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에 마라톤 훈련기를 썼던 것이 한달 반 전. 무려 10월 7일의 기록이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11월 하순. 혹시나 이 전 포스팅을 봤던 분이 계신다면 '이거 말만 뻔지르르하게 해놓고 먹튀했구만'이라고 생각하셨을 수도. 게으르고 무책임한 업로드에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설레발만 떨어놓고 잠적했던 것은 아니고 ... 진짜로 뛰었다. 얼레벌레, 어영부영, 얼떨결에 나도 마라톤 풀코스 완주에 성공한 사람이 되었다. 마라톤 풀코스 완주 메달을 목에 건 사람이 되었다.
지난 10월27일. 춘천 마라톤.
새벽에 집에서 나와 청량리역에서 동호회원들과 함께 춘천가는 기차에 올랐다. 7시 조금 넘은 시간에 타서 1시간 남짓 가니 남춘천역이다. 이날 경춘선은 뛰는 사람들이 점령했다. 청량리 역에서부터 러너의 포스를 풍기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가벼운 옷차림에 스포츠 가방을 두른 이는 물론이고 벌써부터 다리에 빽빽하게 테이핑을 한 사람들도 꽤 있었다. 달리는 기차안. 곳곳에선 다리에 테이핑을 하기도 하고 영상을 보거나 잠을 청하는 이도 있었다.
남춘천역, 춘천역 둘 다 마라톤 출발선까지의 거리는 비슷한지라 우리들은 남춘천역에 내렸다. 천천히 걸어서 10분이면 다다른다. 차량이 통제된 거리는 활기찬 표정의 러너들로 가득했다. 사람들이 죽죽 움직이는 방향으로 따라가면 목적지에 닿는다. 열차 안에서 동호회 다른 회원들이 다리에 테이핑을 하기에 나도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하고 테이핑을 했다. 뭔가 좀 땡기는 듯 했지만 안하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하며 불안함을 달랬다.
10월말 아침은 보통 쌀쌀하기 때문에 출발하면서 가볍게 걸칠 비닐이나 우의, 옷 따위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조금 지나면 더워지긴 하지만 출발할 땐 추워서 경직될 수 있어 그런저런 것을 뒤집어 쓰고 출발한 뒤 조금 지나 더워지면 그렇게 걸친 것을 길에 버려두고 달린다. 그런데 이날은 그정도로 춥지 않아 뛰기에 꽤 좋은 날씨였다. 햇빛도 내리쬐지 않고 흐린 편이라 더더욱 좋았다.
옷을 맡기고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른 뒤 에너지젤, 간식거리 등 각자의 소지품을 점검하고 가볍게 체조를 하며 몸을 풀었다. 허리벨트에 이런저런 소지품을 넣게 마련인데 휴대폰을 휴대할지 어떨지 여부를 놓고 사람들마다 약간의 의견 차이가 있기도 하다. 긴 거리를 뛰기 위해선 조금이라도 무게를 줄여야 하므로 부담되는 휴대폰을 소지품 맡길 때 같이 맡기라고들 한다. 나 역시 그렇게 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풀코스 뛰다 혹시 위급상황이 되면 전화가 필요하지 않을까(아무리 곳곳에 자원봉사자가 있다 하더라도) 하여 휴대하는 경우도 있다. 그거야 뭐 개인적으로 알아서 할 일. 나같은 초짜야 부담되는 것을 줄여야 하므로 당연히 휴대폰을 들고 뛰지 않지만 뛰다보니 휴대폰으로 셀카를 찍으면서 가거나 전화 통화를 하는 이들도 꽤 있어서 좀 재미있기도 했다.
풀코스, 10킬로 이렇게 나뉘어 있었고 풀코스 지원자들도 A에서 F까지 나뉘어 그룹별로 출발시간이 달랐다. 나는 이번이 첫 출전인데 D그룹에 배정돼 있었다. 원래 이전 기록이 없는, 초보자라면 보통 F와 같은 마지막 그룹에서 뛰는 것이 일반적일텐데 워낙 젊은층이 마라톤에 대거 뛰어들면서 첫 도전자들이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이다. 즉 신규 참가자들이 D~F그룹을 차지할 정도로 숫자가 많았다는 이야기다. 이 말은 그동안 춘천 마라톤에 꾸준히 참여해왔던 중장년 고인물 러너들이 인터넷 접수에서 대거 광탈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뭔가를 좀 먹고 출발하기 전 밀어내기에 성공한 뒤 뜀박질을 시작한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결국 그건 내 맘대로 되지 않았다. 딱히 신호가 오지 않는... 그래서 처음 마음 먹었던대로 적당히 가다가 신호가 오면 화장실 들르면 되지 하고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여긴 작년 DMZ마라톤 때와는 달리 코스 내에 곳곳에 화장실이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으므로 마음이 편했다.
