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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pitalEDGE Jun 18. 2024

일 더하기 일은..... 리벨리온?!

사례로 알아보는 상장 전후 스타트업 간 대형 인수합병

리벨리온과 사피온의 전격 합병 선언


AI 반도체 스타트업 리벨리온과 사피온이 합병 계획을 발표하였습니다. 6월 21일 발표된 보도자료에 따르면 두 회사는 필요한 절차를 거쳐 3분기 본계약 체결 후 연내 통합 법인을 출범시킨다는 계획입니다.

리벨리온과 사피온의 AI 반도체 (image credit: Business Korea)


본 합병 건에 대한 SK텔레콤 측의 보도자료는 굉장히 비장하게 읽힙니다. '총력전', '국가대표', '대승적 통합', '골든타임' 등 합병의 실질적 이유보다는 당위성을 설명하는데 대부분의 단어를 할애하였습니다. 합병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시너지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은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상장 등 이벤트를 앞두고 대형 스타트업 간 합종연횡을 하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덩치를 키워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나아가서는 대마불사의 논리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대형 스타트업 간 합병입니다. 오늘 뉴스레터에서는 과거 상장을 전후하여 스타트업 간 합종연횡이 진행된 사례를 알아보고, 이를 통해 통합 리벨리온 합병의 의미도 짚어보고자 합니다.   



사례 1. 조마토(Zomato)와 블링킷(Blinkit) 합병


2021년 7월 IPO를 앞두고 있던 인도의 푸드 딜리버리 플랫폼 기업 조마토(Zomato)는 IPO 직전인 6월 당시 퀵커머스 및 식료품 배달 분야 선두 기업이었던 그로퍼(Grofer)에 1억 달러 규모 투자를 확정합니다. 상장 이후 성장성에 대한 의구심을 지우고 경쟁사인 스위기(Swiggy)의 스위기마트에 대항하기 위한 성격이 짙었던 거래였죠.

상장 직전 그로퍼 투자를 단행한 조마토


이후 분위기는 좋지 않았습니다. 조마토는 상장 이후 주가가 계속 하락하였고 그로퍼는 블링킷(Blinkit)으로 이름까지 바꾸며 고군분투하였으나 빠르게 현금이 말라가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자 조마토는 승부수를 띄웁니다. 블링킷과의 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우고 음식 배달과 식료품 배달 간 시너지에 더욱 베팅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2021년 7월: 조마토 인도 증시 입성

2021년 8월: 조마토는 그로퍼에 1억 달러 투자로 9.3% 지분 확보 

2021년 11월: 조마토는 하이퍼로컬 전자상거래 생태계를 구축하고 그로퍼의 지분을 통합할 계획을 발표하며 잠재적 합병을 시사

2021년 12월: 그로퍼가 블링킷으로 리브랜딩

2022년 3월: 블링킷은 7억에서 8억 달러 가치의 전액 주식 거래로 조마토와 합병 계약 체결

2022년 6월: 조마토 이사회는 6억 2600만 달러에 블링킷 인수 승인


당시 조마토는 시장은 물론 정치권으로부터 상당한 비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인도 투자은행인 JM Financial에서는 적자 기업이 적자가 더 심한 기업을 인수해 흑자 전환 가능성이 멀어졌다고 평가하였으며, 인도의 정치권에서는 10분 배송이 배달 기사를 더욱 쥐어짤 것이라며 조마토의 창업자를 직격하기도 하였습니다.

10분 배송 도입 이후 국회의원과 설전을 벌인 조마토 창업자 디핀더 고얄


하지만 결과는? 블링킷은 이제 조마토의 게임체인저로 변신하였습니다. 음식배달에서는 선두주자였지만 퀵커머스에서는 후발주자였던 조마토는 블링킷과의 화학적 결합에 성공, 규모의 경제와 성장 가속화, 수익성 향상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은 모습입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분석에서 조마토 기업가치의 50% 이상은 블링킷에서 창출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하였습니다.

조마토의 상장 이후 주가 추이


조마토의 주가는 상장일 대비 1.5배, 2023년 초 최저점 대비 4배 가까이 상승한 모습입니다. 2023년 초 블링킷과의 합병이 완료되면서 꾸준히 재평가를 받은 결과입니다. 시장에서는 조마토와 블링킷의 성공적인 합병을 명확한 성장 전략과 촘촘한 오퍼레이션 통합의 승리라고 평가합니다. 조마토는 올해 1분기에도 전년 대비 매출 성장 73%를 기록하며 투자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입니다.

 


사례 2. 고젝(Go-Jek)과 토코피디아(Tokopedia) 합병


조마토가 IPO에 성공했던 2021년 7월, 건너편 인도네시아에서는 두 로컬 유니콘간의 합병이 막 마무리된 시점이었습니다. 각각 13조 원과 9조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던 차량공유, 온디맨드 및 핀테크 슈퍼앱 고젝(Go-Jek)과 토종 전자상거래 선두주자 토코피디아(Tokopedia)는 그랩과의 경에서 앞서나가고 투자자에게 약속한 시점 내 인도네시아 증시 입성을 위해 의기투합한 것입니다.

