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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예진 Nov 17. 2019

다이앤의 미트 파이

누구나 소울푸드 하나쯤은 있다


다이앤이 머리를 예쁘게 잘라줬다. 아무리 솜씨 좋은 미용사라도 머리를 맡길 때마다 조금씩은 편차가 있거나 더러 실수를 하는데, 다이앤의 경우 어지간해선 그런 일을 만든 적이 없다. 별로 큰돈이 벌리지 않는 헤어컷 손님의 요구도 꼼꼼하게 귀담아 들으며 충분한 시간을 들여 상의한 후 가위를 잡는다. 일평생 같은 일을 하며 나이를 먹은 장년의 내공, 해오던 일이 익숙함을 초월해 신체 기능의 일부처럼 체화된 예라고 보면 되겠다.


다이앤을 알게 된 건 지인의 추천 덕분이었는데, 사업 규모만 놓고 보면 다이앤이 그리 성공한 미용사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미용실은 협소한데다 그나마 그 공간도 다른 미용사 한 사람과 나눠 쓰며 동업으로 운영한다. 세련된 멋쟁이들보다는 한 눈 팔지 않고 꾸준히 드나드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주 단골인 지역 미용실에 그치는 수준이다. 그래도 그곳이 초라해 보이지 않는 건 다이앤이 그 이상을 욕심내지 않기 때문이다. 


다이앤은 너무 많은 손님을 상대하면서 숨 가쁘게 사는 걸 원치 않아서 미용실에는 일주일에 딱 사흘만 나온다. 그 사흘 안에 단골들의 예약을 줄 세워 받고, 성격이 좀 별나거나 갑질을 한다 싶은 손님은 반드시 기억해뒀다가 전화도 받지 않는다. 욕심을 내지 않는 대가로 시간과 감정이 소모되지 않는 삶을 보장받는 것이다. 한편 다이앤에게 ‘선택’된 손님은 더없는 친절과 꼼꼼한 머리 손질을 선사받는다. 이쯤 되고 보면 손님들은 잘리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황송해서 다이앤에게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단골손님이 되는 것이다.


다이앤이 내 머리카락을 만지는 동안 다이앤도 나도 쉴 새 없이 떠들어댄다. 남편과 상의해 아이 없는 삶을 선택했다는 다이앤, 삼십대를 기점으로 아이들 키우는 일에 온 힘을 다 바쳐 살아온 나 사이에는 공통점이 별로 없다. 대화가 흥미로운 건 오히려 그 차이점 덕분이다.  


다이앤은 어렸을 때 미국에 왔다. 캐나다의 퀘벡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부모님을 따라 이민 온 케이스였다. 불어권 지역 출신인 부모님이 영어를 못했으므로 미국으로 온 이후에도 집에서는 늘 불어만 썼단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외국어 과목을 들어야 해서 상대적으로 자신 있는 불어를 선택했는데 성적표에 C가 나와서 충격이었다고 깔깔 웃어댔다. 태도로 봐선 전혀 충격 받은 사람 같지 않았지만. 


그밖에도 다이앤의 아버지가 열 명이나 되는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자랐다는 이야기, 대가족에 질린 탓인지 다이앤처럼 후손 만들기를 거부하고 딩크족으로 사는 사촌들이 꽤 된다는 이야기, 매해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시립극장에서 <호두까기 인형>을 봐왔으면서도 얼마 전까지 차이코프스키가 뭔지도 몰랐다는 고백 등, 다이앤과의 대화를 통해 나는 늘 신선한 충격을 얻어 온다. 


이를테면, 규격화된 욕망의 대열에서 벗어나면 자유를 쥐게 된다는 것, 자손을 만들지 않았다고 해서 외로움에 매몰된 장년기를 보내는 건 아니라는 것, 예술가가 남기고 간 작품을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소비하는 건 기껏 이름을 외우는 것 따위가 아니라는 새삼스러운 인식 같은 것이 그렇다.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내 안에서 고정관념이라는 형태로 가공되어 있던 것들이 다이앤과 대화를 하다보면 깨졌다가 재조립되고는 한다. 비슷비슷한 사람들과 만날 때는 일어나지 않는 유쾌한 경험이다. 


이번에도 다이앤과 나는 내 머리를 자르는 동안 수다의 향연을 벌였는데, 추수감사절을 앞둔 터라 자연스럽게 명절 음식에 관한 주제가 튀어나왔다. 다이앤도 나도 미국에서 태어난 경우가 아니라서 추수감사절의 메인 요리인 칠면조 고기를 즐기게 되진 않더라는 쪽으로 의견이 일치했다. 


