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 Aug 19. 2020

52. Still with you

방탄소년단 덕후 일기 52



오전 7시. 알람에 맞춰 눈을 뜬다. 일찍 누워 오랜 시간 잔 것치곤 몸이 하나도 개운하지 않다. 목을 왼쪽으로 쭉, 오른쪽으로 쭉 늘린 다음 욕실로 직행한다. 수건으로 잘 감싼 감은 머리를 틀어 올리고 나오면 7시 20분. 욕실 바로 옆에 세워 놓은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마치고, 머리를 말린 뒤 고데기로 머리를 정리한 다음 옷을 입는다. 8시 10분. 출발 시간이다.


회사 메인 입구를 제외하곤 모든 문이 폐쇄돼 있어 정면 주차장은 늘 만석이다. 사옥 뒤로 넓은 주차장이 마련돼 있지만 이 메인 입구까지 빙 둘러 걸어오는 게 귀찮아서다. 혹시나 하고 기웃거린 정면 주차장은 역시나 만석. 하는 수 없이 핸들을 돌렸다. 열 감지 카메라 앞을 지나 사무실로 들어왔다. 반복될 하루의 시작이다. 


상투적인 아침 인사를 건네고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열의를 가지고 진행해왔던 담당 공연 하나가 최근 취소 결정이 났다. 올 상반기부터 지금까지, 예정돼있던 공연과 행사가 모두 취소 혹은 비대면으로 축소 진행 중이다. 일 없는 월급 루팡을 제일 부러워하던 시기가 있었던가. 적당한 업무와 그에 맞는 적절한 심리적 보상은 직장인에게 필수불가결이다. 공연 취소 사유에 '코로나 19로 인한 아티스트 입국 불가'를 쓰며, 이번이 아니면 정말 만나기 어려운 아티스트였는데 하며, 그마저도 올해 여러 번 써봤다고 빠른 시간 내에 대관 취소 신청서를 작성하며, 달력은 한 해의 반이 지나갔고 이제는 이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데 했다.


퇴근하는 차 안에는 여전히 방탄소년단의 곡만 흘러나오고, 트위터나 위버스에 사진이나 댓글이 올라오면 바로 확인한다. 반짝반짝한 활동 모습이 담긴 방탄밤 영상과 <달려라 방탄>을 챙겨보고, 위버스 샵에 업로드되는 메모리즈나 MD 상품은 빠지지 않고 구매한다. 그러나 매번 질리지도 않게 방탄소년단 노래를 따라 부르던 내 목소리는 차 안에서 사라졌다. 몇 번이고 반복해보던 사진도 일단 저장만 해놓는다. 그나마 늦지 않게 챙겨 보는 <달려라 방탄>은 영상을 틀어놓고 딴짓하는 일들이 많아졌고, 아직 안 본 방탄밤과 방탄 에피소드 영상이 여러 개 쌓였다. 


실재를 마주하는 떡밥이 기약 없어진 지금, 덕질도 조금 시큰둥해졌다. 자각이 사라졌다.


그사이, 나는 독립했다. 일부러 때를 고른 건 아니었지만 마음껏 여행할 수 없는 이 시기에 내 취향으로 꾸미고 닦은 집이 생긴 건 더할 나위 없는 타이밍이었다. 미주 투어 티켓 환불금은 TV가 되었고, 세 편의 항공권 환불금은 소파와 냉장고로 돌아왔다. 웃픈 순환이다. 


아직 새 집 냄새가 나는 집으로 퇴근해 청소기를 돌린 뒤 간단히 음식을 차려먹고 영화를 틀었다. 곧 있으면 <달려라 방탄> 할 시간인데. 뭐, 어차피 지금 안 봐도 되는 건데 싶다. 버튼을 아래로 누르고 눌러 적절한 영화 한 편을 골랐다. <노팅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찾아본 영화지만,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이 있다. 약간의 설렘을 동반한. 내 덕질이 그 정도 선에 도달한 건 아닐까, 잠깐 생각했다. 약간의 설렘을 동반한, 그러나 보통은 평범한 일상으로서의 덕질. 


