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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석 Mar 23. 2023

새벽에 쓰는 생각


오랜만에 늦은 밤을 맞이한다. 늘 그렇듯 새벽의 시간은 무겁고 느리게 째깍째깍 흘러간다. 하루치의 일을 소화하고 나면 일하며 눌러두었던 여러 잡다한 생각이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인터넷 서치를 시작한다. 카페가 궁금하면 카페를, 커피가 궁금하면 커피를, 마이크가 궁금하면 마이크를, 찾다 못 찾을 때까지 찾는다. 그래야 직성이 풀린다. 알 때까지. 아니면 도저히 이해 안 될 때까지. 정보를 파헤친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얕고 넓은 지식은 덤으로 얻었다. 굳은 목과 찌릿한 허리는 보너스다.


요새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사업구상이다. 곧 얻게 될 사무실에 들어가면 그동안 못했던 유튜브 촬영과 굿즈 제작, 기회가 된다면 기타 레슨까지. 이것저것 할 게 많다. 물론 주업인 디자인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들이 보기엔 뭐 저렇게 이것저것 많이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이렇게 사는 게 익숙한 나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들이다. 그게 또 나인 거고.


공간이 주는 힘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어디에 있는지, 어느 방향인지, 어느 높이인지, 어떤 풍경을 볼 수 있는지, 크기가 얼마인지에 따라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이나 방문한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건축에 관심이 많다. 아니 좋은 공간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이 분야는 얕은 지식 정도로는 감히 시도해 볼 수 없는 범위라 그저 생각만 하는 수준이다. 언젠가 내가 생각하고 설계한 건물을 지을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가끔 단점이 많은 대지 위에 잘 자리 잡은 건축물을 만난다. 그런 건축물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 한 방법이거나 누구나 생각은 했지만 시도해보지 않은 방법이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런 건축물을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직업이 그래픽 디자이너라 아주 작은 길이의 차이나 수평, 수직에 민감하다. 복잡하게 도안된 디자인을 봐도 어디가 어색한지 잘 못 되었는지 바로 찾는 편이다. 잘 지은 건축물도 예외는 아니어서 어디가 부족한지 어디가 좋은지 한참을 보고 찾는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건축물은 그런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은 건축물이다.


독특한 디자인도, 평범한 디자인도 결국 좋은 디자인은 조화롭다. 강약이 있고, 경중이 있으며 밸런스가 잘 잡혀있다. 건축물도 마찬가지다. 대단히 특이하게 보여도 무심하게 지은 듯 보여도 결국 좋은 건축물은 밸런스가 좋다. 그렇담 내 인생의 밸런스는 어떨까. 앞으로 사는 날들의 밸런스는 어떻게 잘 잡을 수 있을까. 온종일 모니터를 보며 0.1mm의 차이를 가지고 수 없이 수정 반복하는 내 직업처럼 사는 것도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있을까.


잘 산다는 것이 돈이 많고 여유롭게 사는 것을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 또한 좋은 밸런스를 잡을 때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 살 것인가 깊이 생각하기보다는 어떻게 밸런스를 유지할 것인가, 어떻게 흐름을 잘 타고 높고 낮은 파도를 유연하게 넘을 수 있을까 생각해 봐야겠다. 오늘의 고통이 내일의 약이 될 수도 있는 걸 살면서 많이 경험한다. 망한 것 같은 일들이 시간이 지나 더 좋은 일이 되는 걸 종종 겪는다.


이제 새벽을 뒤로하고 내일을 준비해야겠다. 고민한 이 시간이 좋은 흐름으로 이어지기를, 좋은 밸런스로 이어지기를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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