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만든 교실의 기적
초등학교 창의융합예술 수업은 햇수로 3년째다. 3년 동안 꾸준하게 이 수업에 들어오는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들은 이제 내가 그림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외에 다양한 것들을 알려준다는 걸 안다. 문학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영어와 한자에 대해 모르는 걸 물으며 함께 성장한다. 사실 나는 모르는 게 너무나 많고 또 금세 까먹는 사람이라 기억력이 좋은 사람을 보면 신기하다고 느낀다. 어쩜 그리 많은 걸 빠른 시간에 장기기억으로 보내는지 그럴 수 있는 능력에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눈빛을 반짝이게 된다. 우리 아이만 봐도 신화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어서 내가 도움을 받곤 한다. 이런 도움들을 아이들 수업에 적용한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고 하는 게 맞겠다.
어제는 한 아이가 작은 생크림 딸기 케이크에 손 편지를 써서 내게 건넸다. 나와 3년째같이 하고 있는 아인데 캐릭터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주 귀엽고 예쁜 친구다. 그림을 아주 센스 있게 그리는 친구로 3년째 함께 하는 단짝 친구도 있다. 남자아이들을 볼 때는 엄마의 마음이 되다가도 여자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소녀 같은 감성들이 어디선가 나도 모르게 불쑥 얼굴을 내밀어 친구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덧 중학생이 된 여자아이들에게는 인생 선배나 엄마처럼 되기도 한다.
마음을 살리는 작은 손길
3년째 중 작년이 가장 힘든 해였다. 일주일 내내 스케줄이 가득한 상태에서 몸은 갱년기를 맞아 육체적으로 최악의 상태였다. 일시적인 갑상선 항진증은 아마도 체력이 약한 탓과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이었을 거다. 모든 관계에 설렁설렁 이었다면 딱히 스트레스가 안되었겠지만 온 마음을 쓰느라 버거운 시간이었다. 모든 것이 맞물려 집에 있는 시간엔 늘 침대와 한 몸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내가 세상의 폭풍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삶의 순수함을 일깨워 준 게 아마도 아이들일 거다. 이 작고 여린 아이들이 내게 와서 재잘거리고 사랑한다고 먼저 안아주고 고맙다 말해준 덕에 내 살아있음의 증거가 되었다. 내가 하는 일에 의미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늘 좋은 걸 주고 싶다. 내가 얻는 것이 더 많으니 말이다.
오늘도 서로를 일으키며
나를 일으켜 세우고 내 살아있음에 의미가 되는 이가 또 있다. 바로 중2 우리 아이. 초등 수업이 끝나고 부랴부랴 아이 기타 학원 앞으로 가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미리 끝나서 학원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아이를 픽업해 오는 동안 학교에서 특별한 일은 없었는지 점심은 뭐가 나왔는지 요즘 수행평가는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있는지 등등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오후 5시 넘어 집에 도착해 저녁을 먹고 6시 반 수영을 가려면 시간이 빠듯하다. 간단하게 단백질 드링크 하나씩 먹고 가볍게 출발하려다 25미터를 몇 바퀴씩 돌려면 속이 든든해야 해서 아이가 좋아하는 떡볶이와 오징어튀김을 시켰다. 둘 다 배가 고플 시간이라 허겁지겁 먹다 보니 이렇게 배가 부르면 수영을 할 수 있을까 싶어 강습 대신 자유수영을 다녀올까로 마음이 절반쯤 기울었다.
아니다. 일단 게으른 몸을 일으켜 수영장까지 가자. 집 앞에 수영장이 생겼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 악마와 손을 잡지 않고 아이의 손을 잡고 강습반으로 향했다. 얼굴이 퍼레지도록 25미터를 여러 바퀴 돌고 평영 발차기 연습까지 끝마치고 나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역시 다녀오길 잘했다고 했다. 아이가 누워있을 땐 내가 일으켜 세우고 내가 게으름에 빠져 있을 땐 아이가 나를 일으켜 세운다. 언젠가 아이에게도 가정이 생기면 아이가 먼저 가족들을 깨어나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늘어져 있는 우리를 아빠가 늘 일어서게 해서 어디라도 갔던 것처럼 아이도 그런 아빠가 되면 좋겠다. 그런 든든한 울타리가 되면 좋겠다.
작년엔 아이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그야말로 떡실신이었다. 올해는 수업을 마치고 수영 강습까지 다녀왔으니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격이다. 딱 이 정도만. 더 이상을 바라는 건 욕심이고 나를 채찍질하는 일이다. 시간을 또 보내면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질 테니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딱 여기까지만. 작년처럼 갑상선에 문제를 일으켜선 안된다. 고양이를 키우며 면역력이 떨어진 건지 갑상선에 이상이 생겨 그렇게 된 것인지 갱년기가 빨리 온 것도 이런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지금 이 정도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 성장은 하되 나를 괴롭히는 짓은 하지 말자. 부지런히 살지만 늘 숨구멍은 열어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