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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서 밤하늘을 배우다

당연하지만 어려운 것

by 하늘나루

올해 연초, 한 글쓰기 공모전에서 떨어지는 사건이 있었다. 수상 인원도 수십 명에 달하는데다가 브런치 작가 심사도 무난하게 합격했던 필자로서는 끝자락에 있는 상이라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필자의 오만이었다. 필자는 경험이 너무나 부족했다.


우연히 만난 아내와 평생을 함께 살아온 구십 살 할아버지의 이야기, 가정 불화를 이기지 못하고 도망치듯 떠난 유학생의 정착기 등등, 편하게만 살아온 나는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글들이 당선되었다. 그 중 눈에 띄는 건 농촌에 관한 글이 많이 있었다는 것. 자연 속의 삶, 사람들 사이의 정과 같은 이야기, 오늘날에는 찾아보기 힘든 귀한 이야기들이 눈에 띄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필자도 가서 글감을 얻어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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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농촌에 와서 느낀 건 '의외로 깔끔한데?'였다. 아스팔트 포장도 잘 되어 있는 데다 집들이 드문 드문 떨어지기는 했지만 대부분 신축 주택이었기 때문이다. 혹은 필자가 본 유일한 농촌이 중국 좡족 자치구의 한 마을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곳은 정말로 험해서, 산사태라도 나면 외부로 나가는 길이 끊어질 정도로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이곳은 그런 곳보다는 훨씬 깔끔하고 잘 가꾸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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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는 개들이 참 많았다. 마을 회관은 물론 아무리 작은 집이라고 해도 대부분 개 한두 마리는 키우는 모양이었다. 청정한 환경에서 자유롭게 자란 개들이다 보니 혈색도 우리 동네 강아지들보다 좋아 보였다. 사람이 다가가도 겁내지 않았고 표정도 무척 다채로웠다. 사진 속 강아지는 좀 무섭게 나왔지만, 꼭 만화영화의 주인공처럼 웃기까지 했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라서 숙소 근처의 한 강아지는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마구 짖었다. 녀석, 참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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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로 좋은 점은 공기였다. 새로운 여행지에서 사람들은 주로 풍경에 집중하지만, 필자는 어쩐지 하늘 모양을 자세히 보게 되는 것 같다. 속초는 소라 모양 구름이라면 이곳은 옅은 수채화 물감을 칠한 느낌의 구름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 하늘과 푸른 작물이 저마다의 색을 뽐내는 듯이. 은은한 풀벌레 소리와 그림 같은 풍경이 필자의 오감을 자극했다.


농촌에서는 정말 일찍 일어난다. 새벽 5시쯤에 일어났는데 평소대로 잤다면 3시간 밖에 못 잔 셈이다. 물론 더위를 피하기 위함이다. 농부들은 한낮의 무더운 더위를 피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일하고 저녁에 다시 시작하는데, 확실히 해가 쨍쨍한 한낮보다는 훨씬 견딜만했다. 그렇지만, 필자가 그 시간에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사실 믿기지는 않았다. 꿈을 꾸는 느낌이랄까? 겨울 방학을 마치고 학교에 간 첫날이나 긴 연휴에서 복귀했을 때 느끼는 그런 감정. 참 재미있는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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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비닐하우스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가? 필자는 겨울에 들어간 딸기와 감귤 하우스를 빼면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여름에는 말이다. 여름의 비닐하우스는 한증막을 방불케 할 정도로 더운 데다가, 한 사람이 도무지 관리할 수 없을 만큼 넓기도 하다.


농사를 짓지 않을 때는 비닐을 덮어서 잡초가 자라지 않게 하는데 그 비닐 덮는 과정도 꽤나 힘들었다. 하우스 곳곳에 튀어나온 날카롭고 녹슨 부분도 조심해야 했다. 그런 점을 빼면 아주 하지 못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혹시 흙에 죽은 쥐가 들어있지 않을까 유심히 보았지만 이곳은 관리가 잘 되는 농장이었는지 흙 외에는 다른 것이 없었다. 안도감과 함께 묘한 실망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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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은연중에 큰 그릇에 담긴 막걸리와 메밀국수로 이루어진 새참을 기대했지만 역시 그런 건 사극에나 나오는 것이 분명했다. 대신 직접 만든 여러 요리가 나왔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했다. 허기는 최고의 조미료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간단한 국수조차도 필자가 주말에 늦잠을 자고 끓여 먹은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레시피를 기억하고 서울에서 나중에 만들어 보았지만 그 맛을 다시 만들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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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서 따온 것이 하나 있기는 했다. 바로 복숭아였다. 여기로 오는 길에 곳곳에 심어진 나무에 열린 복숭아들을 보았는데, 아마 그것들을 따 오신 것 같았다. 마트에서는 보기 좋고 상태가 좋은 것만 진열하지만 이건 바로 따온 복숭아들이기 때문에 여러 종류가 섞여 있었다. 그럼에도 맛은 변함없이 훌륭했다. 사실 마트에서 파는 건 저장과 운송을 거치며 맛이 변하기에, 이쪽이 맛 자체는 더 좋을 것이다. 과연 한 입 베어 무니 쫄깃한 과육의 신선함을 뼛속까지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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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깨진 것이 아니다. 카메라가 하늘의 별빛을 놓쳤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 하나만으로도 농촌에 방문해 볼 이유는 충분하다고 본다. 서울이나 도시 하늘에서는 볼 수 없는 숫자의 별이 맞이해 주었다. 언젠가 우리 아파트가 정전이 된 날 본 적 있는 하늘이었다. 간간히 은하수가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무엇보다 필자를 놀라게 했던 건 눈의 편안함이었다. 도시에서는 어디를 가든 상시 빛에 노출되기 때문에 늘 눈이 피로하다. 사실 피로가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농촌의 밤하늘을 보니 어딘지 모르게 눈을 쉬게 해 주는 기분이었다. 딱 그 차이만큼 이 도시의 빛 공해일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씁쓸하기도 했다.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자니 촛불은 밤에 빛나고 불은 추울 때 따뜻하다는 시구가 떠올랐다. 사실 그렇다. 무언가의 진가는 어려울 때 드러나는 법이니까. 힘들게 일하고 먹은 밥이 더 맛있고, 수능 때 피어난 사랑이 새내기 시절보다 더 특별한 건 아마 그것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소위 '낭만'의 작동 원리이기도 하다. 낭만이란 이름이 붙는 것 치고 쉽고 편한 건 없으니까 말이다.


하늘이 검은 만큼 별들은 더욱 빛났다. 이것이 농촌의 하늘이 필자에게 준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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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농촌은 곧 없어질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바로 옆에 거대한 천연가스 발전소가 들어선 상태였기 때문이다. 발전소의 규모로 보아 아마 이 농촌은 2~3년 내에 읍내로 바뀔 것이다. 농촌을 유지하기에는 발전소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image?url=https%3A%2F%2Fi3n.news1.kr%2Fsystem%2Fphotos%2F2021%2F6%2F4%2F4804892%2Fhigh.jpg&w=1920&q=75 왼쪽 끝자락이 필자가 지낸 곳이다. 아마 그곳은 곧 발전소 사람들을 위한 기반시설로 바뀔 것이다.

농촌이 줄어드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발전소를 뭐라고 할 수도 없다. 결국 필요에 의해 건설한 것이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경제학에서 입이 닳도록 말하는 수요와 공급처럼 말이다. 모두가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소비자이자 생산자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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