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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캔줌마 May 27. 2023

프롤로그

엘제아르의 떡갈나무

따로 계산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따져보니 학생들에게 미술, 만화, 애니메이션 등을 가르쳐 온 것이 대학원시절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캐나다에 건너와 살고 있는 지금까지 20년 이상 이어져 오고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참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러다가 캐나다에 건너와 살게 된 지금. 또다시 이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식(?) 미술교육은 캐나다에 계신 한국인 부모들에게 더욱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 같다. 우리 한국인 부모들은 어떤 분야든 단순히 즐기기보다는 그 원리와 이치를 깊이 있게 습득해서 어디에선가 그 배움의 결과를 성과로서 거두려는, 한마디로 ‘써먹어야 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학교 수업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든, 대회에서 수상하여 이력서에 수상경력을 뽐내든 말이다. 그렇다 보니 아무리 서툴러도 “Awesome!”을 연발해 주는 캐나다식 교육에 한편 답답함을 느끼기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제대로’ 가르치려면 ‘한국 선생님’을 찾아야 한다는 부모님들도 적지 않다.

아이에 대한 피드백이나 엄마가 궁금한 것을 한국말로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덤이다. 한국식 교육이 우월하냐, 캐나다식 교육이 우월하냐는 문제는 차치하고, 그런저런 이유로 한국인인 미술선생님인 나를 찾아 아이들을 맡겨주시는 부모님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학원 이름은 <엘제아르의 떡갈나무>.

캐나다 온타리오주 런던에서 한국인 커뮤니티에 생긴 1호 어린이 미술학원이다. 와. 이렇게 써놓고 보니 뭔가 대단한 업적 같다. 사실 여기에선 아직도 한인 커뮤니티 1호 업소가 될 만한 분야가 많다. 그만큼 한국인 미개척 분야가 많다.

엘제아르는 뭐고, 떡갈나무는 뭐냐.

엘제아르는 캐나다의 거장 프레드릭 백(Frédéric Back)의 단편 애니메이션 <나무를 심은 사람>에 등장하는 주인공 나무 심는 남자 엘제아르 부퓌에(Elzéard Bouffier)의 이름이다. 그리고 이 엘제아르 아저씨가 심는 나무가 바로 떡갈나무이다. 이 이야기는 프랑스 소설이 원작인데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오스카 상을 수상하며 세상에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엘제아르 아저씨가 한 땀 한 땀 심은 도토리들이 수년 후 죽음의 땅에 생명을 불어넣는 떡갈나무 숲으로 변한 것처럼. 우리 도토리 같은 아이들이 예술가로서의 꿈을 키워 떡갈나무가 되는 공간! 그것이  <엘제아르의 떡갈나무>라는 이름의 비밀이다.

이렇게 큰 뜻을 품은 학원 이름을 만든 나의 노력과는 별개로 역시 걱정하던 일은 일어나고 있다. 학원 이름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슬프지만 예상했던 일이다. <떡갈나무>라고만 기억해 주셔도 감지덕지.


미술 학원을 열기 위해 상가를 임대했느냐. 그렇지는 않다.

학원은 바로 우리 집 지하의 스튜디오 공간이다. 2층으로 된 주택이 가장 일반적인 가족단위 주거 형태인 캐나다에서 그 지하공간은 주로 ‘패밀리룸(Family Room)’으로 사용된다. ‘패밀리룸’은 가족들이 모여서 함께 영화를 보거나, 보드게임을 하거나, 당구 같은 게임을 하는 레크리에이션 공간이다. 어떤 사람들은 한구석에 미니바를 만들어두기까지 한다. 나는 이 공간에 내 책상과 미술 작업실을 꾸미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나에게 지하 스튜디오는 오전 일찍부터 저녁까지는 재택근무(참, 나는 애니메이션 회사 소속으로 일을 하는 직장인이기도 하다)를 하는 오피스이자, 근무가 끝난 후 저녁시간에는 아이들이 몰려와 미술을 배우고 가는 미술 작업실이자, 주말에는 빨래를 하고 건조하는 세탁공간(지하 공간의 한쪽에 있는 문을 열면 세탁기와 건조기가 나타난다)이다. 직장인이자, 미술선생님이자, 주부인 나의 정체와 이 지하공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나는 기꺼이 일주일에 7일, 하루 중 휴식과 잠자는 시간을 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앗, 그러고 보니 짬짬이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채널을 위한 촬영도 이 지하에서 한다.


캐나다로 이주한 어떤 이는 아침마다 록키 산맥을 보며 출퇴근을 한다고도 하고, 자연경관을 누리며 온갖 국립공원들을 섭렵하며 원 없이 캠핑을 한다고도 하는데... 살~짝 워커홀릭 증상을 보이고 있는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꼬박 이 반지하 공간에 틀어박혀 있다.

안 되겠다. 노트북을 들고 당장 패디오(patio)로 올라가 볕이라도 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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