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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캔줌마 May 31. 2023

파는 사람이 갑. 캐나다의 사교육

토론토의 영스트리트(Yonge St.) 같은 곳을 지나다 보면 한국어로 ‘OOO학원’이라고 적힌 간판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런던 같은 중소도시에서는 이런 ‘학원’이 흔하지는 않다. 피아노, 바이올린 등 대부분의 사교육은 개인들이 하는 1대 1 튜터링 즉 과외의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보통 선생님의 집이 그 교습 장소이다. 물론 최근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영어, 수학 등의 학교공부를 위한 과외는 대면수업보다는 화상회의 툴을 이용한 원격 수업이 많아졌다.

학원 차가 아이들을 태우러 학교 앞에 줄을 지어 대기하는 모습도 전혀 볼 수 없다. 이곳 런던에도 '학원'이라는 타이틀로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교습소들이 있긴 하지만 아이들을 실어 나르는 것은 학교의 스쿨버스를 제외하면 온전히 부모들의 몫이다. 대중교통이 취약한 중소도시에서는 이러한 이유로 자동차가 없으면 아이들의 생활까지 타격을 입는다. 학교에서 가깝게 살아 걸어 다니지 않는 한 학교에서 방과 후에 진행하는 스포츠팀 활동조차 하교를 위한 스쿨버스 시간을 당연히 놓치게 되므로 부모가 따로 픽업하러 올 수 없다면 아이는 활동을 포기해야 한다.

그래도 체육 분야에서는 그룹지도의 형식으로 시설을 갖춘 사업자가 선생님들을 고용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테니스, 수영, 체조 등인데 아마도 이들 스포츠는 꽤 많은 자본을 투자하여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는 특성 때문에 개인적으로 지도하기에는 실질적으로 어려워 사업자가 강사들을 고용하는 듯하다.


이곳에도 캐네디언들이 운영하는 미술학원이 있다. 직접 가 본 것은 아닌데 우리 학원에 등록하는 아이들이나 부모님들을 통해서 전해 들었다. 한 수업에서 정원이 열댓 명이었다고 하니 분명 학원의 형태이다. 하지만 선생님이 아이들의 그림에서 어려운 부분을 도와주거나 직접 시범을 보여주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그저 무엇을 하라는 주제만 주고 아이들이 알아서 그리게 하는 방식이어서 대상을 시각화하는 테크닉이라든지 조형원리에 대한 배움이 목마른 아이들(그리고 부모님들)은 이 ‘한국선생님’을 찾는다.

또 학원 등록이 한국처럼 월 단위가 아니라 분기 단위이기 때문에 3-4개월치의 수업료를 한꺼번에 지불해야 하고, 개인 사정으로 결석을 할 경우 보충수업을 해 준다든지 하는 배려는 전혀 없다.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 결석을 하게 되면 그냥 수업료를 날리는 것이다.


학원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이것이 더욱 합리적으로 보인다. 분기별로 안정적인 매출을 가져갈 수 있고, 그에 따른 인력 배치도 합리적으로 할 수 있다. 게다가 등록자들의 결석은 등록자들 본인이 수업 참석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고 공급자 쪽에서는 이미 약속한 인력과 공간을 투입한 것이므로 그에 대해 보상해 줄 의무는 사실상 없다. 하지만 학부모님의 입장에서는 수업 등록에 몇백 불(몇십만 원)의 목돈이 한꺼번에 드는 부담스러운 상황인 데다 그때그때 발생하는 개인적인 상황들도 전혀 배려받을 수 없다. 이런 것들을 보면 캐나다는 역시 공급자 중심으로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아마 인구가 적어서 이렇게 되었겠구나 짐작해 본다.


이러한 공급자 중심 서비스 문화에 대한 첫 번째 충격은 내가 호주 유학생활을 막 시작했던 2011년이었다. 금요일 오후 영어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니 내가 사는 멜버른 시티 한복판 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난 상태였다. 나는 10층을 걸어 올라가야 했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대로 토요일, 일요일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 학교에 갈 때에도 10층에서 걸어 내려가야 했다. 월요일에 학교를 마치고 오후에 귀가해보니 엘리베이터가 작동하고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 30년 이상을 살면서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멈췄던 경우 반나절 이상의 시간을 기다려 본 적이 없었기에 이런 3박 4일의 엘리베이터 정지사건은 매우 낯선 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기다림의 시간보다 더욱 낯설었던 것은 그 일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었다. 아무도 불평하거나 짜증 내는 사람이 없었다. 계단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특유의 농담을 건네기까지 했다. 주말에는 모두 일을 하지 않으므로 그들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내가 한국에서 누려왔던 편의가 누군가의 주말, 누군가의 퇴근 후의 휴식을 희생하는 대가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더불어 내가 그런 직종에 종사하고 있다면 나의 주말, 나의 퇴근 후 휴식은 언제나 방해받을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도 학원을 캐네디언 방식으로 운영하면 참 편하겠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그때는 이미 늦었다. 한국식으로 운영을 시작한 다음이었다. 내가 받아본 서비스가 그랬으니 나도 당연히 그대로 했던 것이다. 이곳에서 캐나다식, 한국식을 둘 다 경험해 본 한국 사람들에게는  한국식의 서비스가 경쟁력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조금 더 소비자를 배려하는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한국식과 캐나다식. 어떤 것이 더 우월하다, 더 선진적이다, 쉽게 말할 수는 없다. 그런 관습과 시스템을 가지게 된 데에는 그 사회만의 환경과 특성이 작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눈높이가 소비자를 더 배려하는 형태에 맞추어져 있는 것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한편, 치열한 경쟁 속 한국에서의 삶에선 내가 “내가 쉬고 있다면 당신도 쉴 시간이지요”라는  ‘역지사지’의 마음 따위는 전혀 없이 살았구나 생각하게 된다. 흔히들 캐나다인이나 호주인들을 보며 삶에 여유가 있고 인내심이 많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며 특별한 인성을 가진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그저 나의 휴일이니 남들에게도 휴일이려니 생각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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