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의 온도, 내 마음에 스며든 노래 한 곡, 딸아이의 진심 한 그릇
소울의 온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소울이 있다’, ‘영혼이 느껴진다’는 말을 한다. 어떤 노래를 들을 때,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때, 혹은 눈빛을 마주할 때. 그런데 소울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단순히 감정의 깊이일까, 아니면 삶을 대하는 태도 그 자체일까.
내 마음에 스며든 노래 한 곡
어느 날 밤, 지친 하루를 마치고 우연히 유튜브를 켰다. 자동 재생으로 흘러나오던 영상 하나가 나를 멈춰 세웠다. 비긴어게인 오픈마이크라는 무대에서 10CM와 권진아가 함께 부른 ‘Lonely Night’이라는 곡이었다. 익숙한 멜로디에 화려한 편곡은 없었지만, 그 노래는 조용히 마음을 건드렸다. 두 사람의 목소리는 서로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따뜻하게 얽혀 있었고, 담담하게 쌓인 감정이 노래에 스며 있었다. 기교는 많지 않았다. 오히려 담백하게 흘러가는 그 음들 속에서 ‘진짜’가 느껴졌다. 곡 중간중간 멈칫하는 숨결, 어쩌면 울컥함을 억누르는 듯한 눈빛, 그리고 무엇보다도 두 사람이 무대를 대하는 태도. 마치 누군가에게 다정하게 말을 거는 것 같은 그 울림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날 이후로 나는 ‘소울’이라는 단어를 조금 다르게 이해하게 되었다. 소울은 잘 부르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부르는 것이다. 마음속에 오래 품어온 감정이 음악이라는 그릇에 담겼을 때 나오는 깊이. 그리고 그것은 듣는 이의 마음까지 스며들게 만든다.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그 영상은 자주 떠오른다.
아이를 1시간 거리 학교에 내려주고 되돌아오는 길에 그 노래를 들을 때면, 그날 밤의 따뜻한 진심이 다시 내 마음을 꼬옥 안아준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빠르게 살아가느라 이런 조용한 울림들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내 하루하루도 숨 가쁜 날이 많다. 그래서 요즘은 의도적으로 속도를 늦추려고 한다. 책을 천천히 읽고, 누군가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내 마음의 결을 들여다본다. 그 안에 아주 작고 조용한 진심이 숨어 있고, 때로는 그것이 내게 말을 건다. “괜찮아, 천천히 해도 돼”라고.
소울은 말이 아니다. 소울은 태도다. 보여주기 위한 무언이 아니라, 숨기려 해도 드러나는 진심. 나는 그 진심이 만들어내는 온도를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울림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
딸아이의 진심 한 그릇
고등학교 3학년인 딸아이는 조리학교에 다니고 있다. 학교가 멀리 있지만 통학을 한다. 아이를 데려다주는 일이 1년이 넘어가다 보니 나도 조금씩 지쳐갔던 것 같다. 아이의 작은 거슬림도 넘기지 못하는 요즘이다. 거기에 아이가 수긍하지 못하면 더 큰 소리를 내게 된다. 서로에게 날을 세우고 상처를 내는 날이 많아지기도 하고, 남은 기말고사에 집중하고 싶다기에 여름방학 전까지 일시적으로 아이는 집에서 나가 살기로 했다. 학교 인근 고시원에 방을 얻은 것이다. 며칠 후 난 러시아에 나가고 내가 없는 사이 아이는 독립공간으로 나간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 저녁으로 아이가 차려 낸 한 그릇. 감자옹심이였다. 직접 감자를 강판에 갈아 만들었다. 정성이 들어간 한 그릇. 집 떠나 생활하는 일을 쟁취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던 탓에 미안함을 만회하기 위해 진심을 내민 것이다. 그 진심을 받아주는 방법은 아무 소리 하지 않고 맛있게 한 그릇 비워 내는 일이다. 이것이 내 아이가 내민 손을 조용히 잡아 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