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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Jun 16. 2020

51. 2020 FESTA 2주 차

방탄소년단 덕후 일기 51




2020.6.8(월)



패딩도 여미게 되는 추위, 얼어붙은 발가락, 일찍 떨어지는 해, 어스름 지는 오후 4시의 하늘, 괜히 싱숭생숭해지는 마음. 겨울이 주는 시큰한 공기와 분위기를 사랑하지만 연말만이 주는 무거움이 때로 버거울 때가 있다. 올 한 해는 뭘 했더라, 제대로 한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이렇게 또 한 살을 더 먹는구나, 내년엔 모든 게 지금보다 좀 나아야 할 텐데. 시키지도 않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꽉 채운다. 연말, 오직 그 두 글자 때문이다. 보신각 타종소리가 끝난 뒤 찾아오는 1월 1일의 적막이 싫어 12월 31일에는 일부러 일찍 잠에 들곤 했다. 새해란 게 별 거 있나,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지 뭐 하고.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여전하고, 약속 없이 집에서 보내는 오랜 밤도 여전하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연말을 무겁게 생각하지 않는다. '연말' 하면 그 뒤에 '시상식'이 자연스레 붙어 나오게 되면서다. 매번 새로운 무대를 가지고 나올 방탄소년단을 볼 수 있으며, 또 그런 방탄소년단을 보기 위해 부지런히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 해에 인기 있었던 곡들 위주로 짧게 구성되는 지상파 연말 무대보다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시간이 편성되는 종편과 케이블 방송의 시상식은 방탄소년단의 무기를 꺼내놓을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한다. 다음 앨범에 대한 떡밥을 모른 척 던져놓기도 하고, 많은 예산을 들인 콘서트에서만 보여주었던 무대를 맛보기처럼 보여준다거나, 그동안 한 번도 선보인 적 없던 곡들을 선택해 예고 없이 보여주기도 한다.


 2017 MAMA의 <MIC drop>과 2018 멜론 뮤직 어워드의 국악 퍼포먼스는 팬이 아니어도 한 번쯤은 꼭 봤으면 하는 레전드 무대다. 연말 시상식에서 어떤 공연을 펼칠지는 전적으로 아티스트와 기획사에 달려 있는 바. 방탄소년단과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이 시상식에 어떠한 무게를 가지고 있는지 드러난다. 


페스타 2주 차. 월요일에 공개된 영상은 2018 MAMA에서 선보일 <Fake love>의 포메이션 체크 버전 연습 영상이었다. 무대를 서에서 동으로 크게 활용하고, 대규모 댄서들과 교차하며 춤을 춘다. 수없이 추고 또 춘 <Fake love>이지만 까만 가운을 입은 댄서들의 사이를 넘나 들며 추는 오프닝과 브리지 안무는 이번 시상식을 위해 고안했다. 마리오네트처럼 부서지는 몸이며 바람을 일으키듯 휘익 도는 머릿결이며, 댄서들 위를 붕 떠서 넘어오는 높이며. 어느 지점에 서고 어떻게 손을 뻗어야 군무가 완벽해질 수 있는지 알고 있다는 듯 연습 하나에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 


힘들었던 마음을 솔직히 고백해 멤버들도 팬들도 한마음으로 속절없이 울었던 2018년 MAMA. 그럼에도 요행 없이 흘린 땀들은 그 연습실에 있었다. 해온 것을 묵묵히 했다. 시간은 흘렀고, 그 시간 속에 서로가 있었음을 다시금 깨달았고, 그렇게 괜찮아질 수 있었던 멤버들이 그 연습실에 있었다.


올해는 어떤 무대를 시상식에서 또 보여줄까. 도리어 연말을 기대하게 하는 방탄소년단이다.



2020.6.9(화)



셋이나 다섯 등 그룹으로 친한 친구들 중 이상하게 단 둘이서 못 만나는 친구가 꼭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다. 이상하게 둘이 있으면 눈을 쳐다보는 것 대신 냅킨을 접거나 창 밖의 사람을 관찰하거나 조금의 침묵도 견디지 못하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내가 지금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자각하지도 못한 상태로' 쉴 새 없이 떠들게 되는. 분명 친한데, 어색한 그런 사이.


