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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현 Nov 19. 2024

3화. 이상한 수정 과일

제3화. 


그 수정은 말을 한다기보다는 떨면서 물결을 만들어 내었다. 그 물결이 나에게 전달되어 마치 소리처럼 들렸던 모양이었다. 내 얕은 지식으로는 이 생명체가 무엇인지조차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말이 통한다니 안심이었다. 적어도 먹히지는 않을 테니까.      


‘제가 어떻게 여기 있는 거죠? 이건 분명히 가상 영상일 텐데’      


‘난 네가 오는 걸 보고 부르기만 했는걸. 그랬더니 저절로 온 거야’      


도대체 뭘 불렀단 말인가. 그렇지만 크기가 태양계만 한 생물이 ‘불렀다’라면, 그건 적어도 우주적인 규모였으리라.      


수정은 날 가볍게 응시하더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수정의 투명한 속 사이로 별과 같은 것들이 떠다녔다. 알고 보니 내 곁에 온 수정은 거대한 몸의 두뇌 역할을 하는 부분이었다.    

  

그는 빅뱅이 끝난 후 물을 비롯한 여러 원소가 뭉쳐 탄생했다. 적절한 온도 덕분에 액체 상태로 우주 공간을 떠다닐 수 있게 되었고, 소행성과 암석 덩어리를 양분 삼아 성장했다. 물론 다른 생물체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것들은 단순한 유기물에 가까워 수정의 대화 상대는 되어 주지 못했다. 천만년은 충분히 자라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으니까.      


속에 수정을 품은 거대한 바다 생물은 본래 혼자가 아니었다. 


이웃 은하에서 태어난 짝이 있었던 것이다. 그 둘은 인간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어울리고 교감했다. 하지만 어느 날, 다른 바다가 막 태어난 은하에 접근했다가 그만 불타버렸다. 그 짝은 유성(油性)을 지닌 물로 이루어져 타기 쉬웠기 때문이다. 


'물과 기름이라니, 어떻게 어울렸을까?'

내가 속으로 생각했다. 


바다 생물은 그를 살리려고 애를 썼지만, 그녀가 가진 엄청난 양의 물로도 그 불을 끄지 못했다. 다만 수증기만 발생시키며 처절히 죽어갔을 뿐이다. 결국 바다 생물의 몸에서 짝의 크기만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그간 아마 생물의 마음속에서 짝이 차지하고 있던 한편이 아니었을지. 그 면적이 3분의 2나 되어 바다 생물은 전보다 훨씬 작아졌다. 


그 일로 바다 생물의 몸속에는 무수한 수정 조각만 생기고 말았다. 물과 기름, 다른 물질들이 엄청난 압력으로 만들어 낸 조각들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고립 상태로 수십만 년을 살아가고 있었다. 수만 년 동안이라니, 고작 몇십 년을 사는 인간은 상상하기 힘든 고독이었다.    

  

‘별을 찾는 건 무슨 일이야?’     


수정 조각이 떨렸다.     

 

‘아직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어딘가 있을지 모를 생명체를 찾아내는 일이죠. 다른 별에 있는 생명체를요.’      

‘내가 키우는 물방울처럼? 여기도 ’다른 별‘이긴 하니까.’      


키우다니, 아마도 이 생명체는 스스로 번식도 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네가 정말 별을 찾는 사람이라면, 꼭 보여 주고 싶은 게 있어’      


수정 조각이 천천히 움직였다. 따라가기 두려웠지만, 137억 년 전의 까마득한 우주에서 미아가 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수정 조각은 순식간에 모양이 변해 마치 커다란 배처럼 변했다. 그리고 자신의 거대한 몸속을 유유히 떠내려갔다. 마치 휘파람 부는 소리가 들리자 고래 같은 생물이 나타났다. 하지만 고래보다 수천 배는 컸으며 지느러미가 여러 개였다. 수정 배가 그 위에 올라탔다. 


'이게 뭐죠?'

내가 물었다.


'별들의 먼지를 먹고사는 고래야.' 


고래가 답을 하듯이 우리를 응시했다. 고래의 몸 표면에도 수정 조각이 박혀있어 반짝거렸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이렇게 거대한 생물이 이렇게나 오래전 세상에 살았다니. 이 정도 물체라면 으레 근처 소행성을 끌어들일 텐데 그런 징후도 없어 보였다. 어쩌면 생물학, 물리학의 역사를 새로 쓸지도 모를 일이었다. 


'누군가랑 이야기를 나눠 본 건 정말 오랜만이야. 이제야 살아 있는 것 같아' 

울리는 목소리로 수정이 말했다. 


나는 달리 할 말이 없어서 주위만 멍하니 둘러보았다. 

