리되는 드라마처럼, 왜 멤버들이 동화 한 편씩을 정해 꿀 에펨에서 구연동화를 했는지도 이제 알았다. 정국이와 윤기가 역할을 나눠 읽은 글은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 이번 페스타를 예고하는 영상 이미지가 장미와 사막, 비행기와 별이었고(이때 배경음악은 <Young forever>다.) 그와 함께 적시된 'Here is my secret'이란 문장은 "And now here is my secret, a very simple secret: It is only with the heart that one can see rightly; what is essential is invisible to the eye. (내 비밀은 이런 거야. 매우 간단한 거지. 오로지 마음으로 보아야만 정확하게 볼 수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법이야.)" 바로 <어린 왕자> 속 대사였다. 이를 처음부터 염두에 둔 일정인 것이다. 아, 정말 이 배운 변태들. 팔뚝에 소름이 우수수 돋았다.  


페스타에 공개된 디오니소스 리허설 영상은 무대를 가장 가까이 찍은 구도 덕에 생동감이 좋아 멤버들이 공개 콘텐츠로 직접 선택했다는 것도, '아포방포' '아무행알' '정배추해' 등 우리만의 신조어를 잘 만들어내는 정국이가 새로운 신조어 '여기저기(여러분들의 기쁨은 저의 기쁨입니다)'를 만들었다는 것도 오늘의 꿀 에펨을 통해 알게 됐다.


트위터를 통해 주제를 받아 즉석에서 그림 그리기 대결을 펼치고, <Still with you>에 대한 에피소드도 듣다 보니 한 시간 가까운 시간이 훌쩍 지났다. 함께 한 소감이 어떠냐는 윤기의 말에 정국은 약간의 머뭇거림이 포함된 긴장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중략) 최근에 제 행동으로 인해서 많은 분들이 화도 나고 마음이 상하셨을 거 같아요. 그리고 이 상황을 힘겹게 보내고 계신 분들, 곳곳에서 애써주시는 분들, 그리고 항상 옆에 있는 형들한테도 엄청 죄송한 마음이 컸습니다. 특히 제가 사랑하는 아미들, 저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낸 거 같아서 마음이 굉장히 무거웠거든요. 그래서 요 근래 혼자서 생각을 정말 정말 많이 했어요. 깊게 많이 하고 형들이랑도 얘기 엄청 많이 하고 저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좀 많이 되돌아보며 느낀 게 되게 많았던 거 같아요. 그래서 이 일에 대해서 여러분들한테, 어쨌든 라이브가 있었으니까 직접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앞으로 언제 어디서든 매 순간 더 깊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정국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이 말을 직접 전하고 싶어 얼마나 마음 졸였을까. 어떤 팬이 그런 정국이의 목소리를 듣고 이런 글을 남겼다. '많은 말을 하고 싶을 때도 있을 텐데 저 직업이란 게 결국 사과만 하고 나머지 말은 삼켜야 하는 게 숙명인 것 같다'라고. 그럼에도 결국엔 언제든 우리에게 이 얘기를 해주는 정국이라 고마웠다. 


꿀 에펨이 마무리되고 오늘도 두 사람의 셀카가 올라왔다. 윤기가 사람들이 정국이랑 자신이랑 얼마나 닮았다고 하는지 아냐던 그 목소리가, 정색하던 태형이가 떠올랐다. 사진 하나에 추억이 주렁주렁. 꿀 에펨에 집중했더니 와인병에 물기가 축축하게 어려있다. 7주간 매주 찾아온 슙디 윤기의 수고스러움을 치하하고, 또 언젠가 다시 돌아올 슙디를 기다리며 미지근해진 와인을 잔에 담아 찌르르하게 마셨다. 오늘의 페스타였다.



2020.6.7(일)



멤버들이 입 모아 말한다. 지금 멤버들 간의 관계가 더할 나위 없는 시기라고. 울퉁불퉁 터덕거리던 서로의 다름은 함께 지내온 세월로 부드럽게 마모됐다. 너의 다름이 우리의 특별함이 되었고, 나의 모남은 우리의 기름이 되었다. 오르막을 오르는 동안 흐르는 땀을 닦아주고 등을 토닥여주었던 시간. 그건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지금의 방탄소년단을 만들었다. 그 이상 더 친해질 수 있을까 싶었던 그때보다 지금 더 친한 관계. 틈 없이 붙어 있길 좋아하는 야채튀김 소년단은 이제 '굳이' 친함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따뜻한 관계의 힘을 보여준다. 

 

매년 페스타마다 반복되는 '우리가 쓰는 프로필, 내가 쓰는 프로필'은 그 시간의 기록이다. 우리에 대한 정의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그 변화 안에서 자신이 해야 하는 역할은 무엇인지 사유하는 멤버들의 이야기가 녹아있다. 책을 읽고 그림을 보는 남준과 노래를 만드는 윤기와 사람을 만나는 지민이가 어떻게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았을지, 이 개개인의 다름이 얼마나 조화롭게 녹아있을지 이번 페스타에도 반가운 마음에 클릭했다.


* 방탄소년단 팀워크 비결


RM          : 함께 숨 쉬며 보낸 모든 모든 시간들

SUGA     : 이해를 하기보다 이제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임

JIN         : 안 시켜도 잘한다

J-HOPE : 소통!!

JIMIN     : 대화, 인정, 화해, 사랑

V             : 팀워크는 오래오래 함께 맞추다 보면 가족보다 더 끈끈해진다    

JUNGKOOK : 서로를 너무 다 잘 알고 너무 친하다. 정말 그게 다다. 

                         (그래서 더 서로 자극받고 노력하고 열심히 하게 된다!)


방탄소년단 다큐멘터리 <Bring the Soul>에서 멤버들은 팀워크가 좋지 않은 팀들이 많은 것에 비해 우리는 정말 친해서 좋다는 말을 거듭 강조한다. 그러면서 싸우고 화해했던 에피소드를 꺼내지만 그마저도 '바나나 사건', '만두 사건' 등 너무 많이 우려먹어 팬들도 쫙 꿰고 있는, 사소함으로 촉발된 이야기들뿐이다. 따뜻한 이면이 비슷한 사람들이다. 멤버들을 만난 게 행운이라 말하던 호석이의 어느 인터뷰가 스치는 순간이다. 


* 00에게 멤버들이란?


RM          : 슈가는 나의 리스펙이다. 

SUGA     : 진은 나의 형이다.

JIN         : 제이홉은 나의 이름 부르는 게 취미다.

J-HOPE : 지민이는 나의 작고 귀여운 인형이다.

JIMIN     : 태형이는 나의 친구다.

V             : JK는 나의 개그맨 지망생이다.

JUNGKOOK : RM은 나의 리더이다.


멤버별로 하나씩만 모았는데도 이렇다. 존중하는 대상이자, 형과 친구이자 귀여운 동생이자, 이름만 바꿔 불러도 깔깔거리고 웃긴 존재들. 이쯤 되면 이런 서로를 가진 멤버들이 진심으로 부럽다.


작년 페스타에 대해 글을 쓰며 올해 페스타 방탄 프로필이 공개될 땐 나도 멤버들 옆에 슬쩍 껴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나를 비교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겠다고 했는데 하나도 하지를 못했다. 그래도 2년간, 페스타를 즐긴 나의 시간은 이곳에 남았다. 방탄소년단은 현재를 놓치지 않고 기록하게 하는 힘을 내게 주었다.


페스타 첫째 주가 이렇게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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