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이 주는 고마움과 기다림
무덥다. 여름 장마가 시작된다고 해서 비가 많이 내릴 줄 알았는데 남부지방의 물폭탄과는 다르게 중부지방은 가끔 소나기가 쏟아질 뿐 뜨거운 해와 찌뿌둥한 먹구름이 왔다 갔다 한다. 덕분에 습하고 무더운 날들이 지나가고 있다. 5월 중순부터 선풍기를 틀었던 것 같다. 집 안 공기가 잘 순환되지 않은 탓에 우리 집의 여름은 조금 빨리 왔다. 아내가 암으로 투병 중이라 쾌적한 환경을 만드려고 하는 이유도 있지만 어쨌든 우리 집 거실 선풍기는 에어컨이 켜져 있을 때를 빼고는 늘 켜져 있다. 어느 날 회전하는 선풍기가 참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고정되어 있었다면 참 불편했을 텐데 좌우로 움직여주는 덕분에 가족 모두가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있는 게 아닌가. 내게 바람이 오면 참 좋다가도 다시 옆으로 지나가면 그 잠깐이 아쉽다. 그래도 잠깐만 기다리면 다시 시원한 바람이 오니 그 아쉬움이 아주 크지는 않다. 좋은 건 지나가기 마련이고 다시 기다리다 보면 또 오는 것 같다. 좋은 건 내게 머물러 있지 않고 회전하는 선풍기 바람처럼 누군가에게 갔다가 다시 내게 돌아온다. 내가 시원할 때 누군가는 덥고 내가 더울 때 누군가는 시원하겠지. 선풍기가 오늘 말해준다. 조금 기다리면 바람이 불거라고. 좋은 날이 올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