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은 언제 위중국어에서 분리되었나
고등학교 교육 과정을 보면 의문이 드는 것이 있다. 바로 한문의 존재이다. 예전에 학교를 다닐 무렵에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사실 한문이 독립된 것은 특이한 일이다. 한문은 영어로 Classical Chinese, 즉 고전 중국어이기 때문이다. 꼭 현대 국어를 배우고 또 고조선의 언어를 따로 배우는 느낌인데, 한국의 학생들은 그것도 중학생 무렵부터 그 어려운 작업을 한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먼저 한문의 정의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문은 중국어로 문언문(文言文), 즉 전통적인 서면어를 말한다. 더 엄밀하게 따지자면 기원전 5세기부터 20세기 백화문 운동 직전까지의 글로 쓰인 중국어를 말하기도 한다. 구어로서의 한문은 한나라 무렵 끊어졌지만, 글로서의 한문은 20세기 초까지 살아남은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한문과 중국어의 갈림길이 되는 역사적인 사건의 존재이다.
20세기말, 부패한 청나라에 대한 혁명 의지와 더불어 언어 개혁 운동이 전 중국을 휩쓸게 되었다. 그것은 백화(白話) 운동으로, 당대의 일반인들이 쓰는 일상어와 글말, 즉 한문과의 차이를 좁히기 위해 전개된 운동이다. 이에 후스와 천두슈 등 좌우를 망라한 중국의 지식인들은 한문을 일상어로 개조하는 작업에 착수했는데, 이를 통해 현대 중국어가 탄생하였다.
같은 한자를 쓰니 중국어와 한문을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한문과 중국어는 1800년의 세월 동안의 차이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구어와는 괴리감이 너무나 컸던 것이 문제였다. 다음 그림을 보자.
완벽하지는 않으나 위가 한문, 아래가 중국어이다. 여기서 주요 어휘의 차이를 바로 알 수 있는데, 한문에서는 <나>의 의미로 <吾, 오>를 사용하지만 현대 중국어에서는 <我, 워>를 사용한다. <먹다>의 <食, 식>은 <吃, 취>로, <欲, 욕>은 <想, 샹>으로 바뀌었다. 여러 차이가 있지만 이렇게 주요 어휘들이 바뀐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이미 젊은이들과 어르신 간에도 말투가 다른 마당이니, 이들이 다른 건 당연하다.
문제는 함축성과 간결성에 있다. 필자는 고전을 번역할 때 꼭 시를 다루는 느낌이었다.
위가 한문, 아래가 현대 중국어이다. 두 문장의 차이에서 한문과 중국어의 함축성이 한눈에 보일 것이다. 위는 흔히 아는 <온고지신>, 아래의 중국어를 직역하면 <옛 도리를 익히고, 새로운 지식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격식을 차릴 적에는 위와 같은 한문투 용어가 쓰이지만, 일상에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한문은 훨씬 이전부터 중국의 입말과 괴리되어 있었다. 위 사진은 명나라, 청나라 시기에 조선에서 작성된 중국어 학습 교재로 <你, 니>나 <了, 러>와 같은 지극히 현대 중국어와 유사한 표현을 확인할 수 있다. 굳이 근대로 가지 않더라도 명나라 정도가 되면 이미 당대인들도 따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 한문을 해석해야 했음을 알 수 있다.
글과 말이 다른 언어는 유기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웠다. 이에 루쉰, 후스 등 저명한 학자와 문학가들이 입말-글말 일치 운동을 전개하였다. 한시는 현대시로, 고전 산문은 현대적인 수필로 교체되었다. 수천 년을 이어 온 한문은 왕조와 함께 중국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였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서는 이전의 언어를 현대적인 언어와 분리해 내는 작업이 필요했다. 결국 이전의 중국어는 새로운 백화문 구별되는 문언문(文言文), 측 한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한문으로 더 이상 새 글이 쓰이지 않으니 전통적인 옛 저작들만 남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고문헌과 고전을 연구하는 의미로 파생되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더욱 강조되어 아예 별도의 학문으로 독립하게 된 것이다. 이에 오늘날 한국 한문학과에서 유, 도가의 저작들과 더불어 한자 성어, 서예 등등 전통적인 요소가 강조되었다.
그렇다면, 만약 백화 운동이라는 극단적인 전개로 한문과 중국어가 분리되지 않고 점진적으로 변화했다면 어땠을까? <중국어>라는 명칭 대신 <한문>이 그대로 내려왔을 가능성도 있다. 아마 한문과 중국어는 통합되었을지도 모르고, 이에 한문에서 무척 다양한 분야를 건드려 볼 수 있게 된다. 오타쿠 문화나 버츄얼 아이돌까지도 말이다.
아래 사진은 필자의 대학에서 개설된 중국어 전공 강의의 일부다. 만약 한문이 청나라에서 맥이 끊기지 않았다면 이러한 버츄얼 아이돌의 노래도 한문으로 편입되었을 것이 자명하다. 오늘날 중국어 전공에서는 언어와 연계하여 아이돌 팬덤 문화, 식문화와 연극 수업도 함께 진행하는데 이것들 또한 한문의 영역이 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더욱 발전한다면 한문학과에서 버츄얼 아이돌을 제작해 보거나 아이돌 굿즈 팝업스토어를 여는 상황까지 상상해 볼 수 있다. 살아 있는 언어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이라는 인식 대신 중국과 동아시아의 MZ문화를 연구하는 세련된 이미지가 부각되었을 수도 있다. 고전을 연구하는 분야는 여전히 존재하겠지만, 아마도 학부, 대학원 수준에서 개설되거나 사학과의 영역으로 넘어갔을 것으로 예상된다.
필자가 들어온 오해는 두 가지였다. 한문을 공부할 적에는, "그럼 중국어도 잘하겠네?"고, 중국어를 공부할 적에는 "그럼 한문도 잘하겠네"다. 이 둘 사이에는 대략 2000년 정도의 장벽이 있는 만큼 도움은 될 수 있어도 완벽히 대체할 수는 없다. 현대 한국어를 알지만 훈민정음 해독을 위해서는 다시 공부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