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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석 Jun 23. 2023

2년 만에 입주하는 작업실

나이 50을 앞둔 그래픽디자이너의 작업실 분투기


작업실을 다시 열게 됐다. 2년 전 6월을 마지막으로 나왔으니 이거 참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딱 2년이 되었다. 세입자가 6월 말일에 나간다고 했으니 말이다. 원래 올해 2월에 계약을 했는데 그때는 6월에 입주할 줄 몰랐다. 어찌하다 보니 한 달이 더 늘었고 말한 것처럼 6월 말 입주하게 됐다. 2년 전 작업실에서 짐을 쌀 때에는 내 인생에 다시는 작업실이 없을 것만 같았다. 회사도 아니고 건물도 아니고 고작 작업실 하나인데 뭐 이리 호들갑이냐고도 하겠지만. 혼자 일하는 나는 좋은 작업실 하나 있는 것이 그 어떤 훌륭한 파트너와 시설보다도 낫다. 좋다. 그래서 흔한 사무실 하나에 이렇게 호들갑이다.


인생은 알다가도 모르겠고 모르다가도 알 것 같다. 안다고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고 모른다고 그렇게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일도 많지만 현실은 예상치를 벗어나 훨훨 날아가는 인생의 순간이 더 많다. 아무리 수없이 반복되는 불규칙적인 인생의 순간이라지만 막상 그 순간이 닥치면 멍해지거나 화가 나거나 급 슬퍼진다. 그렇다고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니니 인생이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리저리 주절대지만 결국 순응하는 수밖에 더 있을까. 좋은 일은 나쁜 일보다 몇 배는 좋으니.


그래도 모든 결정은 여전히 내 몫

인생이 이렇다 저렇다 떠들어댔지만 결국 모든 인생의 향방은 내가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순간, 좋아하는 음식, 싫어하는 사람, 불편한 통화, 설레는 만남 등은 결국 내가 결정해야 하는 것들이다.(그중에 점심, 저녁 메뉴를 정하는 게 어찌 보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일지도...) 어쨌든 인생은 알다가도 모르겠고 모든 건 내 결정의 결과라고 봐야겠다. 하지만 나 혼자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니니 나 같은 수많은 존재가 결정하고 움직일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결과가 생기는 것이다. 


(좌) 구작업실 2019.10~2021.6  / (우) 신작업실 2023.6.30~ / 입주 전이라 시안만 준비(유리는 클리어하게 할 예정)


사무실 얘기하다가 인생 얘기가 나오니 나도 어지간히 생각이 많다. 그래도 결정은 내가 해야 하고 할 수밖에 없으니 그렇다면 온전히 잘 결정하고 싶다. 잘못되는 잘 되든 하고 싶은 걸 하려고 하는 거니까. 이제 일주일 뒤면 작업실에 들어간다. 지금 세입자가 사용하는 사무실은 우물형 천장에 벽지, 모조 대리석 데코타일이 깔려 있어 손댈 곳이 많지만 새 건물이 아닌 이상 보수하는 건 불가피하니 빠른 시간 안에 잘 끝내야겠다. 


50대를 바라보며 본격적인 작업실을 사용하는 건 크게는 두 번째고 아주 오래전 작은 소호 사무실까지 치면 5번 정도인 것 같다. 이제 단순히 디자인만 잘해서는 안 된다. 디자인을 잘하는 것과 장사를 하는 것의 경계. 그걸 잘 지켜내며 회사를 성장시키고 좋은 디자이너를 발굴하고 그들이 보람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더 좋은 가치를 위해 꿈꾸고 노력하는 회사. 궁극에는 이런 회사를 만들어 보고 싶다. 나중에 또 바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렇다. 야간작업을 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문득문득 작업실 생각이 난다. 좋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매번 방법은 있을 것이다. 그걸 발견하지 못할 때가 많아서 그렇지. 



오늘도 오늘도


다시 작업해야겠다. 오늘을 살아야 내일과 다음 주가 있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그 누구보다 2년여간 암투병으로 고생한 아내, 늘 곁에서 사랑 그 자체로 있어준 두 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가족과 함께 사무실 제2막을 시작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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