멤버가 일곱이 되는 방탄소년단은 신기하게도 이렇게 저렇게 둘씩 셋씩 묶어도 어색함이 없는 친밀함을 자랑한다. 다시 한번 또 말하지만, 정말 방탄소년단은 어쩜 이럴까 싶게 대단하다. 


페스타를 위해 새로 찍었을 유닛 사진들을 넘겨봤다. 남준이와 윤기, 지민이와 태형이, 석진이와 호석이와 정국이. <Map of the soul> 앨범에 실린 유닛 곡의 주인공들이다. 제일 먼저 남준이와 윤기가 서 있는 뒷 파란 배경에 눈이 갔다. '형이랑 나랑 막 치고받고 했던 때. 벽지도 화장실도 베란다도 다 파란 집. 그때 난 여기가 막 되게 넓은 집인 줄 알았'던 <이사> 가사 속, 그때의 그 논현동 3층 숙소가 떠올랐다. '우리의 냄새가 나 여기선. 이 향기 잊지 말자 우리가 어디 있건. 울기도 웃기도 많이 했지만 모두 꽤나 아름다웠'던 어린 남준이와 윤기가 이렇게 아름답게 큰 것 같다. 


사진만 봐도 까르르 웃음소리가 날 것 같다. 막내 같은 맏이 석진이와 막내 같은 막내 정국이와 제일 환하게 웃는 호석이의 조합이라니. 이들 셋이 부른 <Jamais Vu>은 괜찮지만 괜찮지 않은, 늘 처음인 것처럼 아픈 미시감을 담고 있다. 서로 얼굴을 쳐다보면 웃음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의 앙다문 입술과 휜 눈과 마이크 앞에 서 깊은 감정을 끌어내었을 감정을 함께 생각한다. 


연고 없는 서울에 비슷한 시기에 상경한 동갑 친구. 아침에 일어나 식당에서 같은 밥을 먹고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학교에 등교해 같이 하교해 같이 연습한 동갑 친구. 그렇게 같은 그룹으로 데뷔해 같은 무대에 서고 같은 차를 타고 같은 시간을 보내는 동갑 친구. 태형이와 지민이의 사이를 톺아보면 이 무수한 '같은'의 연속이다. 하루는 베프, 하루는 웬수. 고맙단 말보단 싸우지 말자 하는 친구. 그러나 '언젠가 이 함성 멎을 때 내 옆에 함께 있어 줘. 일곱 번의 여름과 추운 겨울보다 오래, 수많은 약속과 추억들보다 오래' 함께 하고 싶은, 친구 이상의 친구 태형이와 지민이. 작년 페스타에 이어 이번에도 손가락 끝을 마주하려는 사진을 보며 지민이의 자라지 않을 새끼손가락처럼 영원한 것들이 두 사람 사이에 존재했으면 했다. 


그리고 이 유닛별로 인터뷰한 영상도 추가로 공개됐다. 서로를 진심으로 리스펙 하는 게 느껴지면서도 장난과 진중함을 넘나드는 티키타카를 보여주는 남준이와 윤기, 잠시도 쉬지 않고 끝없이 움직이며 장난치던 그때보다 훨씬 어른스러워진 채, 그러나 이면에 자리한 그때의 공유된 추억 얘기에 푸스스 무너지며 말이 많아지는 태형이와 지민이, 내내 하이톤의 웃음소리가 섞이느라 이어폰의 음량을 줄여야만 했던 정국이와 석진이와 호석이까지. 조화의 조합, 조합의 조화. 



2020.6.10(수)



방탄소년단만큼 많이 쓰는 그룹이 있을까. 자신에 대해 적고, 서로에 대해 적고, 모두에 대해 적고, 팬들을 향해 적는다. 시즌 그리팅, 썸머 패키지, 페스타 등. 프로필이나 롤링 페이퍼, 편지 등을 손으로 직접 쓰는 코너가 곳곳에 있다. 그렇게 남은 글들은 작년과 올해를 비교하기도 하고, 잊고 있었던 걸 상기시키기도 한다. 어찌 됐든 썼고, 쓴 것들은 기록의 역사가 되었다. 


