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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석 Feb 02. 2022

새해 첫날, 영화 '세 자매'를 봤다.

아픈 상처는 없어지지 않는다.


새해가 밝았다. 매일의 해는 수평선, 지평선, 산등성이를 타고 넘나들었을 텐데 새해라 그런지 그렇게 세상을 비추던 해는 새삼스레 오늘도 밝게 비추었다. 사실 새해는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지금 말하는 새해는 구정 설이다. 1월 1일의 새해는 물리적인 새해이고 구정 설은 마음의 새해이다. 그래서 난 구정 설이 더 새해 같다.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로 냉동 피자를 데워 먹었다. 설이라 그런지 피자집도 문을 닫고 도너츠 가게도 문을 닫고 아울렛도 문을 닫아 잠시 드라이브를 갔다 이리저리 들렀다 허탕 친 우리 가족은 결국 집에 와 냉동실에 있는 냉동 피자 두 판을 먹었다. 피자를 먹기 시작했을 때 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 '세 자매'를 왓챠에서 찾아 틀었다. 첫째 '희숙', 둘째 '미연', 셋째 '미옥'의 이야기.


첫째 '희숙'은 소심하다. 늘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산다. 둘째 '미연'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살지만 속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셋째 '미옥'은 늘 술에 취해 사는 안하무인 작가다. 답답하고 폭발하기 일보직전인 내용이 쉼 없이 이어진다. 너무나 다른 셋이지만 또 너무나 닮은 세 자매다. 이 세 자매는 어릴 적 아버지의 폭력으로 각각의 상처를 안고 산다.


영화 말미 자매들의 울분이 토하던 장면에서 어릴 적 가정폭력을 늘 경험했던 우리 세 남매가 생각이 났다. 저녁 늦게 술 취해 들어와 단칸방에서 잠자던 우리 남매를 깨워 노래를 시키던 아버지. 노래를 듣다가도 우리에게, 어머니에게 느닷없이 화풀이를 했다. 큰누나가 많이 맞았다. 손으로 맞고, 근처에 잡힌 무언가로 맞고. 칼부림도 당했다. 어머니를 때리고 집안 집기를 부수는 날엔 우린 집에서 도망 나와 숨어 다녔다. 아버지가 죽으면 좋겠다고 매일 생각했다. 아버지만 없으면 우리 가족이 행복할 텐데. 술을 마시지 않은 대낮엔 나름 재미도 있는 아버지였다. 사람들에게는 나름 인기도 있었고 아버지 친구들 사이에서는 인기도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술 먹으면 거의 싸움으로 끝을 맺었지만. 바깥일이 풀리지 않아 속상한 일이 있을 때는 어김없이 우리 세 남매와 어머니가 화풀이 대상이었다. 가장 약하디 약한 어린애들을 우리 아버진 모질게 때렸다. 때리기만 했을까. 욕이란 욕은 얼마나 들었을까. 어머니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한 건 예사였다. 아버지의 그런 모습에 제일 많이 대들었던 큰누나는 참 많이도 맞았다. 그래도 막내였던 나는 누나 뒤에 숨어 이리저리 피해 다녔지만 맞고 있는 어머니를 차마 볼 수 없어 대들던 큰누나는 늘 아버지에게 맞았다. 아버지는 기억하고 있을까. 잊을 리 없겠지만 가끔 보면 잊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아니 기억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영화 세 자매 거의 마지막 장면에서 병원에 입원한 막내 남동생에게 셋째 '미옥'이 장난치듯 걱정하며 말하는 장면에서 어릴 적 내 모습과 누나가 생각나 마음이 무너졌다. 웬만해선 울지 않는 나인데. 너무나 서럽고 옛날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났다. 영화가 끝나고 아내가 울며 나를 안아줬다. 큰아들 지민이도 내 손을 잡으며 함께 울어줬다. 가족은 이런 건데. 이게 가족인데. 내 어릴 적 가족은 참 어둡고 슬펐다. 도피하고 싶었다. 하루빨리 집을 나가고 싶었다.


이제 나도 올해 마흔일곱이 됐다. 결혼을 하고 가장이 되고 아버지가 되니 아버지의 마음이 어땠을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하지만 이해가 됐다고 용서가 되지는 않는다. 다시 돌릴 수 없는 어린 시절. 기억들을 어떻게 바꿀 수 있고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한바탕 난리를 치던 밤. 그렇게 가족에게 모질게 굴었던 아버지는 깨끼(아이스크림)를 사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그리고 깨끼를 먹으며 서글프게 울었다. 우리를 안고선 미안하다 말했다. 그리고 며칠 후면 또 술을 먹고 때려 부수고 때렸다.


난 술을 아직도 잘 먹지 않는다. 사람들하고는 거의 먹지 않고 아주 아주 가끔 혼자서 맥주 한 캔 정도 하는 편이다. 술 먹고 온 집안을 뒤집던 아버지를 보며 난 절대 술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매일 생각했다. 술을 먹으면 나도 저렇게 될 거라고. 물론 담배도 피우지 않는다. 닮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를 하나도 닮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싫어했던 아버지가 얼마 전 뇌경색으로 병원에 입원을 했다. 아내도 암투병 중이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아프다고 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걱정도 되었지만 한편으론 약해진 아버지가 이제 우리 아픔을 좀 알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아내의 암투병으로 한동안 브런치에 글을 쓰지 못했다. 마음이 일어나지 않아서였다. 글을 써야 하는 동기도 시들어버렸고 써야 하는 마음밭도 아니었다. 몸과 마음이 힘드니 살아가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새해 첫날 세 자매를 보며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쓴다. 이 마음과 감정을 꼭 남기고 싶었다.


영화에서처럼 다 쏟아내면 좋을 텐데 다시 그런 불안한 시간을 겪고 싶지 않아서 우리 남매는 아버지 집에 가면 옛날 일을 다 잊은 것처럼 아버지에게 잘한다. 어릴 적 나쁜 기억은 없는 것처럼. 그렇게 같이 있다가도 문득문득 화가 난다. 아버지가 우리한테 어떻게 했는데. 아버지는 이렇게 자식들한테 잘 대접을 받고 있을까. 제일 많이 맞았던 큰누나가 아버지 걱정을 제일 많이 한다. 난 그게 참 싫다. 답답하다. 마음이 참 답답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아버지의 아버지부터 그런 걸까. 왜 난 그렇게 살아야 했을까. 왜 우린 그렇게 당해야 했을까. 지금이라도 아버지로부터 사과를 받고 싶지만 굳이 그 시절 이야기를 다시 꺼내고 싶지는 않다. 지금의 평화가 소중하니까. 그래도 꼭 언젠가는 사과를 받고 싶다.


아버지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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