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너의 곁에 내가 있단다.

by 이지연
KakaoTalk_20250817_223005307.jpg 포도로 덮인 베란다


아버지가 아이를 바라본다.

아이에게 뭔가 해줄 말이 있어 보이지만 아버지는 그저 안쓰러운 눈길뿐이다.

오늘 하루 고단하지 않았니?

이 아비도 그랬단다.

인생이란 그런 거란다.

오늘처럼 힘든 날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된단다.

지금은 무척 힘들고 아프겠지만 그 상처가 회복되면 어느새 새살이 돋아나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된단다.

얘야, 기운 내렴. 아빠가 곁에 있잖니.

아버지의 눈길이 우리 아빠가 나를 바라보는 것 같다.

딸아, 너의 곁에 내가 있단다.


아빠를 만났다. 3주 만에 만난 아빠는 나에게 궁금한 게 많았다. 일단 휴대전화에 새로운 카드를 추가해 달라며 카드를 내밀었고 AI로 사진을 편집하는 것을 궁금해하셨다. 나는 “한 건에 오백 원”이라고 말하고 아빠의 부탁을 하나씩 해결해 드렸다. 얼마 전에도 같은 내용을 했었던 것 같은데, 민망해하실 것 같아 옆에 앉아 조용히 폰을 만지작거렸다. 종종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은 외손자가 해결했다. 분명 내일도 아빠는 같은 질문을 또 하실 것이다. 궁금한 건 해결해야 하는 아빠의 마음을 알기에 나는 아빠의 질문에 “한 건에 오백 원”을 또 외칠 것이다.


아빠랑 나는 남들과는 다른 부녀 관계였다. 아빠는 나에게 친구 같은 존재였다. 아빠는 사업으로 늘 바쁘셨지만, 집에 있을 때만큼은 항상 딸을 무릎에 앉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하셨다. 외출하면 아빠랑 손을 꼭 잡고 다녔다. 집에 놀러 오는 친구들이 아빠와의 사이가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면 비법이 무엇인지 물어보기도 했다. 얼마 전 만난 고등학교 친구는 아빠랑 티키타카가 되는 사이가 늘 부러웠다고 말해줬다. 시험 기간, 아빠가 새벽에 들어오시면서 간식을 사다 주셨다. 남동생 몰래 먹으라며 맛있는 과자를 사다 주셨다. 그러나 먹성 좋은 동생에게 늘 빼앗기는 날이 더 많았다. 용돈도 동생보다 두둑하게 챙겨주셨다. 엄마 몰래 사고 싶은 물건이 있어 아빠에게 부탁하면 항상 허락해 주셨다. 늘 딸의 입장을 이해해 주셨다. 아빠는 나의 쏘울 프렌드였다.


첫 추모일,

모든 게 낯선 우리를 위해 아빠가 추도예배를 준비해 주셨다. 우리 집은 제사를 지내지 않고 가족이 함께 모여 예배를 보며 서로의 마음을 나눈다. 아빠가 사위를 위해 남겨진 딸과 손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셨다. 아빠는 사위가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자식으로서 얼마나 열심히 살고 갔는지 이야기해 주셨다. 천국에서 아픔 없이 우리를 내려다볼 남편이 너무 그리워서 참았던 눈물이 나왔다. 남편을 보내는 순간에도 참고 견뎠던 나였는데 순식간에 무너져버렸다. 모두가 당황스럽게 나는 엉엉 큰소리를 내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을 만큼 울고 또 울었다.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더불어 아빠에 대한 미안함이 터져 나왔다. 장인어른이 사위의 추도예배라니,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빠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생각이 드니 나는 아버지께 큰 불효를 한 것 같았다.


할아버지를 만나면 아이들은 나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한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손자들 편이다. 내 딸이지만 성격이 고약하다며 “너희들이 언제나 고생이 많구나”라고 토닥여주신다. 나에게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듬어 주라고 핀잔을 주신다. 여느 날과 같이 아이들은 오랜만에 만난 할아버지에게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가 요즘 들어 화를 잘 내고 짜증이 늘었으며, 말도 안 통하고 억지스럽다고 투덜거린다. ‘오늘도 아빠는 아이들 편이겠군! ’ 하고 있는데 아빠의 한마디 말이 쑥하고 들어와 나를 울컥하게 만든다.


“네 엄마가 얼마나 힘들겠니.


엄마가 화를 내고 짜증을 많이 내면 매우 힘들구나. 하고 생각하렴.


그럴 땐 네 엄마를 안아주고 엄마를 이해해주렴.


내 딸을 잘 부탁한다.”


아빠가 또 한번 나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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