페스타 첫날엔 자신이 쓴 프로필을 공개했는데, 이번엔 서로가 작성한 프로필이다. '그 사람 되어보기' 만큼 그 상대를 이해하게 하는 방법이 또 있을까. 내가 생각보다 너에 대해 많이 아는구나 혹은 내가 이렇게 모르는구나 깨달을 수 있는 기회. 각자 자리 잡고 앉아 서로에 대해 써보며 여러 생각을 했을 멤버들이다. 어찌 됐든 썼고, 쓴 것들을 통해 이해하게 되었다. 


남준이 호석에 대해 쓴다. 최근에 입덕 한 건 게임, 나의 좋은 습관은 늘 긍정적으로 보려 노력하는 것, 애정 하는 인테리어 소품은 각종 피규어라고. 윤기가 남준에 대해 쓴다. 가장 좋아하는 달은 반달, 내가 생각하는 리즈 시절은 바로 지금, 하루 또는 일상 중에 가장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햇볕을 받으며 걷는 것이라고. 석진이가 지민에 대해 쓴다. 나의 좋은 습관은 가끔씩 나도 모르게 아미 생각을 하는 것, 나만의 기분 전환 방법은 석진이 형 얼굴을 보는 것, 눈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고개 양쪽 도리도리라고. 


호석이 태형에 대해 쓴다. 태형이에게 남준은 아빠 같은 형이고 윤기는 친형 같은 형, 석진은 삼촌 같은 형이고 호석은 엄마 같은 형, 지민이는 쌍둥이 형제 같은 친구고 정국이는 한참 막내 같은 동생이라고. 지민이 정국에 대해 쓴다. 해외를 갈 때 꼭 챙기는 건 스피커, 좋아하는 시간대는 새벽, 지구 종말이 하루 남았다면 하고 싶은 것은 멤버들과 콘서트 하는 것이라고. 태형이가 석진에 대해 쓴다. 남준은 나의 리더고 윤기는 나의 래퍼고 호석이는 하늘에서 내려온 미소천사고 지민이는 웃음 바이러스고 태형이는 나의 동지고 정국이는 나의 동생이라고. 정국이가 윤기에 대해 쓴다. 집에 없으면 안 되는 건 침대, 일주일에 7번 먹을 수 있는 음식은 회, 학창 시절 가장 좋아했던 과목은 경제 사회 한국사 역사라고.


손으로 글을 쓰는 일은 귀찮고 번거롭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타자로 치면 훨씬 더 빠르고, 여러 번의 수정을 통해 문장을 가다듬을 수 있고 예쁘지 않은 글씨에 대한 부담을 없앨 수도 있다. 그러나 귀찮고, 번거롭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곱씹어 생각한다. 한번 틀리면 수정이 어렵기 때문에 신중히 단어를 골라야 하고, 자신의 필체로 꾹꾹 눌러 담는 만큼 정성이 들어간다. 그렇게 서로에 대해 생각하고 써보며 오늘 또 그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을 것이다. 페스타가 주는 기꺼움이다. 



2020.6.11(목)



페스타 일정에 <Map of the song : 7>이라고 떴을 때, 한 번도 선보이지 않았던 이번 앨범 곡을 스튜디오 같은 곳에서 잔잔하게 부르거나 새로운 안무를 공개하는 건가 싶었는데 노래방이라니. 그것도 35분이 넘는 분량의 영상인. 완전히 예상을 뛰어넘었다.


규칙은 이렇다. 오직 다른 멤버의 노래만 부를 수 있다. 노래를 한 곡 부르고 나면 엄청난 상품들이 걸려있는 뽑기 기회가 1회 주어진다. 점수에 '7'이 들어갈 경우 뽑기 기회가 1회 더 주어진다. 


먼저 막내 라인 태형, 지민, 정국이 나섰다. 입은 의상을 보니 오늘 <방탄 생파> 티저로 공개된 영상과 일치한다. 같은 날 스튜디오 한편에 만들어진 노래방에서 실컷 노래도 부르고, 음식도 만들고, 생일 파티를 하며 꽉 찬 하루를 보냈겠구나. 


