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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예진 Nov 21. 2018

나의 1987

그 시절의 책을 말하다


그 시절의 나는 나를 점점 싫어하고 있었다.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어디선가 날아와 붙은 살이 설마 내 것이랴 당황스러웠고, 하이틴 로맨스를 책이랍시고 돌려 읽으며 시시덕대는 애들을 좀 깔보고 싶은데 걔들은 여전히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기가 꺾인 걸 감추기 위해 위악적으로 구느라 매사에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고, 당연한 결과로 야단을 자주 맞으면서 부모님도 미워졌다. 말썽을 일으킨 적은 없지만 내면 자체로 보면 그야말로 시한폭탄이었다. 엄마 역시 속 깨나 끓였을 거다. ‘건드려만 봐’를 얼굴에 써놓고 다니며 방에 들어가 문을 잠가 버리는 중학생 딸이 있는데 왜 안 그랬겠는가.


중학교 삼학년이 되자 엄마는 나를 미술학원에 다니게 하고(나와 물리적 거리를 만들고), 방문 판매원을 통해 세계명화전집을 사들여 내 방 책장에 꽂아줬다. (피아노를 처음 배울 무렵엔 생일 선물로 무려 피아노 교재를 사주더니!) 엄마 딴에는 미술대회에서 상을 받아오곤 했던 초등학교 때의 나를 기억하고 시도해 본 궁여지책이었을 거다.


그런데 엄마의 ‘사춘기 딸 정신 딴 데로 돌려놓기’ 전략이 먹혀들었다. 훗날 미술 분야를 전공하게 된 내가 보티첼리며, 고갱이며, 뭉크를 만난 건 다 그 명화전집을 통해서니까. 게다가 다행히도 나는 밤늦게까지 틀어박혀 있어야 하는 화실을 좋아할 수 있는 아이였다.


화실이라고는 하지만 이젤과 석고상이 무수히 늘어서있고 예술적 풍모의 턱수염 화가 선생님이 로댕의 조각처럼 고뇌하고 있는 곳은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수도권 신도시 1호였던 그 곳에 늘어선 아파트들과 함께 계획 배치된 상가 중 하나에 입주한 예술혼 없는 미술학원으로, 낮에는 유치원으로 운영이 되고, 밤에는 입시 미술을 가르치는 학원이 되는 곳이었다. 미대 입시에 대해 잘 모르는 엄마가 급한 대로 집 근처에서 운영자의 학벌만 보고 택한 곳이었다.


석고상은 열 개가 채 되지 않았고, 중고생 대상 입시 미술을 가르치는 저녁 시간대에 오는 학생이라고는 나, 그리고 고등학생 언니 하나가 다였다. 고등학생 언니는 사정 상 격일로 왔으니 주중의 반은 저녁 반 학생이 나밖에 없었다. 그러니 실상 수익은 낮에 운영하는 유치원에서 나오는 거였을 텐데 나는 꿋꿋이 화실을 나가 선생님의 저녁 시간을 점령했다.


당시 미대를 석사과정까지 마치고 난 화실 선생님은 선배가 운영하다 자금난에 부딪쳐 팔아야만 했던 화실을 인수해 운영을 시작한 바였다. 그곳에 예술혼이야 있든 없든(입시미술에 예술혼 운운해서 죄송합니다) 나는 세련된 미대생 언니삘의 전형인 그 선생님을 동경해 마지않았고, 선생님의 스타일링을 구경하는 재미 역시 내가 그곳에 가기를 즐겨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화실은 총 십층 쯤 되는 상가 건물의 꼭대기 층에 있었고, 화실로 들어서면 전면에 달린 커다란 창으로 건너편의 관악산이 한 눈에 들어왔다. 사실 풍경에는 무심했었는데, 거기에 산이 있다는 걸 인지하게 해 준 건 선생님이었다. 비만 오면 선생님이 그 창 앞으로 가 관악산과 마주 서서는, “아, 날씨 좋다!” 라며 탄식을 뱉었기 때문이었다.


