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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예진 Sep 22. 2018

꿈에서 걸어나와 버린 자

부산행을 뒷북으로 보다가


그때도 아마 딱 요맘때쯤이었을 거다. 오후의 짱짱하던 해가 기울고 나면 급작스레 선득한 냉기가 느껴져 스웨터에 팔을 꿰게 되는 날씨였으니. 90년대 중후반, 스물여섯쯤 되었었나. 고만고만한 또래 유학생들 몇과 누군가의 차를 얻어 타고 파리 시내를 빠져나왔다. 한 시간 정도를 달려야 도달하는 교외 지역의 한 농가가 목적지였다.


당시 파리에 소재하는 영화 학교에서 유학하고 있던 한국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단편영화를 제작하기로 했다. 누군가는 감독을, 누군가는 스크립트를, 누군가는 섭외를, 누군가는 사진을, 누군가는 또 무엇을 등등. 전공 분야대로 역할을 맡아 팀을 꾸리고, 장소가 섭외되자 며칠간 외박할 짐을 챙겨 촬영 장소로 향했다.


나는 다른 학교에 다니고 있었지만 전공이 영화세트, 무대미술이라 세트 담당으로 팀에 합류한 터였다. 팀원 중 하나가 친구였다. 누군가의 소형차 안에서 그들과 다닥다닥 붙어 구겨져 앉아 촬영지로 향하는데 복잡한 감정에 마음이 어지러웠다. 난생 처음 영화 제작에 참여해 보는 거라 들뜬 것도 맞지만 실은 그래봐야 학생 단편영화라는 점이 살짝 시들하기도 했다. 게다가 걱정되는 바도 있었다.


무엇보다 촬영 시작 며칠 전, 주인공 역을 맡기로 한 배우(라 쓰고 지망생이라 읽는다)를 만나고 나자 더 그랬다. 날더러 의상 담당까지 하라는 감독의 지령이 떨어졌는데 실상은 그래봐야 배우가 가지고 있는 옷 중 촬영에 적합한 걸 고르는 것에 그치는 일이었다. 다들 포부에 들떠 팀을 짰으나 돈은 별로 없고, 필름 사고 숙소 잡으니 남는 게 있을 턱이 있나. 뭐든 제작비가 안 드는 걸로 충당해야 했다.


조감독을 맡은 이와 조우해 파리의 후미진 골목길을 걸어올라 그녀가 산다는 아파트에 다다라 초인종을 눌렀다. 문 안쪽에서 들려오는 슬리퍼 소리, ‘잠깐만요’하는 걸쭉한 목소리, 둘 다 불안정했다. 문이 열리자 새파랗게 물들인 커트머리에 깡마르고 창백한 피부의 그녀가 서있었다. 손에 든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며 들어오라고 손짓하던 그녀. 미친 기억력(주로 쓸모없는 분야에서)의 소유자인 나지만 그녀의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다. 끊임없이 뿜어 나오던 담배 연기와 그 덕에 탁해진 목소리로 이어가던 러시아 억양 섞인 불어는 이렇듯 생생한데.


불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파랑머리의 이모인지 고모인지가 끓어준 차를 마시는데 담배가 걸린 파랑머리의 손가락이 달달 떨고 있었다. 나와 조감독의 눈길을 의식했는지 그녀가 털어놨다.

“아, 요즘 헤로인을 좀 자주 했더니…….”

헐! 대마초도 아니고, 헤로인? 놀라 물었다.

“그런 걸 하고도 몸이 버텨 내?”

파랑 머리가 피식 웃었다.

“넌 의사가 하라는 거 다 하고 사냐?”


방으로 들어가 함께 옷을 고르고 나자 파랑머리가 입어보겠다며 옷을 들고 일어섰다. 다른 공간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오겠지 싶어 조 감독과 나란히 앉아 기다리는데 그녀가 선 채로 휙 뒤돌아서더니 입고 있던 원피스를 훌렁 벗었다. 원피스 안은 완전한 알몸이었다. 반사적으로 옆에 앉은 조감독의 얼굴을 돌아봤다. 스누피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앳된 인상의 청년. 그는 필사적으로 태연한 척을 하고 있었다. 불쌍해라! 아니지, 횡재한 건가? 파랑머리는 나와 함께 고른 서너 개의 의상을 그런 식으로 나와 조감독 앞에서 번갈아 갈아 입어보였다.


