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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캔줌마 Nov 12. 2023

5. 시험문제가 꼭 공부한데서 나오지는 않는 현실

부사장, 크라운&브릿지 팀 매니저, 후임 매니저 세 사람이 나를 에워쌌다.

알고보니 현직 크라운&브릿지 팀 매니저가 두달 뒤 은퇴 예정이었고, 후임으로 채용된 매니저가 인수인계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후임 매니저가 나를 부사장에게 데려갔고 또다른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실무진 인터뷰였다. 부사장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무슬림 남자인데 꼭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에 등장하는 악한 마법사 자파같이 생겼다.

"캐나다 느낌이 어때?" 

이런 small talk이 시작되었고 나는 최대한 열의를 보이려고 묻지도 않은 질문과 답을 스스로 하였다. 

"난 사실 여기 인터뷰 오면서 유일한 궁금증이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나 노하우 공유 세션 같은게 있는지 였는데 아까 HR담당자 설명을 들으니 그런게 있는거 같더라."

"되게 많아~." 부사장이 답했다.

은퇴를 앞둔 매니저는 전형적인 백인 할아버지였고, 젊은 후임 매니저가 알고보니 한국인이었다. 꽁지머리를 한 외모를 보고 그냥 동남아 아시아 어느 나라 출신이려니 했었는데 알고보니 한국인 1.5세였다. 이 사람이 나를 아래층에 있는 세라믹 파트 작업실로 데려갔다. 세라믹실은 위의 시끄러운 공장분위기와는 달리 차분하고 조용했다.


치기공에서 세라믹 파트에서는 도자기 가루(포세린 파우더라고 부른다)반죽을 약품으로 적셔 세필붓으로 쌓아올려 치아모양을 만들어(이걸 빌드업 한다고 한다) 소형 가마(퍼네스라고 부른다)에 구워서 만드는 부서로 제작 공정 중 가장 뒷부분에 있다고 보면 된다. 먼지 등이 들어가면 안되고, 재료가 외부 요인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세라믹 파트는 보통 기공소 안에서도 먼지가 많은 곳들과는 떨어져 있다고 한다. 공정 제일 마지막에 있기 때문에 늘 마감시간에 쫒겨 야근이 잦기도 하다.

나도 1달 반 수강 후 하루 진행했던 워크샵에서 세라믹으로 치아를 딱 한 번 만들어보았는데 재미 있었다. 기공소 내의 여러 포지션들 중 가장 연봉이 쎈 파트라 경쟁도 많고, 아무나 하고 싶다고 신입이 쉽게 들어갈 수 있는 파트는 아니다. 경력이 좀 쌓인 후 기회가 되면 도전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쪽이었다.


'난 캐드 디자이너 지원했는데 왜 일루 날 데려오지?' 생각했다. 그런데 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후임 매니저가 치과에서 의뢰된 실제 케이스인것으로 보이는 것들을 3개 주면서 아래쪽 반쯤 갈린 80대 노인 것 같은 앞니와 또다른 어금니는 세라믹 빌드업을 하고, 지르코니아(치아 만드는 재료 중 하나) 어금니 하나는 글레이징(광내기)을 하고나서 스테이닝(색 입히기)을 하라는 것이다.

      뭐.라.고?


나는 어젯밤까지 전기조각도 싸온걸로 왁스업이랑 컴퓨터로 캐드 연습을 했는데 세라믹 빌드업에 스테이닝을 하라고?

도착해서 시간까지 기다리며 차에서도 왁스업 동영상 보고 왔는데 세라믹 빌드업에 스테이닝을 하라고?

내가 분명히 이력서에 CAD/CAM Designer라고 써서 제출했는데 세라믹 빌드업에 스테이닝을 하라고?

내가 그거 학원에서 배울때 상악 incisor(윗쪽 앞니) 한번 해 본게 다인데 하악 incisor(아랫쪽 앞니)와 molar(어금니) 세라믹 빌드업에 스테이닝을 하라고?

수업 때 한 번 해 본것 이후론 굽다가 터진거 메우느라 학원에 하루 더 간거 말고는 연습도 따로 한 적이 전혀 없는데 세라믹 빌드업에 스테이닝을 하라고?

신입한테는 세라믹 파트 기회는 안오는 걸로 알고 연습도 한 적이 없는데 세라믹 빌드업에 스테이닝을 하라고?


사실 세라믹은 연습을 개인적으로 할 수도 없다. 가마에 구우며 만드는 건데 가마와 가마에서 배출되는 유해가스를 빨아들이는 시스템을 개인이 갖출수도 없다


지르코니아 스테이닝은 한번도 해 본적이 없는데 지르코니아 글레이징에 스테이닝을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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