비가 오는데 날씨가 좋다니, 기이한 반응이었다. 비가 오면 기분이 좋아지시는 거냐고 물었더니 선생님은 쉬우면서도 쉽지 않은 말로 대답했다. “비가 와서 기분이 좋아진다는 게 아니라, 비오는 날이 좋은 거야.” 듣고도 난해하긴 마찬가지였지만 기억해두기로 했다. 감수성의 우월함을 내세우고 싶을 상황에서 써먹으면 좋을 것 같으니 일단 접수. 아무튼 그 창 앞에 서있던 선생님의 뒷모습과 비오는 날의 정경은 내 머릿속에서 한 세트가 되어 웅크리고 있다가 이따금씩 걸어 나오곤 한다.  


하지만 정작 그곳에서 내게 짧지만 막강한 영향을 남긴 사람은 사실 다른 인물이었다. 당시의 내게는 어디선가 주워듣고는 읽어보려 무진 애를 쓰던 책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허세 필독서의 끝판 왕,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였다. 물론 장렬히 중도 포기했다. 아무튼 그 책을 펼치기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다 아는 ‘껍질에서 깨어나기’ 과정이 내게 있었다 치면, 그 껍질이라는 것에 첫 타격을 가해 균열을 일으킨 문물과 그것을 발견하게 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가끔 선생님이 바깥 볼일이 생겨 자리를 비우게 되면 화실을 지키던 사람이 있었다. 낮 시간에 운영되는 유치원 교사니까 선생님이라면 선생님이었다. 그런 날에는 선생님이 볼일을 마치고 돌아오기 전까지 나와 그 유치원 교사 둘만 화실에 남아 있곤 했다. 중학생과 썰을 풀 마음 따위가 있을 리 없는 그녀는 대개 내 쪽은 보지도 않고 책만 읽고 있는데다가, 선생님이 돌아오면 얼른 책을 덮어 가방에 집어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간단한 인사만 나누고 귀가를 해버렸기 때문에 그녀가 말을 하는 걸 볼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심이 갔던 것은 그 교사 역시 선생님 못지않게 옷을 세련되게 입는 여자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옷 잘 입는 예쁜 언니’들이라면 무조건 우러러보면서 그녀들의 차림새를 이십대가 된 상상 속의 나에게 대입해보고 앞으로 소유하게 될 나의 ‘멋짐’을 예행연습해보는 걸 즐겨했다. 말하자면 그런 예쁜 언니들은 앞으로 업그레이드 될(무슨 근거로?) 내 미래의 현신 같은 존재로서 존중을 받아 마땅한 뭐 그런 거였다.  


어느 날 그 유치원 교사가 자리를 뜬 후 나는 선생님에게 알맹이 없는 질문을 해서 호기심을 내비쳤다. 내가 한 질문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데 반해 선생님의 대답이 또렷하게 남아있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봤는데, 우선 선생님의 대답을 간추려 적는 게 좋을 듯싶다. 따옴표를 써 대화체를 구사했다가는 이 단락에서 보여줄 내용의 요지를 과장하게 될 것 같아 서술체를 쓰겠다.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그 교사는 정부종합청사가 들어서면서 신도시가 된 그 지역에서 태어나 자란 토박이이고, 따라서 오래전부터 그 지역에 있던 여고를 졸업한 사람이었다. 대상의 ‘신상을 까는’ 선생님의 어조에서 속내를 읽기란 어렵지 않았다. 그러니까 원래 서울 사람도 아니고 최종학력은 고졸이라는 얘기다.


토박이라는 말과 함께 내비친 일종의 ‘얕봄’은 그 동네 아이들이라면 누구든 알아차릴만한 것이었다. ‘원래는 서울 사람’인 아이들과 ‘토박이’ 아이들이 섞여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를 아는 그 지역 아이들이라면 말이다. 신도시가 들어서고 나서 서울에서 이주해 온 아파트 단지 아이들은 토박이 아이들을 원주민이라고 부르며 타종으로 분류하고 있었다.  


