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음식 웬만한게 다 그렇긴 하나 치즈 역시 방대하고 어렵다.
초딩시절 어느때, 비닐에 싸여진 노란 슬라이스 치즈로 입문해 이것저것 먹어봤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치즈의 세계에서 헤매고 있다.
얼마전 치즈 기사를 쓰면서 이런저런 치즈 책을 찾아보고 김소영 아티장도 만나뵈고 몇몇 전문가 분들에게 설명을 들으면서 갈피를 잡으려 노력해 봤다. 그나마 아래의 표 하나를 정리할 수 있었다. 아는 사람들에게야 뭐 별건가 싶겠지만 나같은 초보자는 낫놓고 기역자를 알아간다는 기쁨이 크다.
세상의 모든 치즈가 이 안에 포함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살면서 접해볼 수 있는 웬만한 치즈들은 여기 들어간다고 보면 되리라. 이건 자연치즈이므로 슬라이스나 벨큐브같은 앙증맞은 사각모양 치즈, 과일이 박힌 치즈, 스트링 치즈 등등 딱 봐서 모양을 많이 잡은 치즈들은 가공 치즈라고 생각하면 된다.
일단 치즈는 자연치즈/가공치즈로 나뉘고 재료에 따라 소/양/염소 등으로 나뉜다.
자연치즈 중에서 숙성과 수분함량에 따라 위의 분류로 나뉜다.
여기 표시해놓지 않은 치즈로 셰브르치즈, 즉 염소치즈가 있는데 프랑스는 이 6가지에다 염소치즈까지 따로 분류해 보통 7가지 분류를 해놓는다고 한다. 염소치즈 가장 많이 먹고 즐기는데가 프랑스라고 하니 그런듯도. 프랑스치즈 전문점인 르므니에 (@le_meunier_seoul)에서 파는 퐁트니 같은 염소치즈는 형태나 수분함량상 흰곰팡이 치즈 정도에 들어갈 수 있겠다.
염소치즈는 특유의 염소취가 난다. 염소유에서도 그런 냄새가 좀 있는데 발효시키는 치즈는 그 '향'이 더 강해지는 듯. 메이커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한국 사람들이라면 좀체 적응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힘든 것도 있다. 근데 또 이게 중독성이 어마무시한가보다.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즐기는 치즈가 염소치즈라니. 아마 우리 홍어, 청국장에 대해 외국인이 갖는 느낌도 그런 것이려나. 전에 코스트코인가 어디서 누가 사다줬던 염소치즈에는 잘 적응을 못했는데 르므니에에서 파는 퐁트니는 상당히 매력적인 맛이 괜찮았다. 심지어 좀 뒀다가 푸르스름한 곰팡이가 보송보송 피어오른 상태로 먹는게 가장 맛있다고 해서 그렇게 먹어봤는데 은근 중독성 있다.
워시드치즈 중에서는 에프와스 치즈를 백화점에서 판다. 어디선가 읽은 기억으로 에프와스 치즈의 별명의 신의 발냄새라고 하던데 듣던대로였다. 이 치즈를 사다가 김치 냉장고에 넣어뒀을 뿐인데, 그리고 몇차례 냉장고 문을 여닫았을 뿐인데 집에 들어온 남편이 언짢은 듯이 물었다. "이게 뭔 냄새냐?"고. 심지어 시어빠진 김치 삭은 내와 똥 냄새가 섞인 것 같대나 뭐래나. 이걸 지퍼락이나 밀봉하는 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넣었어야 하는데 내 실수니 뭐 할 말은 없다. 냉장고 열었다 닫았다 하는데도 저 야단이니 도대체 이걸 어디서 먹어야 하나. 결국 이 치즈를 들고 아이들 아무도 안가는 아파트 한구탱이 놀이터로, 그것도 뙤약볕 작렬하는 시간에 나갔다. 뚜껑을 여는데 흠... 냄새가 장난이 아니다. 스멀스멀 스며드나 싶더니 이내 코가 마비되는 것 같다. 하지만 것도 잠시뿐. 곧 괜찮아졌다. 모양은 주황빛을 띈 황금빛 카스테라 덩어리 같았다. 굳이 취향에 맞지 않으면 껍질은 먹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껍질은 제끼기로. 치즈를 가르는데 속은 샛노란 비단결같은, 응축된 커스터드 크림같은 질감의 치즈가 나타난다. 냄새만 빼면 어마어마하게 유혹적인 비주얼. 숟가락으로 떠서 한입 가득 물었다. 와, 이건 뭐 신세계다. 냄새는 '저모냥'인데 쫀득한 크림이 입안에 착 감기는 것 같더니 비단 구름 스쳐가듯 부드럽게 녹는다. 역한 맛 전혀 없다. 궁극의 고소함이 미쳐 폭발하는 맛이랄까. 와인이 아닌 치즈에 취하겠다 싶은 느낌적 느낌. 껍질이 냄새가 많이 나는듯해 껍질을 벗겨 음식물 쓰레기 통에 버리고 집으로 올라가 와인을 땄다. 다행히 껍질이 사라져서인지 먹을 때도 먹고 나도 남편은 딱히 별 말이 없다.