수정 고래가 드넓은 생물체의 몸속을 떠나갔다. 완전한 고요였지만, 밤하늘 사이사이로 반짝이는 수정 조각들이 보였다. 고래가 지나가지 마치 울음을 내는 아이처럼 떨렸다. 어떤 과학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지만, 왠지 마음으로는 측은한 느낌이 들었다. 


한참을 날아가자, 저 끝에 빛나는 숲이 있었다. 오로지 수정으로만 만들어진 숲이었다. 


고요한 물 사이사이에 수정으로 된 나무가 떠 있었다. 하늘 위 바다에는 여전히 파도가 일렁이고, 그 틈 사이로 총천연색의 별빛이 내려와 작은 빛을 내는 숲을 비추었다. 고래와 수정 조각은 나무 가까이에서 멈추었다.  

 

‘고래가 배가 고픈 것 같아서. 갈 길이 머니, 너도 먹어두도록 해’      


수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으로 밥을 먹은 게 언제였던가? 허기가 혜성처럼 밀려 들어왔다. 수정 나무에는 작은 열매 같은 무언가가 달려 있었다. 흡사 보석처럼 보였지만 표면이 말랑했다. 이 생명체는 대단한 농부이자 정원사이기도 했다. 그 짧은 시간에 내 몸의 구조를 분석해 먹을 걸 준비한 모양이었다.  

    

‘먹을 수 있는 거야’ 


수정이 말했다.     

씹어 보니 단맛이 나는 젤리와 비슷했다. 일단 하나를 먹기 시작하자 멈출 수 없어 정신없이 뜯어먹었다. 허기가 가시며 몸에 생기가 돌았다. 고래는 나무를 통째로 뜯어먹고 있었다.       


보지 않고도 물끄러미 응시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아무렴 어떠랴, 그 과일은 내가 먹은 그 어떤 것보다도 맛있었으니까. 처음에는 아무런 맛이 나지 않았지만 점점 단맛이 몰려와 입 안을 가득 채웠다. 


‘이런 건 오랜만이네. 넌…. 행복하구나?’     


‘네?’     


갑작스러운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행복하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호기심이 무척 많은 생명체임이 분명했다.      


‘난 네가 느끼는 걸 같이 느낄 수 있어. 너희들은 이 감정을 ‘행복’이라고 부르는 것 같아서. 이 기분, 나쁘지 않아. 아주 오래전에는 나도 행복 속에 살았어’      


갑자기 입 속 열매의 단맛이 가셨다. 단맛 사이사이로 점점 씁쓸한 기운이 퍼져 나갔다. 그리고 더 이상 씹을 수 없을 정도로 쓴 맛이 났다. 결국 뱉어 버렸는데, 과일이 아니라 수정 조각이었다. 


‘그럼요. 사람들은 행복을 위해 살아갑니다. 가끔 행복을 위해 너무 큰 고통을 감내하는 사람도 있지만요. 이렇게 맛있는 걸 먹을 때나 잠을 잘 때, 그리고 사랑을 나눌 때 사람들은 행복을 느끼지요.’   


바닥에 뱉은 수정 조각이 터져버렸다. 터진 자리에서 수증기가 피어올라 하늘로 사라졌다.     


'사랑' 


나는 불현듯 옛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해 본 날, 어린 시절 울면서 집에 돌아왔을 때 부모님이 안아주었던 것. 오래전 키우던 새도 생각났다. 그 새는 노래가 아름다웠지만, 얼마 못 가 죽고 말았다. 그날의 어두웠던 공기와 온도, 햇살까지 떠올렸다. 평생 함께할 줄 알았던 친구와 헤어진 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 뒤를 이었다.      


‘그건 아주 슬픈 거구나. 하지만 이해는 가. 아플 걸 알면서도 할 만큼 따뜻하니까. ’   

   

수증기가 물이 되어 바다로 흘러 들어갔다. 


‘이렇게 나 홀로 있는 우주에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나는 돌연히 그 생명체에게도 행복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마침 주머니에 조그만 망원경과 라이터, 종이가 있었다. 망원경에 종이를 올리고 불을 붙여 횃불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걸 그대로 물에 담갔다.   

   

불은 순식간에 꺼졌지만, 잠깐이나마 물의 수온을 높였다. 수정은 격하게 떨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언가 느끼고 있는 형색이었다. 멀리서 한 무리의 새들이 날아왔다. 형광 구름으로 이루어진 새들은 일제히 바다로 뛰어들어 수정 조각을 건져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하늘에서 다시 떨어뜨렸다. 


'피해!'


수정이 말했다. 고래가 빠른 속도로 움직였지만, 결국 상처를 입고 말았다. 상처를 입은 자리에서는 더 많은 수정 조각들이 새어 나왔다. 고래는 그저 흐느낄 뿐이었다. 더 많은 새들이 몰려와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조각은 떨어지고, 그대로 굳어 고래의 몸을 수정으로 만들었다. 고래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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