3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크기의 노래방 부스. 비티엣스 노래방이란 이름이 큼지막하게 적힌 포스터엔 번호가 매겨진 자신들의 노래가 줄 지어 쓰여있다. 목록을 살피던 지민이 제일 먼저 선곡을 마쳤다. 91893. <Winter bear>였다. 자신의 노래기에 부를 수 없는 태형은 아미 밤을 든 채 부끄럽게 착석하고, 지민이는 미성의 고음을 내며 노래를 완창한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참 노래가 좋은 것 같습니다". 첫 곡을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웠는지 태형이가 바로 일어나 다섯 자리 번호를 눌렀다. MC 자두 다운 선곡 <욱(UGH!)>이다. 셋 다 이렇게 진심일 수가 있을까. 디스코, 트로트 버전까지 장난스럽게 스타일을 바꾸면서도 가사 하나 안 놓치고 부른다. 다음 곡 <Outro : Ego>까지 셋은 카메라가 계속 흔들릴 정도로 그 좁은 공간 안에서 신나게 뛰고 놀았다. 


노래방 부스를 찾은 다음 그룹은 남준과 석진. 제일 먼저 목을 풀자며 <Outro : Ego>을 선택했다. 다른 삶을 선택했으면 후회가 가득했을 거라고, 지금의 길을 긍정하는 가사를 지닌 흥 나는 노래다 보니 <Ego>는 멤버들에게 자주 선택되는 곡인가 보다. 아쉬움에 자리를 뜨지 못하는 지민이의 태형이를 뒤로 한 채 원 키를 고수한 채 석진이가 랩을, 남준이가 사비를 담당했다. 음이 이탈한 듯 어떠랴. 마음껏 소리치며 모처럼 제대로 스트레스가 풀리는지 석진이의 어깨가 양 옆으로 들썩였다. 방탄소년단 내의 화음 요정 남준이의 현란한 애드리브와 함께 첫 곡이 끝났다. 석진이의 폭풍 랩이 가미된 <Seesaw>는 윤기의 안무를 그대로 따라 췄고, <Euphoria>는 정국이의 까치발 관전 속에 지민이까지 함께 한 광란의 열창이었다.


마지막으로 부스에 들어온 건 윤기와 호석이. 오랜만에 솝므다. 첫 곡은 <친구>로 골랐다. 높은 음역대 덕에 처음부터 버벅거렸지만 그래서 더 신이 난다. <친구>를 만든 지민이가 이번에도 참지 못하고 두 사람 사이에 꼈다. 이제는 노래가 아니라 거의 샤우팅이다. 윤기가 젖 먹던 힘까지 다 해 핏대를 세우고, 석진이까지 합세해 분위기를 돋운다. 본인들 노래를 부르는 게 이렇게 신이 나는 일인가 싶다. 다음 선곡은 보컬곡인 <전하지 못한 진심>. 그동안 못해본 것들에 대한 한을 푸는 시간이다. 싱잉 랩을 하는 멤버들이기에 의외의 실력으로 <전하지 못한 진심>을 부른다. 목을 긁는 거친 스타일로 부를 땐 꼭 손가락 사이에 마이크를 껴야 한다. 90년대 창법으로 장난스럽게 불러도 중간중간 실력이 숨지 못하고 튀어나온다.


뽑기에 걸린 상품들은 포토 카드며 DVD며 예전 자신들의 모습이 담긴 것들이었다. 1등 상품은 보라색으로 커스터마이즈 된 갤럭시 버즈였는데, 1등을 뽑은 태형이는 자신은 이어폰을 잘 끼지 않는다며 호석에게 그대로 선물했다. 호석이 행복하게 받아 들었다.


선물이 중요하랴. 누구의 눈치 볼 필요 없이 자신들을 위해 마련된 부스에서 제대로 즐겼다. 그런 시간이 멤버들에게 주어지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오늘 영상은 기분이 다운될 때 보려고 따로 저장해 두었다. 페스타는 이런 의미에서라도 꼭 필요하다. 



