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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예진 Mar 27. 2018

미국인들에게 총이란...

거리로 나선 아이들



K로부터 연락이 와 만났다. 미전역 각지에서 총기규제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시가행진이 있을 거라고 했다. K는 참여하길 원하는 친구들을 모아 자신의 미니밴에 태워갈 거라며 나도 함께하길 원했다. 


총이라는 물건을 실제로 본 것은 미국에 와서 살게 된지 일 년 쯤 지났을 무렵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아 갔을 때였다. 당시 내가 살던 지역은 미 대륙 중부 지역. 대도시에서 멀고, 소위 전형적인 미국인들이 지역 주민의 상당수를 이루는 곳이었다. 그렇다면 ‘전형적인 미국인’이라는 건 어떻게 정의해야 좋을까. 


타인과는 물리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일정한 간격을 두고 교제한다. 스포츠에 열광하며, 잔디 관리에 목숨 건다. 미 대륙 바깥 지역에는 관심이 없지만 디즈니랜드는 수차례 간다. 부자가 되면 배를 산다. 차고에 세워둔 차들 중 한 대는 픽업트럭이다. 일가친척 중 누군가는 주말이 되면 그 픽업트럭에 장비를 싣고 숲으로 향한다. 그리고 거기서, 비상하는 새나 수풀 사이를 달리는 사슴에 총알을 박는다.  


지극히 내 주관적인 시각이고, 누군가는 동의할 것이고 누군가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 넓은 미 대륙에는 온갖 유형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지만 내가 보는 전형적 미국인 상이란 앞서 서술한대로다. 


서술에서 삐딱함이 묻어나는 것은 내가 이 전형성을 삐딱하게 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나는 때때로 미국인을 두 가지로 분류해 점수를 매기는 습관이 있다. 이를 테면 전형적이고 뻔한 미국인, 혹은 개방적이고 지적인 미국인 등으로 단순 규정하는 식이다.


각설하고, 당시 초대 받아 가게 된 그 집은 주택 지구 개발로 부를 이룬 그 지역 유지의 집이었다. 집주인인 노신사의 안내를 받으며 싱그럽고 깔끔하게 관리된 잔디, 고급스럽게 지어진 건물 외장, 적재적소에 어울리게 배치된 가구로 꾸며진 저택 내부를 돌아보는 일은 흥미로웠다. 


노신사가 마지막으로 보여준 공간은 지하에 꾸며놓은 커다란 휴식공간이었다. 당구대가 있었고, 위스키 바도 있는 어른들의 놀이 공간. 눈이 휘둥그레진 것은 사방의 벽을 장식한 것들에 시선이 간 순간이었다. 박제된 각종 짐승들의 머리, 종류별 크기별로 늘어선 검은 총들. 표정 관리를 한다고 했지만 노신사는 내 얼굴에서 경악을 간파한 모양이었다.


“알아요. 이곳에 한국 사람들을 데려오면 다들 똑같은 표정을 짓더군요. 하지만 겨울철이면 사슴들은 먹을 게 부족하기 때문에 어차피 많이들 굶어죽고 그래요. 사냥이 나쁘다고만 볼 순 없지요. 개체수를 줄여준다는 점에서. 굶주림에 지쳐 장기적으로 고통 받다가 죽는 것보다 나으니까.”


사냥에 대한 새로운 관점. 그럴까 정말? 굶주리는 것보다 총알로 한 방에 목숨이 끊어지는 게 나은 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거부감이 이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온갖 이유를 가져다 붙여도 내게는 사냥이라는 행위가 재미로 하는 살생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몇 년 후 그 지역을 떠나와 이제는 동부의 해안가에 살고 있는데 확실히 이곳에서는 그 ‘전형적’인 미국인이 적어 보였다. 뉴욕과 보스턴이라는 대도시가 가까이 있어 개방적인 분위기이고, 인종 분포가 다양하고, 대체로 교육 수준이 높아 진보적인 가치관을 가졌다고 일컬어지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본거지. 나 역시 전형적 미국인은 으레 공화당을 지지한다고 믿고 있고, 실제로 공화당 표밭은 중부 지역이니까.   


동부로 이사와 친해지게 된 S 부부도 그런 면에서 ‘비전형적’이었다. 잔디 따위는 잡초와 섞여 자라도 개의치 않고, 상업적 신흥 주택 대신 고풍스러움이 살아있는 고택을 선택해 살며 불편함을 감수하고, 지구촌 곳곳의 문화에 관심이 많고, 낯선 음식 가리지 않고, 민주당에서도 유독 급진 진보 인사인 버니 샌더스를 지지하는 지식인. 


평화로운 마을의 한 초등학교에서 어린 아이들을 향한 무차별 총격 사건이 있고 난 얼마 후였다. 주목받고 싶은 잠재 범죄자들에 의해 모방 범행들이 일어나기 시작하자 언론사들끼리 합의해 사건 보도는 자제하기로 결정을 했단다. 뉴스에선 잠잠해졌지만 멀지 않은 곳에서 일어난 그 사건은 내게 큰 충격을 줬다. 


