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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석 Apr 06. 2023

관객 한 명을 위하여

좋아요 말고 좋아서


90년대의 여름은 유난히 더웠고 겨울 또한 매섭게 추웠다. 왜 그럴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때는 집이나 학교에 에어컨도 없었고 겨울엔 옷도 그리 따뜻하게 입고 다니지 다녔으니 당연한 결과다. 이상하게 그때는 그렇게 덥고 추워도 좋았다. 하고 싶은 게 있었고 열심히 했으니 더위나 추위 따위가 별 문제가 안 됐던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스쿨밴드로 음악을 처음 시작했던 나는 당시 꽤 포부가 있었다. 음악을 잘하고 싶었고 성공하고 싶었다. 돈을 많이 버는 성공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유명해지고 싶었다. 더 정확히는 내 음악이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길 바랐다.


토요일 4교시가 끝나면 가방 안에 담아 둔 사복을 꺼내 입고 기분 좋은 토요일 햇살을 만끽하며 친구들과 동대문으로, 압구정으로 합주실을 다녔다. 그때는 머릿속이 온통 음악뿐이어서 늘어진 카세트테이프, 고장 나서 빨리 돌아가는 턴테이블을 틀어 놓고 주야장천 기타를 치고 타이어에 드림 스틱을 두들겼다. 그때의 열정은 뭐랄까. 음악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었고 순수한(때론 바보처럼) 열정으로 가득했다. 지금의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생존과는 달랐다.


도무지 흘러갈 것 같지 않던 10대 후반과 20대 초의 시간들은 미래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오늘만 생각했고 매일 연습하며 주말에 모여 합주하는 게 유일한 공부였고 삶의 낙이었다. 그땐 그랬다. 관객 한 명만 있어도 공연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내 음악을 듣기 위해 공연장까지 와 준 관객이 얼마나 고마운가. 처음 베이스 기타로 밴드를 시작했던 나는 곧 드러머로 전향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엔 기타 보컬로 포지션을 바꿨다.


내 음악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한 후부터 나는 음악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음악을 한다고는 했지만 생각보다 무대에 서는 게 쉽지 않았다. 어떻게 공연 준비를 할까, 홍보를 해야 할까 생각해야 하는데 그냥 하다 보면 기회가 자연스럽게 있을 거라 생각했다. 덕분에 무대에 설 기회가 많지는 않았다. 무대에 서지 못할 때 자주 찾는 곳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이었는데 그때는 왜 그리 집에들 안 들어갔는지 저녁부터 새벽 내내 자유롭고 들뜬 분위기에 취한 사람들이 꽤 북적였다. 친구와 통기타 하나 들고 가서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서 노래를 부를 때 지나가는 행인이 잠시 멈춰서 내 노래를 듣고 가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았다. 그 공연은 내가 하고 싶을 때 언제든 할 수 있는 공연이다. 그때의 열정은 그랬다. 단 한 명의 관객도 소중했고 내 노래를 들어주는 이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글이든 음악이든 누가 얼마나 봐주고 들어줄까 노심초사한다. 관객 한 명을 위해 무대에 선다는 다짐과 감사함은 어디로 갔는지 좋아요와 하트 숫자에 목을 맨다. 비루한 음악가가 됐다. 이러려고 글을 쓰고 이러려고 음악을 한 건 아니었는데 이제는 내가 좋아서 하는 예술의 기록들이 한 명을 위함이 아닌 해시태그의 미끼를 던져 좋아요를 유도하고 있으니 참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그 미끼마저 잘 먹혀들지 않지만 말이다.


관객 한 명을 위해 음악 하던 그 시절, 좋아요 하나를 위해 글을 쓰는 지금. 다시 그 열정을 찾아야겠다. 좋아요가 아닌 좋아서 하는 음악을 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야겠다. 좋아서 해야겠다.


<메인 사진: UnsplashWes Hicks>


95년 8월 15일 마로니에 공원. 이날 대학로에서 데모가 있었는데 최루탄이 터져 기타를 놓고 도망쳤다. 다시 오니 관객이 반 이상 줄었는데 그래도 너무나 즐거웠던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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