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예진 Mar 27. 2018

바닷가 책꽂이

뒤부아 비치



전생이 바다물고기였는지, 어릴적부터 유난스레 바다를 좋아했다. 서해나 동해의 해수욕장으로 떠나곤 했던 그 시절의 휴가철, 지루한 도로를 달리고 달려 짠내 섞인 공기가 맡아질 때면 어찌나 설레던지.


현재 내가 사는 미북동부의 작은 마을 근방에는 갖가지 종류의 바닷가가 있다. 호반처럼 평화로운 동네 공원 바닷가, 대공황 이전 올드머니가 세운 저택과 드넓은 잔디밭이 짝을 이룬 바닷가, 관광객은 물론이요 동네 날라리들까지 죄다 모여들어 시끌벅적한 바닷가까지.


아늑한 식당이며 예쁜 가게들이 오밀조밀 들어선 거리, 운치있게 꾸며놓은 요트 선착장과 면해 있는 바닷가도 있다. 여름 날 해저물 녘 아이스크림 하나 손에 들고 선착장 보드워크를 따라 걷다 보면 두 가지 감정이 교차하곤 한다. 영화 세트 같은 이국적 풍경 속에 들어와 있다는 시각적 만족감과, 그 이국적 '부티'가 주는이질감.


해풍에 그을린 피부에 선글라스를 끼고 요트에서 내려서는 금발의 노부부, 부모나 친척이 소유한 요트의 갑판에서 카드놀이를 하며 깔깔대는 아이들의 모습이 이 지역 어디를 가든 눈에 띄는 아시아계인 내게 현실적일 수 있겠는가. 앵커를 물속에 던져놓고 배에서 걸어나오는 리플리나 개츠비를 만나게 될 것 같은 영화적 상상력을 음미하게 되는 것도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풍광의 비현실성 때문이겠지.


며칠 전 친구와 점심을 함께 하기로 해서 그 선착장 근처에 갔다가 시간이 남아 차를 몰고 비치까지 갔다. 쌀쌀한 삼월의 날씨. 비성수기의 바닷가는 숙명적으로 쓸쓸했다. 모래밭은 말라붙은 해초들로 지저분했고, 홍합을 쪼아먹으려고 바위 틈을 뒤지는 갈매기들도 배고프고 추워보였다.


잠깐 차창을 내려 봤는데 바람이 칼 같아서 밖으로 나가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볕은 좋은 날이라 청명한 물빛을 눈에 담으며 음악 한 곡을 재생해 듣고는 차를 돌려 나가려던 참인데 전에 없었던 것 하나가 시선을 잡아챘다. 뭘까 싶어 차를 바싹 대고 들여다 봤다.



그것은...... 책꽂이였다!


새장 처럼 생긴 책꽂이 지붕 아래에 Little Free Library 라는 단체와 지역 학생들이 기증한 시설물이라는 안내문이 적혀있었다.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온 누구든 책을 꺼내서 읽을 수 있고, 떠나기 전 도로 꽂아놓으면 되는 거였다.


아련했다. 바다와 마주선 채 어깨를 붙인 책들. 종이책을 낙관하는 이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문학이 외면받고 있다는 시대에 굳이 소설가가 되려는 나. 바다를 뒤로 하고 약속 장소로 향하는 내 머릿속에 무언가가 반복적으로 밀려와 철썩이고 부서졌다. 읽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닮아있는 바닷가의 책들과 내 소설이 시대와 충돌하며 비명을 질렀던 것일지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