2020.6.12(금)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로고가 큼지막하게 붙은 벽이 있는 첫 연습실. 방탄소년단 중 가장 먼저 회사를 들어온 남준이 외로이 연습실을 가로지른다. <작은 것들을 위한 시>의 핑크 슈트에 포마드로 머리를 깔끔하게 넘긴 남준의 걸음 끝엔 귀 위로 스크래치를 내고 곱실거리는 까만 머리를 넘긴, <No more dream> 무대복을 입은 7년 전 남준이 있다. <We are Bulletproof : the Eternel> 뮤직비디오는 남준이의 처음으로부터 시작된, 그렇게 쌓인 방탄소년단의 7년의 모습을 애니메이션으로 고스란히 담은 영상이었다. 


<No more dream> 뮤직비디오의 배경이 되어주었던 노란 스쿨버스, BTS 로고, 스크래치 된 벽들을 지나치면 고개를 확 젖히며 안경을 벗어던지는 퍼포먼스를 한 태형이 있다. 빨간 알약을 집어삼켜야 했던 <N.O>의 하얀 무대를 지나 <상남자>의 복도, 전등이 곧 나갈 듯 깜빡이는 <Danger>의 지하. 그 곳곳에 개별적으로 존재했던 멤버들이 동시에 고통을 경험한다. 그것은 파도이기도 하고, 심해이기도 하고, 땅 꺼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보라색으로 은유된 빛들이 멤버 각자에게 쏟아지고, 고통에 침잠하던 멤버들은 하나씩 각성하여 몸을 일으킨다. 맞다. 보라색, 우리, 팬들로 인해서다. 그렇게 <Young forever>와 <RUN>을 함께 달리며 지나고 <피 땀 눈물>, <Not today>를 건너 <봄날>에 다다른다. 


쉼 없이 달려오던 걸음이 <봄날>에 도착해 천천히 멈춘다. 따뜻한 모닥불에 둘러앉은 멤버들. 그들은 큰 전환점이던 <Wings> 콘서트 속 의상을 입고 있다. 늦은 밤, 모닥불의 불빛이 유일한 빛이던 멤버들에게 보라색 빛이 찾아와 멤버들의 주변을 맴돈다. 손가락으로 보라색 빛을 만지자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무수한 보라색 점들로 흩어지고 그 사이로 멤버들이 보라색 고래를 타고 난다. 외롭던 <Whalien 52>는 날개를 달았다. 보라색 고래가 데려다준 곳은 높은 기둥 위. 수많은 보라색 점들을 향해 멤버들은 동그랗게 원을 그려 섰다. <Born Singer>의 설움은 이제 자부심과 단단한 기둥이 됐다.


구름 위로 솟은 기둥 위의 멤버들은 아래를 내려보지 않는다. 그들을 둘러싼 하늘의 보랏빛 점들을 향해 고개를 든다. 너무 기쁜데 눈물을 참을 수 없다던 정국이는 눈물을 연신 흘리면서도 로고로 표현된 아미를 바라본다. 팬들을 향해 기다란 길이 열렸다. 그 길의 끝엔 아미가, 그리고 아미가 열어 젖힌 방탄소년단이 있다. 


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언덕. 하늘은 푸르고 살랑살랑 꽃잎이 날린다. <작은 것들을 위한 시> 의상을 차려입은 일곱이 있다. 이제 더 이상 남준 혼자가 아니다. 멤버들이 있고, 우리가 있다. 등을 돌려 멤버들이 우리를 바라본다. 이 모든 길을 함께 해 준 우리를 향해 손을 펼친다. 


We are not seven, with you.


"우리를 알아봐 준 여러분은 할 수 있다"던 남준이의 말이 떠오르는 날. 

함께 한 7년, 앞으로 더 많이 함께 하자. 방탄소년단 7주년 정말 축하해. 



2020.6.13(토)



각자의 이름이 큼지막하게 적힌 조끼. 음악 방송 리허설을 위해 제작한 이 조끼는 당시 멤버들에게 하나의 매개체였다. 이 조끼를 입지 않아도 우리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게 하겠다는 다짐의 매개체. 데뷔 7주년. 멤버들은 그때와 비슷하지만 다른, 이제 로고만 봐도 방탄소년단임을 구별할 수 있게 하는 아이덴티티가 추가된, 그러나 구별되기 위한 자신의 이름을 크게 적은 조끼를 다시 입고 모여 앉았다.