“칠면조를 몇 번 구워 보긴 했는데 난 손도 안 대. 맛도 별로고 일단 너무 커. 솔직히 말해 내게는 그 고기가 엄청난 크기의 새로 보일 뿐이야. 어릴 때부터 먹고 자란 음식이 아니라서 별 수 없나봐.”


내가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소곤거렸더니 다이앤도 얼른 목소리를 낮췄다. 


“나도 칠면조에는 손도 안 대고 고기 파이만 먹어. 우리 엄마가 만드는 캐나다식 고기 파이 끝내 주거든. 명절 때 친척들 모이면 다들 기대하는 특별 메뉴지!”


캐나다식 고기 파이? 나는 귀가 번쩍 뜨였다. 몇 년 전 여름휴가로 퀘벡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 곳에서 맛 본 음식 중 맛없는 건 단 한 개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인들이 정착해 사는 지역을 가보면 대개 그랬다. 물론 북미 대륙으로 와서 살게 된 프랑스 문화권 사람들에게는 본토와 비교했을 때 얼마만큼의 언어와 관습 변형의 흔적이 남아있기는 하다. 그래도 음식에 일가견 있는 본래 특성은 쉬이 변질되지 않는 모양인지 퀘벡의 음식은 미국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사실 미국에도 그런 곳이 있다. 공교롭게도 이 또한 프랑스인들이 밀집해 정착한 뉴올리언즈다. 뉴올리언즈에 가면 미국 남부의 식재료와 프랑스식 창의성이 만나 구현된 크레올 풍 요리를 맛 볼 수 있는데, 어딜 가든 그게 그거인 미국의 일반 음식과는 차별화된 맛을 체험하게 된다. 프랑스 현지의 맛에 가장 근접한 크로아상을 만날 수 있는 미국 내 도시가 뉴올리언즈인 것으로 봤을 때 그 고장 음식의 우월성은 우연이 아니다. 


프랑스계가 정착한 지역의 음식이라면 덮어놓고 신뢰를 보내는 내가 다이앤의 어머니가 직접 만드신다는 퀘벡식 고기 파이 맛에 호기심을 내비치는 건 당연했다. 내가 관심을 보이니까 다이앤이 대강의 레시피를 읊어줬다. 머리를 자르고 있던 중이라 흘려들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다지 복잡한 요리법은 아니었다. 다이앤도 온라인에 올라와있는 레시피들을 훑어보면 대개 거기서 거기일 거라고 덧붙였다. 검색을 위해 정확한 철자를 물었더니 이 파이의 본래 명칭은 Tourtière였다. 굳이 발음하자면 뚜흐띠에르.


퀘벡 음식이라면 응당 맛있을 것 아니겠냐고 아양을 떨면서 보태 말했다. 전반적으로 캐나다인들이 미국인들에 비해 더 날씬하고 스타일도 좋더라는 말을 전하면서 얼마 전 우리 옆집으로 이사를 온 캐나다 사람들을 예로 들었다. 그랬더니 다이앤이 캐나다 어느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더냐고 캐물었다. 새 이웃과 오래 말을 해본 적이 없어서 그것까지는 모른다고 했더니 다이앤이 뜻밖의 말을 전했다. 


퀘벡 지역 사람들은 캐나다 내 영어권 지역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캐나다 정부가 통합이라는 명분하에 불어권 지역의 언어와 문화를 희석시키는 정책들을 벌이곤 해서 퀘벡 지역 주민들과 영어권 지역 주민들과의 사이에 팬 갈등의 골이 깊다는 것이다. 다이앤의 어조나 표정이 짐짓 엄숙한 걸로 봤을 때 그 지역민들간의 정서를 지배하는 반감의 무게가 가벼이 취급될 일은 아닌가 보았다. 


그런데 그 내막을 들으면서 나는 얄궂은 안도를 맛보고 있었다. 유대감이라고 하면 적당할까? 그들에게도 지역감정이 있구나 싶은. 아무리 성토해도 한국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무의식 중에 지역감정의 지배를 받고 있고, 그 감정의 부스러기는 언행을 통해 돌발적으로 튀어나오곤 한다. 그런데 우리와는 다른 감정 선을 지녔을 것 같은 캐나다인들 역시 지역 감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알고 나니 은근 위안이 되는 것이다.


다이앤이 거울을 들고 내 뒤통수를 비춰줬다. 

“마음에 들어요?”

나는 늘 그렇듯 활짝 웃었다.

“당연하죠!” 


머리를 자르고 오는 길에 수퍼마켓에 들러 식재료를 샀다. 퀘벡 스타일 고기 파이를 만들어볼 참이었다. 문화와 관습을 고수하기 위해 그토록 방어적인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라니, 지역감정이고 뭐고 일단 맛은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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