선생님의 의도야 어떻든 내 호기심은 오히려 더 커져버렸다. 토박이인데다가 대학 교육도 받지 않은 유치원 교사가 미대를 나온 서울 여자에 뒤지지 않는 ‘패피’라는 것이 흥미로웠기 때문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래봐야 두 사람 다 멋내는 걸 좋아하는 젊은 여자였을 뿐일 텐데, 제 아무리 조숙한 척을 해봤댔자 기껏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호불호를 결정짓는 그 때의 내 수준으로는 그랬다.


나는 보다 더 면밀히 그녀를 살피게 되었고, 그녀가 그즈음 읽고 있던 책 역시 예사로 지나치지 않았다. 한 번도 말을 섞어본 적이 없어 차마 묻지는 못했으나, 석고상과 이젤을 오가는 시선 사이 흘끔흘끔 엿보다가 그녀가 책을 덮을 때 광속으로 읽어낸 제목이 <숲속의 방>이었다. 저자명에까지 시선이 닿지는 못했지만 제목과 어울리는 초록빛 표지가 선명했기 때문에 그 순간은 지금까지도 사진을 찍어놓은 듯 생생하다.


그맘때의 나는 용돈의 대부분을 LP를 사 모으는데 쓰곤 했는데 그때는 돈이 생기자마자 레코드 가게 대신 서점으로 향했다. 그 소설은 당대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였고, 제목, 표지, 강석경이라는 작가 이름까지 마음에 쏙 들었다. 무엇보다 동화책을 졸업하고 난 후, 엄마의 책꽂이에서 빼내 읽던 책들이나 몰래 읽던 여성 잡지들로 문자 갈증을 해소하던 내가 스스로 발견해 낸 어른 소설이라는 사실 자체에 고무됐다. 흔들리던 시절의 의식에 문신처럼 새겨진 나의 첫 번째 ‘문학’과 나는 그렇게 만났다.  


<숲속의 방>을 지금 접했다면 어쩌면 그때처럼 빠져들 수 없을지도 모른다. 주인공의 방황을 젊음 특유의 치기 어린 자의식 과잉으로 얕보며 난색을 표할 어른이 되어버린 걸지도 모르니까. 밝혀두자면, 개인적으로는 소설을 줄거리로 요약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어떤 소설이든 짤막한 줄거리로 압축되어 내던져지면 본래의 텍스트가 가진 폭발적 전달력을 잃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소설을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내용 정리를 해보겠다.


소설의 화자인 이십대 여성 미양은 중산층 이상에 속하는 비교적 부유한 집안의 장녀다. 이 집에는 은행원인 미양 말고도 혜양과 소양이라는 이름의 대학생 딸 둘이 더 있는데, 어느 날 미양은 막내 소양이 부모 몰래 휴학을 한 사실을 알게 되고, 하루가 멀다 싶게 부모와 불화하던 소양이 기어이 학교를 거부하게 된 배경이 뭔지 추적하기 위해 소양의 행적을 좇는다. 미양이라는 일인칭 관찰자가 소양의 내면에 돋보기를 들이대려는 시도의 기록이 소설의 전체 내용을 이룬다.


팔십 년대 초반이 배경인 이 소설에 등장하는 세 자매를 주목해 보면, 당대 이십대의 유형 중 몇을 세 가지의 모델로 추려 만든 인물들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음악을 전공하고도 은행에 취업할 만큼 실리에 밝은 미양, 남들이야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피를 흘리건 말건 분위기에 자극 받는 일 없이 학업에만 충실한 우등생 혜양, 학생 운동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운동권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 곳이라 여겨 마음을 두지 못하는 소양. 셋 다 저마다의 이유로 운동권은 아니었던 시대의 대표 유형들이다. 동시에 그 시대의 운동권이 타도하던 자본가, 즉 저임금 노동 인력으로 공장을 돌려 이익을 내는 중소기업 대표의 자식들이다.   