S 부부와 저녁 식사를 함께 하던 중 해당 사건이 도마에 올랐다. 식사 중의 소재로 좋은 선택은 아니었지만 그 사건의 여파는 당시 미국인들에게 짙은 그림자로 드리워져 있었다. 총기로 인한 대형 사고가 있을 때마다 늘 총기 규제 법안 관련 이슈가 대두되지만 매번 흐지부지되고 마는 미국의 현실이 개탄스러워 불만이 터져 나왔다. 


“대체 일반인이 뭣 때문에 총을 사서 가져야 하냐고!”


목소리를 한껏 높인 건 S부부가 한 술 더 떠줄 것이라 기대해서였을 것이다. 나처럼 흥분을 하진 않더라도 최소한 맞장구라도 칠거라고. '그러게 말이야. 진짜 이렇게 놔둬도 되는 거야? 암튼 총기 협회가 문제야!' 따위의.  


예상은 빗나갔다. S부부는 무반응이었다. 조용했다. 내가 뱉은 말이 허공에서 꺼져버리는 걸 느끼면서도 잠깐 동안은 그들의 침묵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정적이 지나가고, S가 미묘하게 표정을 바꾸면서 화제를 돌렸다. 그때서야 하나의 이미지가 사진 찍히듯 눈 앞에 그려졌다. 그들의 매력적인 고택 안 어딘가에 잠자고 있을 한 자루의 라이플. 


내게 있어 ‘비전형적’ 미국인으로 분류되었던 S부부는 이슈에 동의하지 않을 때 논쟁 대신 침묵을 택하는'전형적' 미국인의 태도로 자신들의 입장을 표명한 거였다. 그리고 그 일은 내게 전형성과 비전형성에 대한 인식 변화를 가져다 줬다. 세상사를 흑과 백으로 단순 구분할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나도 모르게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인들에게서 총을 거두기란 간단한 일이 아니겠구나 싶은 절망감이 깊어진 계기이기도 했다. 적어도 진보 지식층은 총기 규제 법안이 통과되길 원할 것이라는 확신도 없는 마당에, 총을 소유해야 자신의 안전이 보장받는다고 여기는 이들이 '비전형적'인 미국인들 속에도 섞여있는 마당에, 관련 법안이 통과되는 날이 올까 싶은 것이다. 


시가행진에 참여하지 않겠느냐는 K의 제안에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직답 대신 말을 돌렸다.


“오전에 일이 좀 있기는 해. 그런데…… 누구누구 간대?”

“크리스틴도 가고 프랜도 갈거야. 카르멘도 갈지도 모르고.”


크리스틴? 프랜? 내가 아는 바 그 둘은 중산층이 뼈 빠지게 벌어 낸 세금을 정부 보조금에만 의지해 노력 없이 살아가는 빈곤 계층에 쓰는 게 부당하다는 이유로 공화당을 지지하는 이들이었다. 나도 모르게 속엣말이 툭 튀어 나왔다.


“걔들은 공화당 지지자들이라고 하지 않았어?”


K는 내 말에 깔린 의도를 금세 알아차리고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공화당 지지한다고 공화당 출신 대통령 모두를 좋아하는 건 아니잖아?”


맞는 말이다. 내 질문은 우문이었다. 모든 보수가 총을 지지하는 것도, 모든 진보가 총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또 망각하고 뱉어버린 말이었으니. 이미지는 늘 부서지고 또 새로이 구축된다. K만 해도 그렇다. K는 내가 기껏해야 두엇 정도의 경험 표본을 토대로 만들어둔 인도인들에 대한 편견을 신선하게 부숴버린 친구니까. 


올해는 정초부터 미국 전역에서 무수한 총기 사고가 일어나는 바람에 총기 규제 법안과 관련한 시민들의 염원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번엔 심각해 보이긴 하다. 게다가 주목할 만 한 것은 목소리의 연령대가 내려갔다는 점이다. 플로리다의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참사 이후, 학교 총격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학생들이 거리로 직접 나서고, 매스컴을 동원한 공개 토론을 벌이고 있다. 


아이들이 자신의 안전을 위해 궐기하고 있는 이때, 칼자루를 쥐고 있는 어른들은 정치적 손익에 따른 계산만 할 뿐 딴청을 부리고 있다.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원하는 교사에 한해서 총기로 무장하고 수업을 할 수 있게 훈련을 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도래했을 땐 정말이지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공포스러웠다.


후식으로 나온 메링그 파이를 떠먹는 K를 바라보며 말했다. 


“과연 미국인들이 총을 포기하게 되는 날이 올까?”


의욕이 섞이지 않은 나의 탄식.  K의 일침이 날아왔다.


“헤이, 너 얼마 전에 나한테 자랑했잖아! 한국에서는 집권 중인 대통령도 탄핵시켰다며! 컴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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