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의 상징, 나의 안식처, 예술이 안식이 될 때
그늘의 상징
트레치야코프에서 만난 「포도나무로 덮인 베란다」는 포도 넝쿨 아래 쉬고 있는 사람들과 나귀가 있었다. 뜨거운 이탈리아의 햇볕을 피해 쉬고 있는 그들에게서 잠시의 달콤한 휴식의 시간이 느껴졌다. 이 그림의 작가는 러시아인이지만, 주로 이탈리아 나폴리와 로마에서 활동했다고 한다. 나폴리는 이탈리아 남부에 있는 지중해가 맞닿은 바닷가 도시다.
이 그림의 주인공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닌 허드렛일을 하는 노동자들이다. 그들에게 고단한 노동 후의 그늘은 포근함이었을 터이다. 비록 바닥은 딱딱하고 거친 벽이었지만, 그들에게는 몸을 기대고 누일 포근한 쉼터였으리라.
우리는 마음 답답한 일이 있을 때 바닷가를 찾곤 한다. 막힘없는 공간에서 푸른 하늘과 맞닿은 바다를 말없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에게도 눈앞에 펼쳐진 넓은 바다는 노동의 고단함에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포도 넝쿨 사이로 스치는 바람은 땀에 젖은 어깨를 어루만지는 어머니의 손길 같았으리라. 이 그림의 그늘은 노동자들의 평화로운 안식처다.
나의 안식처
안식처란 몸과 마음이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것이 장소일 수도, 사람이 되기도 한다. 나에게 안식처라면, 말없이 다녀올 수 있는 친정과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아이들과 친구들이다. 무뚝뚝한 엄마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따뜻한 밥 한 끼 내어 주며 “누워서 한숨 자.”라고 말한다. 엄마의 말대로 배부르게 먹고 눈 붙이고 일어나면 조금 전까지 물먹은 솜 같은 무거운 마음은 가벼움이 되곤 한다. 이게 엄마의 힘인가 보다. “너의 힘듦이 뭔지 다 알아.” 말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얘기하는 마법 같은 힘.
조용함이 주는 안식이 있다면, 아이들과 떠들며 소란함 속에서 안식을 느끼기도 한다. 성인이 된 큰딸, 학생이지만 곧 성인의 길에 들어설 작은 딸과 미래를 이야기한다.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곁에 두고 싶은 사람들은 누구인지에 대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늘 그녀들과의 이야기에는 소망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나 역시 무엇이 하고 싶은지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은 “엄마, 늦지 않았어.”라며 용기를 준다. “앞으로 시간이 많으니 차근차근 준비해 보면 좋지.” 하며 이런저런 도움 되는 피드나 정보를 공유해 주기도 한다. 다만 모아 놓은 자료를 빠르게 정리하지 못하는 게으름이 문제다. 느리지만 멈추지만 않으면 된다고 마음으로 다독이면서 말이다.
주중에는 시간이 어긋나 신랑과 얼굴을 마주하며 이야기할 날이 드물다. 그런 면에서 아이들이 느끼게 해 주는 가족의 소중함은 의미가 있다. 함께하지 못함을 원망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도 나에게는 안식의 방법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무너지지 않고 유지된다면 언젠가 그 안에 신랑이 다시 들어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없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아닌 있는 것 안에서 편안함을 찾는 것이 더 소중하다.
친구도 나의 안식처가 되곤 한다. 긍정의 언어로 나를 다독인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 간다.’ 앙드레 말로의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그녀다. 그녀가 작가로 첫발을 내디딘 책에서 본 명언이다. 긍정의 언어로 글을 쓰며 이루어 내는 그녀를 보며 나도 다짐한다. 느린 속도지만 그 걸음을 멈추지 않겠노라고. 힘이 되는 친구가 있다는 건 많이 감사한 일이다.
안식을 주고 싶은 사람이 있지만. 오히려 그 사람에게 안식을 받기도 한다. 단호함이 우유부단한 나를 잡아 세우기도 한다. 또한, 감정의 정체로 불편감이 오래 지속할 때 명쾌한 예와 감정의 공감이 훌훌 털어내는 데 도움을 준다. 동생이지만 요즘 내가 안식처로 생각하는 친구다.
예술이 안식이 될 때
그림에 관심이 생겨 좋은 점은 안식이 필요할 때 갈 곳이 생겼다는 것이다. 도서관에 가서 명화들이 담긴 책들을 펼쳐 보거나 홀로 미술관에 간다. 그늘이 노동자의 안식이 되었듯 나에겐 그림이 그러하다. 멍하니 그림을 바라보는 순간 다가오는 감정이 나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우연히 뒤적이다 눈에 띄는 글귀 한 줄이 위로되는 날이 있다. 기대 없이 들어선 전시에서 한 점의 그림 앞에 발길이 멈추어지기도 한다. 내가 찾아 듣지 않았지만 스친 음악 한 곡이 위안이 되는 날도 있다.
카페 한자리에 앉아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나에게는 또한 안식의 시간이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이 마음을 울리고, 그 울림들로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울림에 반응한다는 것은 요즘 내 마음을 닮은 노래들이어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