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캔줌마 Jun 01. 2023

캐나다 집 구하기 어려운 이유

돈을 낸다는데도 집을 안 줘?

우리 동네에는 유학생의 자녀에게는 학비를 받지 않는 이른바 '자녀 무상 교육'의 혜택을 위해 캐나다에 오신 유학맘들의 자녀들이 많이 있다. 이분들이 캐나다행을 준비하며 처음에는 돈이 있으면 집을 구하는데 큰 문제가 없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한다. 그러다가 커뮤니티 등에서 집 구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살짝 멘붕에 빠져 나의 유튜브(캔줌마 TV) 댓글 등을 통해 질문을 하기도 한다.


https://youtu.be/oekZn7 YWySw



돈을 낸다는데도 집을 안 줘?

가격만 맞으면 당장 계약이 가능한 한국 부동산 거래의 상식을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나도 호주에서 유학생활 중, 친해진 아시아계 친구들과 함께 닭장 같은 초고가 시내중심의 아파트를 벗어나 시외곽의 넓은 주택을 렌트해서 함께 월세를 분담하며 인간답게 지내자고 의기투합했었다. 거의 6개월간 오픈하우스에도 참여하고, 리얼터에게 신청서도 제출하기를 반복했지만 아무도 우리에게 집을 빌려주지 않았다. 수개월만에 끝내 포기했기 때문에 유학생활이 끝날 때까지 닭장 아파트를 벗어나지 못했었다. 시내의 아파트들이야 당연히 세입자를 유학생이나 직장인 등 임시로 머무는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한 주거지였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지만 소위 주민(local people)들이 사는 주거를 위한 동네는 다른 얘기였다. 1년 이상 성실하게 시내 한복판 아파트의 초고가 렌트비를 납부한 이력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가족단위의 주민들이 사는 주택지역 렌트는 근본을 모를 아시아계 유학생들에게 굳게 닫힌 문이었다.


영어권에서 이민이든 유학이든 초기 정착 시 집을 얻고, 직장을 얻는 등 그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첫 발을 내딛는 과정에서 항상 발목을 잡는 것은 레퍼런스, 즉 나의 신용을 보증하기 위한 증인이다. 그 나라, 지역에서 내가 집세를 떼먹지 않고 성실하게 낼 사람이라는, 혹은 직장에서 문제를 일으키 않는 성실하고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야기해 줄 증인이 필요하다. 이것은 우리가 이방인이기 때문에 못 믿어서 이방인들에게만 요구하는 차별적인 것은 아니다. 캐나다든 호주든 이 나라에서는 누구냐를 막론하고 익숙한 문화이다. 그런데 이런 곳에 처음 온 사람들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처음 왔기 때문에 제대로 아는 사람도 없고, 그 나라에서 뭔가를 한 적이 없는데 히스토리와 증인을 레퍼런스를 내놓으라며 이게 없으면 당신을 못 믿어 월세도 안 주고, 일자리도 안 주겠다고 한다. 이런 것을 보면 영어권 국가들이 이방인에 대해 한국보다 훨씬 폐쇄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집을 렌트하려고 하면 기본적으로 집세를 낼 경제력이 있는 사람인지 파악하기 위해서 직장정보와 월급 명세서 등의 정보를 요구받는다. 정말 그 직장에 다니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직장 동료의 연락처를 또, 집세를 밀리지 않는 신용이 있는 사람인지 알아보기 위한 확인에 협조하기 위해 이전에 살았던 월세집의 주소와 집주인의 연락처를 적어서 내야 한다. 범죄가 벌어질 경우를 대비해서인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의 연락처도 요구하고 만약 아직 직장이 없다든지 유학생이어서 수입이 없다면 재정 보증인(Garantour)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 보증인은 계약자가 집세를 못 낼 경우 대신 낼 사람이다. 집주인은 이런 사람들에게 실제로 전화를 걸어 물어본다. 같은 문화권의 사람이라면 좀 덜 할 수도 있는데, 백인들이 아시아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우리가 흑인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기 때문에 정착 초기 “같은 한국사람”으로서 선배 이민자들의 배려는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가 되기도 한다. 한국 사람들은 한국에서의 경험으로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집세를 잘 낼 것이라고 믿는다.


나의 경우 캐나다에 오자마자 취업이 되었고, 이후 집을 구할 때까지 그 회사에 다니고 있던 친절한 한국인 동료의 아파트에서 방하나를 빌려 룸렌트를 했다. 그렇게 생활한 지 석 달쯤 되어 같은 아파트의 다른 호수로 렌트를 구해 이사를 들어갔다. 나의 경우는 직장이 있었고 친절한 한국인 동료가 까다로운 관리인에게 나를 자기의 친척이라고 말을 해주어 수월했다. 아파트 회사에서는 의 회사 이름, 연락처, 전화번호, 주소, 월급명세서, 같이 일하는 동료의 이름과 연락처, 또 친구의 이름과 연락처 등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런 것 보다도 마귀할멈 같던 관리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그 한국인 동료가 나를 친척이라고 거짓말해 줬기 때문에 쉽게 성사된 것 같다. 그렇게 거짓말까지 해 준 것은 웬만해서 안될 것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에 같은 회사에 다니던 루마니아 출신의 동료가 그 아파트에 들어가고 싶어 여러 차례 관리인과 통화했지만 특유의 악센트만으로도 이미 탈락인 것 같았다. 악센트만 듣고도 이민자, 즉 이방인임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관리인이 이유도 대지 않고 만날 약속조차 해 주지 않았다고 했다.