그라나 빠다노와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고다와 에담, 까망베르와 브리. 이들 치즈는 짝을 지어 동시에 산 뒤 비교하면서 여러차례 먹어봤다. 둘의 차이를 비교해서 어느 정도 알겠다 싶어 자신감을 가져본 적도 있는데 웬걸. 다른 브랜드의 제품으로 이 커플들을 사봤더니 또 다시 원점이다. 둘을 비교해서 구분할 줄 아는 장금이 입맛을 가져보겠다고 야심차게 시작했었으나 돈만 겁나 쓰고 여전히 구별 못한다. 그냥 치즈 플래터에 나오면 이름을 보거나 물어봐서 이게 그거구나... 하는 식이다.
콩테도 개월수에 따라 비교해 먹어본 적이 몇번 있으나 음 맛있네, 고소하네, 감칠맛냐네 하는 수준이다. 뭔 장금이. 그냥 욕심부리지 말고 맛있게만 먹자. 뭘 꼭 구별해야 해? 그냥 그 맛이나 느낌이 어땠는지 기억하는 정도로만. 발랑세, 로크포르 같은 치즈는 나중에 프랑스 가서 잊지 말고 꼭 챙겨먹어봐야겠다. 식탐과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나만큼만 있어보라고. 그럼 인류가 서로 낯선 문화에 대해 이해하고 포용하는 정도가 얼마나 깊고 넓어지겠냐고.... 뭔 개소리인가.
아무튼 맛에 대한 호기심을 넘어 모르는 맛에 대해 늘 환장하는 나에겐 치즈 버킷 리스트에 넣어놓은 2가지
치즈가 있다.
하나는 세계 몇대 혐오식품에 종종 오르는 샤르데냐섬의 카수 마르주. 일명 구더기 치즈라고도 하는데 현재 이 치즈는 파는 것이 불법이라고. 사르데냐 섬 농가에서 그냥 가정에서 먹으려고 만드는게 전부라니, 그리고 사려면 암거래를 통해야 한다는데 나중에 사르데냐 놀러가서 민박이라도 한다면 얻어먹는게 가능하려나.
그런데 사진을 보니 혐짤이긴 하다. 궁금하긴 엄청 궁금한데 막상 눈앞에 있으면 먹을 수 있으려나.
또 하나는 세르비아의 동키치즈다. 이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식품에 이름이 종종 오르기도 한다. 당나귀젖으로 만드는 치즈다. 당나귀는 연간 가을에만 젖을 생산할 수 있고 양도 많지 않아 원료가 극히 희귀하다. 게다가 다른 포유동물의 젖과 달리 치즈를 만들기에 필요한 카제인 성분이 거의 없어 치즈 자체를 만들기도 힘들다고 한다. 세르비아 단 1개의 목장에서 이 치즈를 만드는 기술을 갖고 있다 하니 당연히 비쌀 수 밖에. 이 치즈 한조각 맛보려면 이 목장에서 몇달간 알바를 해야 가능할까.