방송 프로그램 녹화 진행 및 사회적 거리두기 좌석 앉기를 기반으로 한 공연 하나가 드디어 메이드 됐다. 공연장 측에서 원하는 아티스트 섭외와 녹화 스케줄 조율, 기타 제반사항 확인 등 모처럼 업무 다운 업무를 했다. 볼만한 공연이 없어진 요즘, 이름 있는 피아니스트가 출연하는 클래식 공연이다 보니 티켓 오픈 이틀 만에 전체 좌석이 매진이 됐다. 좌석이 절반으로 줄어 속도가 더 빨랐다. 녹화 스태프들 식사할 장소까지 예약을 마치고 나니 어느새 공연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무대 중앙에 피아노가 들어오고, 그에 맞춰 카메라 세팅이 이어졌다.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일을 하고 있는 스태프들을 보는 게 오랜만이다. 관객이 입장하는 모습을 로비에서 바라봤다. 무대 조명이 켜지고 드레스를 차려입은 아티스트가 등장했다. 큰 박수 소리가 모니터를 통해 들어왔다. 열 손가락이 툭 튕겨져 건반 위로 떨어졌다. 공연 시작이었다.


공연이 밤에 끝나기에 스태프들이 참석하는 간단한 뒤풀이가 예정돼 있었다. 밤늦은 시간 대리 기사를 부르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라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집에 차를 놓고 오기로 했다. 퇴근 차량이 썰물처럼 빠진 도심 사이로 차를 몰았다. 빨간 불에 정차하는 것이 하나도 싫지 않았다. 내게 어떤 흐트러짐을 가져다주는 건 언제나 도심의 밤과 불빛이었고, 이 간질거림이 좋아 낯선 이국의 도심으로 여행을 떠났다. 퇴근 후 집으로 늘 직행하느라 잊고 있던 그 마음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산들바람 스쳐가는 사람 스며드는 사람 나는 어떤 사람 나는 좋은 사람 아님 나쁜 사람 

평가는 가지각색 그냥 나도 사람


그때, 랜덤으로 틀어놓은 방탄소년단 재생목록 중 어거스트 디의 <사람>이 나오기 시작했다. 형용할 수 없는 마음이 되었다. 내가 잊고 있었던 건 도심의 밤뿐이 아니었나. 초록불로 바뀐 신호등에 맞춰 액셀을 밟았다. 공연은 무탈하게 진행 중이고, 이 밤의 윤기 목소리엔 위로가 가득 담겨 있다. 특별한 걸 원했던 적은 없다. 그냥 이 기분을 이따금씩 느끼는 것. 그뿐이었다.


그 짧은 새에 벌써 사위가 캄캄해졌다. 이중 주차된 차들을 조심히 비켜가며 주차를 하는데 갑자기 턱, 목울대를 치고 지나가는 목소리. '날 스치는 그대의 옅은 그 목소리. 내 이름을 한 번만 더 불러주세요.'  읊조리듯 흐느끼듯 담담한 듯 성토하듯 내뱉는 정국이었다. 내 이름 한 번만 불러달라고, 조명 하나 없이 어두운 밤이 익숙해져 버렸다는 정국이의 목소리가 가로등 불빛이 흐릿하게 비추는 이 밤에 흐른다. 부지불식간에 눈물이 차올랐다. 페스타가 의무가 되면서, 해가 갈수록 조금씩 아쉬워진다 생각하던 중에 발표한 곡이었고, "역시 정국이야." 하면서도 늦은 시간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잠들어버린 이후 사실상 잊고 있던 <Still with you>였다.


이랬지. 정국이가.

이렇게 호소했었지 정국이가.


놓치고 있던 많은 것들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그대로 꼼짝없이 앉아 있었다. 노래가 끝나면 다시 처음으로 돌렸고, 어두운 밤을 가르며 흐르는 정국이의 숨과 목소리에 속절없이 울었다. 곧 공연이 끝난다고, 언제쯤 도착하냐는 선배의 메시지가 올 때까지 나는 운전석에 앉아 <Still with you>만 반복했다.


