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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현 Nov 18. 2024

1화. 137억 년을 뛰어넘은 사랑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이론과 배경은 모티브와 소재일 뿐, 실제 사실과는 관련이 없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제1화.


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저 까마득한 하늘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답은 해 줄 수 없지만, 그래도 내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거리라 믿는다. 원래 정답이란 없지 않은가? 우리는 답을 향해 여행할 뿐, 영원히 도착할 수 없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그 답이 조금 슬펐다. 내 답은, 홀로 남겨진 백생 왜성이 쓸쓸히 부르는 노래였으니까.


***     

아주 먼 옛날, 우주가 처음 생겨났을 때 이야기다.   

   

처음 막 생긴 우주는 아주 뜨거웠다. 너무 뜨거워 아무것도 살지 못하는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막 생성된 젊은 우주는 점차 식어가, 마침내 우주 전역에서 물이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100도에서 0도 사이. 생명체가 살기 적당한 온도다. 약 137억 년 전 무렵에는 갓 태어난 별들과 여러 물질 덕에, 어쩌면 우주 모든 곳이 골디락스 존에 들어갈 수 있는 시기였을 것이다. 오늘날의 황량한 우주보다 더 밀집하고 폭발적인 공간에서 말이다. 별과 생명, 물로 가득한 세상, 상상할 수 있겠는가?      


물론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 이후 우주는 다시 차갑게 식어갔다.     


그건 너무나도 오래된 이야기이다. 설령 그 옛날 생명체가 있었더라도, 이제는 항성조차 사라져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한때 생명으로 가득 찼던, 복작거리던 작은 우주는 우리가 아는 차갑고 흩어진 곳으로 차츰 변해갔을 것이다. 이젠 몇백만 광년 떨어진 슈퍼 지구가 발견된 것이 뜨거운 화제인 세상이다.    

  

하지만 이제 이야기가 좀 다르다. 수십억 년 전부터 우주를 떠돌던 신호 하나가 위성에 잡혔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신호가 공동(Void)이라고 불리는 우주의 변방에서 왔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너무 차가운 데다 항성 하나 없는 곳이라서 처음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그곳에는 하나의 행성계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신호였다.


 그건 우리가 “들을 수 있는” 형태였다.     


-파도가 치는 소리.

-무언가의 웃음소리

-마구 뜯어먹는 소리.

-흐느끼는 소리.     


그건 꼭 생명체의 소리 같았다.      


“스피커가 잘못된 거 아니야?”     


우리 중 누군가가 외쳤다. 하지만 스피커는 정상이었다. 그건 정말로 137억 년 전의 세계에서 온 소리였으니까. 회의가 계속되었다. 누가 그걸 보낸 것일까? 그들은 아직도 거기에 있는 것일까? 왜 보낸 것일까?      

질문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답은 하나였다. 직접 가서 보는 수밖에. 우주의 시작을 향한 여행이었다.     

 

물론 허무맹랑한 소리처럼 들리지만 그렇지 않았다. 시간 여행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보는 건 가능하다. 1만 광년 떨어진 별을 보면, 과거의 모습을 관측할 수 있다. 아주 뛰어난 망원경이라면 지상의 모습, 심지어는 아기의 웃음까지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연구소는 그 신호와 우주 배경복사를 극한으로 확대해 사라진 행성을 재현했다. 그리고 컴퓨터를 통해 그걸 보고 느낄 수 있는 무언가로 만들었다. 가상현실 장치를 사용한다면 그 안에서 움직일 수도 있다. 정부에서 지원을 받는 국립 연구소라 가능한 일.

   

“제임스, 이 탐사는 자네가 진행하도록 하게. 늘 하고 싶어 하지 않았나?”      


소장이 말했다. 사실 맞기는 했다. 난 우주 생물학 전공이었으니까. 발견된 생명체 자체가 없어 이름뿐인 학문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바꿀 수 있는 기회였다. 만약 생물을 발견한다면 “레벤투스 (Reventus, 부활)”이라고 이름 붙일 생각이다. 그 생물은 137억 년 만에 부활한 셈이다.      


임무를 받고 조용히 연구소를 나섰다. 하늘에는 불꽃놀이가 한창이었는데 사람들은 이른바 '우주 축제'를 즐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축제는 지역의 토속 신을 기리는 행사였다. 까마득한 오래전, 저 우주 어딘가에 있는 물의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신은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내려주었다. 사람들은 사랑 덕분에 서로를 아끼고 화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보기에는 별 근거가 없어 보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아름다운 건 매한가지.


'우와, 과학자세요? 저 하늘의 별을 연구하는?'


꼬마 하나가 나에게 달려왔다. 내 외투의 마크를 보고 알아차린 모양이다.


