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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캔줌마 May 27. 2023

캐나다에 온 아이들. 그 언어 현주소

미술학원에 상담하시는 부모님들이 때때로 수업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는지, 영어를 사용하는지 물어보시는 경우가 있다. 아이들의 언어사정이 다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학원에 오는 아이들의 언어 상황들을 보면 캐나다에 와서 살고 있는 한국 아이들의 다양한 ‘언어 현주소’를 알 수 있다.


Grade 2 (한국의 초등 1학년) 때부터 미술학원에 온 J는 이제 Grade 3이 되었다. J는 Grade 2 때는 주로 한국어로 이야기하고, 영어 문장을 만들기는 하지만 모르는 단어가 많아 한국어 단어를 섞어가며 말하곤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학원에 들어서면서부터 간단한 인사부터 영어를 시작한다. 한국말로도 대화를 잘 하지만 영어가 훨씬 더 편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학년에 캐나다에 왔고, 온 지 2~3년 정도 된 A와 S는 이미 또래 친구들과는 영어로 대화한다. 이미 영어가 더 편한 상태가 된 것이다. 이 아이들의 부모들은 이제 아이가 한국어를 잃어가는 것을 걱정한다. 나이가 어릴수록 영어를 굉장히 빨리 배우지만 그와 같은 속도로 한국어를 잃어가기 때문이다. 7살에 캐나다로 온 H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수개월만에 한국어를 말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캐나다는 영어 하는 나라인데 영어를 잘하면 됐지 한국어를 못하는 게 뭐가 대수냐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의 한국어 상실은 영어를 원어민처럼 따라갈 수 없는 부모세대와의 소통의 단절을 의미한다. 가족이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되는 것이다. 호주 유학시절에 만난 어떤 젊은 엄마는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아이를 한국 친정에 데려가 1년 이상 살다가 오기도 했다. 아이가 커가며 영어가 점점 유창해지는데 자신은 아이가 하는 영어를 점점 따라잡을 수 없어지니 두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초등 고학년으로 가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Grade 6(한국의 초등 5학년) 정도에 캐나다로 건너온 어떤 아이들은 3~4년을 캐나다에서 살며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영어 때문에 힘들어한다. 특히 언어에 강한 여자아이들의 경우 더욱 그렇다.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언어에 강하면 새로운 언어도 더 빨리 습득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면 언어에 강하기 때문에 이미 한국어의 체계가 머릿속에 성인만큼이나 강력하게 자리 잡혀있고, 그런 만큼 파악할 수 없는 외국어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강한 것이다.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한국어 수준으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크다. 반면, 스포츠 활동 등 몸으로 노는 남자아이들은 비교적 언어 스트레스에서 자유롭다. 심지어 자기가 영어를 잘한다고 착각하는 귀여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 남자아이들이 농구를 하며 구사하는 언어의 수준이라는 것은 여자아이들이 수다를 떨며 해야 하는 말에 비하면 얼마나 단순할지는 상상에 맡기도록 하겠다)


어쨌든, 이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성인들처럼 이런 상황을 인내심 있게 받아들이고 참아내기에는 마음이 아직 연약하다. 안타깝지만 이렇게 사춘기 시절에 겪는 이러한 좌절감은 아이들의 자존감에 꽤나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열심히 성실하게 학교 생활을 하며 버티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속에도, 등교 거부를 하며 현실 도피를 택하는 아이들의 마음속에도, 영어라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영어권 국가에서 자신들은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백인 친구들을 제치고 주류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패배감도 이미 살짝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짠하다. 부모들만큼이나 힘겹게 적응하고 있다. 물론 이런 이유로 1.5세들이 캐나다 사회에서 패배자가 된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이러한 언어문화적 핸디캡을 극복하고 성공하는 이민자 자녀들도 많다. 다만 그러한 패배감을 극복하는 것까지가 이 아이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민 1세대들은 어떨까. 이들에게 언어문제는 영원히, 죽을 때까지 극복하지 못하는 과제이다. 나는 이러한 상황을 요약적으로 ‘언어 장애인 된다’라고 표현한다. 정상인에서 ‘(언어) 장애인’이 된 (그러나 장애 등급을 받아 누리는 혜택은 없는) 이민 1세대들의 고군분투야 말해 무엇하랴.

이민 1세대로서 영어권 국가에 살면서 ‘언어를 반드시 정복하겠다’라고 결심한다면 좌절과 실패 그리고 포기는 당연히 수순이다. 두뇌가 비상한 특정 소수를 제외하면  불가능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원어민처럼 영어를 하는 것은 평생 불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언어 장애인’이라는 것을 인정했을 때 우리는 새로운 가능성 앞에 설 수 있다. '어제보다는 발전된 오늘'. 어제는 몰랐던 단어 하나를 오늘 영어로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은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매주 금요일 수업은 수다쟁이 저학년 아이들과 영어로 떠드는 날이다. 이 아이들에게서 오늘 새로운 slang을 배웠다. 한국이나 캐나다나 줄임말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이들의 재능인지 이런 것도 줄여서 말하는지 몰랐다. NOYB가 뭔지 아시는 분~?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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