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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석 Mar 19. 2022

내 머리를 믿지 마세요

믿을 건 손가락뿐


내 머리를 믿으면 안 된다. 안 되는 거였다. 몇 번 되뇌고 잊어버리지 말아야겠다고 아무리 다짐을 해도 하루 저녁이면 잊어버린다.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나는 그렇다. 이런저런 핑계로 브런치를 소홀히 했다. 뭐 열심히 한 적도 없지만서도. 아무튼.


가끔 길을 걷거나 운전을 할 때, 혼자 있을 때, 이 생각은 꼭 글로 남겨야지 하는 것들이 있다. 어제가 그랬다. 잠깐 동네를 걷다가 아! 이 생각은 꼭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글을 쓰기 위한 억지스런 생각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그런 생각이면 글을 좀 길게 쓸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무튼.


잊어버렸다. 생각이 안 난다. 도대체 어떤 생각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기억이 나는 건 내가 어떤 생각을 했다는 것과 그걸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몇 번 반복해서 말을 했다는 것이다. 메모장에 적어야 했는데 내 머리를 믿었다. 감히 내 머리를 말이지. 오늘 다시금 깨달았다. 세상에 믿을 머리 하나도 없다고.


오늘 글은 써야 할 글을 쓰지 못해 쓰는 글이다. 변변치 않은 내 브런치이지만 그래도 나름 책임감을 가지고 꾸려나가려고 끙끙댔는데 기어이 생각을 잘 정리해놓지 못해 이런 변명의 글이나 쓴다. 해프닝이 때론 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안일한 생각을 하며 염치없게 글을 적는다.



나이가 들며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몸은 점점 느려지고 둔해지는데 생각은 깊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깊어진다는 뜻은 성찰의 느낌보다는 숙성의 느낌이다. 큰 깨달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래되어 자연스레 생기는 깊은 맛 같은 것이다. 그런 걸 느낀다. 예전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나이를 먹어 가니 보이고 예전엔 생각지 못 했던 것들이 생각이 난다. 그게 지혜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생각 많은 사람에게 생각이 더 해졌으니 머리가 좀 복잡하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몸이 좀 피곤하다. 


피곤함은 비단 거기에서만 오는 건 아닌 것 같다. 몸은 기가 막히게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지금이 2월인지 3월인지 4월인지 순간 헷갈릴 정도로 정신없이 살아가지만 몸은 나도 모르게 계절의 바뀜을 감지하고 쑥덕거린다. 봄이 오네. 봄이 온다. 몸 여기저기서 겨울을 벗어버리고 봄을 준비하려고 아등바등한다.


계절이 바뀔 때 즈음엔 이상하게도 낮이 무겁다. 더불어 눈꺼풀도 무겁다. 노곤노곤 피곤피곤한 몸이 온종일 버겁다. 오늘도 여지없이 낮에 졸음이 쏟아졌다. 급한 잠을 해결하려고 잠깐 소파에 누웠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될 일들이 잠과 꿈 사이를 하도 헤집어 놓는 바람에 누운 지 얼마 안 되어 멍하니 일어났다.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수정해야 할 디자인 작업을 마치고 둘째 아들 하교시키러 차를 끌고 학교로 갔다. 그 후 저녁 준비, 큰 아들 하교 픽업 등등을 마치니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것 같다. 자꾸 눕고만 싶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몸이 달팽이처럼 느릿느릿하다.




예전엔 가끔 기억해야 할 것들을 몇 번 꾹 저장해놓으면 한동안 잊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환절기 때문인지, 그냥 머리가 나빠서인지 요새는 기억이 오래가지 않는다. 메모의 습관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나중을 위해서라도 손가락을 조금 피곤하게 해야겠다.


날이 꽤 춥더니 일기예보에서 비가 온다고 했다. 그런데 다시 보니 눈으로 바뀌었다. 새벽 2시부터 눈이 온다고 했으니 예보가 맞다면 지금쯤 눈이 내리고 있겠다. 이제 눈이 진짜 내리나 보러 가야겠다. 새벽 가로등에 비치는 고요한 눈은 보고만 있어도 흐뭇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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