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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불꼬불, 맛있는 라면의 역사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라면 이야기

by 하늘나루

편의점 라면 코너에 가면 온갖 라면이 손님을 반긴다. 이름난 신라면은 물론 진라면, 스낵면, 짜파게티에 MZ 세대가 자주 찾는 불닭볶음면까지 없는 게 없다. 그런데 궁금하다. 이 라면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Shoyu_ramen,_at_Kasukabe_Station_(2014.05.05)_1.jpg Source: Wikipedia

라면의 원료가 되는 밀은 기원전 7000년 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처음 기르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중국으로 전해져 여러 밀가루 요리들이 탄생했다. 처음에 중국인들은 오늘날과 같은 면이 아니라 수제비 형태의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이 밀가루를 면(麵)이라 하였는데 국수뿐만 아니라 끓이고, 튀기고, 볶고, 삶는 등 다양한 종류의 음식들이 점차 등장했다.


그 여러 밀가루 요리 중 납면(拉麵)이라는 것이 있었다. 납면을 중국어로 읽으면 '라미엔'이다. 어쩐지 익숙하지 않은가? 납면의 '납'이라는 한자에는 꺾고, 당기고, 치는 동작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라면의 초기 제작 방식은 다소 역동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손으로 면을 늘이고 뽑아먹는 과정은 오늘날의 수타면을 연상케 하는데, 여기에 소고기와 파, 고추기름을 얹어 먹는 라미엔의 형태로 발전했다. 오늘날에도 가장 유명한 것은 란저우의 라미엔이다.


이 라미엔은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 라미엔은 '라멘'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는데, 소고기와 고추기름으로 대표되는 중국식 라미엔에서 돼지고기인 차슈, 파, 계란 등이 합쳐져 라멘으로 발전했다. 흥미로운 건 라멘의 차슈 역시 중국 광둥에서 먹던 차사오(叉燒)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라멘이 일본에서 중화요리 취급을 받는 건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사실 라멘에 이르면 수타로 면을 뽑는 정통 라미엔의 흔적의 거의 사라지게 된다. 소고기도 거의 흔적을 감추고 돼지고기로 변해 엄연한 일본 요리가 된다. 시간이 지나 근대에 이르러, 안등백복(安藤百福)이라는 한 일본인이 어묵을 튀기는 모습에서 착안한 '인스턴트 라멘'을 개발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면에 스프를 묻힌 구조였지만 점차 개선되어 면, 스프가 분리되고 물에 끓여 먹는 오늘날의 라면 형태와 유사해진다. 좁은 공간에 최대한 많은 양을 담기 위해 면은 꼬불꼬불하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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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라면 기술은 마침내 1960년대 삼양을 통해 한국에 상륙했다. 일본식 라멘은 이제 라면이라는 새 이름을 얻고 다시 변신을 하게 된다. 삼양이 처음에 들여온 라면은 일본식 닭고기 라멘이었다. 하지만 맵고 칼칼한 것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느끼해서 그런 것일까, 판매량은 생각보다 저조했다고 한다. 이에 한국인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맵고 시원한 고춧가루와 향신료를 추가하여 한국식 '라면'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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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중적인 '라면'의 이미지를 확립한 건 신라면이 아닐까 싶다. 필자가 해외에서 거주하는 동안 가장 많이 마주친 라면이 신라면이었기 때문이다. 지극히 한국적인 디자인과 한자 매울 신(辛), 그리고 새빨간 봉지가 인상적인 신라면은 아직도 한국인들에게 라면의 전형으로 남아 있다. 오죽하면 필자가 지냈던 중국 고급 호텔 라운지에서도 신라면을 주었을 정도다.


이제 완벽하게 한국 요리가 된 라면은 부모 라멘, 할아버지 라미엔과는 구별되는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냉면이나 비빔면같은 한국 전통 요리들도 라면화되어 라면 열풍에 가세하더니 불닭볶음면과 까르보나라 라면, 로제 라면까지 이젠 라면을 무대로 여러 배우들이 공연을 펼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유럽식 스파게티에 베트남 쌀국수까지, 세계 요리들이 라면이라는 이름 아래 대화합을 이룬 것이다. 라미엔, 라멘, 라면아, 몰라본 사이에 출세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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