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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자전거가 좋아

조금은 여유 있게 가도 괜찮아

by 원석

넷플릭스의 '콜 더 미드 와이프' 영드에서 본 클래식 자전거. 요란한 자전거 전용 옷을 입지 않아도 되고 바람을 뚫고 가겠다는 의지로 허리를 앞으로 잔뜩 구부리지 않아도 되고 점잖게 천천히 여유를 즐기는 클래식 자전거. '콜 더 미드 와이프'에서 본 자전거는 자전거다웠다.



긴 코트를 입고 뒤에는 가방을 얹고 허리를 꼿꼿이 펴고 달리는 클래식 자전거는 거친 산길을 주파하는 MTB를 갖고 싶어 하는 내 생각을 완전히 바꿔놨다. 사실 이 영국 클래식 자전거는 우리네 옛날 자전거와는 좀 다르다. 내 어릴 적을 생각해보면 어른이 타는 자전거는 짐빨(짐빠)과 신사용 자전거 두 종류로 나뉜다. 짐빨 자전거는 정말 짐을 가득 싣고 달려도 괜찮을 만큼 튼튼하게 생겼다. 가끔 동대문에 가보면 아직까지 짐빨 자전거가 배달용으로 사용되는 것을 본다. 그리고 신사용 자전거. 정장 입은 아저씨가 시골길을 유유자적하게 달리는 모습이 연상된다. 굳이 따지면 이 신사용 자전거가 영국의 클래식 자전거와 닮았다. 아마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나라에 들어온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클래식 자전거에 매료된 나는 인터넷에 클래식 자전거를 검색해 어떤 자전거들이 있고 또 판매되는지 알아봤다. 찾아보니 '자이크'라는 클래식 자전거 전문 웹사이트가 있다. 최대한 드라마에 나온 자전거와 비슷한 모델을 검색하니 '올드스쿨'이라는 모델이 나온다. 드디어 찾았다. 드라마에서 본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10년 정도 된 자전거를 중고로 처분하고 클래식 자전거 '올드스쿨'을 구매했다. 작년 여름께 구매했으니 지금까지 한 10개월 정도 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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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편하고 좋을 수가 없다. 자전거는 남성적이고 튼튼함이 멋이라고 생각했는데 클래식 자전거는 내가 가진 자전거에 대한 생각을 많이 바꿔 놓았다. 아니 어쩌면 라이프 스타일까지 바꾸어 놓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무실에서 디자인하다가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면 자전거를 타고 사무실 근처 한 바퀴를 돌거나 근처 공릉천에 가서 잠시 바람을 쐬고 온다. 속도를 내지 않아도 되고 주변을 둘러보고 그렇게 달리다가 잠시 멈춰 사진도 찍고. 클래식 자전거가 주는 여유는 생각보다 크다.



큰아들(고1)도 나를 닮아서 사진 찍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데 아빠 자전거를 몇 번 타 보더니 기존 자전거보다 느낌이 좋았나 보다. 결국 MTB 자전거를 중고로 팔고 내 자전거와 똑같은 올드스쿨 파란색 모델을 구매했다. 아들도 클래식 자전거를 타고 동네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보다 훨씬 더 멀리 다녀올 때도 종종 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 걷기는 힘들고 약간은 멀리 가야 할 때 클래식 자전거만큼 좋은 게 없다. 2년 전 일본에 잠깐 다녀온 적이 있는데 사실 그때 이미 일상 속 자전거에 매료됐었다. 거리 곳곳엔 자전거가 꽤 많았고 심지어 비 오는 날도 한 손으로 우산을 들고 자전거를 탄다. 장우산은 자전거 뒤에 꽂아 놓고 다닌다. 자전거가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다.


요새 코로나 19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자전거 판매량이 늘었다고 한다. 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코로나 19로 모든 게 멈추고 느려진 세상에 어쩌면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 중에 하나가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어쨌든 많은 사람이 자전거를 타면 좋겠다. 비 오는 날 자전거 타는 게 어렸을 적엔 흔한 일이었는데 조만간 한 번 도전해볼까 한다. 아들과 함께 비 맞으며 달리는 라이딩. 얼마나 상쾌한가! 그리고 집에 돌아와 샤워하고 맛있는 저녁식사를 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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