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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석 Feb 17. 2022

지구에서 40대 그래픽 디자이너로 산다는 것은


어릴 적 연필을 잡을 때부터 그림이라는 매력에 빠져 무수히도 빈 종이에 끄적거렸다. 그림의 시작은 보고 그리기. 맘에 드는 그림을 열심히 보고 그렸고 거의 똑같게 그렸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희열이 있었다. 그래서 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아직까지도 그리고 있다. 예전엔 종이와 연필, 펜으로 그렸는데 요새는 아이패드를 사용한다. 가끔 컴퓨터에 연결해서 사용하는 태블릿을 이용할 때도 있고. 아무튼 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또한 그 그림의 연장선으로 디자인을 하고 있다. 그래픽 디자인. 이제 남의 것을 보고 똑같이 따라 작업하는 건 의미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되기에 나만의 것이라는 창작의 굴레에서 갈팡질팡 헤매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림이란 무엇인가.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보기 좋고, 기분 좋고, 오래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느끼고 싶고, 공감하고 싶은 것. 이게 내가 생각하는 디자인이고 그림이다. 창작자로 작가로서 그림을 그리거나 디자인을 하지 않기에 내게 직업이 되어 버린 그래픽 디자인은 늘 숙제다. 내가 원하는 것을 작업하기보다 남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야 하는 일이기에 늘 평가를 기다려야 하는 초조함 속에 살고 있다. 내 의도와는 다르게 받아들이고 나름 몇 수 앞을 보고 작업을 한다고 하는데 한 수는커녕 마이너스 몇 수를 기대하는 이들로 인해 디자인 작업은 점점 잘 넘겨 소화해야 하는 고된 일이 되어 버렸다. 소화제는 딱히 없다.



아주 가끔 내 작업을 할 때면 디자인을 업으로 하는 습성이 남아서 자유롭게 생각하거나 창의적인 무언가를 표현하는 게 힘들 때가 종종 있다. 늘 컨펌을 받아야 하는 직업의 흔적이 '자기 검열'로 남아 빙글 뱅글 제 자리를 맴돈다. 어떤 때는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할 때도 있다. 남이 주는 콘텐츠를 만드는 데는 익숙해져 있는데 내 콘텐츠를 다듬어 디자인으로 표현해야 할 때는 오히려 어떻게 해야 할지 버벅거릴 때가 많다. 타인의 시선과 니즈에 익숙해져 정작 내 시선과 니즈는 잃어버리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일을 해야 하고 작품을 만들어야 하고 거기서 수익 창출을 해야 하는 삶의 원초적인 행함 앞에 40대의 그래픽 디자이너는 오늘을 겨우 겨우 넘긴다.


멋진 디자이너로 살아야  텐데. 최소한 자식들에게 그런 아버지로 기억되어야  텐데. 대한민국에서 아니 지구에서 40 그래픽 디자이너의 일상은 쉬이 풀리지 않는다. 언젠가 볕이  드는 사무실을 마련하고 싶은 마음은 마치 로또 1 첨을 꿈꾸는 것처럼 희망과 실망의 반복 속에 잡히지 않는 무언가로 저 한 구석에 쌓여있다. 그래도 꿈을 내려 놓을 수는 없다.  허황됐던 숱한 꿈들이 다시금 돌아보면 이미 누리고 음을 아니까.  한숨 쉬고 다시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횡설수설하는 글로 오늘을 마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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