데뷔한 지 딱 1년이 지난 멤버들은 좁은 숙소에서 파티를 열었다. 지민이와 윤기는 케이크를 만들었고, 석진이와 남준이는 쭈꾸미삼겹살을 볶고 미역국을 끓였다(무려 남준이가 요리 멤버다). 태형이와 정국이와 호석이는 청소와 꾸미기 담당. 풍선을 풀고 사진을 붙이며 잡동사니로 가득한 거실을 나름대로 정리했다. 명절 때나 볼 수 있는 접이식 탁자를 펼쳐 모여 앉아 케이크에 꽂힌 초를 불고 음식을 나눠먹었던 멤버들. 그때보다 훨씬 더 커진 스튜디오에 훌쩍 자란 멤버들이지만 그때와 똑같이 역할을 나눠 생일 파티를 준비하기로 한다. 


남준이는 여전히 당근과 양파를 제대로 자르지 못하고, 석진이가 볶아 내는 쭈꾸미 삼겹살은 여전히 멤버들의 입맛에 딱이다. 화장실 간 윤기를 기다리느라 케이크 앞에 혼자 앉아 있어야 했던 지민이는 이제 윤기를 기다리게 하고, 헬륨 가스를 마시고 rrrr랩 몬스터 장난을 치는 정국이도 여전하다. 의도치 않은 여전함이 여전해서 기분이 뭉클했다. 팬들이 보게 되는 콘텐츠 앞에서 방탄소년단은 늘 솔직했기 때문이겠지. 풍선을 붙이고, 사진을 정리하니 스튜디오 분위기가 꽤나 그럴싸하다. 남준이 만든 잡채는 의외의 호평이 이어졌고, 쭈꾸미 삼겹살의 남은 소스가 아까워 밥을 볶아 온 정국이는 마지막까지 숟가락을 놓지 못했다. 


무알콜 샴페인과 오렌지 주스를 따른 잔이 허공에 부딪혔다. 방탄소년단은 많이 쓰는 만큼 많이 말하는 그룹이다. 자신에 대해 말하고, 서로에 대해 말하고, 모두에 대해 말하고, 팬들을 향해 말한다. 이번에도 역시 표정과 말과 움직임으로 감정을 전한다. 멤버들이 대단하게 느껴질 땐 역시 무대 위에서 잘하는 서로를 볼 때라고, '잘하네' 싶다고 하자 정국이는 쑥스러워 웃고, 석진의 귀는 석진의 한결같음을 칭찬하는 멤버들의 말에 걷잡을 수 없게 빨개지고, 남준과 석진은 다 같이 힘들 때 정국이가 대화를 안 하려고 했을 때 서운했었다며 솔직한 말을 꺼낸다. 


어떤 일이 있든 결국엔 말로 풀어놓고 극복했을 멤버들의 어느 저녁을 생각한다.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말을 자꾸 하게 만드는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언제든 궁극엔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제대로 전달될 수 없음을 깨달았을 어느 저녁을 생각한다. 무엇보다 함께 있어야 한다는 전제 하에 부단히 관계를 노력했을 멤버들의 어느 저녁을 생각한다. 그 어느 저녁들이 모인 오늘을 보고 있다.


돌아가며 멤버들에 대한 롤링 페이퍼를 쓴 뒤 팬들과 대면하지 못하는 작금의 아쉬움을 토로하면서도 괜찮을 나중을 얘기하는 멤버들의 인사로 생파 영상은 마무리됐다. 1시간 가까운 영상을 순식간에 봤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또 지나버린 거야. 이 역시 여전했다. 여전함의 연속. 2020 페스타가 끝나가고 있었다. 



2020.6.14(일)



방탄 생파 마지막에 작성했던 롤링페이퍼의 전문이 공개됐다. 7주년이란 의미가 멤버들에게 더 깊었던 것일까. 각자 몇 줄로 짧게 적은 글들엔 장난스러움을 배제한 진심들이 꾹꾹 눌려 있었다. 하나씩 롤링페이퍼를 지나치며 보다 태형이에게 쓴 멤버들의 롤링페이퍼를 보는데 마음이 일렁거렸다. 


