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살아가기
파주에서 1인 그래픽 디자인 사무실을 하고 있다. 둘째 아이가 이른둥이로 태어나서 서울에서 고생한 뒤로 좀 더 맑은 공기, 집값이 싼 곳을 찾다가 파주까지 오게 됐다. 직업이 그래픽 디자인이라 숱한 야근과 스트레스로 주말이 되면 가족과 함께 드라이브했었고 서울 은평구에 살다 보니 일산이나 그 위쪽으로 가는 걸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파주출판단지나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자주 다녔다. 서울 근교이면서도 아직 논, 밭이 많은 파주는 북과 가까워서 그런지 개발이 덜 되어 일산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소소한 풍경들, 정겨운 풍경들이 꽤 있어 감성으로 먹고사는 내겐 더없이 좋은 도시로 여겨졌다.
그렇게 파주로 이사를 오고 여전히 서울로 직장을 다니다 장거리 출퇴근에 잦은 야근으로 파주로 직장을 옮기에 됐고 얼마 되지 않아 독립했다. 사업자를 내고 일을 했지만 변변한 사무실이 없었기에 집이나 카페에서 디자인 작업을 했다. 사업자를 가지고 있는 프리랜서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2019년 10월 좋은 기회가 생겨 집에서 자전거로 10분 정도 되는 곳에 작은 사무실을 마련했다. 평소 좋아했던 1층으로. 아마 1층이 좋은 건 사람 구경을 할 수 있어서일 거다. 종일 혼자 일하다 보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조금은 외로움을 달래는 것 같다.
파주에서 1인 디자인 회사를 본격적으로 하며 꽤 괜찮았다. 직장생활보다 수입이 괜찮았고 무엇보다 내가 시간 조절을 하며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었다. 조금은 느긋하게 출근하고 햇살도 좀 받고, 사무실 근처에서 산책도 하고, 다시 들어와 집중해서 일하고. 직장에서는 눈치가 보여 못 했던 일들을 지금은 나름 누리며 살고 있다.
오래전부터 직장에서의 일과 별개로 프리랜서로 디자인을 해왔었다. 덕분에 사업을 시작하면서도 오랜 고객들이 꾸준히 있어 사업을 하는데 큰 지장이 없었다. 급여를 받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달마다 수입이 달랐지만 그래도 수입적인 부분이 긍정적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다 2019년 12월 어느날 뉴스에 코로나19 소식이 들렸다. 그리고 다음 해 2020년 1월부터 코로나19에 대한 뉴스가 많아지더니 결국 집단 바이러스 감염이 일어나고 사회는 대부분 멈추거나 축소됐다. 사람들은 움츠러 들었고 마스크는 품귀 현상이 일어나고 학교 개학은 연기됐으며 무급, 유급휴가로 회사를 가지 못 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그리고 파주 조그만 1인 디자인 회사는 일이 90%가 줄어버렸다.
사회 곳곳에서 준비된 행사가 취소되거나 연기되고 제작해야 할 인쇄물들은 멈췄다. 의뢰했던 디자인도 중간에 중지됐다.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이 디자인 회사가 겪는 첫 번째 시련이 왔다. 2월부터 5월까지, 그리고 지금까지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참 힘든 상황이다. 언젠가는 내 콘텐츠로 사업을 하고 싶었었는데 준비할 새도 없이 코로나19가 왔고 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유튜브 세계에 뛰어들었다. 할 줄 아는 게 디자인이라 그래픽 디자인 관련 채널을 만들었고 이제 시작한지 몇 달이 되었다. 예상은 했지만 반응이 거의 없다. 하면 될 줄 알았었는데 그게 어디 그렇게 쉽게 되겠는가. 하지만 시작했으니 계속 달려야 한다.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유튜브를 하고 있다. 내가 유튜버가 됐다.
어쩌면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내 콘텐츠에 대해 실행을 계속 미뤘을 것이고 유튜브 또한 할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생활은 힘들어지고 매달이 고비지만 그래도 위기가 닥치니 정신이 번쩍 든다. 피할 곳도 없고 피할 방법도 없다. 코로나19로 1인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너무나 버거운 현실이지만 그래도 감사함으로 버티기로 했다. 모두 어려운 이 시기를 잘 버티면 좋겠다. 그리고 다시 좋은 기회가 왔을 때 이때를 추억할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여전히 하늘이 맑다.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