물은 미리 마셔두어야 한다고 해서 출발 30분 전쯤 500밀리 생수의 3분의 1 정도를 마셨다. 동호회원 두명과 함께 출발을 기다리며 가볍게 제자리 뛰기를 했다. 이미 앞서서 3개 그룹이 출발했고 이어 우리 그룹 차례. 출발 신호와 함께 살살 뛰기 시작했다. 처음엔 워밍업 삼아 킬로당 7분30초 정도 수준으로 천천히 천천히.
사실 빨리 갈래도 그럴 수 없다. 폭이 정해진 도로위에 수많은 사람이 모여서 뛰기 때문이다. 의미없는 속도를 낼 필요도, 몸싸움을 할 필요도 없는, 다같이 오종종 함께 꿈지럭거리는 시간이라고 하면 될까. 기온도 적당했고 햇빛도 구름에 가려져 있었고 살짝 바람이 부는 쾌적한 환경까지 모두 괜찮았다. 그리고 다행히 3킬로 정도 갔을 때 뱃속에서 신호가 왔다. 근처에 화장실 표시가 있었고 가장 고민스럽던 화장실 문제를 해결했다.
아름다운 풍광, 사람들의 에너지, 함성, 길가에 선 시민들의 응원 등을 벗삼아 달리기를 이어갔다. 넓게 펼쳐진 호수, 그 옆으로 감싸고 도는 도로, 길가에 이어지는 알록달록 단풍, 저 멀리 보이는 부드러운 산의 광경을 온 몸으로 끌어안으며 뜀박질을 이었다. 자연속으로, 가을로... 따위의 표현들을 글로 볼 땐 그저 막연했는데 여기선 글자그대로의 의미를 내 몸이 느끼고 실천하고 있었다. 이런 맛에 이곳을 뛰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재작년 이 코스를 하프로 한번 뛰었고 이번이 풀코스 첫 도전이니 고작 2번 뛰었을 뿐인데도 이럴진데, 매년 이곳을 찾아 뛰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
20킬로미터 지점까지는 그런대로 뛰었다. 예상했던 몸 상태였고 피로도도 견딜만 했다. 하프를 넘어서는 지점부터 괜히 긴장이 됐다. 하프 이상을 한번에 소화해 본 훈련 회차가 10번도 되지 않은 쌩 초보이다보니 마음속에 괜히 두근거림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냥 평소 하던대로, 무리하지 말고를 되뇌며 하프지점을 지나는데 그때부터 무릎과 종아리쪽에 쎄한 느낌이 오기 시작했다. 그것, 바로 너무나 걱정스럽던 쥐내림. 다리에 잘못 힘을 주거나 힘이 들어가면 곧바로 파르륵 근육이 경련되면서 쥐가 오는데 그 느낌이 살짝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이런 느낌이 올 때 속도를 내거나 다리에 힘을 잘못 주면 바로 긴급 상황. 속도를 늦추고 종아리에 최대한 힘이 들어가지 않게 코어에 더 힘을 줬다. 무릎 주변이 욱신거리는 것 같고 좀 거북스러웠다. 곳곳에 보이는 봉사요원에게 파스를 뿌려달라고 부탁하면서 속도를 늦추기를 반복했다. 속도를 늦춰도 중간에 쥐가 올라오는 느낌이 드디어..... 하는 수 없이 멈춰 서서 가드레일을 붙잡고 스트레칭을 했다. 주물렀다 두드렸다를 반복하며 다리 스트레칭을 하는데 그것도 30초 이상 길게 해선 곤란하다. 자칫 멈춰서서 시간이 지체됐다간 다시 뛰기가 너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곳곳에서 멈췄다가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예 바닥에 주저 앉았던 듯 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동료가 이제 그만 일어나자고 했는데 "걷더라도 안멈췄어야 하는데 나 이제 더이상 못간다"고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무리 쥐가 나고 아프더라도 30초 이상 머물러 지체하지 말자고 결심에 결심을 거듭했다. 일단 급한 불을 스트레칭으로 꺼도 그 상태로 1킬로 달리기도 힘들었다. 꾹 참고 속도를 줄이고 힘을 빼가면 달려가는데 세상에 이렇게 1킬로가 길 줄이야. 게다가 언덕길이 이어지다보니 그 힘듦의 정도는 더 심해진다. 쉬지 않고 달려가는 사람들을 보며 나를 채찍질하면서도 어느 순간 나는 저들과 다른 종자라는 생각과 함께 자신감이 한없이 곤두박질 쳤다. 어디선가 앰뷸런스가 달려와 저만큼 앞에 가서 서는 모습도 꽤 보였다. 다가가 보면 대부분이 쥐가 내려 고통에 찬 신음을 내지르는 모습이었다. 포스는 전문 러너인데, 그런 모습을 보니 저런 고수의 풍모를 풍기는 사람들도 쥐가 내리는구나 하는 마음에 잠시 위로가 되기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춘천 코스는 언덕길이 많아 실제로 숙련자들도 쥐가 내려 고생을 많이 한다고 들었다. 중간에 실려가는 사람, 포기하고 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난 그냥 끝까지 내 발로 들어가기만 하자!!!
