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aS 산업의 과거 20년 그리고 다음 10년
20년 전, 한 소프트웨어 회사가 뉴욕 증시 상장에 성공하였습니다. 닷컴 버블 붕괴 이후 오랜만에 등장한 대형 IPO였죠. 1,500억 원에 가까운 자금을 조달하며 1조 원 이상의 기업가치도 인정받았습니다. 바로 현재 300조 원이 넘는 시가총액을 기록하고 있는 세일즈포스(Salesforce)입니다.
세일즈포스의 IPO는 Software-as-a-Service(SaaS) 모델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전까지 소프트웨어는 패키지로 판매되어 고객의 서버에 설치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일즈포스는 'No Software'라는 과감한 슬로건과 함께, 클라우드를 통해 소프트웨어를 서비스로 제공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세일즈포스의 접근은 소프트웨어의 개발, 배포, 사용, 그리고 비즈니스 모델 전반에 걸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SaaS는 글로벌 IT 산업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고, 우리의 일상과 비즈니스 방식을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세일즈포스가 SaaS 모델을 들고나왔을 때, 대부분의 투자자와 업계 전문가들은 의구심의 눈초리를 보냈습니다. 당시 소프트웨어 산업의 표준은 고가의 라이선스를 판매하고 추가로 유지 보수 비용을 받는 모델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세일즈포스의 구독 기반 모델은 파격적이었습니다.
세일즈포스는 IPO 당시 수익의 절반 이상을 고객 확보에 지출했습니다. 이는 전통적인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두 배에 달하는 금액이었습니다. 또한, 데이터 센터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고, 마진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개선될 것이라는 구체적인 가이던스를 제시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러한 요소들로 인해 투자자들은 세일즈포스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결국 IPO는 $1.2 billion의 시가총액으로 $110 million을 조달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는 당시 비교 대상이었던 이베이와 야후의 2-year Forward P/E 50배 평가 기준을 그대로 적용한 결과였습니다.
당시 세일즈포스의 Forward P/Sales 배수는 3.9배로 책정되었습니다. 현재 고성장 SaaS 기업이 여전히 매출의 15 - 20배의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점에서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수치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매출 배수 기준으로 볼 때, 세일즈포스가 이베이나 야후보다 10배 이상 빠르게 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할인된 가격으로 평가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시장이 당시 SaaS 모델의 잠재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초기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세일즈포스의 창업자 마크 베니오프(Marc Benioff)와 그의 팀은 SaaS 모델의 장점을 끈질기게 설파했습니다. 고객들에게는 초기 투자 비용 없이 즉시 사용 가능한 솔루션을, 기업에게는 지속적이고 예측 가능한 수익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소프트웨어 산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이후 수많은 SaaS 기업들이 세일즈포스의 뒤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기술 사이클의 변화는 5-10년마다 일어나지만, 비즈니스 모델 혁신은 수십 년에 한 번 경험하기도 어렵습니다. SaaS는 기술적 변화로서도 큰 의미가 있었지만, 비즈니스 모델 혁신으로서의 의미도 다시금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SaaS는 소프트웨어를 개발, 판매, 배포, 개선하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가능하게 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이끈 사례입니다.
초기 SaaS 기업들은 자체 데이터 센터를 구축하고 운영해야 했습니다. 이는 막대한 초기 투자와 운영 비용을 필요로 했습니다. 세일즈포스는 창업 초기 막대한 투자를 피하기 위해 자체 데이터 센터를 구축하는 대신 캘리포니아 주 서니베일에 있는 Exodus Communications의 콜로케이션(Co-location) 서비스를 활용했습니다. 이를 통해 초기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인프라를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SaaS 서비스의 폭발적 성장은 클라우드 서비스의 등장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아마존은 2000년대 초반부터 Amazon Web Services 개발을 시작하였지만 정식 출시는 2006년 3월이었습니다. 2004년 세일즈포스의 성공적인 IPO는 클라우드 기반 비즈니스 모델의 잠재력을 시장에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SaaS 서비스의 폭발적 성장이 확장 가능하고 유연한 인프라에 대한 수요를 이끈 것입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투자자들은 SaaS 비즈니스 모델이 더 예측 가능하고, 효율적이고, 확장성이 있으며, 고객과의 친밀도가 높고, 새로운 데이터 인사이트를 제공하며, 궁극적으로 전통적인 소프트웨어만큼 수익성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로 인해 SaaS 기업들은 시장에서 프리미엄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시가총액 기준 세계 40대 기술 기업(중국 제외) 중 지난 20년 기간 동안 신규로 상장한 기업은 5곳에 불과하며 그중 3곳이 SaaS 기업입니다.
2022년 정점을 찍은 SaaS 산업은 이후 여러 가지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성장성은 둔화되고 있으며 투자자들은 앞으로도 SaaS 기업에 높은 프리미엄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 주저하고 있습니다. 한때 매출의 20 - 30배로 거래되던 시기에 비하면 최근 SaaS 기업의 기업가치는 타 기술 섹터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모습입니다.
사람들이 SaaS에 돈을 지불하는 이유는 SaaS를 직접 만드는 비용이 여전히 비싸기 때문입니다. 개발뿐만이 아닙니다. SaaS를 유지하고, 배포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들어갑니다. SaaS 기업의 CapEx는 R&D가 아니라 CAC(고객획득비용)이란 표현이 있을 정도로 많은 투자가 필요한 산업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변화의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AI의 등장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AI가 개발자와 엔지니어를 대체하는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발자는 숙련된 번역가로, 인간의 언어를 컴퓨터 언어로, 또 그 반대로 번역하는 일을 수행해 왔습니다. 하지만 LLM(대규모 언어 모델)은 개발자의 작업을 효율적으로 대체할 수 있음을 입증하고 있고, 소프트웨어 제작 비용을 제로에 가깝게 낮추는 모습입니다.
SaaS가 더 이상 90% 이상의 매출이익률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ARR, Net Dollar Retention, Magic Number 등 다양한 SaaS 지표는 모두 소프트웨어 제작과 관련된 비용이 진입장벽이었던 시기의 비즈니스 모델을 이해하기 위한 용어들입니다. 하지만 AI 개발자와 엔지니어의 도입이 빨라질수록 SaaS 그 자체에 대한 효용 가치는 반감될지도 모릅니다. 과연 SaaS의 다음 10년이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넘어 새로운 가치 창출 방식을 정립하는 변화의 시기가 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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