2021년 합병을 단행한 고젝과 토코피디아


당시 인도네시아 언론에서는 국가를 대표할 테크 플랫폼이 탄생하였다고 대서특필하였습니다. 합병 기업인 고투(GoTo)그룹은 일간지 전면 광고를 내며 기대에 부응하였습니다. 인도네시아 거래소는 적자 기업의 상장 근거를 마련하며 고투의 상장을 뒷받침하였습니다. 결국 고투그룹은 2022년 4월 11일 30조 원이 넘는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인도네시아 증시 입성에 성공합니다.


합병 당시 내세웠던 시너지의 근거는 고젝의 핀테크 서비스 고페이를 토코피디아에서 사용하고 토코피디아의 물류 배송을 고젝이 맡는 등 상호 서비스를 내재화하는 부분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합병 시너지에 대한 명확한 자료는 제시하지 못하였습니다. 사실상 무릎을 칠 만한 시너지 영역이 없었기 때문에 '국가대표', '데카콘', '슈퍼앱' 등 듣기 좋은 말만 나열된 것입니다.

고투 그룹의 상장 이후 주가 추이


기업가치가 어느 정도 유지되는 듯 보였던 고투그룹은 2022년 12월 비상장 투자자 락업 해제와 함께 주가가 무섭게 폭락하기 시작합니다. 인도네시아 증시가 적자 테크 기업을 받아줄 체력이 안되는 것도 문제였지만 핵심은 고젝과 토코피디아 모두 성장은 정체되고 적자는 심화되는 기업이었다는 점입니다. 결국은 마이너스끼리의 결합이었던 것이죠. 


고투그룹의 주가는 공모가 대비 86% 하락한 상황입니다. 결국 회사는 토코피디아 지분 75%를 올해 2월 틱톡 측에 매각하며 두 그룹 간 합병이 실패하였음을 시인하였습니다. 틱톡은 토코피디아의 지분 75%를 $1.8 billion으로 평가하였습니다. 상장 당시 $10 billion으로 매겨졌던 토코피디아의 가치는 3년 만에 5분의 1토막이 되고 만 것입니다. 



다시 리벨리온과 사피온의 합병으로


이머징 시장의 플랫폼 기업 간 합병과 K-반도체를 함께 비교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차이점은 있습니다. 조마토와 고젝은 적어도 조 단위 매출을 기록하던 기업이었지만 리벨리온과 사피온은 아직 매출이 미미한 기업들입니다. 두 기업의 최근 기업가치를 더한 1조 3천억 원이 모두 '기대'와 '예상'에 근거한 수치입니다.


이번 뉴스가 특이한 점은 투자자 동의 및 합병 비율 등 구체적인 논의가 있기 전에 언론 보도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입니다. 보안을 유지하며 핵심 관계자 간 논의만 진행된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한 대목입니다.


[딜사이트] 리벨리온·사피온, 합병 공개 서두른 이유

[디일렉] 리벨리온 사피온 AI 속빈 덩치들의 합병 막전막후


결국 이번 합병 발표는 사업 및 시너지에 기반한 논의라기보다는 투자자의 이해관계로 추진된 모습입니다. 리벨리온 입장에서는 사피온 자체보다는 사피온의 주요 주주인 SKT 및 SK그룹을 우군으로 끌어들일지가 핵심 의사결정이었을 것입니다. SKT는 사업 재편 과정에서 그룹 포트폴리오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혼자 하기보다는 판을 키우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판단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2021년 이미 사피온 칩 양산 및 자사 서비스 적용을 공언했던 SK텔레콤


과거 조마토 - 블링킷, 그리고 고젝 - 토코피디아 합병을 강하게 밀어붙인 투자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비전펀드를 운용하던 소프트뱅크입니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는 블링킷의 최대주주이자 조마토의 프리IPO 투자자였으며, 또한 토코피디아의 최대주주이기도 하였습니다. 피투자 기업이 어려워지면 판을 키워 더 큰 가치를 인정받으려는 방식은 '마사요시 손' 특유의 대마불사 전략입니다. 일단 합병을 추진하면 그동안 시간도 벌고 우선은 미래 투자 가치도 보호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미사여구를 동원, 당위성을 설파하면 공동투자자들의 동의도 얻어내기 수월합니다. 얼마 전 뤼이드와 퀄슨의 합병이 그대로 겹쳐 보이는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소프트뱅크의 대마불사 전략은 성공했을까요? 결국은 조마토와 고투그룹의 차이처럼 쉽게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한 가지 증명된 것은, 기업가치가 높은 대형 스타트업 간 합병이 그대로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제대로 된 시장은 결국 Gimmick을 인정하지 않는 법이죠.


리벨리온과 사피온의 합병이 성공하려면 빠른 시일 내로 양 사의 시너지를 냉정히 설명하고 실질적인 가치를 증명해야 할 것입니다. 보도자료의 표현대로 지금이 정말 골든타임이라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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