'그럼, 저 물의 신을 만나러 간단다'


내가 답하니 아이는 손에 들고 있던 꽃을 주었다. 은방울 꽃에 밀랍을 발라 굳힌 램프로, 불을 켜면 푸른빛이 났다. 신이 사랑하던 존재와 헤어질 때, 언제든 찾아올 수 있도록 빛을 남겨 두었다고 한다. 그 신이 다시 돌아오도록 이렇게 램프를 강물에 띄워 보내는 것이다. 푸른빛으로 가득한 강이 꼭 은하수 같았다.


 나는 그중 하나를 집어 가져갔다. 난 평생을 독신으로, 책에 파묻혀 보냈기에 사랑을 제대로 느껴 본 적도 없다. 이 램프를 보고 나에게도 신이 찾아올까? 그럼 조금 더 밝아야 할 텐데. 램프에 푸른 나무로 만든 성냥을 조금 넣어서 불을 밝혔다.


멀리서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고어로 된 시였다.


"流蒼海十年, 在月下休

푸른 바다를 떠돌기를 10년, 달님 아래서 쉬었다네"


"少年曰, 寶莫有, 金莫有, 虛送日月也

소년은 말했다. 금도 보물도 없으니, 시간을 헛되이 보냈구나."


"海曰, 不然也

바다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汝恒與吾談, 不獨而幸

네가 나와 내 곁에서 이야기하니, 외롭지 않고 기쁘구나."


"無論樂苦恒隨映予,

즐거울 때도, 괴로울 때도 항상 나를 비추어 주니, "


"汝即吾之眞寶

나에겐 너가 진정한 보물이야."





몇 주 뒤, 과거로 떠나는 날이 되었다. 소장이 심각한 얼굴로 주의 사항을 말해 주었다. 중요한 연구라 평소에는 그림자도 없던 행정원들까지 모두 출석했는데, 분위기가 제법 심각했다.      


“자네는 산소나 우주복 없이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네. 기술의 축복이야. 대신 어떤 상호작용도 할 수 없다네. 이건 일종의 시뮬레이션이라 설령 생물을 만나도 자네를 알아보거나 대화할 수 없을 거야. 자네는 말하자면 과거를 여행하는 유령이지.”      


그가 기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어, 자네가 정말로 상호작용을 원한다면 말일세, 우린 딱 한 번 도와줄 수 있네. 지구와 그 행성계가 직선이 되었을 때만 말이야. 유감스럽게도 137억 년 동안 그런 경우는 딱 한 번뿐이었네. 바로 지금이지”

    

소장은 내게 육각형 모양의 기계를 건넸다. 그곳에는 작은 녹음 버튼이 달려 있었다. 물론 신호가 과거로 가는 건 아니다. 그저 지금은 사라진 행성의 위치로 보내는 것일 뿐. 그들이 만약 미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 답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137억 뒤인지라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무리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계로 걸어갔다. 모두의 박수를 받으면서. 만약 이번 탐사가 성공한다면 필히 학계에 한 획을 그을 것이었다.


이제 기계의 문이 열렸다. 나는 조용히 헬멧을 쓰고 작동을 기다렸다. 이윽고 모니터에 글자가 올라왔다.     


2132.9.1.


2002.9.1.


-1002.9.1.


-1,000,000.9.1     


순식간에 연구소가 사라지고 물이 가득한 바다가 나타났다. 나는 갓 생성된 지구를 떠나 머나먼 우주 공간으로 향했다. 블랙홀이 초신성으로, 다시 항성으로 바뀌고, 칠흑 같던 우주도 별들로 가득한 공간으로 변했다.


 이제 도착이다. 빅뱅 직후 천십만 년의 어느 날이다.      


난 어떤 바다에 낙하했다. 처음에는 물에 빠지는 줄 알고 허우적댔지만 이내 가상 세계 안이라는 걸 알고 천천히 둘러보았다.      


사방이 물이었다. 여기가 생명체가 사는 곳일까?


하지만 그건 바다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었다. 몸 아래는 분명 물이었지만, 하늘에는 별빛이 가득한 우주가 있었다. 잔잔한 수면 위로 은하수와 별들이 그대로 펼쳐진 것이다. 까마득한 옛날 우주가 이리 아름다운 줄 누가 알았겠는가. 우리 시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많은 수의 별들이 하늘을 메우고 있었다.


'깜작이야!'


내 옆으로 무언가 지나갔다. 그것들은 투명한 수정 조각이었는데, 속에는 알 수 없는 물체가 빛나고 있었다. 이것이 외계인인가? 조금 더 자세히 다가갔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돌인 것 같았다. 가까이 가자 스파크가 내 머리 근처에서 튀면서 무언가 전달되는 기분이 들었다. 빛줄기가 머리 쪽에서 뻗어 나와 돌로 이동한 것이다. 그렇지만 불가능한 일인걸. 여기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인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돌이 빠르게 지나쳐 갔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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