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석 Mar 20. 2022

미역국은 누가 먹어야 하나

모두가 주인공


며칠 전 둘째 유민이 생일. 이른 아침에 미역국을 끓였다. 등교하기가 버거워 힘겹게 일어나는 아이들이었지만 이날은 막내 생일이라 모두 일찍 일어났다. 그렇게 낯선 아침밥을 먹었다.

유민이가 태어난 16년 전 그날은 기적이 일어나기도 했고 절망이 시작되기도 한 날이었다. 신촌 세브란스에 입원한 지 하루만인 다음 날 아침 의사가 위험해서 더 기다릴 수 없으니 수술하자고 했다. 그리고 급히 들어간 수술실. 얼마 뒤 의사와 간호사 세네 명이 수술실에서 나와 이동식 인큐베이터를 붙잡고 뛰듯이 내 눈앞을 쌩하고 지나갔다. 순간 내 아들임을 느꼈다. 분명 유민이었다. 그리고 신생아 집중 치료실에 들어간 유민이는 작고 약한 몸으로 살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얼마나 사투를 벌였는지 모른다.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유민이는 894g의 몸무게로 8개월 만에 태어났다.

유민이가 그렇게 힘겨운 시간을 견디고 싸우고 있을 때 몸조리해야 할 아내는 바로 다음 날부터 유민이 면회를 하기 시작했다. 젖을 주고 싶었지만 줄 수 없는 환경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젖을 말렸다. 아기에게 젖 한 번 못 물려보는 것이 참 미안했고 고통스러웠다. 아내는 엄마였다. 첫째 지민이를 키울 때도 엄마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삶이었지만 유민이를 낳고서 아내는 또 다른 엄마가 되어야만 했다.

며칠 전 그 아침 생일상에서 유민이에게 미역국은 사실 엄마가 먹어야 하고 유민이는 엄마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말해줬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가족 모두 유민이도 미역국을 먹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걸 안다. 지민이도 나도. 유민이로 인해 그 시간은 우리 가족 모두의 생일이 되었다.



다행히 미역국이 잘 끓여졌다. 너무 잘 만들고 싶어 푹 끓이다 보니 조금 짰지만 그래도 우리가 그날을 다시 말하며 감사하며 먹을 한 끼 식사로는 충분했다. 생명을 품고 사랑으로 기른 아내에게, 동생의 아픔을 곁에서 묵묵히 지켜보며 마음으로 함께한 지민이에게, 서투른 아빠로 살아가며 담담했던 척하던 나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며 함께하는 유민이에게 정말 수고했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내 머리를 믿지 마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