정신이 맑아 보이지 않는 배우를 만나고 나니 어찌 걱정이 안 되겠는가마는 어쨌거나 며칠 후 그렇게 촬영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었다. 촬영지에 도착해 다른 차로 온 팀원들과도 다시 만났다. 감독을 맡은 이는 빨간 체크 셔츠를 입고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 역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유학생이었다.


농가 지하 창고 아무 것도 없는 흙바닥. 겨우 빛 한 줄기가 들어오는 그야말로 암울했지만 어찌 보면 여배우의 분위기와 맞아 떨어지는 곳이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암담한 마음으로 흙바닥 한가운데에 서있었더니, 체크 셔츠 감독이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진 씨가 어떻게 좀 해보세요.”


일단 밖으로 나가봤다. 농가 주변 가꾸지 않아 엉킨 수풀 속에 벽돌이며 자갈, 낡은 기와, 버려진 낡은 가구 등이 널려 있었다. 되는대로 주워왔다. 제일 처음 한 일이 기왓장 하나를 바닥에 내리쳐 박살 낸 것이었다. 뭘 하려나 싶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지켜보던 팀원들이 하나 둘씩 나서서 도왔다. 깨뜨린 기왓장들과 벽돌을 창고 기둥 주변에 쌓고, 쓰레기 가구를 창고 안으로 들여오고, 거미줄을 걷었다. 시간이 지나자 빈약하고 음산하나마 그곳은 나름 방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그렇게 난생 처음으로 단편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내 이름을 올리게 되었고, 체크 셔츠 감독이 촬영한 필름을 편집한 뒤 비디오테이프 카피 본을 떠서 팀원들에게 돌렸던 걸로 기억한다. 나중에 파리의 아파트에서 친구와 함께 비디오테이프를 돌려보면서 내 이름 철자를 물어보지도 않고 Yeajin이 아닌 Ye-jin으로 박아 넣었다며 투덜거린 것이 그 영화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리고 잊고 있었다.


며칠 전 개야 할 빨래가 많아 넷플릭스에 올라온 부산행을 틀었다. 한국 사람은 거의 다 봤다는데 이제야 보는 거니 그야말로 뒷북이었다. 빨래를 접으며 무심코 시작 화면을 들여다보는데 제작자의 이름이 어딘가 익숙했다. 잠깐만. 영화계니 혹시…….


검색 결과를 보니 내 추측이 맞았다. 중년이 된 빨간 체크 셔츠. 한 영화사의 대표가 되어 월드 와이드로 대박친 영화의 제작자가 되어 있었다. 뒤통수를 맞은 듯 멍했다. 그러나 오래 그러고 있진 않았다. 요즘 자주 맞닥뜨리는 종류의 일이니까.


미시건의 눈발을 보며 등에 업힌 아기에게 자장가를 불러줄 때, 뇌를 써야 문장이 만들어지는 언어에 지쳐 서울을 무대로 펼쳐지는 드라마를 보며 나를 위안할 때, 싸이월드,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를 통해 홈그라운드에서 꿈과 현실의 거리를 좁혀가는 친구들의 근황을 지켜볼 때 나는 이미 예측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언젠가는 이런 상황과 맞닥뜨리게 될 거라는 것을.


주방에 서서 랩탑으로 영화를 보며 기계적으로 빨래를 개는데 물을 마시려고 내려온 아들이 흘끔 보더니 묻는다.

“엄마, 이거 Train to Busan 아니에요?”

“어, 맞아. 이 영화 알아?”

“네. 이거 내 친구들도 거의 다 봤어요. 꽤 유명해요.”

아들이 다니는 고등학교에는 아들 외엔 한국계가 한 명도 없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많이들 봤다니 정말로 월드와이드 히트작이긴 한 거다. 자랑하고픈 마음에 아들에게 으스댔다.

“엄마가 오래 전에, 단편영화 제작에 참여한 적 있는 거 알아? 이 영화 만든 제작자하고, 다 같이 학생일 때.”

“진짜요?”


그래. 진짜. 네게는 한낱 잔소리꾼에 불과할 이 ‘뻔한’ 엄마도 말이지, 한 때는 한 리버럴하다고 자부하는 예술학도였단다. 지금의 엄마한테는 너무나 눈부신 저 곳에 가있는 저들하고 같은 출발선상에 서있던. 안 믿어진다고? 욘석아, 증거가 있어! 가만 있자, 그 비디오테이프가 어디 있더라? 아 참, 찾아도 소용없겠구나. 비디오테이프 재생을 할 방법이 없으니.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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