얼어버린 노을 아래 멈춰 서있지만 그대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갈래요 still with you

어두운 밤 조명 하나 없이 익숙해지면 안 되는데 그게 또 익숙해

나지막이 들리는 이 에어컨 소리 이거라도 없으면 나 정말 무너질 것 같아


방탄소년단에 확 빠진 이후, 쏟아지는 잠을 쫓아가며 벼락치기 정보를 습득했다. 잠자리에 들었다가도 그간 보지 못했던 영상이 쌓여있는 것을 참지 못해 새벽에 기를 쓰고 일어나곤 했다. 수험생 때도 밤샘 공부 한 번 하지를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나는 확실히 수험에의 욕심보다 덕질에의 열정이 훨씬 높은 사람이다. 그리고 덕질이 그 자체로 생활이 되면서 나는 자연스레 베개에 머리를 붙이면 수 분 안에 잠이 드는 원래의 수면 패턴을 되찾았다. 어쩌면 정국이가 누려야 할 편안한 잠을 내가 빼앗아 온 것인지도 모른다.


바쁜 스케줄과 여러 고민들, 늘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감, 일거수일투족에 쏟아지는 관심. 에어컨 소음에 겨우 의지한 한 밤 중의 정국이는 어떤 생각을 할까. 은유와 비유를 섞지 않고, 존대와 반말이 뒤섞인 직설적인 가사 속에서 그 복잡한 현재의 정국이가 고스란히 있다. 세상은 얼어버렸지만 그럼에도 걸어온다는 마음이 가장 서두에 있어서, 그래서 더 마음 아프다. 솔직한 마음 앞에 위치한 경건한 다짐 같아서. 사실 많이 힘들고, 무섭지만 이걸 견뎌야 우리를 볼 수 있으니 참을 거라고, 참겠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 같다. 늦은 밤, 이 기분을 가사로 남기고 녹음했을 정국이를 생각한다. 


함께 웃고 함께 울고 이 단순한 감정들이 내겐 전부였나 봐

언제쯤일까 다시 그댈 마주한다면 눈을 보고 말할래요 보고 싶었어요


무대 위의 정국이를 생각하면 나는 늘 방콕으로 향한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 막히고 인중과 등허리에 땀이 주룩 흐르던 더위, 몇 만 명이 모여 앉은 열기. 가지고 있던 손풍기 바람은 더운 공기만 전달하고, 호텔 냉장고에서 챙겨 온 물은 이미 미지근해서 무겁기만 했던 악명 높은 4월 방콕 그때. 눈썹 위로 내려온 앞머리가 땀에 푹 절은 정국이는 이 더위가 뭐 어떠냐는 듯 처음부터 끝까지 가만히 있지 않고 무대 위를 누볐다.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한 현지 팬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내 큰 환호를 보냈고, 그 환호에 정국이는 앞니를 살포시 내보이며 내내 웃었다. 


카메라는 본 무대의 멤버를 잡고 있어도 정국이는 이쪽에서 저쪽까지 보이지 않는 무대 구석구석을 춤을 추며 뛰어다녔다. 가만히 무대를 걸을 땐 웨이브와 스텝을 밟으며 한시도 가만있지 않고 팬들과 함께 했다. 제 자리에 서서 뛰며 소리 지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체력이 소모되는데, 정국이는 앙코르곡이 끝날 때까지 그대로였다. 공연 직후 나는 '그 어떤 일들이 생기든 이 장면을 잊지 말자'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건 가수로서의 멤버들이고, 그렇게 무대 위에서 단 한 번도 설렁 인 적 없이 최선을 다한 멤버들만 기억하면 된다고. 조명 없는 무대 구석에서도 끝까지 춤을 추는 정국이를 기억하자고. 


관객이 없는 무대 위에서, 화면 너머 환호하고 있을 우리를 그저 상상하면서 버텼을 반년의 시간. 보지 못해 아쉽다고, 이 바이러스는 대체 언제쯤 없어지냐고 투덜만 댔지 허무하고 또 허무한 멤버들의 맘까진 헤아리지 못하고 지내왔다. 내 기분만 중요했다. 다시 만나면 눈을 보고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는 정국이 앞에 덕후라고 뻗대면서 사실은 정국이를 가장 모르고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닐까란 생각을 끝끝내 떨치지 못했다. 


눈물에 뒤풀이의 여파까지 겹쳐 부은 눈으로 일어난 다음날. 점심땐 속을 좀 풀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차에 시동을 거는데, 그렇게 또 '날 스치는 그대의 옅은 그 목소리. 내 이름을 한 번만 더 불러주세요.' 정국이의 목소리가 스몄다. 어제 반복하며 들었던 <Still with you>가 여기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꼭 정국이 같다. 파동이 이는 건 저 편일 뿐, 거기 있던 정국이는 늘 변함이 없었던 것처럼. 맥주 몇 잔 적당히 마신 터라 숙취는 없는데. 어젯밤부터 정국이의 흔적이 순간을 어지럽게 한다.