시골로 갈수록 이방인에 대한 불신이 더욱 심하다. 살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다 보니 알게 된 것이 기본적으로 아파트는 관리인들의 갑질이 대단한 것 같았다. 자기 집이 아니기 때문에 더 열심히 세입자를 유치한다고 해서 자기 월급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니 굳이 친절하지도 않았다. 캐네디언이라고 다 친절한 게 아니었다! (당연하겠지만) 여러분들의 정착을 도와드리다 보니 여러 관리인들을 만났는데 가끔 성실하고 친절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놀라울 따름이었다.


자 그렇다면 초기 정착 시 캐나다 신용, 히스토리, 레퍼런스가 없는 상태에서 집을 구하려면 어떤 방법들이 있을까? 가능한 방법을 쥐어짜보면 이렇다.


1. 한국사람이 주인인 집을 찾아 렌트를 얻는다.

한국사람들끼리는 그래도 현지의 히스토리나 신용이 없어도 서로 믿고 거래하는 편이다. 교민들은 캐나다에 갓 넘어왔기 때문에 캐나다 신용이나 레퍼런스가 없는 상황이지만 한국 사람들은 성실하게 월세를 지불할 것이라는 것은 믿는 편이다. 자신들도 그랬기 때문일 것이다.


2. 1년 치 혹은 6개월치 월세를 일시납 하면 신용이나 레퍼런스가 없어도 받아주는 곳이 있으니 수소문한다.

신용 대신 돈을 담보하는 것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내가 직접 렌트를 얻었던 것은 아니고 정착을 도와드리면서 그런 집을 구해드린 적이 있다. 집주인은 팬쇼 칼리지에 다니는 교직원이었는데 중동사람이었다. 원래는 디파짓(보증금) 1달치 월세 + 첫달치 월세를 내고 들어가 살기 시작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경우는 6개월치, 1년 치를 받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일시납을 이렇게 많이 요구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한다. 하지만 집주인이나 아파트 회사 측에서는 “본인이 자발적으로 원해서 지불한다”는 서류에 세입자를 서명하게 하고 법을 피해 간다. 이것이 싫다면 계약은 무산된다. 그런데 캐나다 신용이나 레퍼런스가 없는 상태에서는 이렇게라도 해주는 곳이 있다면 이나마도 운이 좋은 경우일 수 있다. 이렇게 하겠다고 먼저 제안해도 받아주지 않는 곳이 많으니 말이다. 코로나 시기에는 세입자들이 뚝 끊겨 파격적으로 대학 학생이라는 것만 증명하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받아주는 곳들이 생겼었는데 이제는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왔으니 지금도 그런 곳이 남아있을지는 의문이다.


3. 서블렛(Sublet) 매물을 알아본다.

서블렛이라는 것은 아직 임대 계약 기간이 남았는데 사정상 세입자가 일찍 이사를 나가야 해서 남은 기간 살 사람을 구해 계약을 그 사람이 승계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호주에서는 take over 한다고 했는데 캐나다에서는 sublet이라고 한다. 나가려고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계약을 새로 들어오는 사람 명의로 이전하고 나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겠지만, 만약 들어오고 싶은 사람이 신용이 없어 명의를 이전받을 자격이 안 된다면 그냥 기존 계약자의 ‘동거인’으로 아파트에 보고하고 디파짓(한 달 치 월세)과 다달이 발생하는 월세를 나갈 사람에게 지불하는 형태로 사는 것이다. 월세를 나갈 사람에게 지불하는 이유는 명의자가 나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통장에서 이 아파트의 월세가 계속 빠져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도 아마 같은 한국사람들끼리나 믿고 할 수 있는 것 같고 캐네디언들이 신용 없는 한국인 이민자에게 이렇게 해 줄리는 만무하다. 나갈 사람은 다음 사람을 구하지 못하면 자기가 살지도 않으면서 그 돈을 다 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서블렛 매물은 흔하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 세 가지 방법도 가능한 것을 나열한 것일 뿐 그렇게 쉽다고는 볼 수 없다. 참... 어렵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왜 이러느냐 하는 생각을 하다 보면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국 사람들의 상식선과 윤리관을 초월하는 사건들을 보면 '아~ 이래서 그러는구나~’하고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역설적이지만 이민자의 나라이기에 이방인들의 진입에 장벽을 높게 세운 것이다. 한마디로 "너라는 사람을 믿지 못하겠다"라는 것을 온갖 장치로 이야기하고 있다. 별의별 나라에서 이민자들이 유입되고 이들 나라들이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도덕성과 사고방식을 가진 나라가 아닌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이런 이중 삼중의 장치들을 만들어 사람을 필터링하는 것이다. 이민자의 나라이기에 늘 이방인들에게 개방된 사회인데 이민자들의 진입에 이렇게 까다롭다는 것이 어이없기도 하지만 이곳에 살면서 (우리 기준으로) 후진적인 윤리의식을 가진 (대부분 후진국에서 온) 사람들을 겪다 보면 그런 의심과 장치가 합리적인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이곳에서 '한국인'이라는 것은 '일정 수준이상의 윤리관을 가지고 사회적 규범을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긍정적인 편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민생활에 있어서 더 오랜 시간, 더 많은 경험을 가지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것은 한국인들을 경험한 적이 있는 일부의 캐네디언들에게도 이미 영향력이 있는 듯하다. 나는 '국뽕'류의 콘텐츠를 즐기지는 않지만 한국인으로서 나의 익숙한 상식과 습관이 이곳에서는 경쟁력이 된다는 사실에는 안도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파는 사람이 갑. 캐나다의 사교육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