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과 장례식. Source: 서울신문 얼마 전 대구의 한 대학에서 장례식이 열렸다. 우리 고려대도 화환을 보냈다고 했으니, 저명한 학자가 서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학자가 아니라 학문 자체의 장례식이었다. 45년을 이어 온 대구 대학교의 사회학과는 그날 세상을 떠났다.
물론 학령인구 감소와 지원 부족으로 지방 소재 대학들의 폐과 소식이 자주 들려오곤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소위 '간판 학과'는 살아남는 경우가 많았는데, 대구대학교는 '한국사회산업대학교'로 시작했을 만큼 사회학 분야만큼은 꾸준히 지원한 학교였다. 사회복지학이 유명하고 관련 분야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대학이 사회학을 포기했다는 것은 그만큼 위기에 몰렸다는 것이다.
이미 지방 사립대들에선 사회학의 폐지가 이어지고 있다. 대구 가톨릭대, 경남대, 배재대 등에서는 이미 사회학이 자취를 감추었다. 아무래도 부족한 지원으로 취약했던 지방의 사회학과들이 첫 희생양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는 단순히 사회학과의 위기만이 아니다. 인문학 전체가 수세에 몰리고 있으니 말이다.
Source: 고대신문 이는 지방 소재 대학만의 일이 결코 아니다. 필자가 재학 중인 고려대학교에서도 인문학의 입지는 점차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대학교는 2024년부터 영어 수업을 담당하던 'Academic English'와 인문학적 토론 과목인 '자유정의 진리 2'가 필수 과목에서 해제되었다. '윤리와 사상', '문학과 예술' 등을 다루는 핵심교양 역시 소멸하였고 대신 '생명과학의 세계'와 'SW프로그래밍'의 기초가 필수 과목으로 지정됐다. 전반적으로 이과 과목이 우세를 점하는 모양새다.
물론 이과의 확대 자체에 반대하는 건 아니다. 어느 한쪽만 교육하는 건 반쪽짜리 학문을 배우는 일이기에 AI시대에 맞추어 문과 학생들에게 이과 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하지만 같은 논리로 문과를 줄이는 것 역시 안 될 말이다. 새는 문과와 이과라는 두 날개로 날지, 한쪽만 남는다면 추락해 버릴 것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 걸어왔는지도 모르겠다. 필자가 잠시 재학했던 영미권 국제학교에서는 문이과 구분이 없었다. 개설된 과목 중 자유롭게 사회, 과학 분야에서 원하는 과목을 골라 듣는 방식이었다. AP통계를 듣고도 AP지리를 듣는 것이 가능했다. 그렇기에 '문과/이과라서 몰라요'라는 말 자체가 나올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귀국 후 문과반, 이과반이 나누어진 걸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나는 문과를 택했기에 국제학교에서 한창 배우고 있었던 물리와 생명을 배우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성적도 나쁘지 않아 아예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결국 그렇게 되었다. 그렇게 질량과 부피, DNA와 염색체 같은 용어는 내 사전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물론 원한 건 전혀 아니었다.
어쩌면 '문이과'라는 말 자체에서 이미 비극은 예상된 것일지도 몰랐다.
다시 장례식으로 돌아와 보자. 손수 마련된 묘소에는 영정사진 대신 '사회학과'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고 검은 정장을 입은 학생들이 조문을 온다. 필자는 두려워진다. 저 빈소에 다음에 누가 올지 어떻게 아는가? 철학과, 국문과, 언어학과, 그리고 다른 어문 학과들이 뒤를 이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이공계 과목만 남을 것이다. 하지만 물리학과와 같은 기초 학문도 결국 외면을 받아, 어쩌면 먼 미래에는 취업에 도움이 되는 학과들만 남아버릴지도 모른다. 물론 그게 현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대학은 결코 '대학'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학생회관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사회학과 학생 한 명이 황급히 지나간다. 손에 맛난 학식 도시락을 들고서. 간장에 양념한 생선튀김 냄세, 고것 맛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