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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석 Mar 14. 2023

오늘, 지금 우리 카페 이야기

그래픽 디자이너는 오늘도 카페에서 일합니다.


작업하기 좋은 콘센트가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는데 아뿔싸 뒤 테이블에 있는 손님이 너무 시끄럽다.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계속해서 귀에 꽂힌다. 한 사람이 투덜대면 한 사람은 맞장구를 치고, 말은 또 왜 이리 빠른지 담아두고 있던 얘기를 속사포처럼 쏟아낸다. 카페에 일하러 온 내가 잘못이지. 카페에 얘기하러 온 사람이 무슨 잘못일까. 뭐라 할 말이 없지만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다.


스타벅스 이야기다. 일하기 좋은 카페를 꼽으라면 스타벅스만 한 게 없다. 넓은 작업 테이블과 매장에 따라 1인 작업 테이블까지. 어디서 일할까 고민하다가도 여전히 스타벅스를 찾게 된다. 동네에 있는 투썸도 작업하기 꽤 좋은 공간이지만 스타벅스에 들어설 때면 높은 톤의 목소리로 반갑게 맞이하는 직원의 인사가(물론 매뉴얼이겠지만) 결국 스타벅스를 찾게 되는 이유 중 하나 이기도 하다. 카페를 다니다 보면 커피 맛은 둘째치고 인사 잘하고 응대 잘하는 곳을 찾기가 여간 쉽지가 않다. 별것 아닌 인사 같지만 그날의 작업을 좌우하기도 한다.


디지털 노마드 시대에 알맞은 직업들 중 하나인 그래픽 디자이너는 내 직업이기도 하다. 컴퓨터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장비가 가벼운 직업. 그러다 보니 아직 사무실을 마련하지 못한 나는 집중이 잘 안 되는 집 거실보다 조금 시끄럽더라도 조금은 긴장하며 집중할 수 있는 카페를 자주 찾는다. 거실 책상에 27인치 아이맥이 떡하니 있지만 불편을 감수하면서 이곳 스타벅스에 14인치 맥북을 펼쳐 온갖 신경을 모아 작업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일하다 보면 가끔 심심할 때가 있다. 일을 하면 거기에 집중을 해야지 뭐 심심하냐 할 수도 있겠지만 1인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며 일하다 보면 심심할 때가 꽤 많다. 오랜 시간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일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찾는 곳이 카페고 자주 가는 곳이 스타벅스다. 가벼운 자극들이 필요하다.


그렇게 작업하기 좋은 카페지만 단점도 물론 있다. 운이 안 좋은 날 만나는 지나치게 시끄러운 손님의 대화 소리가 그렇다. 적당한 음악과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기분 좋은 화이트 노이즈를 기대하고 갔건만 그냥 노이즈가 판을 치는 경우가 있다. 그날 작업은 간단한 것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오늘이 그랬다. 빠른 말투의 듣고 싶지 않은 남의 사생활을 들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 작업하는 것은 고문 중의 고문이다. 그들이야 즐겁게 몰입을 하며 대화를 하고 있겠지만 듣는 나는 참기가 힘들어 자리에서 일어나 괜히 카페를 한 바퀴 돌거나 잠시 밖을 나가 마음과 귀를 진정시키고 온다. 누구를 탓하랴. 커피보다 수다가 고파 온 그들인 것을. 커피 마시는 곳에 일하러 온 내가 잘못이지.


시끄러운 대화 소리를 듣다가 문득 이들이 참 이야기할 곳이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에 카페가 많이 생기는 이유는 이야기할 곳이 없어서가 가장 크지 않을까. 뒷담화든 앞담화든 만나서 할 얘기들은 많은데 이제는 동네 나무 밑 평상도, 마을 전경이 내려다 보이는 뒷동산도, 한적한 개울가도 없어져 대화를 아니 수다를 떨 공간이 없다. 빽빽이 들어선 아파트와 매끄럽게 깔린 아스팔트 위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결국 이야기할 곳을 찾지 못하는 많은 사람이 커피 향을 따라 카페에 들어선다.


테이블에 놓인 한 잔의 커피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뜨겁거나 차가운 커피가 목을 타고 넘어가면 누구랄 것도 없이 이야기가 시작된다. 커피를 앞에 두고 나누는 그 잡담이, 대화가 어쩌면 카페 밖을 나설 때 보이는 수많은 사람 사는 풍경을 만들어내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본다. 여전히 나는 카페에 일하러 갈 것이고 누군가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듣겠지만 그 이야기들이 흐르고 흩어져 우리 사는 세상을 만든다고 생각해 보면 내가 하는 디자인 작업이나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나 결국 비슷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3월은 햇살이 따스할 때도 있지만 가끔 매서운 바람이 불 때도 있다. 햇살을 받으며 먹는 커피 한 잔도 좋지만 바람을 피해 마시는 커피 한 잔 역시 좋다. 오늘이 그랬다. 바람을 피해 들어와 마신 커피가 유독 더 맛있었다. 맛있는 대화를 하며 마시는 커피 한 잔. 일하며 듣는 그들의 대화. 오늘, 지금 우리 카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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