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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현 Nov 18. 2024

2화. 외계 돌덩이와의 첫 만남

제 2화


나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광활한 태고의 바다 위를 돌아다녔다. 이 바다는 지구 전체보다도 넓은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생명체는 어디 있을까? 주위를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 위로 올라가 보니 바다는 하나의 커다란 물방울 같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소리도, 움직임도, 어떠한 생명의 징후도 없었다. 결국 허탕일까? 하지만 바다가 있으니, 이미 그걸로도 대단한 성과이기는 했다. 낙심한 채로 기계를 종료하려던 찰나 무언가 발견했다.   

   

움직임.     


내가 떨어진 그 바다는 무언가 이상했다. 파도가 치고 있었다. 파도가 친다면 바람도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곳은 우주 공간이라 대기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도 거대한 파도는 마치 사람이 숨을 쉬는 것처럼 한쪽 끝이 올라가면 다른 쪽은 가라앉았다. 그럴 때마다 바다는 조금씩 앞으로 움직였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설마. 이 거대한 것이 생명체란 말인가.      


부끄럽게도 난 우주 생물학자를 자처하면서도 외계인이라면 눈이 커다란, 녹색의 화성인을 상상하곤 했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것은 전혀 다른 무언가였다. 작게 잡아도 크기가 태양계만 한 이 고대 생물은 단단한 부분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였다. 그래서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게다가 묘하게도 날 응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바다의 가운데에는 유독 밝게 빛나는 부분이 있었다. 내가 빠른 속도로 바다 주위를 회전할 때마다 그것도 따라왔다. 언뜻 보면 밝게 빛나는 숲처럼 보였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건 컴퓨터 시뮬레이션인데. 소장의 말처럼 난 유령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바다의 눈은 여전히 날 따라다녔다. 난 시뮬레이션에서 구현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그 바다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떠나려고 할 때마다 바다는 점점 가까워졌다. 마치 원을 도는 것처럼 그 빛나는 부분에 점점 가까워진 것이다. 회전목마처럼 말이다.      


‘에러 발생: 신호 차단됨’     


가상 장치의 신호가 들렸다.      


곧 바다의 가운데에서 엄청난 섬광이 뿜어져 나왔고, 난 의식을 잃고 말았다. 무언가 감싸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잘 볼 수 없었다. 거대한 빛의 팔이 바다에서 뻗어나와 날 데리고 갔다.      


지구가 한 바퀴 하고도 반을 돌았다.


어디선가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실험실 같기도 한 이상한 냄새를 맡으며 난 잠에서 깨어났다. 연구소로 돌아온 걸까? 제발 그러길 바랐지만 내가 있었던 공간은 거대한 동굴 같은 곳이었다. 기울어진 곡선이며 석순, 종유석까지 지구의 동굴과 다를 바 없었다.


모든 게 물이었다는 걸 빼고는. 천장에 바다가 있는 걸 보아 아까 그 생명체의 내부로 들어온 것 같았다. 하늘에는 여전히 고대의 우주가 반짝이고 있었다. 아쉽다. 꿈이라면 이 풍경을 마음껏 즐겼을 텐데. 그런데 빛나는 건 우주뿐이 아니었다.     


내 바로 옆에, 다이아몬드 같은 수정 조각이 떠 있었다. 크기는 나보다 조금 작았지만 내가 본 어떤 보석보다도 투명했다. 그 조각이 떨리기 시작했다. 외계인인가? 그냥 돌덩이인 줄 알았는데.      


‘으악! 컄!’      


난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원래라면 광속 탐사선보다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지만, 어째서인지 물이 튀며 바지만 축축하게 젖었다. 정신없이 동굴을 빠져나가면서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축축하다고?’     


시뮬레이션에 그런 기능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조종 버튼이며 기계와 연결된 고글이 손에 전혀 잡히지 않았다. 주머니의 녹음기를 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더 이상 컴퓨터의 영상이 아니었다. 그건 현실이었다.     

 

‘저…. 안녕?’      


아, 이제 죽을 때가 되어 환청이 들리는 모양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커다란 조각이 떨리고 있었다. 난 온 힘을 다해 말했다.      


‘저…. 전 하나도 맛이 없어요.’     


그 커다란 조각은 마치 사람이 웃는 것처럼 가볍게 떨더니 ‘말했다’.     

 

‘도망칠 필요 없어. 안 잡아먹어. 게다가 엄밀히 말하면 넌 이미 먹혔지. 여긴 내 뱃속이니까’      


‘어떻게 우리말을 알죠? 여긴 137억 년 전인데….’ 내가 물었다. 사실 말도 안 된다. 다른 마을에만 가도 말투가 달라지는데! 아무런 접점도 없는 이곳에 말이 통할 리가 없었다.     


‘아까 네가 나한테 부딪혔을 때 네 생각을 다 읽었어. 넌 별을 찾는 일을 하는 사람이구나’      

‘...’     


‘찾아와 줘서 고마워. 나, 사실 말을 처음 해봐. 네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긴 시간 동안 혼자 있었거든.’      

그 수정은 말을 한다기보다는 떨면서 물결을 만들어 내었다. 그 물결이 나에게 전달되어 마치 소리처럼 들렸던 모양이었다. 내 얕은 지식으로는 이 생명체가 무엇인지조차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말이 통한다니 안심이었다. 적어도 먹히지는 않을 테니까.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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