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석 Nov 13. 2022

장례를 마치고

사랑하는 외할머니의 장례식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아픈 시간들을 오롯이 견뎌내시다가 요양병원에서 홀로 돌아가셨다. 병원의 갑작스러운 연락에 삼촌들과 가족이 달려갔지만 기다리시지 못하고 할머니는 홀로 죽음을 맞이하셨다. 92세. 어릴 적 할머니는 늘 포근했다. 할머니 댁에 가면 항상 맛있는 밥과 따뜻한 사랑이 있었다. 내가 아마 초등학교 2학년 때 즈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이후로 할머니는 삼촌들과 함께 사셨다. 이후로 삼촌들은 결혼도 하고 이혼도 하고 아직 미혼인 삼촌도 있고. 이혼한 삼촌의 자녀들을 할머니가 키웠다. 할머니가 젊으셨을 적 자녀를 낳고 사실 때 훗날 자식의 자식인 손주들을 키울 거라는 생각을 하셨을까. 아마 못 하셨을 것 같다. 삶은 늘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어찌 그렇게 잘 흘러가는지. 할머니 또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삶들을 답답한 가슴에 묻고 사셨으리라 생각된다.


어제 발인을 하고 장례를 마쳤다. 여리고 작으셨던 몸이 한 줌 재로 변하는 건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작은 단지가 다시 할머니를 대신했다. 죽음은 천국의 소망과는 별개로 한없이 무겁고 어둡다. 그 무거운 시간 위에 흩어졌던 자식들이 모였다. 오랫동안 못 봤던 얼굴들. 부쩍 커버린 조카들. 누군가는 늙었고, 아팠다. 그래도 할머니의 죽음 앞에 모이지 않는 가족은 없었다. 장례는 늘 사람을 모은다. 연락이 없던 가족과 어색한 만남이 장례라는 이름으로 다시 이어진다.


내 제안으로 가족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모일 일도 없고, 없었고 하니 이번 기회에 찍자는 것이었다. 모두 긍정적인 반응이었고 비가 조금 내렸지만 밖에서 가족사진을 찍었다. 죽음은 사람을 모이게 하고 다시 살아가게 한다. 때론 용서하게 하고 오해를 풀게 하고 진심을 내보이게 한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관대해진다. 카메라를 챙겨가 가족사진뿐만 아니라 장례가 진행되는 일정을 하나하나 찍었다. 추억을 간직하고 싶었다. 이날의 날씨, 분위기, 감정, 마음을 남기고 싶었다. 할머니는 마지막 선물로 가족을 모이게 하시고 가셨다. 나도 언젠가 그 시간을 맞을 텐데 바라기는 천국에서 할머니와 다시 만나면 좋겠다. 아프지 않고 남루한 삶에 시달리지 않고 근심 걱정 없이 어릴 적 나로 돌아가 할머니 품에서 잠들고 싶다.


장례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하지만 반대로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하기도 한다. 삶과 죽음은 이어져 있고 생명과 삶은 또 이어져 있고. 나도 사랑하는 가족도 언젠가 헤어져야 함을, 그래서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 준다. 하루의 소중함을. 관계의 소중함을 그리고 감사함을 배우게 된다.



작가의 이전글 커피에 이 말을 쓸 줄은 몰랐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