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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석 Nov 14. 2022

꼬막무침

늘 별미인 이 맛


어릴 적 밥상에 꼬막무침이 있는 날은 계 타는 날이었다. 싱싱한 꼬막과 짭조름하고 고소하며 식감마저 쫄깃한 역대 밥도둑 중 손가락 안에 꼽힐 이 반찬은 한 번도 맛없던 적이 없었다. 아니 한 번 있었다. 꼬막 비빔밥 전문 식당이라기에 가서 먹었는데 양념장만 그득하고 꼬막은 너무 작고 양이 적어 그냥 양념장 비빔밥에 꼬막 몇 개가 들어가 아주 형편없었다. 지금도 그런지, 아님 그 식당이 유독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별로였다.


꼬막무침은 꼬막이 많아야 한다. 엄마가 만들었던 꼬막무침은 껍데기가 있었다. 껍데기 안에 알찬 꼬막과 짭짤한 간장 양념이 들어간 꼬막무침을 손으로 집어 후루룩 먹을 때면 입 안으로 양념장이 슈루룩 들어와 바로 또 꼬막을 집어 입으로 넣게 만드는 무한반복이 시작된다.


그런데 이렇게 맛있는 꼬막무침이 항상 밥상에 올라오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꼬막을 해감하고 삶고 양념장을 만들어 꼬막 하나하나 넣어주는 일이 저녁밥상에 올리기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기에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엄마는 뭐든 뚝딱 다 해내는 것 같았는데 나이가 들고 반찬을 만들어 보니 엄마는 가족 모두 느긋한 저녁 식사 전에 홀로 전투를 치르고 있었으리라. 꼬막무침뿐일까. 찌개, 밑반찬, 밥, 거기다 중간중간 빨래에 쓰레기 정리에... 1인 3역 이상을 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꼬막무침을 가끔 먹을 수밖에. 그리고 감사할 수밖에.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깐 꼬막 한 팩이 보였다. 꼬막무침이 생각났다. 나도 그 맛을 낼 수 있을까? 먹어보고 싶었다. 냉큼 카트에 집어넣고 계산했다. 사실 꼬막을 사서 냉장고에 넣어 놓은지 며칠 됐다. 시간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한 번 만들면 잘 만들어야 할 것 같아 섣불리 손이 가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날짜를 더 두면 상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오늘을 넘기지 않으려고 저녁 10시가 되어 꼬막 삶을 물을 올렸다.


꼬막을 데치고, 씻어서 꼭- 짜고, 양념장을 만들어 양푼에 넣어 버무렸다. 맛을 보니 엄마의 맛은 아니다. 당연히 아니겠지. 어떻게 그 맛을 낼까. 그래도 꼬막 자체가 주는 그 특유의 맛과 식감은 좋았다. 순전히 꼬막의 힘이다. 그렇게 늦은 저녁 꼬막무침을 만들었다. 반찬 만들며 보람이 부쩍 늘었다.



엄마의 꼬막무침을 따라가려면 멀기는커녕 보이지도 않는다.



내일 점심은 며칠 전 만들어 놓은 오이무침과 꼬막무침이면 될 것 같다. 달걀 프라이까지 더 한다면 말할 것도 없겠고. 마음 같아서는 지금 햇반 하나 뜯어서 꼬막무침에 한 숟갈 하고 싶지만 늘어나는 뱃살, 턱살에게 미안해 마음을 접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남겨 본다.


가끔 먹어도 항상 맛있는 반찬이 있다. 미역 줄거리, 멸치볶음, 나물 종류, 진미채 그리고 꼬막무침. 맛있는 반찬이야 더 있겠지만 밥상에 올라오면 아주 반가운 반찬들이다. 아내가 암으로 아픈 뒤에 본의 아니게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매일은 아니어도 자주 하고 있다 보니 요새는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저녁은 뭘 먹을까. 혼자 중얼거리게 된다. 늘 하는 말이지만 세상 그 어느 직업, 일도 어머니의 가사 일에 견줄 수는 없다. 매일 거르지 않고 매 끼니를 책임지고 만든다는 것은 숭고한 무엇이기도 하다. 우린 먹어야 살고 또 잘 먹어야 건강히 살 수 있으니 어쩌면 우리를 뱃속에서 낳는 순간부터 세상에 나와 살아가는 동안 계속해서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음식과 생명은 떼어 놓을 수 없으니 말이다.


내일 저녁은 모르겠다. 아직 생각을 안 해봤지만 생각하기도 싫다. 그건 내일 꼬막무침에 점심을 거나하게 먹고 커피 한 잔 하고 그제야 슬슬 생각해도 늦지 않을까 싶다.(늦을 것 같다) 아무튼 오늘 꼬막무침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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