이 소설에 관해 나온 논평은 여러 가지다. 언니들과는 달리 이쪽(우)에도 저쪽(좌)에도 속하지 못해 비틀거리다 파멸해버리는 소양이라는 상을 내세워, 양 극단에서 대립하는 진영의 입장과는 달리 대다수의 사람들은 ‘회색지대’에 서있으며, 진실은 그 회색지대에 있다는 사실을 꼬집는다고도 하고, 부르주아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소설이라고 곱지 않게 보기도 한다. 사실 이 소설을 읽을 당시의 나는 플롯과 문장의 매력 자체에 마음을 빼앗겨 작품의 키워드인 ‘회색지대의 진실’에 대해서는 윤곽을 잡지 못했다. 그걸 이해하기에는 어리기도 했을 것이다.


그때든 지금이든 내가 주목한 것은 주류 평에서 조금 비껴나 있다. 미양과 소양이라는 두 인물은 순수한 젊음과 기성세대로 진입한 현실감각이라는 갈래로 갈라진, 원래는 일체의 인격이라는 해석이다. 미양과 소양은 그 시대의 젊음이 처한 딜레마를 은유한 캐릭터라는 말이다.


소양은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처럼 위악을 가장한 순수며, 미양은 현실과 타협한 기성세대로의 진입으로 놓고 이야기의 구성을 들여다보면 들어맞는다. 미양이 파멸 직전의 소양을 좇아 종로 바닥을 헤매고 다닌 시간이 바로 무던한 성격의 직장인과 결혼하기 전날이며, 미양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날 밤, 소양이 자살한다는 설정이 그렇다. 즉 순수한 마음에서 출발하는 불의에 맞서는 용기나 시대의 혼란과 의문 같은 건 더 이상 염두에 두지 않겠다는 미양의 한 걸음, 그 지점에서 소양이 죽는 게 우연한 구성일까.   


이 소설에 대한 주된 해석은 앞서 언급한 대로, 양쪽 이념의 극단성에 망가지는 청춘을 보여줌으로서 결국 진실은 그 중간에 서서 관조하는 회색인들의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작가의 의도는 그랬을 수도 있지만 내게 있어서는 ‘순수한 파멸 VS 타협과 맞바꾼 안식’에 방점이 찍힌다. 어느 쪽이 작가의 진짜 의도건 작가 손을 떠나 세상에 나온 이야기에 대한 해석은 제 각각의 색채로 사고하는 독자 몫이니 정답을 찾아 동그라미를 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 수 있겠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구조의 밀도와 문장의 성숙도를 통해 견고한 가독성을 구축했으므로 숨겨진 의미는 차치하더라도 빼어나다. ‘담배 한 개비를 몰래 피우고 난 뒤 체리 한 알을 꺼내 물고 휘파람을 부는 종마 같은 처녀’라든가 ‘영혼의 사냥터에 과녁을 맞출 것’ 같은 표현을 짓는 작가의 솜씨에 매료된 나는 표지가 너덜거릴 때까지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다. 한 가지 책을 통한 반복 독서가 글쓰기 실력을 향상시켜 준다는 연구 결과가 옳다면, 내게 그것을 물려준 책은 숲속의 방일 것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자라는 동안 여러 번의 신호가 있었지만 성장기에는 한 번도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져본 적이 없었고, 전공으로는 디자인을 했다. 어른이 된 후에도 한참이 지나고서야 글을 쓰게 되었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통에 온라인 연재, ebook 출간, 문단의 선배님들이 읽고 뽑아주시는 문학상 수상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내 나름의 작은(남들은 별로 알아주지 않는) 실적도 갖게 되었다.


문학 관련 전공을 한 것도 아니고 게다가 외국에 살기 때문에 뭐 하나 막막하지 않은 게 없었지만 적어도 나는 현재, 인생의 1번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말할 것도 없이 그 1번은 ‘작가로서의 나’다. 문학상을 받았을 때 수상 소감에 쓰길 내 문학 인생에 있어 불멸의 첫사랑은 박완서 작가님이라고 했다. 성장기의 문장 체험 대부분을 박완서 작가님의 바다에서 건져 올렸으니 왜 아니겠는가. 하지만 다시 보니 이렇게 정리하는 게 맞겠다. 박완서 작가님은 내 문장의 어머니고, <숲속의 방>은 첫사랑이라고. 어머니는 영원하나, 첫사랑은 가슴에 남는다. 화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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