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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나이 들수록 그리운 옛 기억

by 원석

코로나 19로 인해 2020년의 절반은 마스크와 불경기에 가려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뿌연 날들의 연속이었다. 더욱이 유래 없는 긴 장마로 우산까지 더 씌워져 서로의 얼굴도 제대로 못 본 채 끝날 것 같지 않은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났다. 광복절 대체 휴일인 오늘 오랜만에 햇살다운 햇살이 비추인다. 덕분에 폭염주의보가 발령됐지만 그래도 장맛비에 젖은 세상이 뜨거운 햇살에 바짝 말려지면 좋겠다.


나이 들수록 그리운 건 옛 기억이다. 가끔 오래된 그날의 풍경이 눈에 선하고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도 있다. 그중 가장 많이 생각나는 건 중학교 시절. 중학교 시절은 가장 외롭기도 했지만 가장 좋기도 했다. 특히 토요일 4교시만 하고 끝나는 날엔 누구보다 재빨리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즐거움이 있었다. 거의 텅 빈 버스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햇살을 보면 만화경 같은 그림이 눈 앞에 펼쳐진다. 눈을 감아도 뜨거운 햇살이 눈꺼풀을 뚫고 들어와 휘황찬란한 신비한 모습을 만들어 낸다. 그 시간은 나만 아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학교와 집은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가야 했고 내려서도 다시 15분 정도는 더 걸어야 하는 거리였다. 가깝지 않은 거리였는데 그래도 그렇게 다녔던 시간이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애틋하다. 집이 있던 동네는 서울이라고는 하지만 조금 변두리라 집까지 걸어가는 길엔 논도 있었고 작은 개천도 있었는데 그 모습이 난 좋았다. 워낙 혼자 걸어 다니는 걸 좋아해서인지 그 시간은 혼자서 맘껏 상상하며 노래하는 나만의 시간이었다.


여름이 깊어질 즈음 여름방학을 하면 늘 사촌 동생이 살고 있는 오산에 놀라 가거나 의정부에 놀러 갔다. 오산에서의 즐거움은 작은 시골 교회의 여름 성경학교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초등학생들이었던 것 같은데 중학생인 나는 곧잘 함께 어울리며 잘 놀았다. 한 여름 한적한 시골길을 아이들과 함께 걸었던 일, 동생이 다녔던 국민학교에 다녀왔던 일, 동네 친구 집에 가서 홍콩 영화 비디오테이프를 빌려 동네 동생들과 재미있게 봤던 일. 오산에서의 추억은 늘 편안했고 따뜻했다.


의정부에 사는 사촌 동생네 집에 가면 동생과 오락실도 가고 다른 사촌들과 함께 수락산으로 야영하러 가기도 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여름방학도 어느새 며칠밖에 남지 않은 시간이 온다. 그때서야 밀린 탐구생활(이건 아마 초등학교)을 부랴부랴 하느라 정신없기도 했었다. 그러다 이상하게 꼭 개학 전날 놀이동산에 가는 상황이 생긴다. 놀이동산에 다녀와서 하루 이틀 쉬면 좋으련만 여름방학 개학 하루 전날엔 이상하게 놀이동산을 가는 일이 많았다. 놀이동산에 가서 신나게 놀고 저녁에 와 파김치가 되고 다음 날 피곤한 몸으로 등교했었던 기억.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간조차도 참 좋았다.


여름이면 곳곳에서 들리는 매미 소리, 개구리 소리, 뜨거운 공기로 숨조차 쉬기 힘들었던 열대야, 에어컨은 커녕 선풍기도 1, 2대밖에 없었던 그 시절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 시절이 참 많이 생각난다. 가끔 너무 더우면 부엌에서 등목을 하며 더위를 날리고 어름 동동 띄운 미숫가루 한 사발을 하면 남극도 부럽지 않았다. 가난했지만 함께 모여 먹었던 수박은 참 달았다. 이제 이런 여름방학을 다시 즐길 수 있을까? 다만 일주일이라도 빈둥빈둥 방에 뒹굴며 만화책을 보던 그 한가로웠더 시절을 느낄 수 있을까.


코로나 19로 인해 올 상반기는 유난히 학생들이 참 힘든 시간을 보냈다. 수업도 들쑥날쑥, 처음 해 본 온라인 수업,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친구들과 맘껏 놀지 못했던 일상. 여름방학조차 2주밖에 되지 않고 더욱이 확진자 발생으로 꼼짝할 수 없는 이 시기. 여름방학이 소리 없이 지나간다. 부디 코로나 19가 잠잠해지고 아이들이 내년 여름방학엔 마스크를 벗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함께 웃을 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여름이 주는 뜨거움은 한 겨울을 이겨낼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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