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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석 Feb 14. 2022

기다림은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간

취나물 반찬 만들기를 실패하고서


오랜만에 마트에 가 장을 보는데 말린 나물이 비닐 포장에 깔끔하게 되어 있었다. 몇 가지가 있었는데 난 취나물과 가지를 선택했다. 아직 요리에 서툴다 보니 밑반찬을 잘 못 만들어 먹었다. 거의 고기 아니면 김치볶음밥, 미역국, 된장찌개 등 메인 요리 하나에 김치와 장모님이 주신 밑반찬이 전부였다. 아내가 아프다 보니 먹는 데 신경을 쓴다고 했는데도 아직 서툰 요리 실력에 만들어 먹는 것이 여간 부담스럽다.


그렇게 사 온 취나물과 가지는 며칠 동안 싱크대 위에 놓여 있었다. 사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요리는 아닌데도 익숙하지 않은 요리는 쉽게 손이 가질 않는다. 그렇게 외면하기를 며칠, 어느 날 밤 12시가 넘어서야 갑자기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검색해봤다. 어떤 사람은 3시간 정도 불렸다가 하라 하고 어떤 사람은 그냥 물에 잘 헹구고 씻은 후 꼭 짜서 볶으라고 한다. 마음이 급했다. 불리기도 애매한 시간. 언제 불려서 새벽에 요리를 한담. 일단 잘 씻고 꼭 짜서 요리를 시작했다. 들기름, 참기름, 국간장, 간 마늘 등을 넣으며 볶다가 맛을 봤다. 아차! 줄기가 너무 질겨 먹지를 못하겠다. 그제야 후회가 밀려왔다. 내일 할 걸. 잘 불렸다가 할 걸.


엎질러진 물은 담을 수가 없다. 그래도 잘 치워야 하지는 않겠나. 고민을 했다. 이걸 어떻게 할까. 다시 물에 불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물을 부어 볶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딱히 방법이 생각나질 않았다. 그렇게 요리가 끝난 후 한참 다른 일을 하다 문득 찌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구마, 만두 찌듯이 쪄야겠구나. 그럼 양념도 많이 날아가지 않고 줄기는 조금 부드러워지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했다.


다음 날 아침 생각한 대로 찌기 시작했다. 한참 보글보글 물이 끓는 소리가 난 후 다시 맛을 봤다. 오! 줄기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다시 좀 더 쪘다. 그리고 맛을 봤다. 먹을만하다. 불려서 요리한 것만큼 맛있지는 않은데 그래도 꽤 먹을만하다.라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아직 질기다. 결국 줄기를 가위로 다 잘라냈다. 작디작은 취나물에서 줄기를 잘라내니 이파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 절반의 성공이다. 기다리지 못해 취나물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가끔 급하게 일을 할 때가 있다. 조금 더 신경 쓰고 침착하게 하면 좋을 텐데 마음보다 행동이 앞설 때가 있다. 기다려야 하는 시간의 중요함을 잘 몰랐다.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좀 더 기다려야 했던 시간들. 후회됐던 일들 중 기다리지 못해 생겼던 일들.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너무 몰입하지 말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다면 어땠을까.


꼭 필요한 시간이 있다. 꼭 기다려야 되는 일이 있다. 그 시간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 시간은 언젠가 꼭 다시 돌아온다. 얼마나 단순한 진리인가. 매일 압력솥에 밥을 지으며 기다려야 하는 시간. 필요한 물건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시간. 어떤 시간은 잘 기다리는데 또 어떤 시간을 잘 기다리지 못한다. 익숙했던 시간은 잘 기다리지만 익숙하지 않은 시간은 잘 기다리지 못한다. 결국 그 시간의 맛을 보고 나서야 기다려야 함을 깨닫는다.


취나물이 땅에 심기어 자라는 시간. 농부가 수확해 판매하는 시간. 마트에 진열되어 팔리기를 기다리는 시간. 어느 손에 들리어 요리를 기다리는 시간. 그리고 물에 담가 3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시간. 모든 시간이 지켜져 내 손에 들어왔는데 결국 난 마지막 3시간을 기다리지 못해 오랜 시간을 거쳐 내게 온 취나물을 망쳐버렸다. 


기다림에 꼼수는 없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기 전에 내일은 오지 않는다. 결국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올 때 비로소 내일이 온다. 그 한 바퀴는 다시 제자리. 기다림은 다시 제자리로 오고 제자리를 찾는 시간임을 깨닫는다. 취나물도 말린 시간만큼 불려야 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말린 취나물이 다시 물에 불려져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간. 이 시간이 필요했다.


기다림은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간임을 배웠다. 취나물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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