그렇게 계속 <Still with you>였다. <사람>이었다가 <HOME>이었다가 <Moon>이었다가 다시 <Still with you>였다. 좋고 미안했다가 고마웠다가 슬펐다가 그랬다. 언제 덕질이 시큰둥해졌나 할 정도로 <Still with you>였다. 


황홀했던 기억 속에 나 홀로 춤을 춰도 비가 내리잖아

이 안개가 걷힐 때쯤 젖은 발로 달려갈 게 그때 날 안아줘


지난 방방콘 때 남준이 그랬다. '이게 미래의 공연인가' 싶은 공포가 있다고. 비대면으로라도 개최된 콘서트지만 자신들은 관객이 아닌 여러 각도에 놓인 카메라를 향해 춤을 추고 노래를 하며 든 생각이었을 것이다. 생각이 복잡하게 드는 무서움.


콘서트가 주는 힘이 있다. 아니, 콘서트만이 주는 힘이 있다. 같은 장소에서 마주하며 얻는 시너지가 있다. 멤버들은 우리를 통해, 우리는 멤버들을 통해 모든 순간의 조화를 느낀다. 선택된 소수만 가질 수 있는 그 황홀한 기억. 그 기억에 기대 춤을 춰 보지만 세상은 허락 없이 모습을 바꿨다. 강한 핀 조명이 무대 위를 비춘 듯 그 바깥의 사람들은 없고 조명 아래의 사람들만 남았다. 언젠가 조명이 꺼지고, 모두를 비출 햇살이 드리울 때까지 춤을 추며 기다릴 정국이. 그때가 오면 젖은 발로 한달음에 달려오겠다는 마음에 계속 턱, 턱 막힌다. 


우리는 서로를 안다고 말하면서 가장 모르고, 다 이해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가장 오해하고 있는지 모른다. 


저 달이 외로워 보여서 밤하늘에 환하게 울고 있는 것 같아서

언젠가 아침이 오는 걸 알면서도 별처럼 너의 하늘에 머물고 싶었어

하루를 그 순간을 이렇게 될 걸 알았다면 더 담아뒀을 텐데

언제쯤일까 다시 그댈 마주한다면 눈을 보고 말할래요 보고 싶었어요


어거스트 디의 <사람>엔 이런 가사도 있다. '누가 사람이 지혜의 동물이라 했나 내가 보기에는 후회의 동물이 분명한데'. 과정이 중요하다지만 어쨌든 인생은 결과의 연속이다. 후회는 그 결과로 말미암아 발생한다. 바이러스 때문에 하늘 길이 막힐 줄 알았으면 그때 좀 더 많이 다녔어야 했는데 하고, 다음날 속이 쓰려 죽을 것 같으면 어제 그 마지막 한 잔은 마시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고, 이렇게 좋을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덕질을 시작할 걸 하고, 그렇게 무대가 가까운 공연장이었다면 어떻게든 홍콩 콘은 갔었어야 했는데 한다. 모두 그렇지 않은 결과로 말미암은 후회들이다.


그러나 결과를 모르기에 인생이다. 답을 다 알고 푸는 문제만큼 쉽고도 재미없는 건 없다. 답을 써 내려가는 과정 자체가 시간 낭비처럼 느껴질 정도겠지. 후회했기에 앞으로 후회하지 않으려 하는 것. 그 끝없는 과정으로 인생이 꾸려진다. 


지금 아는 걸 그때 알았다면, 과연 지금이 달라졌을까. 끝을 모르기에 지금을 즐길 수 있다. 그때 방콕에서도, 지나친 수많은 공연장에서도, 녹음실에서도, 연습실에서도 그때 최선을 다 한 정국이를 충분히 안다. 다음에 만나면 그다음이 없는 것처럼 부서져라 춤을 출 정국이를. 