정국 : 태형 씨 요즘 너무 조용해서 걱정했는데 방탄 노래방에서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이네요. 아프지 말고 힘든 일 있으면 누구라도 좋으니 연락해요! 힘내시고!

제이홉 : 태형아~ 너무 소중해져 버린 태형아~ 사실 요즘 너를 너무 아끼다 보니 과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7년 동안 너의 성장을 지켜본 형으로써 항상 웃음이 나오고 애정이 한가득이다! 조만간 밥 한 끼 꼭 하자~

슈가 : 난 언제든지 열려있다 하고픈 말이 있고 딥 해질 때 연락해

알엠 : 태형 씨 이제 말 아주 명석하고 논리적으로 잘하시니까 본인 생각 주저하지 말고 얼마든지 얘기해주세요. 사랑합니다.

진 : 태형 씨 제가 먼저 다가가는 걸 잘 못하지만 듣는 건 잘하니 언제라도 연락 주세요

지민 : 지금까지도 유일한 동갑내기 내 친구야 나는 태형이 네가 항상 웃을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너 옆에는 항상 우리가 그리고 내가 있다는 거 잊지 말고 의지해줬으면 좋겠다. 고마워 항상


속으로 끙끙 앓지 말고 언제든 멤버들에게 터 놓아줬으면. 그래서 괜찮았으면. 우리에게 너무 소중한 태형이가 아프지 않았으면.


때 이른 장마로 집 안이 습기로 무겁게 내려앉은 날. 일찍부터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주차가 편한 카페에 도착해 노트북을 켰다. 매일매일 페스타를 보내며 느낀 감상이 희석되기 전에 글을 써야 한다. 


대면으로 접촉하는 대규모 콘서트가 불가함에 따라 스트리밍 형식의 콘서트의 개최가 발표됐고, 방방콘이란 이름의 새 콘서트가 오늘 오후 6시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혼자 완벽히 집중해서 보기 위해 숙소를 예약했다. 독립하면 이제 이런 이동은 없겠지 싶다. 숙소 체크인인 3시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다. 그러니 조금 더 부지런히 쓰자.


카페의 커다란 창 밖으론 차들이 속도를 높여 달린다. 접은 우산으로 물 웅덩이에 장난을 치는 가족이 창 앞을 지나친다. 일요일이 주는 여유. 나는 이번 편을 방방콘이 시작되기 전, 이쯤에서 마무리한다. 글의 결론은 이미 나왔고, 그것은 수정될 가능성이 0에 수렴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미리 적는다. 


"몇 가지 음식을 포장해 도착한 숙소에서 몇 잔의 와인을 일찍 마시고 6시에 맞춰 방방콘을 봤다. 나는 내내 행복했고, 행복해서 찔끔 울었고, 찔끔 울다가 하하 웃었고, 여운에 잠겨 멍하니 있다가 역시 방탄소년단 팬이라서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가장 완벽한 페스타의 마무리였다."





P.S



늘 어쩜 이런 글을 써오지 싶은 남준이의 7주년 소회 글, 비즈 팔찌를 만들며 긴 시간 동안 함께 한 호석이의 브이 앱 라이브, 모든 멤버들이 게스트로 출연한 슙디의 꿀 FM, 그리고 대망의 방방콘까지.


페스타란 이름 붙은 공식 콘텐츠들 외에도 방탄소년단은 이렇게 자주 찾아왔다. 너무 좋으면 울 수밖에 없다는 걸, 그렇게 흘린 눈물은 달다는 걸 알게 해주는 멤버들. 뭐 있나. 방탄소년단만 믿고 쭉 가는 거지.


방탄소년단의 7주년을 이렇게 기념했다.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축하를 담은 마음을 여기에 남긴다. 영원을 말할 순 없지만, 너희가 가보겠다고 하는 그 길의 끝까지 함께 하겠노라고. 


누가 뭐라도 아포 방포! 아미 포에버 방탄 포에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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