35킬로를 지나면서는 배경은 그대로이고 내 발만 꾸역꾸역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대로변으로 나온 상태라 주변은 그대로인데 내 몸의 고통만 가중되는, 가도가도 끝없는, 이 상황이 끝날까 싶은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역시나 잠시쉬겠다고 주저 앉았던 사람들이 "개미처럼 걷더라도 앉지 말았어야 했어"라고 안타까워하며 넋두리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지금 내 모습은 쥐가 계속 나고 있는 오른쪽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게 하려 절뚝이며 겨우겨우 발을 옮기고 있는, 눈빛은 텅텅 빈, 지쳐빠진 보행물체의 그것이리라. 계속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리가 아픈 것보다, 포기하는 사람들도 꽤 많은데 나도 포기하자 싶은 생각을 극복하고 떨쳐내는 것이 더 힘들었다. 분명 35킬로 지나온지가 한참인데 왜 아직도 37킬로밖에, 38킬로 밖에 안되는 지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평소에 5킬로 뛰는건 일도 아닌데 여기서 5킬로는 10만년은 걸릴 것같다는 생각으로 아득해지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더 굴뚝같아졌다.
옆의 한 중년 남자는 전화를 하면서 달리고 있었다. 기록이 예상보다 많이 안나올 것 같다는 둥, 이제는 나와의 싸움이라는 둥.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달리고 있었다. 여유있게 전화하는 그였지만 그래봤자 나랑 비슷하게 달리고 있는 것 아닌가. 갑자기 웃음이 났다. 그의 모습을 보노라니 마치 학교 시험이나 토익 시험장에서 유독 문제 유형 분석하고 어쩌고 하며 나대는, 그래서 괜히 분위기 주도하려는, 어디에서나 접할 수 있는 그런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이야 그러려고 그런건 아니지만 괜히 저런 모습에 옆에 있다 주눅들기 십상인데 괜찮아, 나 잘하고 있어를 되뇌었다.
드뎌 40킬로 지점. 조금 더 달려가니 기다리고 있던 우리 동호회 멤버들이 길에 서서 소리 높여 내 이름을 불러줬다. 60대 언니는 함께 뛰어주시겠다며 옆에 와서 힘을 더해주셨다. 길에 선 사람들도 이름을(배번에 출전자들의 이름이 대문짝만하게 써 있다) 큰 소리로 불러주며 응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의 목소리. 사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힘이 됐다. 별거 아닌거 같은게 아니라 정말 별거다. 그 목소리에 힘내고 포기하지 않고 한발 더 내디딜 수 있었으니까.
동호회 멤버들이 항상 하는 말. 마라톤은 자기와의 싸움이지만 그 마라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팀플레이다. 정말 맞다. 나와 내 동료, 옆에서 응원해주는 사람들. 그렇게 함께 하는 팀플레이라는 사실이 새록새록 마음에 새겨졌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42.195. 드디어 결승선을 밟았다. 여기저기서 게속되는 박수. 내 앞으로, 내 뒤로 계속 들어오는 사람들. 결승선을 통과한 내 상태는 걷기도 뛰기도 앉기도 서기도 힘든 어정쩡함 그 자체였다. 이런 어정쩡한 상태가 되어보니 이만큼의 거리를 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건지 실감이 됐다. 뛰기전엔 그까이꺼 어떻게 되겠지 하는 자만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막상 그 거리를 지나보니 한없이 겸허해진다. 정말 이 거리를 2시간대에 뛰는 건 사람이 아니구나.... 싶다.
내 기록? 사실 이정도 수준에 기록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다는 것이 민망할 수준이다. 하지만 5시간을 훌쩍 넘는 시간을 달려 완주한 것이 어디인가. 내 자신이 기특하고 대견하다는 생각도 든다. 50이 넘어서 시작했고, 2년 반만에 완주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고 함께 뛰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그렇다. 마라톤은 팀스포츠다. 혼자 하면 빨리 가겠지만 함께 해야 오래간다. 좋은 사람들과 앞으로도 오래오래 함께 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