황홀했던 기억 속에 나 홀로 춤을 춰도 비가 내리잖아

이 안개가 걷힐 때쯤 젖은 발로 달려갈게 그때 날 잡아줘

날 바라보는 희미한 미소 뒤편에 아름다운 보랏빛을 그려볼래요


빨간색과 파란색을 섞으면 보라색이 된다. 정국이는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칠한 방탄소년단 로고가 있는 인이어를 한쪽에,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칠한 아미 로고가 있는 인이어를 한쪽에 꼈다. 그마저도 부족했다는 듯 그다음에 선택한 인이어는 양쪽 다 보라색이었다. 멤버 각자 색깔을 하나씩 정해 제작한 마이크, 정국이의 손에 들린 마이크는 역시나 보라색이었다. 


팬들이 모르는 나의 모습이 있냐는 질문에 단연코 없다고 말한 정국이. 늘 진심이었던 우리 막내. 


노래가 또 끝나간다. 다시 처음으로 되돌릴 준비를 해야겠다. 


서로 발걸음이 안 맞을 수도 있지만 그대와 함께 이 길을 걷고 싶어요 still with you


이 모든 '그럼에도'의 종합인 노래를 왜 잊고 있었지. '서로 발걸음이 안 맞을 수도 있지만'에 담긴 정국이의 함구하는 진심을, 여운이 잡아 끄는 이 노래를 말이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 영영 질리지 않을 노래다. 실재를 마주하는 떡밥이 기약이 없어지면 어떠랴. 언제나처럼 거기 있어주는 대상이 있는데.  


오랜만에 마주한 도시의 밤, 의도치 않게 때마침 흘러나온 <Still with you>, 불현듯 꽂힌 자각, 빨갛고 하얀 자동차 라이트 불빛, 수많은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웃음소리, 고요히 돌아오는 길의 <Still with you>, 약간의 취기에 더욱 선명해지던 정국이의 마음. 그 마음.


내가 감히 이 덕질이 조금 시큰둥했다고 했던가. 말 많고 탈 많은 2020년이 내 머리를 어떻게 했나 보다. 내 덕질은 이렇게 건재하다. 버선발로 맞이하며 달려 나오겠다는 이 마음이 존재하는 이상.




덧붙임)


정국이는 사운드 클라우드에 노래를 올릴 때 URL를 그냥 쓰지 않는다. 커버곡을 올릴 때도 가사를 염두에 두고 고르고 고르는 정국이 답게 표현이 가능한 모든 부분에 이야기를 남겨놓는다. 


<Oh holy night>에는 merry christmas army

<1000 hours> 커버곡엔 10000 hours with army

<그때 헤어지면 돼>엔 180314 song for army


그리고 <Still with you>엔 thank you army 2020


열다섯에 연습생으로 상경해 가장 어린 나이 축에 속했던 정국이가 이젠 다른 아이돌의 롤모델이 될 정도로 성장해, 이제는 돌려주겠다는 마음으로 꿋꿋하게 남겨놓는 암호 같은 말들.


시도는 충동적으로 잘하나 그것을 끝까지 가져가는 걸 어려워하는 정국이지만 유일하게 음악만큼은 여전히, 끝까지 잘하고 싶어 한다. 언제나 정국이는 한 방향을 향해 걷고 있다. 준비하고 있다는 믹스테이프는 또 얼마나 좋을까. 더 짙어진 목소리로 어떻게 부를까. 


속도가 다르고 발걸음이 달라도 앞에서 뒤에서 옆에서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있음을. 정국이가 가끔은 기억해주길.


정국아. 너는 늘 우리에게 행복만 하라고 하잖아. 그거 알아? 우린 이미 너로 인해 내내 행복했고 또 행복하다는 거. 아마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상상 이상으로 우린 행복해. 불행이 행복보다 더 오래 기억되고, 아픔이 기쁨보다 훨씬 오래 남는다는데 이상하지? 너를 알고 나서는 행복과 기쁨만 남아 있어. 너는 그냥 너로 존재했는데 이 마법이 일어난 거야. 


지난 페스타 때 정국이에게 쓴 편지 한 단락을 다시 가져와 글을 마무리한다. 두 달 만에, 덕후 일기를 쓰지 않으면 안 되게 나를 채찍질한 정국이의 목소리. 방탄소년단의 막내이자 메인 보컬이자 우리 애, 정국이가 있어서 다행인 여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51. 2020 FESTA 2주 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