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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석 Nov 16. 2022

무소유도 소유

모두가 평등해져야 하는 삶


이번 생은 바라던 대로 살 수 있을까.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기본인 의식주. 그중에 주에 해당하는 집은 의복과, 음식보다 더 어렵고 어려운 그저 꿈같은 것. 늘 꿈꾸지만 언제 이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 가운데 꾸는 이루어지지 않는 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요새 집 하나 있는 것이 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라고 말할 수 있지만 반대로 그런데도 이 집이란 것을 소유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전에 살던 월세가 아까워 겨우겨우 은행 대출로 샀지만 30년 장기 상환 대출로 얻은 터라 이 집이 내 집인지 은행 집인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살고 있으니 내 집이기도 하지만 매 달 돈을 갚지 않으면 은행이 소유할 수도 있으니 이 집의 주인은 두 집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그래도 저녁이 되면 가족이 식사를 하고 씻고 쉬며 TV를 보고 책 한 권 읽을 수 있는 소중한 보금자리다.


얼마 전 무소유를 설파하며 각종 미디어에 나와 강의와 상담을 하는 스님이 있었다. 다들 '무소유'라는 말 자체로 위안을 얻었다. 무소유가 멀리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미 무소유였고 굳이 무소유를 지향하지 않아도 유소유가 될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이 무소유는 친근하고 위로가 됐다. 그래도 괜찮구나라고 자기 위로가 됐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얼마 후 방송을 통해 본 스님의 집은 남산이 보이는 좋은 전망에 따뜻한 햇살이 들어오는 꽤 좋은 집이었다. 그 정도 사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냐마는 무소유를 주장하던 분이 산다고 하기에는 충분히 비싼 집과 각종 최신 전자기기들이 있었기에 대중은 적잖이 충격과 배신감을 느꼈다. 무소유라고 외친 분이 풀 소유를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 일이 있은 뒤 '무소유'를 지향하는 사회 분위기는 점차 사그라들었다. 이젠 그런 말이 나와도 사람들이 믿을까 싶다. 어차피 무소유로 사는 사람은 살 것이고 무소유 따위 뭐냐며 하루하루 바득바득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테니 말이다. 


무소유란 무엇일까. 소유하지 않고 주어진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삶을 말하는 것일까.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쓴웃음이 나온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도무지 작은 것에는 관심 없고 집 값은 한 없이 올라가기 바라고 내가 가진 가치는 대박 커지길 바라며 어떻게든 돈으로 돈을 벌어야 잘 사는 사람이라고 대접받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현실은 그렇다. 그런데 무소유라니. 빛 좋은 개살구다. 부양할 가족도 없고 적당히 유학도 다녀왔고 재산도 좀 있고 그래서 유명해지니 책을 출간하고 그렇게 수입을 얻고 그러다 보니 또 유명해지는 삶이 어떻게 무소유인가. 진짜 무소유라고 말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누가 관심이 있을까. 아마 가난하다고 생각하거나 능력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무소유는 현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개미들을 유혹하는 설탕이다. 소금을 피해 설탕만을 찾게 만드는 도피처이다.


그렇다고 무소유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최소한 나는 무소유를 부정적이기보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다만, 무소유는 남에게 강요하는 것이 틀렸다는 것이다. 무소유의 삶은 남의 것을 욕심내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다. 자족하고 감사하는 마음과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으로 만족하는 삶. 그래서 욕심을 버리고 평안해지는 삶.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무소유를 외치는 사람들이 문제다. 무소유는 나도 이렇게 실천했으니 당신도 이렇게 해라. 그러면 그것이 무소유일까. 각자의 형편은 제각기 다를뿐더러 사연은 또 얼마나 수 만 가지인가. 모든 사람에 '무소유'를 적용할 수는 없다. 


무소유도 소유


완전한 무소유는 없다. 속지 말아야 한다. 현실을 피하고픈 마음이야 나도 굴뚝같고 매주 로또를 살 수밖에 없는 남루한 삶이지만 그래도 속지 말아야 한다. 소유 없는 인생은 없고 결국 무소유를 외치는 사람도 소유를 위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집 값이 오르기를 바라고 또 누군가는 떨어지기를 바라는 이 아이러니한 시대. 과연 이 시대의 무소유와 소유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부자도 무소유를 말할 수 있고 가난한 자도 소유를 말할 수 있다. 진정한 무소유는 각자의 몫이다. 어쩌면 모두의 삶이 평등한 그래서 청소부나 배달하는 분이나 의사나 판사나 기업인들이나 소득에 상관없이 모두 각자의 삶을 인정하고 평등해지는 삶. 소유를 한 사람이 소유하지 않은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고 소유하지 않은 사람이 성실하게 일한 대가를 공정하게 받는 삶. 그래서 그들도 누군가에게 흘려보낼 수 있는 삶. 이것이 무소유의 삶이 아닐까.


나도 언젠가 무소유를 실천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무소유의 삶을 어쩔 수 없이 사는 게 아니라 무소유의 삶을 지향하는 인생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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